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대체복무도입, 해외민주인사초청에서 알게 된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통일, 베트남 전쟁의 진실위에서 안 우리나라의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성과 우리안에 남아있는 폭력성 제거, 한글전용, 타투(문신)법제화 등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의 개정과 폐지...
정치에 나서겠다는 이유도 간단했다. 변호사로서 했던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정치에 뛰어들면서 흔히 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는 구차한 언사도 기색도 없다.
지난 수요일 늦은 저녁 인터뷰를 마치고 난 그는, 지난 21일 금요일 현역군인이 노대통령에게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부대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정치에 몸을 담고 지역구 출마를 선언해서 이제는 변호사라기 보다는 정치인이였지만, 그는 어김없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기자는 '진짜'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간의 활동을 잠시 접고 지역구의 유권자 한 사람이라도 더 잡을 것이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깨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에 입문해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과 "힘없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대선공약을 철저히 감시하고, 그 자신 이땅의 소수자와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라는 임 변호사의 출마의 변에 모처럼 흔쾌한 동의를 표한다.
임변호사는 법조대표로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및 양성평등위원장을 맡았다. 과연 그가 정치를 바꾸고 힘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지, 아니면 정치가 그를 바꾸어 타락(?)시킬 수 있을지 인권변호사에서 정치로 뛰어든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그리고 그의 성공여부를 4.15총선의 하나의 잣대로 만들어 보자.
▼ 소수자를 위해 많은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부와 명예'가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한 것 아닌가?
'남의 고통을 그냥 보고 있으면 자신도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과 같다'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가지고 살았다. 중학교 때인가 교사들이 괜히 학생들을 때릴 경우 강력히 항의했다가 엄청 혼난 적이 있었다.
▼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대학시절(임변호사는 고대 법대 74학번이다)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 고려대에는 유일하게 긴급조치 7호가 적용되었는데, 이것이 풀리자마자 장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사학과 김준엽 교수를 직접 찾아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또 장준하 선생의 실족사 발표를 듣고는 직접 사고 현장을 답사까지 했다. 그냥 당위적으로 분노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접하고 느끼면서 나름대로 체계화 할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런 것을 깨달으면서 민주화에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며 빚지고 사는 것을 느꼈고,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할려고 했던 것이다.
정치는 소수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
▼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변호사로서 구체적으로 어떤일에 힘을 쏟았나
많지는 않지만 대략 3가지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운동과 제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하 한통련)을 비롯한 해외민주인사들의 명예회복과 조건없는 귀국운동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한글만 쓰기 운동과 양성평등을 위한 호주제폐지운동 등을 들 수 있겠다.
여기서 오해 없길 바라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도입운동은 군대와 안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고, 평화에 대한 양심을 존경하고,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군대를 가지 말자"라는 운동은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은 "국회로 갈 사람이 당선에 도움이 안 되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들을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국회로 밥 벌어먹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사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소수자 약자의 문제는 원칙과 뚝심을 지키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소수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고, 다수자는 가만히 있어도 보호된다고 본다.
▼ 정치에 진출하기 위해 소수자에 신경을 쓴 것은 아닌가라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국회에 출마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한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리고 경선도 하고, 경합도 해서 정정당당하게 당선되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단지 무대를 달리할 뿐이다. 국회의원 자체를 큰 벼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 고향이 전북 고창이고, 전주고등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적 출신을 보면 민주당에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열린우리당에서 출마를 하게 됐나
호남의 정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뿐만아니라 호남 차별론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호남 지역은 토호세력과 호남 민중들로 분류된다. 그런데 호남 토호세력은 지금 민주당을 잡고 있다고 본다. 곧 지역에 있어서 호남 민중들은 지역적 차별과 함께 호남토호세력으로 부터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호남 토호세력과 같이 갈 수 없고, 그곳에 민중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 96년도 꼬마 민주당 이른바 '통추세력'이라고 하는데, 그때도 총선에 도전해서 고배를 마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는 출마할 일이 아니었다. 지역통합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본다. 정치를 잘 몰랐다고 생각한다.
▼ 2000년에는 당선 유력인사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왜 도전을 하지 않았나
한마디로 밀실 공천 문제 때문이었다. 그때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 통추세력을 배제시켰다고 본다. 그래서 정치 그만두고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 안산지역은 열린우리당 천정배의원과 민주당의 김영환의원이 버티고 있지 않나?
안산지역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이번에 분구가 된다. 두 분다 훌륭하신 분들인데, 내가 그분들과 겨룰 일이 있나. 안산 상록구 지역이 분구되고 나는 거기로 출마한다.
노무현 대통령 성공 위해 총선 도전
▼ 이번 선거에 도전하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현재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인해 아시아 최고의 정치 선진국이 됐다고 본다. 아시아에서 국민의 의사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되는 나라는 일본, 타이완,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인데, 그중 정권의 세력교체가 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탄생과 노무현 정부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올 초 베트남에서 만난 한 영화감독과 일본에서 만난 변호사는 한국사람들의 정치의식을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사람을 정말로 존경한다고 까지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 다수가 만들고, 아시아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를 만들어 냈던 우리 모두는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가 잘하면 지켜보면 되지만, 잘못하면 나무라고, 잘하도록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아시아 30억 사람들이 노대통령의 성공여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 출범 8개월 맞은 노무현 정부를 평가한다면?
노대통령 초기에 국제관계에서 너무나 두려워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압력과 대북송금 특검법 문제는 판단을 잘못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가 잘 안 풀린 것 같다.
▼ 노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국내 문제도 비판하고 있다
특히 노동 문제는 잘못했다고 본다. 결국은 분배 문제인데, 노대통령은 성장을 통해 분배를 하려고 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 향후 열린우리당에 가서도 노무현 대통령 대해 비판을 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당연히 해야한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을 바라는 수백만 명의 염원을 담아서 당선된 만큼 당연히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당시 "한이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가 만일 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으면 당연히 쓴 소리를 해야한다.
▼ 노무현 대통령과 남다른 관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95년 '해마루'(해가 뜨는 산마루)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하면서이다. 그때 당시 '해마루'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 그리고 민주노동당 인권위원장 이덕우 변호사이다. 그 당시 해마루는 시국 사건을 많이 맡아서 사람들은 '과격한 변호사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0년 남짓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나름대로 그를 평가한다면 우선 성실한 점과 공부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갖춘 인물이라고 본다. 뿐만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또한 토론의 달인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말을 편안하게 잘한다.
▼ 하지만 관료를 뽑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에게 인재풀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데
노무현 대통령에게 인재풀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관련됐다고 본다. 한 예로 "몇 십년동안 국방부에서 과연 개혁적인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물론 국방부 내에서도 옥석을 가릴 수 있겠으나, 그동안 개혁적인 사람들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보다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청와대에는 맘에 안든 사람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 정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해마루 활동을 했던 사람들, 즉 노무현 대통령, 천정배 의원, 이덕우 변호사들을 보면 알수 있다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기 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그들도 원칙과 소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덕우 변호사 같은 경우 최고로 훌륭한 변호사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사건을 맡아 훌륭하게 처리했다. 예를 들어 '범민련 사건'과 '수지김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천정배 의원 같은 경우 변호사에서 정치인이 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케이스일 것이다. 대체로 변호사가 정치권으로 들어갈 때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천 의원 같은 경우 정치계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 열린우리당에 영입되면서 중앙위원이자 양성평등분과위원장을 맡은 걸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당에서 양성평등 분야 등 여성관련된 문제는 여성의원들이 맡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김희선 의원과 함께 공동으로 맡고 있다. 양성평등위원장을 그냥 맡은 것이 아니다. 아내가 전교조 여성국장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양성평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고 본다. 양성평등위원장을 하면서 원칙은 일체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 여성들만 주장하면 보통 "때를 쓴다"라고 보는데, 그러한 시각을 깨뜨려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능력에 의해 차별되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출생이나 사상에 의해 차별 받는 것은 인정해서도 안되고, 옆에서 묵과해서도 안 된다.
▼ 가정에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있나
그게... 마음만 있을 뿐 많은 역할을 못했다. 그러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은 절대 아니었다. 앞으로는 가사노동 등도 분담하고 더 노력하겠다.
▼ 최근 열린우리당은 당 지도부 선출문제와 관련해 '간선제' 논란도 제기됐다.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에 직선제로 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지도부를 선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동의한다.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원기 공동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마찰이 발생할 수 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개인적으로 김원기 공동의장을 존경한다. 특히 당대표 불출마 선언을 한 것에 대해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직선제로 해서 조기에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 총선에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내 보일 것이고, 국민들이 그것을 평가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나의 전략은 나의 삶이 전부이다.
나의 인생목표는 "임종인이라는 사람이 있어 한사람이라도 세상사는 재미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는 나의 어머니 한 사람일 수도 있고, 더 노력하면 안산시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부인이 전교조 여성국장으로 활동했는데, 흔히 '사'자 붙은 사람들 가운데, 특히 변호사 부인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웃음) 내가 많은 돈을 벌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자기실현은 중요한 문제이다. 직업을 구할 수 없는 구조가 문제이지,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만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도 한 명만 낳았다. 출산과 양육은 남성에게도 부담이 있지만, 여성에게는 상대적으로 많은 부담이 작용되기 때문에 한 명만 낳았다. 지금 아내는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 96년도에도 그랬고, 내년 총선에도 출마를 한다면 부인이 싫어하지 않은가
힘들기는 하지만, 내 뜻을 이해한다. 또 집사람 일은 집사람 일이고, 나의 일은 나의 일이다. 그래서 되도록 선거를 위해 시간을 많이 내지 말라고 했다.
▼ 변호사 일과 선거를 준비하다 보면 자칫 삶이 건조해 질 수 있는데 부인과 함께 하는 취미생활은 있는가
일주일에 한번 영화를 본다. 영화 관람은 책 한권 읽는 것과 같다. 집사람하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최근에 '생활의 발견', '바람난 가족' 등을 봤다.
▼ 다 조금 야한 영화 아닌가(웃음)
그런가(웃음) 그런데 그 영화들은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풀었다고 본다.
▼ 야한 이야기가 나와서 하나 더 물어보겠다. 스와핑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강간이나 매매춘은 안되지만,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하는 것은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가족개념도 과거와 많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스와핑 문제도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두려워 할 것은 아니다. 또한 타투(TATOO, 문신)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타투를 하지 않지만, 개인이 하는 것에 대해 국가권력이 나서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 안산에 출마한다면 그곳은 이주노동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이주노동자도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 현재 무조건 쫒아내려고 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제도적인 문제로 접근할 문제라고 본다. 소수가 다수가 되고 억압받는 소수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도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 한글만 쓰기 운동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름대로 외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많았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는 왠 만큼 할 줄 알고, 독일어도 할 줄 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외국어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너도나도 영어를 해야 한다고 난리인데, 그것은 국가적 낭비이고,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는 몇 사람만 하고, 그 사람들이 해석해 놓은 것을 가지고 지식을 습득하면 되는 문제이다. 결국 쉬운 우리말로 모든 글을 써서 배울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사람에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예전에 한겨레신문이 창간 됐을 때 독자란에 어느 자장면 배달부가 "나도 신문을 읽게 돼서 너무나 기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신문을 읽고 싶었으면 그런 말을 썼겠는가.
▼ 4.15 총선에 자신 있는가
누구와 싸워도 자신 있다. 애초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은 더많이 하기 위해 무대를 옮길려는 것 뿐이지,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
'이 사람 정치인이 될까?' 임종인 변호사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다. 너무나 순수하고, 소신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국회의원은 국민의 봉사자로서 소수자, 약자를 위해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 선거전에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조심 또 조심을 해야하는 면이 있다.
주량은 소주 한 병 반에서 조금 더 할 수 있고, 지하철을 애용하는 그는 이른바 우리사회에서 '사'자 들어가는 양반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농담삼아 양심적병역거부 의사를 묻기도 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원칙은 그의 삶을 지금의 '임종인'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군법무관 시절 중사가 육사출신 중위를 폭행한 사건을 맡으면서 이른바 '방법'(네티즌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 뜻: 마땅한 뜻은 없지만, 글의 맥락상 '성격')이 드러난다. 그는 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관폭행사건에서 중사 쪽에 손을 들어줬고, 견책을 받은 적이 있다. 조사결과 중사가 중위에게 더욱 많이 맞은 사실이 드러났기 떄문이다. 그는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세상에 정의는 있다고 믿으면서 살길 바란다"고 말한다.
민주당 분당이후 열린우리당은 다소 침체된 경향이 있다. 뿐만아니라 정국 현안에 대한 마찰은 한나라당과 청와대만 보일 뿐 열린우리당의 역할은 찾기 힘들 정도이다. 이는 분당이후 여타 다른 당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세우지 않고, '신당'이라는 신선함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종인 변호사가 열린우리당 양성평등분과위원장에 영입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타정치인'에 매몰되고 있는 경향속에서 임종인 변호사가 열린우리당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만일 소외된자와 약자를 우선시하는 그의 소신을 정치권에서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면, 구태정치에 매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종인 변호사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인터뷰는 이번에 발매된 격월간 <아웃사이더> 16호에 있다. 본 인터뷰의 무미건조함을 상당히 채울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정치부 기자
임종인 변호사 약력
1956.8.28 전북 고창 출생
전주고 졸(1974), 고대 법학과 졸(1978)
육군 법무관(1981~1990, 육군중령 전역)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1992)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대변인(199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동북아위원회 위원장(1997~1999)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2002~ 현)
안산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1993~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양성평등위원장(현)
저서 : 알기쉬운 인권지침(공저, 녹두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