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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天愛人(경천애인)
가장 널리 퍼진 생각은, 내가 하나님께 나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실 것을 기대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모욕적이고 품위가 없는 개념이다. 그러한 생각은,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하인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우리의 필요를 말씀드리고,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처리해 주시도록 맡기는 것이다(Arthur W. Pink).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의미한 사람인가를, 더욱 깊이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의 가장 작은 것 하나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Arthur W. Pink).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도 발견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Arthur W. Pink).
🔹복음에 대한 신학자들의 증언
234. 거룩함은 하나님을, 우리와 구별시키는 것이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과, 하나님의 정결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속성이다(I. Packer).
235.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서, 화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아는가? 화해는 신약의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예수님이 인간의 모양을 취하심과, 십자가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구원의 유일한 길과 같이, 이러한 모든 것들은, 화해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그러므로 화해는, 신약 성경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J. I. Packer).
🔹복음을 듣고 알고 믿고 행하고 전하라
✔ "거룩하다!" 라는 말은, "분리하다"와, "구별하다"와, "따로 떼어 놓다"와,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다"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 ≪카도쉬, qadosh≫를 번역한 것이다.
※ 히브리어 ≪카도쉬, qadosh, 거룩≫는, 하나님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을 의미한다.
"초월성"(超越性)"을 의미하는 "transcendence"라는 말은, 라틴어 동사인, ≪트랜센데레, transcendere)에서 유래했다.
✔ 히브리어로 ≪트랜스, trans, 초월성≫의 의미는, "위에"를 가리키는 ≪스칸데레, scandere)≫이다. 이는 "올라가다"와, "뛰어나다"와, "넘어서다"와, "능가하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로부터 초월(超越)해 계신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유지하는 모든 피조물들과, 온전히 구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분리와 구별은, 단지 양적인 의미인, "하나님이 더 크시다!" 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시다. 즉 하나님은 피조물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땅과 하늘에 있는 존재들은, 아무리 영광스러워도, 한낱 피조물에 불과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이다(신 4:35). 하나님은 인간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초월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시다(딤전 6:16).
✔ 하나님을 모시는, 가장 영광스러운 천사들이라고 할찌라도, 하나님에 비하면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님처럼 거룩한 존재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삼상 2:2). 그러므로 하나님은, 비교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절대타자(絶對他者)성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가장 무섭고 경이로운 존재들도,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은 크기로는 우리를 왜소해 보이게 만들고, 능력으로는 우리를 압도하고, 지혜와 아름다움으로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신다.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홀로 뛰어나시며,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신다. 하나님은 위대하실 뿐만 아니라, 온전하게 전적으로 다르신 것이다.
이것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威嚴)이 있으며, 기이(奇異)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출 15:11)라고, 찬양을 돌려야 한다
🔥 얼굴에 침 밷음을 당한 프란시스 자비어(Fransis Xavier)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어(Fransis Xavier) 선교사가, 일본 선교에 뜻을 두고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일본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 자비어 선교사가 어느 마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 때에 한 사람이, 자비어 선교사에게,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 자비어 선교사는 하던 설교를 멈추고, 그에게 가까이 돌아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 때에 갑자기, 자비어 선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아무런 대비도 없던 자비어 선교사는, 갑자기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자비어 선교사는, 한 마디의 원망의 말이나, 기분이 나쁜 표정이 없었다.
✔ 자비어 선교사는 손수건을 꺼내어서,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설교를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에 자비어 선교사의 설교를, 냉소적으로 듣고,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이, 자비어 선교사의 이 행동을 보고서, 엄숙해 지기 시작했다.
✔ 마침 그 자리에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의사 한 분이 참석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덕으로 사람을 감화시키는 사상은, 분명히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 예수님은 조롱과 멸시와 저주를 받았으나, 한 마디 대답도 않으시고, 채찍에 맞았으나 저주를 하지 않고, 십자가의 비참한 고난 속에서도 침묵하셨다.
비난과 모욕하는 자를 향하여, 예수님은 용서와 복을 전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와 화해와 평화와 희망의 샘이다.
✔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칭찬을 받기를 사모하지만, 작은 비난과 모멸 앞에서,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 작음의 힘
✔ 어느 날 티코를 탄 아줌마가, 운전을 하다가,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차를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랜저를 탄 아줌마가 잘난체하려고, 티코를 탄 아줌마한테 물었다. 언니! 티코 얼마주고 샀어요?
그러자 티코를 탄 아줌마는,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런데 또다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 왔다. 티코 탄 아줌마가 멈추자, 그랜저 타고 온 아줌마가, 다시 물어 보았다.
✔ 언니! 그 티코를 얼마주고 샀느냐고, 두번씩이나 물어 보느데, 왜 대답을 하지 않지요? 그러자 티코를 탄 아줌마, 야이 가시네야! 벤츠를 사니까, 티코를 덤으로 끼워 주더라고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떠돌아 다니는 유머이다.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 집도, 자동차도, 회사도, 심지어 교회도 큰 것을 찾는다.
소비자는 친절한 웃음이 있는 동네 작은 구멍 가게와, 인간미가 넘치는 시장 보다는, 세련되고 편한 대형 마트를 찾는다.
✔ 심지어 교인들 까지도, 부딪침으로 섬김을 배우는 작은 교회보다는, 다양성과 널찍함으로 편안을 누리는, 큰 교회로만 몰려 든다. 오매! 어째야 쓰까?
✔ 작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큰 배도 작은 키에 의해서 조정이 된다. 작은 고추가 맵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크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작고 보잘 것는 것에서 출발을 했다.
세계적인 신화를 몰고 온 아이팟(iPOD) 신화의 애플도, 스티브 잡스가 중고차를 팔아서 마련한, 1,300 달러로 시작한 조그만 회사였다.
연간 매출 41조원과, 5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 그룹의 출발점은, 바로 작은 껌이었다.
삼성그룹도 조그만 삼성 상회에서 시작다. 눈높이 교육으로 유명한 대교 그룹의 회장도, 과외 교사로부터 시작을 했다.
🔥 두려움
✔ 인도의 설화 가운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마술사가,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이는 바로,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술사는, 쥐를 변하여 고양이가 되도록 했다. 그런데 변신한 고양이도, 역시 두려워 떨고 있었다. 이는 바로, 개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양이를, 개가 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한 개는, 역시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이는 바로, 호랑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를, 다시 호랑이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호랑이도 역시,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이는 바로, 사냥꾼의 엽총 때문이었다.
✔ 마술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언했다. 내가 아무리 해보았자, 이 두려움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별 수 없는 쥐새끼이다. 다시 쥐로 돌아 가라. 그래서 다시, 쥐로 돌아 왔다는 이야기이다.
✔ 사람은 두려움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달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두려움은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이다.
두려움은 예지능력(豫知能力)에서 온다.
예지능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기대와 소망을 주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 준다.
✔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불안과 공포가 없는, 평안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예지능력이 부정적인 곳으로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평안(平安)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平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世上)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 생명을 살린 양말끈
✔ 오래 전에 공장을 짓고, 높은 굴뚝을 세우는 일이, 끝났을 때에 일어난 일이다. 굴뚝을 세우는 데 필요했던, 아시바와 발판을 제거했다.
그러나 공정을 감독하던 감독관이, 꼭대기에서 내려 오지를 못했다. 감독관이 타고 내려와야 할 밧줄을, 깜빡 잊고서 모두다 내려와 버렸다.
✔ 감독관의 아내가 집에 있는데, 아이들이 황급하게 달려와서 말했다. 엄마! 큰일 났어요. 아빠가 굴뚝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려고 해요.
아내는 한숨을 몰아쉬고, 잠시 기도를 드린 후에, 즉시 현장으로 달려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편은 굴뚝 꼭대기에서, 겁에 질려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저러다가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조이게 되었다.
✔ 바로 그 때에, 감독관의 아내가 외쳤다. 여보! 양말을 벗어서, 실을 풀어요. 그리고 실 끝에다가 막대기를 매어서, 아래로 가만가만 내리세요.
양말을 풀어서 매달은 작은 막대가, 흔들리면서 땅으로 내려 왔다. 한 사람이 막대기를 풀고, 튼튼한 밧줄끈을 다시 매었다.
✔ 튼튼한 밧줄이, 굴뚝 꼭대기까지 올라 갔다. 다시 나일론 끈에, 밧줄을 매어 올렸다. 잠시 후에 남편은, 밧줄을 든든히 붙잡고, 무사하게 내려 왔다.
가늘고 약한 양말의 실은, 나일론 끈을 끌어 올렸고, 나일론 끈은, 밧줄을 끌어 올렸다. 이리하여 무사하게 내려 왔던 것이다.
✔ 약하고 가는 양말실이, 인명을 구조하는 생명줄이 된것이다. 보잘 것 없는 양말도, 풀어서 활용할 때는, 가는 실이 엄청난 결과를 이룬 것처럼, 작은 믿음의 줄이, 우리를 하늘 나라로 끌어 올려줄 것이다.
하나님은 미약한 시작으로, 큰 역사를 이루신다. 가장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를 바란다.
🔥 크리스챤에게 가장 어려운 일/ 하나님을 믿는 것
✔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 줄을 아는가? 이는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답변이다.
평소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얼마나 자주 그리고, 쉽게 고백을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교인들과 목자들은, 성경과는 동 떨어진 삶을 사는 것일까? 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법칙보다, 세상의 법칙을 더 신봉하는 것일까?
✔ 하나님의 법칙보다, 세상의 법칙을 더 신봉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말하는 것만큼, 매사에 그 사실을 믿고 행동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그렇게 쉽지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건은, 지금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 첫인상(First impression)의 함정
✔ 보통 사람들은 평생 동안, 10만 여명의 사람들과 만난다. 그런데 그 만남 중에서, 첫인상이 인간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내가 만난 사람의 첫 인상이, 어떠하느냐에 따라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값을 추정할 때에, 초기 값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을,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러 있는 것처럼, 처음 입력된 정보가, 정신적인 닻으로 작용을 해서, 전체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사람을 평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 여기에 바로, 첫인상의 막연한 개연성의 함정이 있는 것이다. 첫인상은 중요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인상은, 웬만해서 바뀌지 않는다.
🔥 카타콤 성도들의 믿음
초대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당시 성도들이 받았던 박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고난이었다.
✔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기 이전까지, 무려 42명의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철저하게 박해했다.
예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시의 지하에, 땅굴을 파고 숨어서 예배를 드렸다. 이 동굴이 바로, 그 유명한 "카타콤"이다.
✔ 카타콤의 길이는, 무려 600km가 넘는다. 곳곳에 쌓인 유골은, 400만 개나 된다. 42명의 황제들에게, 310년 동안이나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붙잡혀서 사자의 밥이 되고, 잔혹한 고문을 당하더라도,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다.
✔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땅굴 안에서, 빛도 보지 못한 채로 살다가, 죽어서 유골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심으로 인해서,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그 놀라운 사랑을 전하는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위해서, 모든 고난을 감수하셨던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까지도, 예수님을따랐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들은 죽더라도 예수님을 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