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독서실에서 나왔다. 한겨울의 새벽 추위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친구 한명과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공부나 입시에 관한 이야기였다. 친구가 수학을 잘한다는 것을 칭찬하면서도 속으로 시기했던 마음은 열등감이었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방안의 노트북에 앉았다. 벌써 쓰러질 법도 한데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몸의 고통보다 요새 잡고 있는 실낱같은 신념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인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용기가 책도 읽지 않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것도 곧잘 쓰곤 했던 주장하는 글이나 논설문이 아닌 수필(?)을 말이다. 로고스서원의 몇몇 친구들, 선배들을 보면 수필 종류의 글들을 놀라울 만큼 잘 썼다. 그런 분들, 특히 그중에서도 그 느낌이 무겁지 않게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듯 잘 쓰던 분들은 내 선망의 대상이곤 했다. 그런 글을 한 번 써볼 생각조차 못한 나로서는 그럴 법도 하였다. 글의 초반부만을 읽는다면 이 글을 쓴 나는 공부에 매진하는 성실한 학생인 것으로 착각할 여지가 다분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게으르기를 좋아하고,공부하기 싫어하고, 잠을 잘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어떤 면에서는 평균 이하의 학생이다. 다만 나는 성실한 생활을 일주일간 ‘체험’해 본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요점은 게으르고 잠자기 좋아하고 공부조차 하기 싫어하던 내가 어떻게 이 ‘체험’을 스스로 시작해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인데,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러한 생활을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짐작해보건대 앞서 언급한 ‘실낱 같은 신념’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신념보다는 스스로 부여한 기회에 가까운 것 같다. 첫날 그리고 이틀째까지는 정말 무작정 시작했지만, 3일째부터는 정말이지 독서실 문을 박차고 독서실 외의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찼었고, 거의 나갈 뻔 했다. 그런 나를 붙잡은 것은, 하나의 생각이었다. 지금 이번에도 도망치면, 이번에도 포기하면 더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며칠 전에는 내가 다닐 고등학교도 결정이 났다. 이름만 들으면 그 근방의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아는, ‘동인고등학교’로 말이다. 학생들이 아는 내용을 세 글자로 줄이면 ‘빡세다’로 줄여진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규율과 규칙부터 시작해 선생님들까지 이건 뭐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수용소와 맞먹는 수준이란다.(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동인고 교복을 입고 동인고에 가게될 터이다. 다른 학교에 간 것보다 공부도 더 빡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그에 맞춰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요새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잡생각으로 2ㅡ30분을 그냥 날려버리기도 하는데, 의지와 신념이 확고해 공부에 매진하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정말이지 큰일 났다. 중1때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잘 없었는데 아마 그것은 마냥 부모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 외에는 별 생각이 없어서였나? 어쩌면 머리가 자라서(관용 표현) 생각이 더 많아진 것일 수도 있겠다.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대학가기 위함이라면 왜 대학은 가야하는지 모르는 게 많아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 했다. 어째선지 모르는 게 많아진 요즘이 갑자기 마음에 든다. 모르는 것이 많아지도록 오늘도 달려야 할 테다.
첫댓글 동인고에 갔으니 아마 1년 내내 내가 이곳에 왜 있지 라는 주제로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좌절할 거니까 그냥 받아들이세요 절대 희망적이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