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 복합공간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강내영 대표
“시각장애인이 추천하는 맛집이라니.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주변에 맛집 없나 찾게 되더라고요(웃음).”
재활통신망 넓은마을에 올라온 ‘나만 알기 아까운 친절한 맛집’을 추천받는 공지를 보고 시각장애인 C 씨(남, 29세)가 느낀 감상이다. 공지의 게시자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이하 사운드플렉스)’로 최근 시각장애인의 참여를 북돋는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개발하는 기업이다. 사운드플렉스 강내영(여, 40세) 대표를 만나보았다.
* 내가 보는 것을 함께하기 위한 화면해설 작업
강내영 대표가 화면해설 시나리오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당시 초등특수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진로를 변경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 ‘화면해설 방송작가 양성과정’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화면해설 작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화면해설 작업은 ‘누군가와 일상을 함께하기 위한 길’이었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저보다 잘 보지 못하는 저시력인이었는데 제가 보는 것을 같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저도 한쪽 눈은 안 보이고, 다른 쪽은 가까이 있는 게 보이는 정도지만요(웃음).”
화면해설 시나리오를 배우는 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강 대표의 열의도 충분했고, 교육 담당자 역시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공부가 자연스럽게 기회로 주어지지는 않았다. 2년간의 변변찮은 기회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다. 그때 녹내장 진단을 받으면서 화면해설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면해설 작가의 길은 다시 열렸고, 2013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7번 방의 선물’ 화면해설을 작업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건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이라는 애니메이션이에요. 시나리오 작가가 화면해설에 대해 잘 모르고 쓴 대본이어서 세세하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죠. 감독님이 그걸 보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해설했다며, 제게 최종 수정 작업의 기회를 주셨답니다.”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다양하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제작한 영화는 물론 케이블방송의 ‘태양의 후예’와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의 화면해설 대본도 집필했다. 그러다 2017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팀’으로 선정되면서 프리랜서 화면해설팀이 아닌 주식회사의 형태인 ‘사운드플렉스’의 대표를 맡게 되었다.
* 최종 목표,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 지원 환경 마련
‘사운드플렉스’라는 이름에는 강내영 대표의 바람이 담겨 있다. 소리(sound)가 나뉘다(plex)의 뜻인데, ‘소리 복합공간’이라는 의미와 함께 소리를 통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내포되어 있다. 현재 직원은 화면해설 작가 4명,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 각 1명으로 총 6명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지방에도 만들고 싶어요. 지방에 사는 시각장애인도 소외되지 않게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분발해야겠죠.”
사운드플렉스의 주요 사업은 화면해설 콘텐츠 제작이다. 그 외에도 서울시 무장애관광지 발굴 사업에 참여하는 사회적기업 ‘모아스토리’를 지원하고 있다. 청와대 홍보영상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 창작자 양성을 위한 ‘눈감고도 크리에이터 되기’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창작자와 함께 시각장애인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첫 프로그램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친절하고 접근성이 좋은 맛집을 소개해주는 ‘미키의 친절한 맛집’을 준비하고 있다.
“와디즈 펀딩을 통해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부분을 높이 산 것 같아요. ‘미키의 친절한 맛집’은 11월 말경, 늦어도 12월에는 사운드플렉스TV에 올릴 계획입니다.”
시각장애인의 ‘황금빛 소비’를 위해 제품 후기를 전해주는 ‘시각장애인 워스트&베스트’와 시각장애인 도전기를 다루는 ‘권반장이 간다’ 등도 준비하고 있다. 취미와 특기가 직업이 된다는 크리에이터의 모토처럼 시각장애 역시 하나의 장점으로 일상에 녹아들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류의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방송과 영화를 제외한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는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강 대표는 화면해설과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야 하고 또 낼 수 있는 영역이라고 힘줘 말했다.
“시각장애인도 그에 맞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화면해설 콘텐츠 제작에 있어 시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 성우, 사운드 편집자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어요. 시각장애인은 방송과 콘텐츠의 수혜자가 아니라 ‘소비자’니까요. 앞으로도 저희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운드플렉스와 강내영 대표는 시각장애인 직업개발과 정보제공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열정이 반향을 일으켜 멋진 울림이 되길 응원한다.
(2018. 11. 15. 제10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