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탈리아 대표 예술가 / 과학의 예술가 ? 최초의 과학자,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인물
다 빈치의 업적 과학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겐 예술이 과학이고 과학이 예술이었다. 과학을 행하는 예술가이며 동시에 예술을 행하는 과학자였다. 그는“과학적 지식 없이 실습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방향키나 나침반 없이 배에 오르는 조타수
●● 인간태아의 모습을 최초로 그린 다 빈치
레오나르도는 인간 태아의 모습을 최초로 그린 사람이었으며 20세기 들어서야 밝혀진 인체의 수수께끼를 일찌감치 발견하였고, 인체의 연구를 통해 동맥경화가 심장질환과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사상 최초로 밝혀냈다.
A page showing Leonardo's study of a foetus in the womb (c. 1510) Royal Library, Windsor Castle 자궁 안의 태아 (The Fetus and lining of the Uterus)
Drawing Of A Womans Torso . 여성 해부도(disegno di anatomia femminle)제작연도 _ 1512. 기법 _ 드로잉. 크기 _ 47 x 32.8 cm. 소장처 _ 윈저궁 왕실 콜렉션
●● 다 빈치의 해부학 연구의 성과
이 여성 해부도는 1480년대부터 그 생애동안 열심히 연구한 해부학 연구의 성과중 하나로 보인다. 시체를 해부하는 것을 교회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던 당시로서는 놀랄 정도로 정확한 각기관과 각 혈관 계통의 자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는 특히 여성의 임신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임신과 태아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투시도로서 뿐만 아니라 형태의 아름다움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해부도로서의 정확성보다는 도상학적인 세부의 아름다움이 넘쳐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Drawing Of A Flying Machine ▲ 오니솝터
●● 새가 나는 비행원리에서 찾은 오니솝터
다 빈치는 인간의 비행을 평생 꿈꾸었다. 기록에 따르면, 다빈치는 1505년 새의 비행 생태와 생리학을 연구하여, “새는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이며, 그의 모든 운동을 인간 능력으로 구체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글라이더나 비행기 발명자에게 영감을 심어주어 항공기 개발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
Leonardo da Vinci’s Helicopter
●●다 빈치의 변형을 통한 헬리콥터 날개
레오나르도는 땅에 드릴이 회전하면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선형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쏘아 올릴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 하다가 발견한 ‘나선형 날개’이다. 하지만 공기는 땅과 다르게 손쉽게 변형하고 나선형 날개를 고속으로 회전시킬 수는 있어도 공기는 그 회전력에 따라 가지 못하고 단지 ‘공회전’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선형을 과감하게 두개로 나누고 역회전 시켜주는 개조를 통해 ‘헬리콥터 날개’가 만들어졌다.
이 헬리콥터는 스크루(screw) 방식을 이용한 헬리콥터를 설계한 것인데 스크루 형태의 비행 장치는 프로펠러에서 발생하는 토크(물체를 회전시킬 수 있는 능력)를 상쇄시키기 위한 개념조차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 빈치는 오직 수작으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빈치의 헬리콥터로 하늘을 날다
이탈리아 북부 빈치에서 일본 조종사 요코야마 야스토시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헬리콥터 'GENH-4'를 타고 시험 비행을 했다. ‘GEN H-4' 헬리콥터를 개발한 일본인 기술자 야나 기사와 겐나이는 “다 빈치의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에서 시험비행을 기획했다” 고 말했다.
Da Vinci's Ingenious Inventions Parachute
●●500년 전 다 빈치의 낙하산
1485년 다빈치는 불이 났을 때 탑 꼭대기 등 고립된 장소에서 피할 수 있도록 낙하산을 구상했다. 연구 노트에 그려진 낙하산 도면은 정삼각형 모양의 천 조각 넉 장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형태였다.
●●다 빈치의 낙하산, 낙하 성공
스위스의 아마추어 스카이다이버 올리비에 비에티 테파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하여 스케치한 그대로인 나무 뼈대 4개와 낙하산의 천을 피라미드형으로 유지시킨 다음 가로·세로 7m의 피라미드형 밑바닥을 만들고, 모기장을 설치해 천을 잡아주었으며 새 같은 것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스위스 파예르네의 650m 상공의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린 뒤 약 600m의 높이에서 낙하산을 펼쳐 군사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내려왔다. 비에티 - 테파는 “이 낙하산으로 완벽한 점프를 할 수 있었지만 방향을 조종할 수 없어 바람에 따라 착륙 지점이 결정되는 것이 한 가지 단점” 이라고 말했다.
The Vitruvian Man (c. 1485) Accademia, Venice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직접적인 관찰
‘비트루비아 맨’ 은 로마의 유명한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저서를 접한 다 빈치가 1485년 이를 드로잉으로 그려낸 것이다. 다른 말로는 ‘인체 비례도’라고 하며, 가끔 ‘인체의 표준비’라고도 한다. 15세기 다 빈치에 의해 그려진 인체의 수학적 비례의 재발견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 빈치는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실제 인체를 직접 관찰하여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가했다.
관찰 결과 인체를 따라 그려진 원과 정사각형은 실제로 그 중심이 일치하지 않으며, 배꼽은 이 중심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했다. 또한 비트루비우스는 팔을 아래로 내려 손끝이 배꼽을 통과하는 선에 맞춰 비례를 설명했다면, 다 빈치는 두 팔을 머리 높이까지 올림으로써 비트루비우스의 서술과는 차이를 보인다. 다 빈치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험주의적 사고관을 지녔으며 관찰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히 혁신함으로써 과학에 한 발 더 다가가고자 했음을 알 수 있으며, 비율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
Great Piramid at Giza in relation to Vitruvius man
복잡 한 듯 하지만 결코 복잡하지 않은 이 그림은 자체의 완성도를 넘어서 비례와 균형의 표본으로 많이 인용되며 건축이든, 예술이든 대부분의 미적 가치의 기준을 ‘인간’에게 두었던 고대 로마인들의 인본 사상을 엿보게 한다 하여 다른 각도의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 넓게는 유럽 사람들은 이 그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여러 가지형태로 변형시켜 기념하고 있기도 하다.
leonardo da vinci's car
●●최초의 자동차,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82년, 최초의 자동차인 ‘태엽 자동차’를 스케치했다. 이 자동차는 레오나르도가 실제로 발명했다기보다는 설계 스케치를 통해 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태엽자동차는 성당 대형 벽시계에 태엽을 감아 주다가 실수로 태엽이 튕겨 나온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태엽의 풀어지는 힘을 이용하여 태엽자동차를 만들게 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차를 오늘날 자동차의 기원이라고 여기며, 그 후 본격적인 자동차 역사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다 빈치 자동차 시동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태엽자동차 설계가 생명을 얻었다. 미국에서 다 빈치를 연구하던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500여 년만에 태엽자동차 설계도의 비밀을 벗겨 마침내 움직이는 자동차 모형을 만들어 냈다. 비밀이 풀린 것은 해석이 구구하던 설계도의 원통 구조와 선들이 둘둘 감긴 용수철임을 찾았기 때문이다. 즉 뒤쪽으로 바퀴를 굴려 태엽을 감으면 용수철이 풀리는 힘으로 앞으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 장난감 태엽 자동차와 원리가 같지만 최초로 자제 동력원을 가진 점에서 자동차의 선군임 셈이며, 이 자동차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역사과 학박물관에 전시되었었다.
●●다 빈치의 전쟁 무기 연구
다 빈치는 147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전쟁 무기에 대해 연구했다. 당시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막강한 군수품 보급처 이었으며,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야 통치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 빈치를 후원했던 재력가들이 전쟁 무기를 제작하도록 요구하는 진풍경을 만들어 냈다.
이 장갑차는 대략 1485년에 그려졌는데 다 빈치는 전쟁의 내분을 억제하고, 자국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전쟁 무기와 관련된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무기를 통한 그의 과학적 원리와 다양한 발명이 현재 인류 안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한 귀족에게 “제가 장갑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하였지만 실제로 제작된 적은 없고, 수첩에 스케치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장갑차의 차체는 딱딱한 나무를 세로방향으로 연결시켜 제작하여 전투 시 적이 전차에 매달리거나 기어오르지 못하게 경사 각도를 준 고깔 모양의 형태이며, 전차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 적의 침입 시 발사 할 수 있게끔 총포들을 고정적으로 배치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내부에는 피해를 주지 않도록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장갑차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졌다면 내부에 탄 사람이 아무리 크랭크축을 돌려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허점이 실수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레오나르도의 스케치를 몰래 베껴서 만들어도 작동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기계는 방어를 목적으로 설립 하였는데, 휠, 석궁, 방어막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휠은 휠의 꼭대기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에 의해 회전되고, 활을 쏘는 사람은 휠의 안쪽에 위치하게 된다. 적이 주변에 오면 석궁은 불로된 화살을 쏘는데 방어막은 휠 위에서 걷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보호되는 원리다.
Treadmill Powered Crossbow 석궁
davinci-works-inventions-double-hull 선박 스케치
●●물이 움직이는 원리에서 찾은 선박
다 빈치는 당시 수력 공학에 뛰어난 면모를 발휘했다. 어린시절 개울이 흐르는 패턴을 분석할 만큼, 물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다. 당시 엔지니어들의 관심사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모양을 가진 배를 고안하는 일이었다. 다빈치는 페달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장치를 발전시켜 선박에 적용시켰으며, 선체에 손상이 생기더라도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막아주는 이중 선체를 개발 하였는데, 이것이 타이타닉호를 비롯한 현대의 모든 배가 이중 선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다 빈치가 설계한 장치 중 가장 독창적인 상상력과 간결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Mona Lisa (Monna Lisa) ? Leonardo Da Vinci’s Use of Sacred Geometry
There are many more golden proportions in this painting. / ?Leonardo Da Vinci (1452 - 1519) This excellent Italian Renaissance polymath (painter, sculptor, architect, musician, scientist, mathematician, engineer, inventor, anatomist, geologist, cartographer, botanist, writer) studied the human body involving in the ratios of the lengths of various body parts. After calling this ratio "divine proportion", he featured in many of his paintings.
●● 수학과의 융합
다 빈치에게는 예술이 과학이고 과학이 예술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가지 기법과 구도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 다 빈치는 미술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등의 여러 분야에도 조회가 깊었다. ‘최후의 만찬’ 에는 수학적인 구도 배치가 나타나는데 그림 속의 12사도를 3명씩 4그룹으로 나누어그렸다. 하지만 이것이 이질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12사도의 다양한 동작으로 인해 통일감을 주어 안정감을 준다. 또한 다 빈치는 인물을 배경보다 높이 배치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모나리자‘ 를 들 수 있다.
모나리자의 얼굴은 황금비율인 1:1.618로 그려져 있어 균형 잡힌 느낌을 주며 구도 또한 피라미드 형식으로 그려져 안정감을 더해준다. 피라미드 형식을 띄는 작품의 또 다른 예로 ’성 안나와 성 모자’를 들 수 있다.
The original design of the giant crossbow
●● 과학과의 융합
다 빈치는 예술과 과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 작업을 해나갔다. 그의 생애동안 연구한 해부학의 성과 중 ‘여성 해부도’가 있는데 정확한 각 기관과 혈관 계통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여성의 임신에 흥미를 갖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예로 ‘자궁 안의 태아’를 들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비행을 꿈꾸어 새가 나는 원리를 연구하여 오니솝터(ornithopter)를 설계 하였으며, 그 외에도 낙하산, 헬리콥터 날개등 이 있다. 비례와 균형의 표본으로 인용되는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은 미적 가치의 기준을 ‘인간’에게 두었던 고대 로마인들의 인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다 빈치는 튕겨 나온 태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자동차의 설계 스케치를 하여 자동차의 발전에 계기를 마련하였고, 장갑차, 석궁 등의 전쟁 무기를 연구하는 등 과감한 혁신을 통해 과학에 한발 더 다가가고자 했다.
●● 지식기반의 확장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다가올 미래 시대의 핵심기반으로 3가지인 시간, 공간, 지식을 꼽았다. 미래사회에서는 속도를 맞추는 일, 즉 동시화(synchronization)가 매우 중요하며,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도 무한정 넓어질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지식은 '미래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원인 석유'라 할 정도로 중요하며 과거시대의 자원(석유)들 즉, 다빈치는 여러 가지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냈고, 앨빈 토플러가 말한 지식이라는 핵심기반을 확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빈치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그는 과연 리더라 할 수 있는가? 그가 보여준 리더십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는 어떠한 리더인가?
●● 다빈치의 리더십
르네상스 시대의 융합작품으로서의 다빈치는 어떠한 리더인가? 리더는 일군의 그룹이나 조직을 앞장서서 이끌어내는 사람만이 아니다. 리더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새롭게 보여주거나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다. 마치 하얀 눈이 내린 들판에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같은 것이 바로 리더인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에 눈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걸었던 발자국을 따라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다 리더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빈치는 분명 굉장한 리더다.
다 빈치에게서 나타나는 또 다른 리더의 특징은 그가 자신이 갖고 있던 다재다능한 능력을 적극 홍보하고 알렸다는 것이다. 그가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옮길 때, 그는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직접 찾아가서 자신을 최고의 무기제작자라고 자랑하면서 써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자기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또 그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지원해줄 것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자기 피알, 자기 홍보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진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세상이 그를 찾아주기를 원하던 소극적인 리더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를 홍보하면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수행해나간 리더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과학과 예술, 과학과 기술을 융합한 것 못지않게 자신과 사회와의 융합에도 민첩하게 대응한 정말로 융합형 인재였던 것이다.
●● 다빈치의 위대함을 만든 세 박자
오늘날 다빈치는 다양한 전시회와 다큐멘터리, 그림과 책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열었던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이자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의 위대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다빈치 개인의 천재성이나 능력으로만은 결코 앞서 논의한 것처럼 다빈치가 살았던 15, 16세기의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무역업과 은행업이 성행하던 상업지역이기도 했지만, 교황청과의 사업을 통해 부를 축척한 메디치 가문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문화적 후원자를 자청하고 나선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다빈치 그 개인은 예술적 천재성과 과학적 이성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만약 그가 그를 후원해주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메디치 가문의 예술 활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제적 후원과 당시 피렌체 지역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여건과 분위기, 그리고 다빈치 그 자신의 잠재적 능력이라는 세 박자가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낸 그야말로 융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다빈치를 학문적 기술자라고 부른다. 이 말속에는 그가 기술을 학문적으로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16세기 이전까지 기술자는 그냥 기술만 익히고 실행하는 사람이지 그 기술이 어떤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미스(Smith)라고 하는 대장장이들은 그냥 경험과 경륜으로 철과 쇠를 만지고 그것으로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지 철과 쇠가 갖는 과학적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이론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다빈치는 처음으로 기술의 이면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빈치는 과학이라는 이론적인 작업을 실제적인 실행, 프랙티스(practice)라는 기술적인 작업과 연결한 것이다. 그는 화가이자 예술가였고 기술자이면서 무기제작자였으며,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다.
●● 인재육성 방향
다빈치라는 융합형 인재를 통해 나타나는 리더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보여주고 걸어갔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재능을 알고 아낌없이 장려하던 경제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던 분위기와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융합형 인재인 다빈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의 융합의 결과인 것이며, 오늘날 인재교육에서 교육시스템과 사회적 협력 그리고 가정과 공동체의 참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상 우리 개개인은 모두 다 다빈치일 수 있고 또 사실 다빈치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개개인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소양 그리고 예술적 소양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는 누가 그 어느 것을 얼마만큼 끌어당겨주고 발현시키도록 할 것이냐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데, 만약 내가 책을 접하지 못하거나 글을 써볼 수 있는 여건과 만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대신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거나 공장에서 기계만 다루는 일을 하게 된다면, 나는 결코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이끌어내 줄 여건이나 분위기 속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결국 사람을 사람에서 인재로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직 잠재되어있어 발현되지 못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발현될 수 있게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교훈 (사고의 기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가, 건축가, 과학자, 발명가 및 엔지니어로 활약했으며, 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요리와 악기 연주 실력도 프로수준이었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천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고, 단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쇄술, 연필, 나침반, 대형 선박, 장거리 대포 등이 발명되었다. 이러한 발명들은 인간의 역사를 뒤바꾸는 혁신적인 것들이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시대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다 빈치의 생애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근원적인 질문과 메모를 철저히 하라 _ 사람은 누구나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계속되어야한다. 레오날도 다 빈치는 메모장이나 노트를 활용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2.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실험하라 _ 지식과 노하우의 원천은 직접적인 경험이다. 또한 그 경험이 실제로 가치 있는 것이 되려면 본인의 공부 또는 관심 분야와 연관된 경험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의 경험은 그 어떤 스승이나 책보다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3. 과학, 예술적 감각을 연결하라 _ 왼쪽 뇌가 논리를 관장하고, 오른쪽 뇌가 예술적 감각을 관장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양쪽 뇌를 모두 활용하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빈치는 ‘브레인 스토밍’, ‘창의적 사고’ 등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마인드 맵핑(mind mapping) 기법’이라 불리는 문제 해결 기법을 개발했다.
4. 큰 그림으로 전체를 이해하라 _ 오늘날 우리가 전문화되고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제나 전체를 연결, 통합시키는 하나의 큰 그림과 그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역사, 행동 패턴 및 관계에 대해 이해를 하는 자가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다빈치에 대한 전문가 재평가
조숙경 박사, 한국과학창의재단
Q. 다빈치는 어떤 인물였나요?
A. 조숙경 :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다재다능한 역사적인 인물’로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다빈치가 실제로 많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적극 홍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적극적 인재 그가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옮길 때,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직접 가서 자신을 최고의 무기제작자라고 자랑하며 자신을 적극 홍보했습니다.
Q. 그렇다면 다빈치가 ‘다재다능한 인재’ 평가를 받도록 도와준 배경이 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A. 조: 그렇습니다. 제가 2007년 여성 신문에 “세계 과학문화” 시리즈로 연재한 글이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는 같은 유럽임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많이 다른데요, 이렇게 각국에서 다르게 수행되었던 과학과 사람들의 관계, 과학기술에 있어서 잘하는 점, 그리고 대표적인 과학자와 문화적 풍
이탈리아의 경우, 다빈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다빈치는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열었던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이자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도 사실은 모두 다 다빈치일 수도 있고 또 사실은 다빈치입니다. 개개인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인문학적 소양도 있고, 과학적 소양도 있는데, 그것을 누가 얼마만큼 끌어당겨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데,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을 이끌어내 줄 여건이나 분위기 속에 들어가면 나는 인문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전혀 발현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나의 인문학적 요소는 전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죠. 즉, 인재를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한건, 그런 다양한 가능성들이 발현될 수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교육’이자 ‘문화’입니다. 특히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사람을 지원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인재가 어떤 환경에, 어떤 맥락 속에 놓여 졌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며, 그 인재의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후원하는 문화가 매우 중요한 것이죠.
다빈치는 이러한 문화 속에서 자란 인재였습니다. 다빈치가 살았던 16세기의 피렌체는 가장 활발한 상업지역이기도 했지만, 활발한 ‘문화지역’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당시 교황청과 은행사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던 메디치 가문이 문화적 후원자를 자청하고 나선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수장들은 재능과 능력은 있지만 여건이 되지 못하여 활동하지 못하는 예술가, 기술자, 과학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으고, 이들에게 숙식과 작업공간을 제공하면서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무한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착안한 말이 바로 요한센의 ‘메디치효과’(서로 연관성이 없는 다양한 영역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메디치 가문이 여러 분야의 과학자, 예술가, 기술자 등을 모아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을 후원함으로써 ’새로운 문화 창조 역량‘을 이끌어 낸 데서 유래)입니다. 아낌없이 지원해주며, 보상(Reward)을 바라지 않는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가 오늘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배경에 있었던 것이죠.
다빈치는 개인의 천재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후원’ 과 그로인한 당시 ‘피렌체의 자유
Q. 다빈치는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이끌어낸 인재였는데요,
A. 조: 흔히 다빈치는 ‘학문적 기술자’ 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가 기술과 과학을 접목했다는 것인데요. 16세기 이전까지 기술자는 그냥 기술만 하며, 그 기술이 어떤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스미스(Smith)라고 하는 대장장이들은 그냥 경험과 경륜으로 대장장이 일만 평생 하는 것
Q. 다빈치가 융합 ‘인재’인 것은 맞지만, 융합 ‘리더’는 아니지 않았나요?
A. 조: 아니요. 다빈치도 리더입니다. 저는 ‘리더’라는 것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보여주는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을 키워내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리더의 덕목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빈치는 굉장히 중요한 리더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리더인 이유는 거대한 기업의 CEO 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더란 무엇인가 “리더란 무엇인가” 라고 사람들이 물어오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리더란 하얀 눈이 내린 들판에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내딛고 가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눈길을 걷는 사람은 그 사람이 걸었던 발자국을 따라 가기 때문이다.’
다빈치와 스티브잡스는 바로 이런 새로운 발자국을 낸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때 개개인은 누구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누가 그 방아쇠를 당겨줄 것인가’ 인 것이죠. 교육도 그렇고, 사회 시스템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어떻게 그런 것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는가를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정규 박사, 한국과학창의재단
Q. 다빈치 같은 리더가 탄생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이: 다빈치 같은 인재가 탄생하려면 어느 정도 ‘시대사조’ 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렌체 가문이 처음부터 귀족 가문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세시대에 귀족은 아니었지만, 그 때 무역업이 성행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고, 그 돈을 기반으로 ‘문예부흥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훌륭한 예술가 조각가부터 시작해서 다빈치까지 끌어 들여 연구 공간도 주고, 교류도 시켜주고하는 역할을 잘 하였던 것이죠.
아·아·아 혁명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러한 3D 기술이 발전하면서 삼성과 엘지 등이 ‘3D TV, 3D 컴퓨터’를 만들어 내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예처럼, 인재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잘 맞는 ‘시대사조’가 따라와야 ‘다빈치’와 같은 융합형 인재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인문융합 창의형 인재 / Creative Leadership 르네상스 과학 예술가/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 73
Future Discovery Research 2020 기술인문융합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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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LDEN RATIO The golden ratio, also know as the divine proportion, the golden mean or the golden section, is an irrational number, approximately equal to 1.618, which appears many times in geometry, art and architecture. It is represented by the Greek letter phi (φ). This letter was proposed to represent the golden ratio by the mathematician Mark Barr, since it was the first letter in the name of the sculptor Phidias (490 ? 430 BC), who made the Parthenon, who is said to have employed it. The idea behind the golden ratio is that, once you have divided a line in two parts, the longer part divided by the smaller one is equal to the whole length of the line divided by the longer part.
The Pyramid of Cheops The oldest and largest of the three pyramids in the Giza Necropolis was built somewhere about 2560?2540 BC. The Ahmes papyrus of Egypt gives an account of this pyramid with proportions according to a "sacred ratio". Mona Lisa (Monna Lisa) -- Leonardo Da Vinci's Use of Sacred Geometry
참조 : http://www.leonardoda-vinci.org/ http://www.leonardodavincisinventions.com/ http://mathart.wikidot.com/golden-rat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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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