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켜 놓고 물끄러미 앉아 있다보니,
작년 8월 이후부터 모니카 자모회방은 저 혼자 도배를 하고 있군요.
모니카회에 처음 들었을때, 같이 활동하던 엄마들 중에는 이제 활동하지 않는 엄마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많이 컸기 때문이지요.
이제 어른이 되어 시집, 장가 갈 나이들이 되었으니까요.
어느덧 세월이 그리 흘렀네요.
큰 아이가 첫영성체를 하며 다시 나오기 시작했던 성당이,
잠시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며 나오지 않던 기간들을 거쳐 꼬박 나오기 시작한게 이젠 일 년을 지났습니다.
첫 영성체를 했던 그 딸은 이제 스무 살,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겐 늦둥이 아들 녀석이 있기에 아직도 십여 년은 거뜬히 모니카 자모회에 남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새로 밀고 올라오는 새싹과도 같은 엄마들 틈바구니에서도요.
사실, 많이 젊은 엄마들을 저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나이는 들었어도 붙임성이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선뜻 먼저 말 걸지는 않지요.
조금 친해져야, 그때 되어서야 농담도 하고 그러긴 하지만요.
그래도 잠재되어 있는 수다 본능을 이렇게 홈페이지에서 풀어가고 있으니......
성환 성당의 홈페이지는 정말 좋습니다.
여러 사람 구제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 년 사이에, 예전에는 하지 않던 것을 새로이 시작한 것이 많네요.
일 년 전에는 제가 이렇게 홈페이지에 글도 올리고, 성경이어쓰기도 가끔 하고 그럴 줄은 전혀 몰랐는데요.
그러니, 삶이란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공처럼 내 앞에 마주하고 있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예상치 않은 모습들이 내가 살아갈 삶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까요?
그저 그런 대로 살다가 스러지기에는 아직 젊어서 너무 아쉬움이 많을 듯 싶습니다.
무언가 제대로 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제대로 산다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어찌해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물어봐야 대답해주는 사람도 없고, 넌 아직도 모르냐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세월의 더께로 알아지는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도 잊고 살던 모습들이 떠오르면 내가 왜 이럴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허전함을 잊으려 몸부림치는 것도 아닐 텐데, 가끔은 들뜬 강아지마냥 붕붕 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지요.
아침에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산을 올랐습니다.
쟤는 맨날 산에서 사는 가봐 그러실지 모르겠는데, 이번 주는 처음 올라간 것입니다.
저도 바쁠 때에는 못 가기도 합니다.
성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제 일 년 정도에 불과하니 말이지요.
입구에서 잠깐 판화가 이철수를 검색한 것이 전혀 얼토당토 않은 방향으로 하루를 이끌었지요.
이삽십 대 때에 한참 이철수 판화가의 그림을 많이 보며 지냈지요. 달력이든 어디든 참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이었어요.
짧은 글귀와 함께 그림이 있는 판화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요.
글씨 자체도 예뻤구요.
어찌보면 요즈음 유행하는 켈리그라피의 원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더 많은 말을 하여 어떻게든 자기를 표현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많은 것들이 생략되고 간결하게 남은 글과 그림은 보는 재미도 쏠쏠하게 만듭니다.
목판화에 새긴 글과 그림들은 언젠가 불쏘시개로 쓴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버릴 줄 아는 분이구나 싶기도 했지요. 그런데도 이 분의 그림을 안 본지도 꽤 되었는데요.
오늘은 무슨 생각에선지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핸드폰으로 검색하며 예전 추억에 젖어 잠시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들여다 보니, 그전과는 달리 글이 많은 것들도 있더군요.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어? 이게 아닌데...싶은데, 그래도 읽다보면 제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우체통이 있습니다.
옮겨보면 ,
그리움 없으신지요? 인생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할 좋은 사람들 없으신지요?
이제 너무 멀어진 잊혀져야 할 추억·그리움 말고, 조금만 가까이 있어서 부르면 대답하고 힘이 되어주기도
할 풀죽지 않은 그리움 없으신지요? 아직 다 시들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 너무 늦기 전에 마음 담은 편지 한 통·
엽서 한 장 쓰면 대답할지도 모르는데······. 거기서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솔직한 그리움 담아서
배고픈 빨간우체통에 넣어보세요. 저물어가는 겨울에 따뜻한 대답이 오실텐데······. 안 그럴까요?
지금이 겨울은 아니지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문득 핸드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직접 보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산을 내려와서는 몇 가지 일 볼 것을 처리한 다음, 곧바로 진천으로 향했습니다.
왜 진천이냐구요? 진천에 판화 작업실이 있는 것을 예전에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며칠 전에 시댁을 다녀오며
보았던 판화 전시회 현수막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산에 다녀온 터라 땀도 좀 흘리고 그랬는데, 아랑곳없이 모자 꾹 눌러쓰고 얼굴엔 철판을 깔고 종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판화 전시회도 같은 곳에서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건물이야 따로 있는 것이지만요.
그런데 전시회는 이철수 판화가의 전시회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회였지요. 저는 무슨이유에서인지
진천에서의 판화 전시회를 당연히 이철수 판화가의 전시회이겠거니 했는데 말이죠.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분들의 전시회를 잘 보고 왔습니다. 밖으로 나와서는 저의 허술함에 혼자 씨익 웃기도 하였지요.
성산에서 그냥 진천으로 갔던 길이라,
집으로 가서 씻고 준비하면 어느 정도 출근시간과 맞출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집에 와서 점심 먹을 생각은 없이 컴퓨터를 켜고 검색해보니, 판화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직접은 아니더라도 많은 그림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굳이 진천까지 가서 허탕을 친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지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는데, 저 혼자 착각하고 벌어진 일이니.... 그저 드라이브 잘 갔다왔구나 해야지요.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는 판화 박물관.....
누가 찾을까 싶으리만치 한적한 곳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을 만났으니, 그것도 인연.....
한낮의 행복한 일탈, 조용한 일탈이었음을 뒤돌아보니 아는군요.
덕분에 점심을 거르기도 했지만, 오전 한 때의 헛헛한 즐거움이었습니다.
판화 속에 있는 글들을 읽어보며 오늘을 정리합니다.
* 위 판화는 "이철수www.mokpan.com"에서 실어왔습니다
아래 판화도 마찬가지....
<감사합니다.>
첫댓글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첫번째로 글을 읽어 주신 분 계시니, 함께 밤을 잊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요....^*^
모니카 자모회 자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벨라님은 축복입니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이라고 울푸만은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나이는 속일 수 없어 여기 저기 통증이 ...일면 귀찮게 마련이라 의욕도 열정도 식어 간답니다. 진천까지 뛰어 갈 수 있다는 열정도 젊은 덕분입니다.
그냥 이철수 판화가의 글만 일부 옮겼다가, 시간 내어 판화 작품을 올렸습니다.
'십자가의 길' 작품도 있어 함께 올렸는데, 부족한 글 속에 올린 것이라 누가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판화 작품으로 만나는 십자가의 길인지라 여느때와는 다른 날이 된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