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熱情의 참뜻을 알고 싶어요.~
-이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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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형학의 한마디~>
-자~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의 運命을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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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이 글은
# 熱情의 참뜻을 알고 싶어요.~
# 삶의 유한성을 느껴야 삶의 열정도
생긴다는데~
로 이어집니다.-
자~
熱情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單調롭고 無味乾燥해지지요.~
이 狀態가 바로 우울증이랍니다.~
憂鬱의 특징은
슬픔이라기보다는 無感覺이나
삶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우울하면 전에는 즐거웠던 활동이
더 이상 재미가 없고 기쁘지 않게 되지요.
그렇다면 이제 백만 불짜리 또 다른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요.~
자~
熱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열정을
幸福, 즐거움, 성적 충족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熱情은
성적 강렬함과 같은 것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性的 강렬함은
열정의 특징이 될 수는 있지만,
열정 그 자체는 아니에요.~
자신의 환경에 단조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熱情이라는 單語의 진정한 의미를
喪失한 것이죠.
이 단어는
‘Passio’라는 語根에서 유래하였는데,
逆說的이게도
이것은 ‘苦痛’을 의미한답니다.~
자~
어떻게 열정이 고통에서 생길 수 있을까?
이것을 탐구해 나가다 보면
우리는 삶의 종말,
곧 죽음의 주제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러한 문제를 탐구하지 않고서는
熱情을 이해할 수 없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사람의 죽음이나
우리 自身의 죽음에 直面할 때
삶의 정수가 뿜어져 나오지요.~
즉, 진정한 느낌, 眞情한 고통, 생생한 감정이
일어난답니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서 未知의 것을 기다리며,
우리의 모든 內的 자원과 힘에 의지해
이 경험을 헤쳐나간답니다.~
자~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삶의 위험성을 想起시켜주고
아무리 未來를 計劃하더라도
그것이
현재의 삶을 代身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답니다.~
‘삶을 느껴라!’
이것이 열정이 아닐까?
自身이 죽어가거나
죽어가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보다
삶이 더 熱情的일 때는 없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났던 사건은
비극과 고통이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精髓 졍수를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답니다.
參事가 벌어지기 전에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지도 않았고, 생각도 하지 않았지요.
우리는
더 오래 살고, 더 젊어지고, 더 획기적인 疾病
治療劑를 마련하느라 분주했답니다.~
Mitch Albom의 ‘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에서
모리는
‘어떻게 죽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답니다.
죽음은
우리를 삶에 한층 더 가깝게 해 주지요.~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자~
# 삶의 유한성을 느껴야 삶의 열정도
생긴다는데~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때
‘삶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자각하게
된답니다.
동년배 사람이 죽었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그것 말고도
삶의 유한성을 알리는 다른 ‘표식’이 있어서
우리를 죽음에 한층 더 가깝게,
따라서
우리의 느낌과 삶에 더 가깝게 해준답니다.~
例를 들어,
많은 사람은 5나 10으로 끝나는 生日 때
막내가 졸업, 분가, 결혼 등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알릴 때,
부모님이 늙은 것을 볼 때,
쇠약해지거나 장애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더 이상 젊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例를 들면,
더 이상 이성에게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
나이를 느낀답니다.~
病에 걸리거나 신체적으로 쇠약해졌을 때
삶은
새로운 의미를 띠며
우리는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지요.~
Gail Sheehy는 이를
‘省察의 課題‘라고 하였답니다.~
흔히 이러한 성찰을 통해
(내가 잘살고 있는가?, 幸福한가?, 좋은사람인가?.
아직도 원하는 일이 있는가?~ 등)
우리는 더 熱情的이 되지요.~
그러나 이 省察은
보통 인생의 또 다른 단계로 의식적인 전환이
일어났을 때 가능한 것이죠.~
例를 들어,
중년이 되면서 우리는
갑자기 건강이 매우 중요하게 된답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혹은 갑자기 적극적으로
좋은 것을 먹거나 담배를 끊는 등
그들의 습관을 바꾼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은 우리에게 다른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이 불가피한 사건을 향해
좀 더 다가섰음을 비춰 주기 때문이죠.~
사실 Sheehys는
진보-Progress라는 단어를
작은 죽음에 대한 작은 승리의 연속이라고
定義하고 있어요.~
자~
삶의 有限性을 느끼라는 것은
不吉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나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에 더 가까이 감을
알지 못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마지막 케이크 조각’에 대한 느낌도,
時間 감각도, 끝나 가는 것에 대한 느낌도
없을 것이고요.~
더 이상 의미 있는 섹스도 없을 것이랍니다.
자~
성적 체험은 인생의 단계를 보여주는
小宇宙이기 때문이라 하는데요.
오르가슴은
‘le petit mort’ 즉 작은 죽음‘이라고 하고요.
또한
휴가의 마지막 밤도 없을 것이랍니다.~
새롭게 먹어 볼 만한 음식,
새롭게 가서 볼 만한 곳 등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죠.~
새로운 발견이 없다면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죠.
우리가 높이 사는 것은
바로
예술작품의 독특함과 새로움이기 때문이죠.~
죽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도 느낄 수 없답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우리는
마감 일이나 생산성 등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 아닌가 싶군요.
자~
실제로 사람은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부딪혔을 때
겉으로는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결정을 한답니다.~
例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
(이런 선택은
아이가 미래며, 아이를 행복하게 해야만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의 삶이 의미와 목적을 가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다른 전문 분야를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다시 가거나 재교육을 받는다.
(이런 선택은
우리가 죽기 전 아직도 해야 할 것이나
배울 것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停滯된 관계 또는 결혼 생활을 淸算한다.
(이런 선택은 우리가 오직 한 번 밖에
못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아이를 갖거나 가정을 꾸미기 위해
만족스럽지 않아도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선택은
우리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