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3일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른바 여름 고시엔 결승에서 '교토국제고'가 '간토다이이치고'를 연장 10회 끝에 2대 1로 누르고 처음 우승했다. 경기 뒤 이 학교의 한국어 교가가 일본 전역에 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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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은 바다 건너 야마토 땅을 우리 조상의 옛 터전이라 부른다. 학교의 전신은 해방 2년 뒤인 1947년 재일 동포들이 민족 교육을 하려고 교토에 세운 '교토조선중학교'이고, 우승 당시 재적 학생의 65%는 일본인이었다. 강당을 겸하는 이 학교 체육관에는 '홍익인간'을 쓴 큰 액자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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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가 부르는 옛 터전의 역사는 6~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은 불교와 공예, 제도를 들여와 아스카 시대 일본의 변화를 이끌었다. 불교를 받아들이느냐를 두고 맞선 소가씨와 모노노베씨의 대립은 587년 소가씨의 승리로 끝났다. 조정을 쥔 소가씨 본가는 645년 나카노오에 왕자가 일으킨 을사의 변으로 무너졌고, 나카노오에는 다이카 개신이라 부르는 개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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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오에가 실권을 잡은 지 15년 뒤인 660년, 백제가 당•신라 연합군에 망했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과 왕족 복신, 승려 도침이 부흥운동을 이끌었고, 나카노오에가 다스리던 왜 조정도 오랜 동맹국 백제를 되살리려 바다 건너로 군대를 보냈다. 왜군과 부흥군은 663년 백강 전투에서 당•신라 연합군에 크게 졌고, 부흥군의 근거지 주류성도 그해 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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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오에는 668년 덴지 천황으로 즉위했고, 그의 증손인 간무 천황은 781년 즉위해 794년 도읍을 헤이안쿄로 옮겼다. 당나라 장안을 본떠 지은 이 도성이 지금의 교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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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년 일본 조정이 펴낸 정사 '속일본기'는 간무의 생모 다카노노 니이가사를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 태자의 후손으로 적었다.
2001년 12월 18일 간무의 후손인 아키히토 천황이 생일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듬해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어떻게 여기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데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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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 85년 전에도 옛 역사책을 들어 일본을 꾸짖은 이가 있었다. 1909년 대종교를 다시 일으킨 홍암 나철 대종사다.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스스로 숨을 거두는 순명을 앞두고 그는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쿠마 시게노부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유서를 보내 이렇게 물었다.
"대화(大和)의 옛 사기를 상고하건대 그 민족의 근본과 신교의 본원이 다 어디로부터이며, 신사의 삼보한궤(三寶韓几)와 궁내성의 오십한신(五十韓神)이 다 어디서 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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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이 말한 '대화'는 야마토, 곧 일본이고, '신교'는 신을 받드는 가르침이다. 그가 든 '삼보한궤'와 '오십한신'에는 모두 한(韓) 자가 들어 있고, '궁내성'은 일본 왕실의 일을 맡던 관청이다. 나철은 그 옛 역사책만 들춰도 일본 민족과 신앙의 뿌리가 우리 겨레에게서 비롯했음이 드러난다며 이를 외면하지 말라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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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무렵 서간도에서 독립군을 기르던 '신흥무관학교'는 한반도가 이웃을 길렀다는 기억을 교가로 불렀다. 교가는 대륙의 지명을 늘어놓은 뒤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젖 먹여 기른 이 뉘뇨" 하고 묻는다. '헌원 자손'은 중국 사람들이 시조로 받드는 전설 속 임금 헌원의 후손을, '동해 섬 중 어린 것들'은 일본 사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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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길러 낸 이가 누구냐는 물음에 노래는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고 답한다. 노래 속 '배달'은 우리나라 상고 시대의 이름이고, 단군을 받드는 대종교는 이 이름을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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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한반도와 만주의 나라들이 이웃에 문물과 기술을 건넨 역사를 젖을 먹여 길렀다는 말로 빗댔다. 바로 뒤 대목은 그 조상들의 가슴에서 끓던 피가 지금 우리 핏줄에 돈다고 노래한다. 조상이 하던 일을 이제 그 피를 받은 우리가 잇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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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먹여 길렀다는 노랫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교토국제고' 체육관 액자에 쓴 '홍익인간'에 가깝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첫 대목에도 이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고려 승려 일연이 옛 기록 '고기'를 인용해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적은 것으로, 환인이 아들 환웅을 내려보내며 품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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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는 '홍익인간'을 단군 가르침의 중심으로 받들었고, 대종교인 국학자 정인보는 이를 공적인 일을 앞세우는 '선공후사'의 윤리로 풀어 민족공동체를 세울 덕목으로 삼았다. 언론인 안재홍은 신민족주의를 이 말에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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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외무부장이던 조소앙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내건 삼균주의의 근거를 여기서 찾았고, 1941년 11월 그가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우리 민족이 지킬 최고 공리로 적었다. '이화세계'는 이치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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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뒤인 1945년 12월 미군정의 교육 자문기구 '조선교육심의회'가 '홍익인간'을 교육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했고, 1949년 12월 제정된 '교육법'은 제1조를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로 시작했다. 1958년 교육 행정을 정리한 '문교개관'은 이 이념이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란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라고 풀었다. 지금의 '교육기본법' 제2조도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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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4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동료 의원 11명과 함께 교육기본법 제2조에서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를 지우는 개정안을 냈다. '홍익인간' 같은 추상적인 표현 대신 민주시민으로서 사회통합과 민주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개정안대로라면 '홍익인간'은 1949년 교육법 이래 70년 넘게 지켜 온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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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이라는 지적에 들을 대목이 있다 해도, 그만한 말을 지우려면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물었어야 했다. 대종교는 4월 21일 입장문을 내 "교육 이념에서 홍익인간을 빼자고 하다니 도대체 그들의 뿌리는 어디인가"라고 물었고, 60여 민족단체와 교원단체도 반발했다. 민 의원은 이튿날 "논란을 일으켜 송구하다"며 법안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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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이 1916년 일본에 던진 물음과 대종교가 2021년 국회에 던진 물음은 같은 곳을 향한다. 뿌리가 어디냐는 것이다. 교토의 그 학교는 한국어 교가와 '홍익인간' 액자로 뿌리를 지키면서, 그 가르침처럼 일본 아이들도 한 교실에서 함께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