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독도갈등을 높이는 속내
한국의 맹추격에 위기감 동반한 패전의 역사 명예회복 욕구
일본 중북부에 위치한 후쿠이현엔 오바마시(小浜市)가 있다. 오바마 시민들은 현직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열렬히 지지한다. 그 이유는 지명과 성씨의 발음이 같다는 거다. 미국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정작 3세대, 4세대를 이어가고 있는 재일한국인들의 지방참정권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단순 모방논리는 독도와 조어도(釣漁島·센카쿠 열도) 대응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 정부는 조어도의 국유화 조치 이후 한국과의 영토분쟁은 있어도 중국과 분쟁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고 독도는 한국에 지배권을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해자가 마치 피해자인 양 행동하며 순간 유리해 보이는 포인트만을 취사선택하는 상황논리이다.
일본이 전혀 다른 사안을 두고 자국에 편리한 논리를 갖다 붙인 전례는 드물지 않다. 범죄인들에게만 적용되던 강제지문 날인제도가 외국인 인권침해 사례로 등장하자 1988년 폐지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이 대(對)테러 전쟁을 선포하자 이를 모방해 2007년 공항 외국인 지문날인과 사진촬영 제도를 도입했다. 1970년 요도호 일본항공기 납치 사건, 1995년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살인 등 일본 국내 테러사건 대부분이 자국민에 의해 자행된 사실은 덮어둔 채 폐지된 악습을 부활시키기 위해 모방논리를 이용한 경우다. 이런 행위는 한국에 대한 보상금 역(逆)지불요구로까지 나타난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종군위안부나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보상문제 등에 관한 한국인 피해자들의 입장을 뒤집어 한국 발전의 근간에는 식민지근대화 정책이 있었다며 일본이 한국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난해 한일 정상이 만나 영토 갈등의 수위를 낮추자고 합의한 뒤에도 일본의 공격적 대중 홍보 전략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동기를 국내용으로만 보면 오산이다. 좀 더 깊은 속내를 읽어야만 한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일본에게 독도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센카쿠 열도나 북방영토와는 달리 독도에서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미미하다. 매장된 천연자원의 양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승부를 내려고 덤빌 만한 가치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도 전례없는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일본이 독도갈등의 비등점을 높이는 이유는 뭘까? 그 속내는 패전의 역사를 다시 쓰려는 자국의 명예회복에 있다. 1943년 12월 1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에서 "폭력과 야욕으로 탈취한 타국의 영토를 반환"하라는 요구가 있은 후 패전한 일본은 대부분 식민지를 포기했다. 작금 분쟁의 불씨는 동아시아에서 냉전구도가 고착화되고 한국전이 진행 중이던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있다. 구소련의 팽창을 경계하기 위해 일본의 협조가 필요했던 미국이 고의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모호하게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배경으로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우기는 속내에는 일본이 식민지 쟁취를 위해 '폭력과 야욕'을 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매우 염려스러운 명예회복 의식이 있다.
제2차 대전의 기억이 쓰라린 이유가 패배했기 때문이란 승자독식적 인식은 도덕성의 결여에 바탕을 둔다. 일본이 식민지였던 한국에 거의 모든 면에서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필요 이상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위기의식을 동반한 비뚤어진 명예회복의 욕구에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일본에 독도는 매우 중요하다. 일본정부의 자국민 교육과 홍보는 유리한 기억의 고지, 인식의 영역을 점하려는 전략이다. 현재의 편향적 인식이 미래의 사실로 굳어질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일본국민 여론의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국가는 영혼으로 존재하며 그 영혼은 국민의 기억공동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생명력을 이어간다. 일본을 상대하는 우리는 끝까지 주도면밀해야 하며 국가의 영혼은 도덕성, 정의감을 기초로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