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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큐슈 지방 답사 여행
~~9월1일(토)
오랫 만에 일본 여행 계획이 세워져서 선뜻 신청 했다.
최하경 회장님과 임인위 국장이 어찌 어찌 해 가지고 아주 저렴 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 놓으니 이심 전심으로
20명 예정 했던게 25명으로 늘었다. 계획이 확정 되고 인원도 꽉 찼는데....
갑자기 독도 문제로 양국간에 기류가 어수선 해져서 마음들이 찜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확정되고 계약
되었기에 어쩔수 없던 차에 태풍이 2개 씩이나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핑게삼아 연기 하거나 취소 되지 않을까? ..... 하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발동 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날짜는 코 앞에 다가오고 태풍은 우리가 출발 하는 날 아침에야 말끔히 개 버렸으니.....
불행중 다행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서울-->부산 KTX 에 몸을 싣고 들뜬 기분으로 부산으로 달렸다.
일본을 여러 번 가 봤지만 배 타고 가는 건 처음 이라서 모두들 소년 소녀 같이 약간은 흥분 되는 것 같았다.
전차를 타고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가서 시장 견학과 생선 구이 점심을 마치고 아직 출항 시간 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남포동 광복동 국제시장 거리를 산책하였다. 부산 국제 여객선 터미날에서 뉴 카멜리아호에 승선 하여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마치니 어두어 졌고 모두들 갑판에 올라가 멀어져 가는 부산의 야경을 보면서 출항하는 배 위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칠흑 같은 현해탄의 선상에서 최 회장님이 쏘신 아사히 비루를 한잔씩 하면서 밤 정취에 젖으며 마음은
밤을 지새고 싶었을 꺼다.
9월2일(일)
잠시 눈을 붙이고 밝아온 해를 선상에서 마지하며 조식을 하고 간단히 추스리고 잠시 쉬다보니 벌써 후쿠오카 하카다
항에 닿아 버렸다. 서둘러 하선하여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 관광에 올랐다.
구 시가지 에 대비되는 해변 인공 신도시인 씨싸이드 모모치 해변공원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시내로 들어와
캐널씨티관( 복합 상가)에서 기웃기웃 아이쇼핑 하였다. 점심 까지 사이에 시내에 있는 아사히 맥주공장을 견학했다.
공장에서 갖 빚어 내는 시원한 맥주 맛은 일품 이었고 더구나 꽁짜라서 그런지 더욱 맛 있는 것 같았다. 일본와서 첫 식사
야기니꾸(燒肉)식당 으로 옮겨 일본 와규 갈비 정식으로 점심을 잘 먹었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요즘 관광은 리렉스 하게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속에 즐기며 휴식 하는 거라던가?...
잘 가꿔진 일본의 조림된 산과 나무들 을 감상 하면서 일본 최대 온천 마을인 벳부로 향하는 과정에있는 조금은 인위적
으로 가꾸어진 유후인 마을에서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집들과 정원과 호수와 먹거리 볼거리 속에서 거닐고 군것질도
하면서 싱그러운 자연 속에 흠뻑 빠져보고 그야 말로 리렉스 하게 휴식을 취했다.
모두 뿔뿔이 헤어져 이골목 저 골목을 거니는 과정에 우리 세사람이 막 빚어내는 모밀국수가 먹음직 하게 보여서
얼른 먹고 가기로 했었는데 집합 약속 시간이 임박 해 지고 갑짜기 소나기도 쏟아지는 바람에우산도 안든 상태에서
마음이 급해 졌겠다----
빨리 가야 겠다는 일념으로 지름길로 가 보겠다고 들어 선 길이 엉뚱하게 조용한 정원속으로 자꾸만 들어 가고 좀처럼
버스 주차장에서 멀어져 가기만 하여 당황 했던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소나기 까지 오는 속에
겨우 사람을 만나 길을 물어 뛰다시피 하니 약 10~15여분 늦었던가??......망신!!
소나기는 걷치고 날씨 상쾌 한 속에 다시 달려 벳부 지역의 지옥온천인 가마또 지옥에 들렀다.
호수 밑에서 끓어 오르는 온천 유황 깨스도 있고 진흙 속에서 끓어 오르는 것도 있었다. 피로를 푼다고 뜨거운 온천 물에
족욕을 15분 가량 하니 온 몸에 땀이 보실보실 나는게 아닌가?...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 이었다.
벳부 시내로 내려와 Sea Wave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후 시내 산책하고 목욕 하고나니 피로가 몰아 오고 꿈
나라라로 갈 수 밖에.....저가 상품 이라서 번듯한 잠 자리나 호화로운 식사는 기대 하지도 않았으나 그래도 먹고 자는데
불편 하지는 않았다.
9월3일(월)
온천 지옥이 여러개 모여있는 지대로 이동하였다. 골짝 골짝에서 하이얀 온천 개스분출이 보이는 가운데 우미지옥에서
유노하나( 湯 의 花)라고 하는 것을 생산 하였다. 지하 분출유황 개스를 흙으로 잘 가두고 움막으로 가려서 소금 덩어리
같은 것을 생산하는 하는 것 이었다. 각종 피부 트러불 치유나 입욕제로 쓰인다고 하였다.다시말하면 겨울철 땅속에서
서릿발이 자라나오는 모양 같았다. 마침 일본식 초가(너와지붕) 보수공사 하는 걸 볼수있어 좋았다..
이동하여 380m 정도의 언덕에서 벳부 시내를 내려보며 큐수 섬 동남 해안을 한눈에 내려 볼수 있었다. 일본은 올때 마다
느끼는 것 이지만 지저분한 것이 잘 안 보이고 깨끗 하다는 느낌이다. 아시아 태평양 대학 이라는 신설(약10년)학교가
있었고 제법 유명 하다고 가이드가 설명 해 주었다.
여기서 부터는 이번 답사 여행의 백미라고 할수있는 아소산 관람 이다.비오고 갠 시골 산야를 가로질러 지방도로 시골
길로 아소산 지역으로 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거진 숲이나 높고 아름다운 산과 들은 참으로 장관 이었다. 산세가 둥글
둥글 한게 좀 색다른 느낌 이었다. 1500m 에서1900m 의 산이 5개 정도 모인 산맥 형식인 모양 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참 잘 하는 것도 많은데..... 왜? 정치적인 문제랄까? 이런 것들을 자연 처럼 깔끔 하게 정리 하지 못할까??
생각 하다 어느 덧 아소산 화산 분화구에 이르는 입구에 다달았다. 해발 1,150m 지역에서 케이불 카(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니 장관이 눈 앞에 펼쳐 지는게 아닌가.일행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야~ 야~ . 마치 그랜드 캐년을 축소 해 놓은 것 같은 형상 에다가 저 깊은 곳에는 꼭 원자력 발전소 핵연료봉 저장소의
파란 보-론 물 같은 옥색의 액채는 장관 이었고 여기 저기 분출 하는 개스는 곧 화산의 불길이 터져 나올 듯 하였다.
기념 사진들 찍느라 야단 들 이었고 임인위 국장님은 구경도 못 하고 사진사 노릇 하기에 바빳다.
조금 돌아 내려 와 보니 거긴 분출은 완전히 멈추고 차가운 흙 구덩이와 무너진 언덕 만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산 정상은 1,900(?) m 정도 이고 5개의 화산이 있는데 우리가 본 이곳 분화구는 1,506m 에 위치한것 이라는 설명하였다.
화산 분화구 도 장관 이려니와 아소산의 영역이 광대하고 높으며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면면이 참으로 보기드문 형상
이었다. 약900m (?) 정도 높이의 지역에 주차장 과 식당등이 준비 되어있어 우리는 거기서 점심을 참 맛있게 먹었다.
기분도 좋고 하여 꼬불쳐 간 술들을 내놓아 푸짐한 파티가 되었다. 아마 김종구 부원장님이 준비 해 온거 라던가?.......
오이타현 지역에서 다시 지방 도로로를 따라 구마모도현 방향으로 이동 하여 큐슈자동차도로( 고속도로 )에 합류해서
후쿠오카로 올라왔다. 후쿠오카 시내 해변의 하카다 타워에 올라 시내를 한눈으로 전망 하였고 바로 옆의 건물에
좁은 공간에 수족관이 있는데 3층 높이의 원통형 수족관 이었다. 아래쪽엔 거북이를 비롯한 큰 물고기 중간층엔 또
중간의 고기들 그리고 맨 위 수표면 높이에는 잘잘한 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전에 별로 보지못한 방식 이어서 참
아이디어가 좋구나 하고 생각 하였다.
후쿠오카 시내 한쪽에 있는 후쿠오카 와지로이 카메노이(龜의井)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에서 화식저녁을 맛있게
먹고 휴식을 취한 후 꿈나라로 .......
9월4일(화요일)
어느새 3박 4일의 여정이 끝나는 날 아쉬움을 안고 나섰다.나머지 일정으로 시내서 약 30분거리의 다자이후텐만구
(太宰府天滿宮)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1,300년전 백제와 일본의 연합군이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패한후 돌아와
약 500년간 큐수를 다스리던 궁이라고 한다. 우선 버스에서 내려 조그만 면세점에 들려 아래(가솔) 사람들에게 줄
오미야개들을 준비하고 다자이후 도리를 통해 경내로 들어가니 대 학자였던 스가와라 노미치 도진(道眞)을 모시는
사당과 이런저런 인연의 절(寺)이 4개 1,300년 묵은 노나무등 각종 유물들이 즐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35년전
젊은 나이에 출장 와서 잠시 들렸던 기억이 아련히 재현 되는 곳 이기도 하였다. 마침 큰 제사를 지내는 모습도
있었고 외국 관광객 보다는 국내인 들의 축제기간 같은 느낌도 받았다.
하카다항에 가서 부산행 카멜리아호에 승선하고 선내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잠시 휴식후 부터는 날씨도 좋고
시계가 맑아서 꼭 대마도를 보아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관망석에 자리하였다. 사실 일본에 여러번 다닌 분들도
배타고 그것도 밝은 대낮에 맑은날 이곳을 지나기는 쉽지 않은 일 이기 때문에 모두들 조금은 흥분 하고 있었다.
어떤 분 들은 갑판으로 나가기도 하며 기다리기 1시간 반 정도 지난후 부터 대마도가 시야에 들어오자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다가 점점 가까이 그리고 그렇게 길게 누어있는 섬을 보면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상상 하기엔 그저 조그마한 섬 이겠지 했다가 이렇게 큰 섬 아니 큰 나라가 하나 바다위에 떠 있는게 아닌가?
자세한 제원은 다음에 공부 해 보기로 하고 보고 느낀대로 고속 배타고 거의 2시간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번 여행의 백미를 아소산 이라고 했던걸 수정 해야 겠다. 아~ 우리의 상상이 이렇게 빈약 했단 말인가? 지도를
보아도 사실 길이로만 보면 거의 제주도 많큼 되는데 왜 상상속에 그렇게 조그많게 생각 했을까?? 고구마 섬 이라고
들어서 그런가??
어떤 노인은 술기운이 좀 있긴 했지만 큰 소리로 야- 크다 야~ 길다. 부산 사람인지 해운대서 볼때 참 길었지--,야~
크다~ 라는 말을 아마 100번도 더 했다. 어떤 노인은 조선시대 정치인 들이 정신 못 차려서 일본X 에게 빼았겼다고
하기도 하고 .......
대마도가 고려때 부터우리를 괴롭히던 왜구의 본거지라는 것, 우리가 복속시켜 조공을 받았다는 것, 또는 조선초기
세종이 정벌을시도 했다는 것, 임란때 대마도가 일본과 조선에 양다리 정책을 쓰다가 임란후 일본으로 기우렀다는
사실등은 대강 알지만... 이런 큰 땅이 우리 것 이었다면 연근해 영역이 얼마이며 해양 실권이 그 얼마 일까? 군사적
으로도 경제적 으로도 참 큰 힘이 될 수 있었는데.....
국제법을 전공하신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 전에도 그뒤에도 여러차례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 하셨다는데.......
조그만 돌섬 가지고 갈등 하다보니 대마도가 그렇게 아쉽게 생각 되어지는건 나만의 상념이 아닌것 같았다.
지리적으로 후쿠오카에서 150Km 부산에서 50Km미만 이라는 사실과 문화나 풍습적으로 유사하고 증빙이 될만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는데... 조선 통신사도 일본에 갈때 꼭 들려서 문물을 전하고 지도 해 주었다지 않는가?
배에서 옆에 일본 젊은이들이 듣고 있는데 일본X들이 빼았아 갔다고 큰 소리로 뇌이는 분도 있었다. 요즘 일본 사람들
한국 말 잘 알아 듣는데.......하기야 듣거나 말거나 지만.....
참 유익하고 기억에 남을 답사 여행 이었다. 주선하신 최 회장님 임인위 국장님 그리고 여러 임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사불란하게 협조 해 주신 회원 님들과 몇몇 게스트 분들도 참 고마웠습니다.
6시반쯤 부산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후 8시 KTX 로 서울역 10시50분도착, 뛰다시피 1호선 전철로 회기역 환승,중앙선 타고
집에오니12시가 넘었다. 참 즐겁고 아름다운 답사여행 이었다.
여러분 안녕!1 회장님 임 국장님 다음에 또 좋은 푸로그램 만들어 주세요.
첫댓글 수학여행 때 제주도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땐 비닐봉투가 귀했던가봐요. 준비물중에 깡통이 있었는데 멀미는 무슨 멀미냐고 집합장소인 운동장에서 깡통밟기를 했답니다. 납작하게 밟아 던지고 룰루랄라 배를 탔지요. 하나둘씩 눕더니 깡통을 찾기 시작했지요. 롤링이 어찌나 심했던지 제대로 걸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깡통 얻으러 가는 중에 웩하니 그걸 보고 또 웩 . 누워있으면 좀 나으려나 했던 사람조차 누워서 웩, 엎드려서 웩. 처음엔 그래도 선실을 닦았지요. 제가요. 나중엔 엉덩이 부칠곳이 없이 온통 오물투성이에 역겨운 냄새는 아이고~ 참고 참았던 저까지 도리가 없었네요. 목칼쓴 춘향이 산발은 산발도 아니었죠.
김창기 선생님, 기행문 참 잘 쓰셨습니다. 김창기 선생님 하면 기행문이 생각납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아는 사람만 아는 선생님의 위트는 주간보다 야간에 더 빛을 발하죠. 선생님의 존재는 진흥원의 품위와도 같습니다. 거기다 만나면 즐겁기까지 하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진흥원의 기행문 담당으로 감히 임명합니다. 다음 기행문은 제주도가 되겠군요.
수학여행기 ㅡ 돌아가는 날이어서 몰래몰래 빠져나가 선물들을 사고 돈을 많이 써버렸습니다. 숙소를 막 출발하려는데 선생님들이 회의 끝에 돈이 없는 사람은 오늘가는 줄에, 돈이 있는사람은 내일 가는 줄에 서라고 하시니 돈을 빌리는 전쟁이 났습니다. 난리통에 몇명이 없어져 버렸지요. 물에 흠뻑 젖어 울면서 들어오더니 방바닥에 돈을 죽 늘어 놓더라고요. 그걸 본 친구들이 자기들이 빌려달랠 때 없다고 하더니 쾌싸다, 잘 빠졌다고 이죽거렸지요. 두 줄로 서 있는 틈바귀에 몰래 빠져나가 보트를 타다가 그만 보트가 뒤집혀 버렸답니다. 돈 있는 친구들이 물에 빠져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풍랑이 일어 다 태울 수 없다해서 생긴일.
김창기 선생님, 대박나셨군요. 선생님의 인기는 식을 줄도 몰라요.
맛깔스럽게 쓰신 후기글 읽으니 저도 함께 한듯 설레이고 눈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좋은 인품 좋은 외모 다정한 두분 뵈면서 노년을 참 멋지게 사셔서 부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든든한 기둥처럼 기대고 싶은 김창기 선생님과 짝꿍님!
오래도록 함께하는 인연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