델로스동맹 -同盟 Delian League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때 아테네가 주도한 그리스 도시 동맹(BC 478).
아테네는 아나톨리아에 있는 이오니아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고 페르시아인들에게 보복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동맹군 사령관은 아테네인들이 맡았고, 모든 군사권과 자금의 권한도 아테네가 맡았다. 동맹국의 대표자들은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있었으며 해마다 델로스에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그곳에 있던 아폴론 신전에 동맹의 금고가 보관되어 있었다.
동맹을 맺고 처음 10년 동안은 이따금 페르시아를 곳곳에서 공격했다. 에이온과 트라키아에서 페르시아 수비대를 쫓아냈는데 원주민은 그 지역의 아테네 정착민들을 몰살했다. 그러나 스키로스 섬으로 간 이민들은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스 동맹군은 트라키아 해안의 도시들을 점령했으나 도리스코스 공격에는 실패해 도리스코스는 유럽에 남은 유일한 페르시아 요새가 되었다.
BC 467~466년경에 아테네 사령관은 동맹군의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아나톨리아 남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페르시아 수비대를 쫓아내고 해안 도시들을 동맹에 끌어들였다. 그 뒤 그는 팜필리아의 에우리메돈 강 연안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무찌르고 군대 막사를 약탈했으며 키프로스 섬에 있던 증원군도 대파했다.
BC 46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관계를 끊자 동맹 정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전쟁(BC 460~446)을 벌이는 한편, 키프로스·이집트·지중해 동부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동부 지역에서도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 아테네와 그 동맹국들은 스파르타와 싸워 아이기나·보이오티아·그리스 중부지방을 정복했지만, 동맹국 함대가 이집트에서 사실상 전멸해 더 이상 영토를 넓히지는 못했다.
해군의 참패에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가 공격해올 것을 우려해 동맹국 금고를 아테네로 옮겼다. 델로스 동맹은 그 뒤 5년 동안 스파르타, 페르시아와 얽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아테네 제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아테네는 BC 472년경부터 이미 제국주의적 성격을 드러내 그무렵, 에우보이아 지방에 있던 카리스토스를 강제로 동맹에 끌어들였는가 하면 동맹 탈퇴를 원하는 낙소스를 굴복시켜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BC 463년에는 타소스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 BC 450년대에는 밀레토스·에리트라이·콜로폰에서 아테네 반대 운동이 일어났으나 아테네가 동맹국의 내정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는 한편 사법권까지 간섭하게 되자 동맹국들은 차츰 독립성을 잃어갔다.
델로스에서 열던 동맹회의는 결국 없어졌고 아테네는 동맹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돈으로 페르시아가 파괴한 아테네 신전들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 참여하자 델로스 동맹은 더욱 무거운 부담을 져야만 했다. 아테네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조공과 군대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다.
아테네가 BC 413년 시칠리아에서 패배한 뒤에는 동맹국들이 곳곳에서 봉기했으나 대부분의 도시에서 민주주의 파벌들은 여전히 아테네를 지지했다. 스파르타는 아이고스포타미에서 아테네를 무찌르고(BC 405) 이듬해 동맹 해체를 요구하는 평화조약을 아테네에 강요했다.
그러나 BC 404년 이후 스파르타는 해체된 제국을 무능하게 다스렸기 때문에 아테네가 영향력을 되찾게 되었다. BC 377년에 아테네는 코스·미틸레네·메팀나·로도스·비잔티움과 함께 새로운 해군 동맹의 핵심을 결성했는데, 이 동맹의 목적은 평화를 유지하고 스파르타의 침략을 막는 것이었다.
BC 371년에는 이 동맹에 가입한 나라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적어도 50개에 이르렀지만 스파르타의 세력이 약해지자 동맹의 목적이 무실해지고 동맹도 차츰 쇠퇴했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BC 338년 카이로네아에서 델로스 동맹을 사실상 분쇄했다.
델로스 동맹으로 인해 아테네는 페르시아 제국과 스파르타의 침략으로부터 평화를 지켜내고 고대 그리스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델로스 동맹의 조락은 아테네의 몰락을 가져왔다.
아테네 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