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소년 시절부터 시인이었습니다만, 문익환은 윤동주에게 눌려 시는 쓰지 못하고 있다가, 70대의 만년에 이르러 일련의 시를 쏟아 냅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 뛰어들면서 체험을 시로 남긴 것이지요. 문익환의 호가 늦봄이니, 역사 현실에 대한 직접 참여도, 시적 작업도 늦바람처럼 찾아온 것이지요.
이제부터 실은 윤동주 이야기를 좀 하려 합니다. 윤동주 시를 모르는 분은 한 분도 없지요. 민족 시인의 영예를 안은, 이 지고지순한 시인에게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요. 윤동주 시 중에서 기독교적 신앙관이 스며 있는 시가 여러 편 있습니다. 그중 한 편만 오늘 소개합니다. '팔복'이란 시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천국이 저들의 것임이요/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략)"(마 5:3-10)라는 구절은 우리 모두가 일생 동안 읽으면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그 내용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윤동주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위로를 간절히 바랐건만 위로받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다음과 같이 됩니다.
팔복
마태복음 5장 3~1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永遠(영원)히 슬플 것이오.
(1940. 12.)
팔복은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를 위한 구절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론하면서, '복이 있나니'(blessed are those who…)라고 되어 있으니, 이 세상에 복 없이 살아갈 듯한 이들에게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윤동주의 시대에, 1940년의 시점에, 어떤 기대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섣불리 "복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어쩌면 혹세무민적인 허언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어려움을 신앙으로의 도피를 통해 해결할 순 없을 테니까요.
'팔복'에 대한 윤동주의 초고를 보면, 그의 괴로움이 역연합니다. 처음부터 영원한 절망으로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의 초고를 보면, 맨처음에 "저희가 슬플 것이요"로 씁니다. 그렇게 쓰니 너무 슬프지요. 그래서 힘을 얻기 위해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요"로 고칩니다. 조금 더 힘을 얻긴 하는데, 그 말이 참 공허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하여 "저희가 오래 슬플 것이요"로 아프게 고백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오래"일까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윤동주는 "오래"를 지우고 그 자리에 "영원히"로 고칩니다. 구원이 없는 시대, 무한대의 슬픔을 미화하지 않고, 눈을 부릅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로 아프게 마무리 짓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대에 젊은 시인이 할 일은? 바로 '팔복'을 쓴 시점(1940)의 다음 해에 그는 '십자가'(1941. 5. 31), '별 헤는 밤'(1941. 11. 5), 그리고 '서시'(1941. 11. 20)를 씁니다. 영원히 슬픈 시대에 그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십자가'에서 그는, "외로왔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여된다면//목아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어 가는 하늘 밑에/조용이 흘리겠습니다"고 고백합니다. 현실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조용히라도 피를 흘리겠다는 자기 다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시를 모으면서 '서시'로써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