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우회(竹友會) 벗들과 경상북도 북부지방을 여행하다(2019.4.13-14)
매년 사월이면 각지(서울,경기,구미,부산,울산)에 흩어져 사는 죽우회 벗들이
1박2일 함께하는 모임을 삼십년 이상해 오고있다.
부부동반으로 해 오던 모임이 올 2019년은 각 집의 사정으로 세영 벗이 불참하고
남자 4명만 참석하게 되어, 구미 이승만 사장이 승용차를 한 대 내어
경상북도 북부지방으로 여행하기로 하였다.
4월13일 토요일 아침 7시44분, 수원역에서 구미역 가는 기차에 승차.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경상권 편을 펼쳐든다.
유 선생의 여행기는 내용이 알찰뿐 아니라 그의 해박한 경험지식을 잘 버물려서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한 대목-
경상도 북부 선비집 총각이 장가든 첫날밤에 한시 한구절로 신부에게 그 뜻을 전하노니
靑袍帶下紫腎怒 청포대하자신노(푸른 도포 아래 붉은 신이 성내고 있도다)
저 신부의 은근한 재치 좀 보소
紅裳袴中白蛤笑 홍상고중백합소(홍상 치마속 흰 백합이 웃고 있네요)
승만 벗은 운전을 하고 셋은 차안에서 캔맥주로 건배, 일년만에 만난 회포를 푼다.
첫 목적지는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이다.
(소수서원 전경 )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눈 앞에 보이는 음식점으로 직행. 얼큰 칼국수와 들깨 칼국수, 순흥 막걸리로
민생고부터 해결한다. 여행은 보고 듣고 먹는 즐거움이 최고!
소수서원 들어가는 문에서부터 어른대접을 받는다. 벗들 모두 65세 이상으로 무료, 프리패스.
소수서원 초입의 소나무 숲은 너무나 보기가 좋다.
이리저리 뒤틀린 소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모습은 신비롭고 편안하다.
잠시 나무 밑에 앉아 바람 소리, 물 소리 듣다보면 세월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양이다.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립대학과 같은 곳으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고등교육기관이자
사액서원이다.
본래의 명칭은 백운동서원이었으나 1550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임시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사액 받으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곳은 원래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숲 가운데 숙수사지 당간지주에서 유래를 알 수 있다.
숲이 울창한 입구 우측으로 죽계천(竹溪川)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죽계천 너머 홀로 앉아 있는 취한대(翠寒臺)에서 유생들이 시연을 벌였던 곳이다.
서원으로 들어가면 강학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강학당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였던 강의실이고
그 뒤로 오늘날의 교무실과 같은 직방재(直房齋)와 일신재(日新齋)가 있다.
또 그 옆쪽으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학구재(學求齋)가 있다.
스승의 방과 나란히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선 점이 눈에 띈다.
맨 뒤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사료전시관과 충효전시관이 한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사료전시관에는 이 고장 출신인 안향 선생의 영정과 명종이 직접 휘호한 소수서원 현판,
퇴계의 친필이 쓰여 있는 병풍 등 유서 깊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소수서원과 연이어진 선비촌에는 이 지역 종가집의 종택을 옮겨와서 보존하고 있다.
다음 방문지는 영주 부석사이다.
일주문에 태백산 부석사(太白山浮石寺)라고 쓴 이유가 이곳이 봉황산이긴 하지만 큰 줄기로 보면
태백산의 한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개인 소유의 사과밭이 양옆으로 자리하고 있고
저멀리 천왕문이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문을 지나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아담한 석탑과 종무소,멀리에 범종각이 시야에 들어온다.
범종각를 지나면 성곽처럼 단단하게 서 있는 돌담이 있다. 돌담은 규칙 없이 큰 돌, 메모진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리도 그 사이에 난 틈에는 작은 돌을 메워 균형을 맞추었다. 막 쌓아올린 듯하지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찰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온 든든한 버팀목이다.
안양루에 들어설 때는 분명 안양문(安養門)이라 쓰여 있었는데 계단을 통과하여 누각에 이르면
안양루(安養樓)로 바뀐다.문과 누각을 겸한 복합 건물이라는 의미이다.
안양루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석등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무량수전이 펼쳐진다.
한 단 한 단 올라설 때마다 석등은 시야에서 멀어지고 무량수전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현재 국보 제 18호로 지정되어 있는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큰 법당이다.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서서 앞을 보면 눈 맛이 좋은 경치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면 소백산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석사 아래 주점에서 파전과 묵을 주문하여 막걸리 한사발을 하고 다음 행선지
희방폭포와 희방사, 죽령고개로 출발.
-영주시에 대하여-
영주시는 태백산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으 주봉인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연화봉(1394m)과 죽령을 경계로 하여 도솔봉(1314m)으로 이어진 소백산 산록의 고원지대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는 청정지역으로 소백산과 태백산권의 중심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이다.
영주시는 부석사을 비롯한 신라시대부터의 불교문화와 소수서원을 비롯한 고려시대부터의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선비의 고장'이며, 풍기인삼,소백산 하수오,풍기인견,
영주문어 등의 특산물이 유명하다.
희방사(喜方寺) 입구 주차장에 내려서니 계곡물 소리가 콸콸콸 경쾌하다.
일전에 내린 눈이 소백산 중턱 위에 쌓여있고 그 눈 녹은 물이 여기와서
한바탕 큰소리로 천지를 진동시킨다.
한참을 올라가니 28m 희방폭포(喜方瀑布)다.
폭포에서 새로 길을 낸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니 희방사다.
무더운 여름철 우거진 숲과 해발 700고지,계곡의 시원한 물...
최고의 피서지이리라.
희방사 주차장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굽이진 길을 달려 죽령에 도착.
죽령옛길 - 먼 옛날 꿈과 희망을 담고 서울로 가던 길
(죽령 소개글을 옮겨적는다)
풍기읍 수철리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과 이어지는 절룩한 허리지점에 자리한 죽령(689m)은
삼국사기 와 동국여지승람에 아달왕5년(158년)에 죽죽(竹竹)이 죽령 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했고,
고개 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인 죽죽당이 있었다고 하였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 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으로 양쪽의
군사가 쫒고 쫒기고 엎치락뒤치락 불꽃 튀는 격전을 벌이던 곳이기도 하다.
20세기 초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 고을이 서울왕래에 모두 이 길을 이용하였으므로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 공무를 띤 관원,온갖 물건을 유통하는 보부상들로 사시장철 범람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주,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으나, 교통의 발달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의 발 길이 끊겨 수십 년간 숲과 넝쿨에 묻혀 있었다.
역사의 애환을 간직하며 2천 년 가까운 세월, 영남내륙을 이어온 죽령의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려는
뜻에서 1999년 영주시가 희방사 역에서 죽령주막까지 1시간 정도(2.5km) 걸리는 길을 복원하여 죽령옛길
자연관찰로를 조성하였고,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머루, 다래,으름 넝쿨로 뒤덮인 울창한 숲과 산새,다람쥐 등이 반기는 산길을 걸으며 서민들의
발자취를 느껴 볼 수 있다.
죽령주막에서 산나물전에 막걸리 맛보기, 주막 점주는 찾는 객이 없어 저녁 일곱시면 주막 문을 닫고 영주로
하산한다고 한다.
영주시 풍기읍(豊基邑) 하루밤을 유숙하다.
여행에서 하루밤을 어디서 머무느냐는 것은 의미있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오늘 운전대를 잡은 승만 벗은 하루를 풍기읍에서 묵자면서 자신이 평소 알고지내는
김병기 사장이 운영하는 '태양목욕탕.썬 모텔'로 직행.
(썬모텔에 투숙하면 아침 태양목욕탕는 무료이용)
영주(풍기) 토박이 김사장은 고향자랑이 대단하다.
영주(풍기)왔으니 영주한우를 맛보아야 된다며 직접 운전하여 축협이 직영하는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다음날 아침 식당도 소개하고,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등산도
강추한다.
영주한우 식당에서 미리 준비해간 케익에 촛불 일곱개을 밝히고 승만,경수,동윤 벗의 칠순을
축하한다. 식당 종업원까지 합세하여 축하 노래를 불러주니 더욱 좋다.
다음날(4/14, 일) 아침 풍기역앞에 있는 '시골밥상'식당에서 한상차림 거한 아침식사를 하고
풍기역, 인삼시장, 풍기인견특산품 가게를 관람하고 비로봉 등산할 기회에 대비하여 출발지인
비로사를 답사하고 차머리를 안동 봉정사로 돌렸다.
(풍기역과 그 곳에 걸려있는 소백산 설경 사진)
봉황이 머문 곳 봉정사(鳳停寺)
두어해전 가을에 봉정사를 방문했을 때는 절 입구에 온천지가 국화꽃으로 덮혀있었는데
지금은 연초록 신록 속에 간간히 산벚이 피어 전혀 다른 모습이다.
봉정사가 세상에 이름 높은 것은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집인 극락전(국보 제 15호)이
있기 때문이다.
1972년 9월, 봉정사 극락전을 중수하기 위해 완전 해체했을 때 상량문이 발견 되었다.
이 상량문은 1625년에 기와 수리를 하면서 써둔 것인데 창건 시기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부석사
무량수전 보다 13년 앞선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至正23)에 중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건축양식도 고구려식 건축양식으로 간결하면서도 강건한 인상을 주는 건물이다.
(봉정사는 봉황이 머문자리인만큼 그 배치가 아름답다)
(극락전 옆 느티나무의 근육질 육체미)
안동에 왔으니 가수 진성의 '안동역에서'를 한곡 차안에서 부르며 안동역 인근에 있는
구시장 찜닭 골목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여행의 소소한 재미는 작은 연결고리에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
구시장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지나던 사십대 행인에게 찜닭 골목을 물었는데
"저의 장모님이 찜닭집을 하는데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고한다.
그 집에 당도하여 그 장모께 인물 좋은 사위가 길거리에서 손님 네명을 달고왔노라고
하니 안동막걸리 두병이 써비스로 제공된다. 공짜 술 두 병이 기분 좋게 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안동댐 밑에 조성된 월영교(月映橋)이다.
-월영교(月映橋,월영대)-
상아동과 성곡동 일원에 위치한 월영교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목재 바닥과 목재 난간으로 된 아치트리스 방식으로 길이 387m,폭3.6m 의 목책교로 난간마다
분수가 나오도록 2003년3월에 준공하였다.
낙동강을 감싸는 듯한 산세 외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 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하고 야경이 멋지다.
4/14일 오후 5시 구미역에 도착하여 승만 벗이 사주는
추어튀김과 탕을 안주로 소주한잔 나누고 내년을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귀가하였다.
첫댓글 오랜 세월 지기로 지내왔던 벗들과 여행이 얼마나 즐거웠을까하고 정겨운 모습이 그려지네. 배흘림 기둥이 유명한 부석사에 갔을 때였네. 입구에서 55기 서상도 선배를 만났어, 그분이 포스코 건설에서 근무할때 광양에서 만나서 잘 지냈는데 어느날 직장을 그만두고 입산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느낌이 사판승 같아보이더라고 나는 깜짝 반가웠는데 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동행했던 우리 회원에게 내 이름을 물었다고 하더구만.
작년에 고교동기들 안동기행 때 월영교 월영루에서 즉석음악회를 했었다네.. 마침 하모니카 잘 부는 친구가 있어서 달밤에 기막히게 어우러졌지. 모든 곳이 삼삼하네.
바우님, 월영루에서의 월하 즉석 음악회라! 그런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는 그대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