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의 여름
민 병 삼
빗줄기가 콩볶는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때렸다. 창틀의 빗물이 괴기 시작했
다. 아직 장마는 ˙아닌 것 같은데 비는 이틀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빗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토록 휴지를 창틀에 깔았다. 그리곤 허리을 펴 밖을 내다보았다. 크고작은 건물들, 자동차, 가로수, 행인 등 거리의 풍경들이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을 통해 온전하게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그러지고 구부러진 보습이 마치 고호의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하였다.
그새, 창틀에 깐 휴지가 물에 불어 풀처럼 녹아버려 곧 벽으로 흘러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들이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을 기어다닌다 해도 차라리 비가 창을 때리는 일에 지쳐 물러날 때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H 미대에 있는 송남혁이 건 전화였다.
“아까 전화했는데?”
“점심 먹으러 나갔었어.”
“오후에도 화실에 계속 있을 거지?”
“그래야 되겠지.”
“잘됐군. 이따 네 시쯤 해서 누가 찾아갈 거야.”
“누군데?”
“여하튼, 만나보면 알아. 내가 보낸 사람야. 저녁에 시간 있으면 틀를께.”
그는 내가 궁금해 하거나 말거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렸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자기 볼 일이 끝나면 상대방의 사정은 조금도 헤아리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러한 그에게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와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를 이해하였다. 술자리에서도 자신의 주량이 차면 슬그머니 일어나 계산을 봐놓고 나가버리는 친구였다. 그러한 최소한의 토리로 그는 미움을 사지 않았고, 그저 별난 성격으로 생각하곤 하였다.
누굴까? 미술대학 지망생쯤 되겠지. 전에도 그가 학생 몇을 보내면서 질기지도를 의뢰한 적이 있었다.
장대처럼 꽂던 무서운 빗줄기가 조금씩 기운을 잃어가면서 창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창문을 열었다. 비안개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보자기처럼 얼굴을 덮었다.
자동차들이 기름 타는 소리를 내며 물이 흥건한 차도를 질주하였다. 빗줄기가가늘어지면서 행인들이 다시 거리를 메우기 시작하였다. 거리는 온통 알록달록한 우산의 행렬뿐이었다. 갑자기 영화 〈셀부르의 우산〉이 생각난다.
나는 창문을 다시 닫고 커피포트의 플러그를 꽂았다. 그리곤 학생들이 데생을 하고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재수하는 여학생 둘이서 석고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에 몇시간 출강하면서 주로 대학입시생들을 상대로 여러 해 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세로 들어 있는 십오 평 넓이의 이층을 반으로 갈라, 한쪽은 내 작업실로 쓰고 나머지는 학생들 지도실로 사용하였다. 입시생들을 지도하는 일에 일찍부터 신물이 나 있었지만 전임으로 들어앉기 어려운 처지에 호구책으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다시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아늑한 기분에 젖게 하면서 문득 풍요까지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커피를 몇잔이고 마셨다. 때로는 비가 나를 깊은 고독과 우울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아늑하고 풍요한 순간을 위해 비 보기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벽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3시 반이나 되었다. 조금 있으면 학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여 한동안 시끄러울 시간이다. 각자 이즐을 펴면서 열린 입이 닫힐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나의 과정처럼 그들은 으례 그렇게 시작하였다. 나름대로 그들의 한 즐거움인 것 같아 나는 결코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꼭 누려야 할 즐거움이라면 언제든지 가져야 한다곤 생각했기 때문이다.
4시가 조금 지나자 누군가가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송남혁이 4시라는 시간을 미리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듣지 못했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바람에 밀린 듯이 천천히 열리면서 얼굴에 밀가루반죽 같은 뿌연 살을 붙인, 중년을 넘는 듯한 사내가 들어섰다.
“조시현 선생님 계십니까?”
“제가…….”
“마침 계셨군요. 저어, 송남혁 교수님의 소개로 왔읍니다. ¨
그는 목례를 하며 한 발 다가섰다.
“네에……·전화 받았읍니다. 좀 앉으십시오. ¨
나는 그의 앞에 의자를 밀었다. 그러나 그는 선 채로 지감에서 급히 명함 한 장을 뽑아 주었다. 〈東山스텐레스 代表 朴萬金〉이라는 큰 활자가 고딕체로 박혀 있었다.
박만금이라고 합니다.”
그때 명함에 얹힌 그의 엄지에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순간,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 생각을 이내 걷어들였다.
내가 명함을 옆 탁자에 내려놓자 비로소 그가 의자에 몸을 붙였다. 그러면서 잠시 사방 벽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
“송 교수님께서 아무 말씀 안하셨읍니까?”
“아직…….”
“모르고 계셨군요. 실은, 선생님께 흉상 하나를 만들어주십사 부탁드릴려구 왔읍니다.”
“흉상을요?”
“네에, 요기까지 오는 흉상인 데요”
그는 손가락을 펴서 자기의 가슴을 두어 번 그었다.
“댁의 흉상을요?”
“제가 아니구요, 제 부친의…….”
“네에…….”
“생존해 계신 분입니까?”
“옛 돌아가셨읍니다. 그래서 사진을…….”
그는 다시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찔려 백지에 싼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모퉁이가 해지고 노르무레하게 색이 바래버린 명함 크기의 아주 오래된 사진이었다. 상반신의 인물이 한쪽으로 몰려 있고 오른쪽 어깨에 또다른 사람의 어깨 끝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잘려진 사진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목을 늘여 마치 남의 것을 구경하듯 사진을 넘겨다보고 있는 박만금의
얼굴과 사진의 모습을 잠시 비교해보았다. 그리나 사진이 너무 낡고, 게다가 노년의 얼굴을 담고 있어 그들이 부자간이라는 판단이 선뜻 들어오지 않았다.
“조각계에서는 선색님이 매우 유명하신 분이라고 송 교수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는 단정한 자세를 끝까지 지키고 앉아 머리를 반복해서 조아렸다.
“그 친구가 원래 과장이 좀 심해요.”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
“부친께서 생전에 훌륭한 일올 많이 하신 분인가보군요.”
나는 사진을 다시 손에 넣고 인물을 자세하게 뜯어보았다.
“기록에 남아 있진 않지만 왜정 때 항일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주로, 만주 등지에서 암약하셨던 것 같습니다.”
“네에……·흉상은 어디에 두실 건가요?”
“거실에다 모실 생각입니다.”
“거실에다요?”
“네, 원래는 입상으로 만들까 하다가 작게 흉상으로 생각을 바꿨읍니다. 비록 조각품이긴 하지만, 밖에 두고 눈비를 맞게 하기가 어쩐지 송구스러울 것 같아서요.”
“……”
“그렇게 해서 제 자식놈들한테 어른의 높은 뜻을 좀더 강조할 생각입니다.”
“네에·……”
나는 자꾸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겨우 누르고 그로부터 얼른 외면을 하여 담배를 꺼내물었다.
“되도록, 그럴 듯한 인물로 만들어주십시오.”
“그럴 듯하게라뇨? 어차피, 이 사진을 닮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야 그렇겠읍니다만, 그 사진보다는 좀더 근엄하게……·말하자면 항일운동을 하신 분의 풍모답게 말입니다.”
“글쎄요……·무슨 뜻의 말씀인지 얼른 이해할 수 없읍니다만, 어디까지나 실
상에 근거를 둘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그래도 좀……·아뭏든 선생님만 믿겠읍니다. 그럼, 언제쯤
착수하실 수 있겠읍니까?”
“착수하게 되면 연락 드리지요.”
“그러십시오. 그 명함에 박힌 전화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들어올 때와는 달리, 마치 외판원처럼 머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는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의 얼굴이라고 해서 여느 사람과 다를 이유야 없겠으나 억지로라도 어떤 기개 같은 점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저 평범한 촌로의 얼굴에 불과했다. 사진기 앞에 눈을 부름뜬 긴장한 표정에, 머리는 더북더북하고 코는 너부데데하였다. 그리고 각이 거의 반듯하게 진 턱에는 큰 붓털만큼의 희끗한 수염이 마치 고드름처럼 붙어 있었다. 하기는 독립운동가 중에 손병희 선생 같은 풍모도 많겠으나, 개중에는 독립군에 가담하여 만주벌판을 누비던 비천한 출신도 있겠다 싶어, 혼자 웃어버리고 사진을 내려놓았다.
저녁 늦게 송 남혁이 작업실에 나타났다.
“그사람, 왔었지?”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수선스럽게 물었다.
“박만금아라는 사람?”
“응.”
“그 사람과는 어떻게 되는 사이야?”
지난번 내 개인전 때, 그림을 하나 사갔지. 그뿐야. 그런데 그치가 어제 느닺없이 학교로 찾아와선 잘 아는 조각가를 소개하라는 거야.”
“그림에 식견은 있는 사람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돈 있는 사람들의 사치겠지 뭐. 어쨌든 돈은 좀 있는
모양야.”
그러니까 조상의 흉상도 만들겠지.”
“그치 아버지가 독립투사라며?”
“자기 말이 그러니, 믿을 수밖에.”
“그래, 승낙했어?”
“글쎄……·사진을 받아놓긴 했는데…….”
“만들어주지 그래? 별로 바쁜 일도 없는데.”
“한가하다고 무슨 일이든 되는 것은 아니잖나?”
“출품할 것도 아닌데 뭘…….”
나는 지난주부터 박 만금이 의뢰한 그 흉상을 제작할 생각으로 자료까지 구입했으면서 막상 손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내 연락을 받고 그가 다시 나타나 착수금이라고 얼마를 내놓으면서 거듭 당부한 말은 역시 흉상을 〈그럴 듯하게〉 재구성해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항일운동을 하신 분의 풍모답게〉였다. 처음 대면했을 때 들었던 그의 당부를 그저 특별히 마음 써서 잘 만들어달라는 뜻으로만 해석하였다. 입상 같으면 그의 주문대로 그럴 듯한 홈을 만들어줄 수 있겠으나, 흉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번째 와서 보여준 그의 간곡한 표정으로는 그냥 가볍게 넘겨버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독립 운동가의 얼굴은 어떠해야 된다는 기준이라도 있읍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갖고 계신 그 사진을 보고 누가 독립운동을 한 분이라고 믿겠읍니까? ”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것은 이분의 행적이 아니겠읍니까? 저 같으면 이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겠읍니다.”
나는 사진을 잡은 손을 들어 마치 숭모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곽 맞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훌륭한 자기 아버지임에도, 단지 볼품없는 촌로의 얼굴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에게서 나는 갑자기 내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곰보에다 고리눈이었다. 그리고 백정이었고 지독한 주정뱅이였다.
정말이지 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부자간이라는 관계를 청산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늘 궁리를 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궁리일 뿐이
지 실현될 수 없음을 자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 나에겐 곧 절망이었다. 그 후론 아버지가 빨리 죽어버리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 한번 고뿔에 걸렸을 뿐, 앓아누운 적이 없었고 오히려 술살이 사지 구석구석에 붙어 언제나 힘이 장사였다. 통나무 같은 아버지의 굳은 근육을 볼 때마다 나는 절망으로 배앓이를 해야 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은 부끄러운 사연이 있읍니다.”
“사연요?”
나의 반문에 그는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동그랗게 좁혔다. 그리곤 짧
게 한숨을 토했다.
“끝까지 말씀을 드리지 않고 그냥 얼버무리려고 했읍니다만……· 선생께는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진실하지 못한 일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까진 없읍니다.”
어차피 흉상을 어디 명소에 앉힐 만큼 이름이 나 있는 인물이 아닌 바에야, 그의 부탁대로 변형된 모습으로 제작을 해도 무관할 것이다. 그런 것을 굳이 숨기고 싶어하는 사연을 듣겠다고 귀를 뚫고 앉았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아닙니다. 결국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심정에 다다랐기 때문에, 이젠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
“웬만하시면 밖에 나가 술이나 몇 잔 나누면서…….”
“그럽시다.”
나는 조교 비슷하게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에게 뒷일을 부탁해놓고 박만금을 앞세워 거리로 나왔다.
이미 박모가 누워버린 거리는 건물마다 어둠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뱌람 한 점 없는 아주 무더운 날씨였다. 겨드랑에 몇 가닥씩 고압선을 끼고 있는 높은 가로수들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잎들을 죽인 듯이 잠재우고 있었다.
“조 선생님께서는 무슨 술을 주로 드십니까?”
그는 손수건으로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물었다.
“아무 술이고 마십니다.”
“자주 가시는 술집이 있으십니까? ”
“저는 아무데고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제가 모시겠읍니다.”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근처 주차창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 몇 대를 헤치고 그가 검은 승용차 앞으로 다가가자, 웃음을 뿌리며 동전치기를 하던 사
내들 패에서 한 청년이 놀란 몸짓으로 달려왔다. 그의 운전수인 듯싶었다.
“〈향원〉으로 가지.”
낡은 사진 앞에서 어깨를 오므리고 한숨을 토하던 조금 전의 모습은 어느새 묻어버리고 그는 거오(倜傲)한 목소리로 사장으로서의 자신을 되찾고 있었다.
차는 원남동을 거쳐 명륜동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빽빽한 가로수와 칙칙한 창경원의 담을 끼고 있는 어둑한 거리를 지날 때는 마치 차가 긴 터널을 공포에 쫓기듯 내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박만금이 조작해낸 어면 음모의 동굴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도대체 그 사연이라는 게 무엇일까.
차가 혜화통의 한 화식집 앞에 섰다. 그의 단골집인 듯 그가 들어서자, 종업
원들이 다가와 수다를 떨며 인사를 하였다.
방으로 안내되었다. 냉방이 아주 잘 된 곳이었다. 잠시 후, 미모의 중년여인이 들어와 상 모서리에 앉았다. 주인여자인 듯싶었다.
“술 드실 거지요?”
그녀가 물수건을 펴주며 박 만금에게 물었다.
“양주 한 병하고 회 좀 줘요. 물 좋은 걸루.”
“시중드는 애를 들여보낼까요?”
“아녜요, 오늘은 이분과 긴하게 할 얘기가 있어요.”
종업원들이 들어와 부대안주가 담긴 작은 그릇들을 상 가득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주인여자가 술과 회접시를 받쳐든 종업원을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제가 두 분께 술 한잔 올리려구요.”
그녀는 얼음을 넣은 글라스에 술을 약처럼 따르고 갔다.
“자아, 드시죠,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만금은 여자가 방을 나가자 술잔을 높게 들었다. 그리곤 잔에 얼음덩어리만 남기고 단숨에 술을 다 마셨다.
내가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는 동안 그리고 내가 비로소 한 모금을 홀려넣을 때까지 그는 굳은 표정에 계속 입을 봉하고 있었다. 마치 얘기의 서두를 찾지 듯해 고심하는 듯한 표정이기도 하였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나는 갑갑증이 생겨 담배를 피워물고는 그로 하여금 말문을 열게 하였다.
“개성입니다. 1·4 후퇴 때 월남했지요. 아홉 살 때였읍니다.”
"가족이 함께요?”
“출발은 그랬읍니다만 삼팔선을 넘어온 건 저 혼자였지요. 가족이래야 어머니랑 저뿐이었는데, 어머닌 폭격에 돌아가시고 행인지 불행인지 저만 살았읍니
다.”
“부친께서는?”
“제가 네 살 때 돌아가셨다고 들은 기억이 있읍니다. 해방되던 해죠.”
“그 사진이, 부친이 65세 때 찍은 것이라면 어른께서는 박 선생님을 육십이념은 나이에 보셨다는 말씀인가요? 하기는 고희에 본 사람도 있다니까,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만…….”
그는 내 말을 받은 대신 다시 술잔을 들어 또 단숨에 마셨다. 그리곤 얼음덩이 한 개를 박살을 내어 씹었다. 마치 말하고 싶지 않은 사연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다시 조각내듯이.
나는 다시 그의 침묵을 기다려줘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박락한 사연의 편린들을 다시 모으느라고 고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괜한 말씀을 드렸나요?”
결국 내 쪽에서 그의 침묵을 깰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이제사 얘깁니다만, 사실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읍니다. 얼굴도 모르고 행적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게 없으니까요. 단지 해방되던 해에 돌아가셨다는 애기만 기억 할 뿐입니다. 병사를 하셨는지, 객사를 하셨는지, 혹은 정말 독립운동을 하셨는지……도무지 아버지에 대해선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방이 되자 어머니가 마을사람들에게 욕설과 함께 종종 삿대질을 당하는 장면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도망치듯 사람들을 피했고, 늘 숨어다니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그 이유를 말해주시지 않더군요. 너무 어린 탓이겠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제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니가 문득 너는 아버지처럼 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어렸기 때문에 그 〈아버지처럼〉 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 하질 않았읍니다. 만일 피난길에서 어머니를 잃지 않았다면 그 뜻을 알 수 있었을 텐데……·그래서 저는 성장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삿대질과 그 〈아버지처럼〉 이라는 말과의 관계를 종종 생각해보곤 했읍니다.”
그가 내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잠시 입을 닫았다. 나도 술을 몇 모금 넣으면서 그의 묵연한 표정을 도와주었다.
“어째서 어머니는 단 한번도 아버지의 사진조차 보여주지 않으셨는지 궁금해요. 여하튼 아버지가 누구한테 내세울만한 인물이 아니었음은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구서야 제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입을 봉할 수가 있겠읍니까?”
“글쎄요……·? 그럼, 저에게 주신 그 사진은……?”
“저도 모릅니다. 그 노인이 누군지. 몇해 전에 길에서 주운 것이니까요.”
“네에?”
“그렇게 놀라실 줄 알았읍니다.”
“그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흉상을 굳이 만들려는 이유가 뭡니까?”
“차차 말씀드리죠. 우선, 술이나 좀 드십시다.”
그는 내 술잔에 첨배를 하면서 술 마시기를 거듭 권하였다. 마치 자신의 감정에 나를 동참시키려고 하는 듯이.
다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냉방기에서 나는 소리만이 방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의 다음 얘기가 궁금했지만, ‘차차 말씀드리죠.’가 오늘을 넘겨 다른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그를 따라 술 마시는 일로 잠시 마음을 돌렸다.
박만금은 한 병사의 손에 끌려 죽은 어머니 품을 떠난 후 바로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불안과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악몽 등과 투쟁해야만 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이 한동안 그를 흉몽속에서 시달리게 하였다. 그 때문에 따스했던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은 애초부터 그에겐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어디론가 깊이 묻혀버려 기억의 조각들을 좀처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한 악몽은 그 이튿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 자신도 곧 그렇게 죽게될지 모른다는 긴장으로 온종일을 보내곤 하였다.
고아원이 완전한 숙식처가 되지는 못했다. 그 많은 입들을 채워줄 만한 양식이 없어 빈그릇을 긁고 있기가 예사였고, 잠자리마저 여유가 없어 눕기는커녕 앉아서 눈 붙일만한 곳도 행동이 민첩해야 차지할 수가 있었다. 때문에 배를 채우는 일은 비럭질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각자 알아서 해결할 일이었다. 그 추위에 비록 천막이긴 하지만 그래도 숙소랍시고 해지면 고아원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대개 추위를 못 견뎌하는 축들이거나 종일 아무것도 얻어먹지 못한 치들이었다. 그래서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능력이 없어진 고아원은 마치 객사처럼 자고 나면 낯선 얼굴들이었다.
만금은 고아원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 두어 번은 메지어 나가는 아이들 속에 묻혀 얼어붙은 거리를 방황했었지만 배도 메꾸지 못하고 고작 쓰레기통에 몸을 처박다가 돌아오곤 해서, 아예 갇힌 듯 천막에 눌러 있었다. 거리에 나가 무엇으로든 배를 채울 수 있는 아이들은 만금이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아주 약삭빠른 놈들이었다. 어리뜩한 치들은 언제나 빈배만 움켜쥐고 들어왔다. 만금이가 남들처럼 계속 쓰레기통이라도 뒤져 허기를 면해야겠다는 생 각 중에도 겁을 집어먹은 것은, 차돌이란 놈이 복어알을 먹고 죽어버린 후부터였다. 놈이 눈을 까뒤집고 뒹굴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잠시 잊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신을 죄어와 새로운 악몽이 어머니의 죽음과 어울려 또 여러 날을 시달려야 했다. 가중되는 공포가 때로는 배고픈 고통을 잊게도 했지만 만금에게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문이었다. 때문에 죽음 그것은 그가 일찍부터 짊어진 크나큰 공포 덩어리였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그 죽음이라는 것을 피하거나 싸워서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을 키워갔다.
진작부터 포화상태를 넘어버린 고아원은 원아들을 분산시켜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개는 제주도나 거제도로 보냈다. 만금이도 거제도 팀에 끼어 〈자애원〉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으로 이송되었다. 〈자애원〉은 포구를 품고 있는 마을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눈앞에는 언제나 바다가 넘실대었다. 그곳에는 두 개의 등대가 있었고, 저녁에는 나란히 매어놓은 어선들이 파도가 일 때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출렁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양은 촘촘히 끼여 자는 원생들의 잠자리 같기도 하였다.
휴전이 되면서 만금이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고아원에서는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 중학교에도 보내주었다. 국민학교 과정을 마진 만금이도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머리가 명석했던 그는 학급에서 줄곧 우등을 하어 마침내는 고등학교까지 졸업 하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이미 성인이 돼버린 그는 고아원에 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어, 어쩔 수없이 그곳을 떠나야 했다.
그는 원장이 써준 소개장을 가지고 서울로 갔다. 원장의 친척 하나가 영등포
에서 그릇 만드는 공장을 한다고 하여 우선 침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알선해준 것이다.
공장에서는 알루미늄 제품의 각종 식기를 비롯해서 기타 주방용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장규모는 작지만 수요가 많아서 일손이 달릴 정도로 밤낮없이 바쁜 곳이었다. 환도한 사람들이 차츰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만금이는 기술을 열심히 익혔다. 공원들이 주로 국민학교만 마쳤거나 중학교 중퇴자가 고작이었으므로, 만금이는 그들보다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공원으로만 부리기에는 아깝다 하여 들어간 지 1년여
만에 공장 책임자격으로 대우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리일까지 맡겨버릴 만큼 신임을 하였다.
그는 공장에서 3 년여를 있는 동안에 기술은 물론이고 사업의 경영방법까지
웬만큼 익혔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장을 차릴 만한 자금이 당장 없기 때문에 우선은 그 자금을 마련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주인에게 자신의 포부를 얘기하며 대리점 성격의 점포를 낼 수 있도록 청을 넣었다. 공장주로서는 만금이 같은 인재를 놓치기는 아까왔으나 오랫동안 신임을 해온 터에다 그 포부를 기특하게 여겨 쾌히 승낙하였다.
그리하여 만금은 보잘것은 없지만 영등포 시장내에다 점포를 차리게 되었다. 그는 착실하게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오직 공장주가 되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끼니를 거르며 절약하였다.
쉬지 않고 이어진 얘기에 숨이 찼던지, 박만금은 얼음이 다 녹아버린 술잔을 들어 물 마시듯 벌컥벌컥 술을 넘겼다.
그가 성공담 같은 과거를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예기하는 통에 나까지 긴장을 하며 들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였지만, 어두웠던 지난날들을 되도록 밝게 조명하며 말하려는 그의 태도에 내가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얘기 도중에 때로는 눈가가 발그레해지기도 하였지만 아프고 괴로왔던 날들에 관한 것을 결코 강조하려들지는 않았다. 그는 〈고생한 얘기야 상상할 수 있는 거 아니겠읍니까?〉 식으로 건너뛰는 화법을 자주 쓰곤 하였다.
“지금 가지고 계신 공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
나는 그가 얘기꼬리를 잃지 않도록 한동안의 침묵을 깼다.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만, 제 공장에서 나오는 스텐레스 제품이 이십 프로는 점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정도면 매우 큰 규모로군요. 책임이 무거우시겠읍니다.”
“종업원이 많다보니…….”
“자녀분은 몇이나 두셨읍니까?”
“요즘 세상에 부끄러운 얘깁니다만, 오남매를 두었읍니다. 외롭게 자랐던 터라 그런지 자식에 대한 욕심은 한이 없더군요. 큰놈이 내년에 대학에 갑니다.”
“결혼을 일찍 하셨군요.”
“그것도 외로운 탓이었지요.”
처음 서울에 와 바쁜 공장일에 묻히다보니 만금이로서는 외롭다거나 우울하다는 따위의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 돌아오는 휴일만은 잊고 있었던 그 감상의 날개들이 바람을 일으키곤 하였다. 그를 빼놓고는 공원들 거의가 공장 근처에 집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휘파람을 불며 귀가하는 모습을 볼 때야 비로소 혼자라는 생각이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름때 묻은 헌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낮잠을 자는 일 따위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공장에 들어온 지 2 년쯤 지나서야 서울 지리가 조금씩 눈에 익으면서 전차나 버스 노선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 후부터는 전처럼 공장에만 박혀 있지 않고 종일 거리를 쏘다녔다. 시장이나 백화점 구경도 하고 때로는 공원이나 영화관 출입도 하였다. 그렇다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숙소에 누워 잡지 따위나 뒤적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유익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서울에 와서 두번째 맞는 성탄절, 눈이 몹시 내리는 저녁 거리,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린 찬란한 오색등과 그리고 캐럴, 색색으로 포창한 선물꾸러미를 든 행인들의 물결…….
이 모든 것들이 그를 아주 깊은 고독 속에 몰아넣으면서, 화려한 거리가 갑자기 혼란한 거리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돌연한 현상이긴 하지만 깊은 고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탓이었겠지. 거리를 메운 행인들은 피난민들이었고 취객들의 캐럴은 피난길에 죽은 원혼들의 절규로 들리기도 하였다.
행인들의 얼굴에서 배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독 자기만이 굶주린 자가 되어, 고아원 시절 쓰레기통에서 복어알을 주워먹고 눈을 까뒤집던 놈의 얼굴이 날아와 벌처럼 앵앵거리며 귓가를 맴돌았다. 만금이는 갑자기 고아원 시절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울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며 계속 눈을 맞았다.
그렇구나. 아무 곳이고 가까운 고아원을 찾아가는 거다. 가서, 지난 기억의 조각들을 그들과 함께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안양 어디엔가 고아원 하나가 있다는 얘기를 집이 그 근처인 공원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과자라도 좀 사들고 가야 할 텐데……·주머니마다 손을 찔렀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겨우 사탕 한 봉지 살 돈밖에 나오지 않았다. 맥이 탁 풀렸다. 고향 같은 곳에 가면서 어떻게 사탕 한 봉지만 달랑 사든단 말인가. 진작 이런 생각을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축한 돈이라도 얼마 빼가지고 나올 것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건물 모퉁이에서 카바이트불을 밝히고 있는 쇼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만년필·라이터·헌 시계 등이 진열돼 있는 이동잡화상이었다. 순간, 그에게 아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쇼케이스로 다가가 손톱깍이 한 개를 샀다. 그리곤 서둘러 안양가는 버
스를 탔다.
밤길을 물어가며 그가 고아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탄예배를 끝내고 원아들이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다. 다만 원장과 그의 부인인 듯싶은 중년여인 하나만이 연탄난로를 끼고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밤늦게 나타난 방문객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만금이로부터 사연을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만금이 자신도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과 서울로 오게 된 경위, 그리고 지금의 처지까지를 대충 이해할 만큼만 간추려 들려주었다.
원아들에게 선물을 사줄 돈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손톱깎이 하날 샀습니다.“
만금이는 그들에게 손톱깎이를 내보였다.
“한 개를?”
그들은 의아한 눈으로 만금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개를 선물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 손으로
아이들의 손톱과 발톱을 직접 깎아주고 싶어서 왔읍니다.”
“홀륭한 생각이긴 한데…….”
“허락해주십시오, 원장님.”
“오십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아……·더구나, 다들 잠이 든 시간이고.”
“허락만 해주신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읍니다. 그들과 체온을 나누면서 제 자신을 다시 확인하고 싶습니다.”
“청년의 뜻이 저엉 그렇다면 하는 수 없겠군.”
원아들의 방은 모두 다섯 개였고, 한 방에 대충 십여 명씩 누워 있었다. 방 넷은 사내아이들의 것이었고, 여자아이들은 내실 곁에 붙은 방을 쓴다고 하였다.
원아들은 대부분 국민학교에 다니는 고만고만한 또래였다.
사내아이들의 손과 볼이 모두 얼어 있는 듯했고, 손등이 너무 터서 딱지가 비늘처럼 일어나 있었다. 매트리스를 깐 방바닥은 겨우 냉기만 가신 상태여서 방안의 훈기는 오직 아이들의 체온과 콧김에만 의존할 뿐인 것 같았다.
입내와 고린 발냄새가 가득한 방에 들어섰을 때, 만금이는 마침내 고향에 안긴 듯한 아늑한 기분에 젖어 갑자기 목구멍이 뻣뻣해왔다. 한밤의 침입자가 들어 왔거나 말거나 그들은 지쳐 피곤한 얼굴을 서로 맞대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돌아가며 아이들의 손발톱을 깎아주는 동안 그는 끝내 설움을 삭이지 못하고 그들의 손등에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기 시작하였다. 흙때가 까맣게 낀 그들의 손톱은 바로 어린시절 자신의 손톱이었고, 물에 뜬 건빵처럼 누렇게 떠버린 얼굴은 복어알을 먹고 포만감에 눈알을 뒤룩대던 차돌이의 얼굴을 비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의 방만 도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여자아이들의 방까지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일은 다음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정을 넘어버린 시간이었기 때문에 만금은 그날 밤을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잤다.
이튿날 그는 아이들 틈에 끼여 아침을 얻어먹고는 여자아이들의 손톱도 마저 깎아주었다. 그중에는 나이가 이미 열다섯이나 된 큰 소녀가 하나 있었다. 만금이 앞에 손을 내밀지 않으려고 꽁무니를 뺄 만큼 숙성해버린 소녀였다. 쑥스럽기는 만금이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간청 하다시피 하여 소녀의 손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사내아이들처럼 때가 낀 손은 아니었지만 부엌일을 맡은 손이라 거칠고 붉게 부풀어 있었다.
그날 이후, 만금이는 한 달에 한번은 꼭 고아원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원아들에게는 만금이가 그들의 형이요 오빠였다. 열다섯 살의 그 소녀도 그 후부터는 만금이를 정말 친오빠처럼 늘 반겼다. 소녀는 말수가 적고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부지런하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웃는 일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그냥 앉아서 어둡고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지런하게 구석구석을 다니며 쓸고닦는 일로 늘 분주하였다.
“그 소녀가 성장해서, 지금은 제 아내가 되었읍니다만…….”
그가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와 결혼할 때까지의 과정을 몇마디 더 덧붙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이었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고생도 많이 했어요. 오남매를 키우면서 살림하랴. 점포일 도우랴…… 그렇게 맺은 인연에다 너무 고생을 시켜서 그랬는지, 어떤 경우든 아내를 소홀히 할 수가 없더군요. 워낙 배운 게 없는 여자라 사는 동안
답답할 때도 많았읍니다만, 그래도 화를 내지는 못했읍니다. 늘 불쌍한 생각부
터 앞서더군요.”
“글쎄요……? 부부가 사는데 학식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인텔리 부부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면서 나는 부부가 늘 물과 기름으로 살아온 자신의 가정을 잠시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가 물이든 기름이든 한 가지씩을 뒤집어썼다고 생각하며 각개로 살아왔다. 도예를 하는 아내는 일년 중 여러 개월을 이천에서 보냈다.
간혹 지켜볼 때면 아내는 가마에 붙어, 그저 도자기들을 급고 깨는 일을 반복하며 나날을 보내는 듯싶었다. 아내는 도예 외에 가족의 삶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활비 걱정에 전긍하는 나를 시덥지 않게 생각하며 예술성을 묻어버린 남편의 속물적 다성을 곧잘 힐난하곤 하였다. 때문에, 아내는 자기의 예술 이외에 다른 어느 하나도ㅡ一ㅡ말하자면 가족 같은 것―ㅡ―존중하도록 강요받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가정이란 그녀에겐 그저 자신의 예술적 삶의 한 모퉁이 일 뿐이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그러한 아내를 잘 지켜주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중년이 지나버린 지금에 와선, 아내의 예술보다는 가정이라는 따스한 둥지가 더 소중했다. 그래서 서로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물과 기름의 관념 사이에서 갈등은 벽처럼 굳은 층이 돼버렸다.
“그런데 조 선생님. 요즘,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들이 조상의 무덤에다 치장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박만금이 화제를 틀어, 그로부터 잠시 의식을 떠났던 나를 다시 끌어다앉혔다.
“글세요……·있는 사람들의 단순한 사치가 아닐까요?”
“제 말씀은 사람들이 그토록 사치하겠다는 발상이 어디로부터 나왔겠냐는 거지요.”
“글쎄요……·?”
사실상 나는 그가 질문하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자신들의 근거를 확실히 해둠으로써, 현재 자기 삶의 당위성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중에도 그 근거라는 것이 보잘것 없다든가 불확실할수록. 뭐라 할까,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그렇다면 박 선생님께서 흉상을 만들겠다는 의도. 역시……·? ”
“그런 셈이조. 사실이지, 지금 제 삶이라는 것이 마치 빈상자를 싼 예쁜 포장지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요. 요즘, 저마다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가자, 언젠가는 제 자식놈들이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느냐고 묻지 않겠읍니까? 그 어떤 분이라는 말을 남들처럼 훌륭한 일을 한 적이 있느냐는 뜻으로 받았읍니다. 그때, 저는 얼떨결에 한 대답이 〈항일투사〉였읍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도 잘 모르겠거든요. 저는 애들을 아주 엄하게 키우는 편입니다. 아울러 제 입에서 나온 말은 항상 절대적이지요. 때문에, 얼떨결에 뱉어버린 〈항일투사〉는 끝까지 사실이어야 했읍니다. 애들한테 단 한번도 식언이나 실언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항일투사〉를 틀림없이 믿고 있다는 겁니다. 만일, 지금 와서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저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는 형편없이 곤두박질할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단순히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낯선 영감의 흉상까지 만들어야 한단 말씀입니다?”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큰 이유는, 조작해서라도 제 삶의 근거를 하나쯤 박아두고 싶어서지요. 마치 서낭신을 믿는 촌로의 신앙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박 선생님의 그 교조주의가 결국 허상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나 흉상을 앉혀놓고 꾸며진 각본을 반복해서 세뇌시키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그 각본이 실상화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리석지만요.”
“그렇다면 굳이 그 사진을 참고할 필요가 없겠군요. 어차피 가공의 인물인데…….”
“실은 그렇습니다. 아이들한테 그 사진을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에, 조 선생님의 의도대로 제작해도 괜찮습니다. 말을 내놓고 보니, 그 편이 훨씬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지요?”
차가 창경원 담을 끼고 동굴 같은 어둑한 길을 달릴 때, 박만금이 조작해낸
어떤 음모 속으로 말려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대로, 나는 틀림없이 그의 조작극에 동참하고 만 셈이었다. 그것이 어디까지나 무슨 흉계의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가담〉한다는 의구심까지 가질 필요는 없겠으나, 뜨악한 기분을 금방 떨어낼 수 없음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결국 술 한 명을 다 비운 후에야 비로소. 자리를 털고 길로 나섰다. 더위가 낮보다는 다소 수그러진 듯하였으나 끈적한 지열이 완전히 식어버리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그의 차에 편승했다가 종로에서 먼저 내렸다. 그는 굳이 나를 집에까지 태워다주겠다고 권했지만 다른 곳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사양하였다. 그의 신세를 지면서까지 편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거니와 술 몇잔 들어가면 생기는 버릇이 다시 고개를 쳐들어, 일은 없어도 거리를 배회하거나 아는 술집을 다시 찾아들고 싶은 생각 때문에 그를 먼저 보내버린 것이다. 나는 성년이 되고 난 얼마 후부터 낮에는 거의 집이거나 다른 어디에서거나 마치 죽은 사람처럼 꼼짝않고 틀어박혀 있다가, 일몰 후에야 비로소 숨쉬는 사람이 되어 거리를 쏘다니곤 하던 야행성 습벽을 나이 오십이 다 된 지금까지 즐기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좋아했다. 낮 동안의 이러한 칩거 버릇은 아마도 어린시절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귀신의 휘파람 같은, 솔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늘 등골을 써늘하게 하는 솔밭 너머, 거북등처럼 납작한 초옥에 살고 있었다. 마을이래야 퇴락한 가옥 이십 여 채가 마치 쇠똥을 긁어모은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틀어앉은 빈농들이었는데, 모두 차씨 성을 가진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유독 우리집만이 조씨 성을 가지고 그들로부터 외떨어져 아무 농사일도 없이 아버지의 백정 일로만 연명했다. 식구마다 보퉁이 한 개씩을 둘러메고 이 마을에 들어와 사정 모르게 텅 비어있는 초옥 한 채를 차지했을 때, 실은 흉가라하여 마을사람들이 불을 질러버리기 직전의 폐가였었다. 음험한 아버지야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숭을 떠는 바람에 어머니와 나만 깜깜하게 속고 있었다. 늦게나마 흉가임을 알게된 것도 사람들이 우리 식구 대하기를 마치 문둥이 보듯 하는 눈치를 챘을 때야 비로소 까닭을 캐면서였다. 나는 그때 오싹 머릿발이 서면서 칵 죽어버리고 싶었다.
우리가 흉가에 사는 이유 말고도 또 한가지 우리를 흉수처럼 대하는 것은 아버지의 행실 때문이었다. 그런 흉가에서, 백정일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인데 한술 더 떠서 노름과 술주정에다 싸움질까지 일삼아 마을을 온통 구정물로 만든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하루를 견더내기 어려울 만큼 내 어린 삶은 지겹고 죽고 싶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이모저모를 모두 증오했고 부자간의 인연을 원망했다. 차라리 내 손으로 집에 불을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터전을 잃어 또 어디로 가든 일단은 마을을 며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실행하지 못혔다. 그저 방구석에 맥없이 쪼그리고 앉아 아버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못된 심성은 마치 새순이 돋듯이 끊어질 줄을 몰랐고, 통뼈에서 솟는 뚝심은 백년을 더 살고도 남아; 죽기는 애시당초 틀린 노릇이라는 판단이 서기 시작할 때부터 오히려 죽어가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내 몸 어느 구석에서 흐르고 있을지도 모를 백정의 피를 동맥을 끊어서라도 뽑아내고 싶을 만큼 나는 점점 죽음과 가까운 쪽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흉가에 산다고 해서 둔감귀신, 백정의 아들이라
고 해서 새끼백정이라고 아이들이 놀려대는 바람에 밖을 나다닐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리다 지쳐 내 자신의 죽어가는 세월을 씹는 동안, 아버지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서서히 갖게 되었다. 백정의 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부랑아로 떠도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그러나 종내는 그러한 생각도 물거품이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숙맥 같이 아버지한테 얻어맞기만 하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나 혼자만 몸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만금의 차가 낯선 차들에 섞여 모습을 감출 떼까지 지켜보다가 나도 이내
거리의 행렬속에 묻혀버렸다.
열시 반이 넘었는데도 나는 집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조각조각 부유하는 생각들을 아주 단호하게 발 밑으로 하나씩 끌어내려 밟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별도 없고 달도 없었다. 도시의 밤하늘은 언제나 구름 낀 듯한 잿빛 얼굴로 굽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있지도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그래도 그것이 하늘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 얼굴을 돌려받고 발길을 카페 〈아리아〉로 꺾었다. 자주 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지하로 내려가는 낡고 콜타르 같은 떼가 낀 흑청색 카핏이 낯설지 않다는 것 말고도, 마담 한 재화의 얼굴이 나에게 거리를 두면서도 가끔은 타액같이 끈끈한 눈길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눈길에 나는 우월한 감정이나 소유에의 점근을 시도해볼 생각에 스스로 제동을 걸어왔었다.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정숙한 자태 말고도, 매우 속상한 일이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나눠줄 수 있는 직업상의 색깔일지도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리아〉를 자주 찾았다. 그것은 순전히 내 발길 때문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손님은 없었고, 그녀 혼자서 탁자를 돌며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늦으셨네요.”
그녀가 벽에 붙은 시계를 올려다보며 다가왔다.
“문 닫을 시간인가요?”
나는 바에 새워둔 의자에 몸을 붙였다.
“보통 때보다 조금 늦으셨다는 뜻예요.”
그녀는 얼굴에 안개꽃 같은 웃음을 실었다. 이미 사십을 넘긴 나이인데도 무용을 전공했던 여자답게 그녀의 외모는 늘 30 대로 보일 만큼 나꾸러기였다.
“오늘, 누구 안 왔었소?”
“참, 송 선생님이랑 오 여사가 오셨더랬어요.”
“그치는 어째서 만날 남의 여펀네를 끼고 다닌다지?”
“어머, 질투하시는 것 같애요? 오후에 조 선생님 작업실에 가셨었다는데요?”
한재화가 말하는 오 여사란 송남혁과 학교 동기인 오지애를 이른다˛ 내과의를 남편으로 둔 그녀는 낮엔 집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다가 해 떨어지면 모기처럼 밤을 날아다니는 여자였다.
“그 사람들, 오래 있다가 갔읍니까?”
“아네요, 맥주 세 병 드시고 가셨어요. 작업실에서 일찍 나오셨던가봐요?”
”손님이 와서…….”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을 집어들었다.
“뭐, 마실 것 좀 드릴까요?”
그녀가 내 앞에 재떨이를 갖다놓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그녀 입으로부터 향긋한 냄내가 꽃향기처럼 날아왔다.
“술을 많이 마셨는데……·진토닉이나 한잔 할까요?”
“그럼, 오늘은 그만 드시고 주스나 드세요.”
그녀는 술병의 마개를 도로 닫으며 대신 냉장고에서 주스병을 꺼내었다.
“어린애처럼 주스는 무슨…….”
“술을 많이 드셨다면서요?”
“……·”
나는 대담 대신 꽃잎 같은 그녀의 붉은 입술로 눈길을 옮기며, 그곳에, 아주
오랜 시간 내 입술을 덮었으면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꼈다. 취기 때문에 솟아오른 단순한 치희인지, 아니면 그녀에 대한 잠재적 욕정인지의 비중을 얼른 가늠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 여사도 한잔 마시지 그래요?”
나는 잔을 들어 솔잎과 레몬향내를 맡으며 그녀에게 턱을 들어보였다.
“전 주스 마시겠어요. 이손님, 저손님이 권해 마신 술이 너무 과한 것 같애
요.”
그러면서 그녀는 머리가 아픈 듯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한동안 누르고 있었다.
“내가 권하는 술만 마다하는구료.”
“조 선생님 하시는 일이 잘 안 풀리세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짓궂은 웃음을 얼굴에 담았다.
“일이 안 풀리다니요?”
“아까부터, 어린애처럼 투정만 하시니 말예요.”
“사실이 그렇지 않소? 누구 술은 받아 마시고, 내 술은 싫다 하지 않았소? 그렇게 차별을 하니, 기분 언짢은 거야 당연하지. 정히 그러면 앞으론 〈아리아〉에 발을 끊어야 할 것 같소.”
“협박치고는 제일로 무서운 협박을 하시는군요. 술이거나 주스거나 조 선생님이 사주시기는 마찬가진데, 굳이 술이어야 할 이유는 뭐예요? 남자분들은 모두가 그래요.”
“왜 그러는지 모릅니까? ”
“정말 모르겠어요. ”
그녀도 결국 칵테일을 만들어 입에다 한 모금 넣었다. 즐거운 맛이 아닌 듯 어깨를 오그리며 미간에 주름을 세웠다.
“마음을 흐트러놓기 위해서지 뭐겠소.”
“이미 불혹을 넘긴 나인 줄 모르셨나요?”
“술에는 성인이 없다지 않소? ”
“그럼, 조 선생님도 제 마음이 흐트러지길 바라셨어요?”
“그런 지도…….”
“사모님께서 또 이천에 가 계시군요. 그렇죠?”
“농담이 아닌데…….”
내 말에 가슴이 물결치면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농담이었다고 하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나로부터 몸을 돌리더니, 싱크대로 가 컵이랑 접시를 소리내어 닦았다. 틀어올린 머리 밑으로 가늘고 긴 목이 작고 동그란 어께 위에서 눈이 부시게 빛났다.
나의 심장이 더욱 진동하면서 서서히 온몸을 긴장의 보자기로 싸버렸다.
“그만 댁에 들어가세요.”
그녀가 얼굴도 돌리지 않은 채 수도물 쏟아지는 소리에 묻힌 작은 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화를 내고 있읍니까? ”
“……”
“화내지 마시오.”
“어서 돌아가세요.”
그녀는 계속 물일을 하며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지요.”
나는 술값을 내놓고 의자에서 엉덩일 떼었다.
“가겠소.”
서운하고 무안한 감정을 내려받은 무거운 발을 옮겨 문께로 향했다.
“잠깐요."
갑자기 그녀가 나를 돌려세웠다. 그녀는 술병들이 진열돼 있는 벽을 향한 채
였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세요. 갑자기, 혼자 산다는 서러움 같은 것이 또 머리를 쳐들었나봐요.”
애소하는 듯한 그녀의 가는 목소리가 셸로판지를 탄 것처럼 떨고 있었다.
“미안하게 됐소. 그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일 쥴은……·그러나 꼭 농담만은 아니었소.”
“아녜오, 농담이어야 해요. 이제 와서, 제 마음에 흠집 같은 것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선생님 이해해주셔야 해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어깨에 가는 경련을 실었다. 순간, 나는 격정이 온몸에서 분출하고 있었지만 바 저쪽에 서 있는 그녀에게 표현하지는 못했다.
“나를 너무 무안하게 만드는군요.”
“죄송해요, 선생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 누구보다도. 선생님만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비로소 그녀가 몸을 돌려 물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은
그녀를 향한 나의 감정을 오히려 배가시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녀로부터 등을 돌렸다.
“나, 가겠소.”
“오늘 말씀은 안 들었던 걸루 하겠어요.”
그녀가 문고리를 참는 내 뒤통수에다 다시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다짐을 보냈다.
머물러서 좀더 의미 담은 말로 그녀를 능칠 생각도 있었으나, 실은 그러는 내 자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자정이 가까와진 거리는 낮 동안 더위에 시달려 숨을 할딱거리는 늙은 가로등 빛으로 어둡기 짝이 없었다. 그 어둠속에서 눈을 까집고 호객하눅 택시를 얻어 타려는 사람들로 종로통은 무질서했다. 이때쯤이면 언제나 돈내고 다행스러워야 하는 시간이 돼버린다.
“늦었구먼.”
장모가 대문을 열어주며 몸을 비켜섰다.
“별일 없었지요?”
“어멈이 왔네.”
장모의 전갈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왔다.
“왔으면 자기가 문을 열 것이지…….”
“잠자리에 든 것 같애.”
“들어가 주무세요. 여기서 땀 좀 식히고 들어가겠읍니다.”
나는 마당에 놓아둔 평상에 앉아 담배를 꺼내물었다.
“저녁은?”
“먹었읍니다.”
장모가 집 안으로 들어갔음을 확인하고 나는 평상에 벌렁 누웠다. 비로소 하늘에 별이 있었다. 실바람 한가닥이 간지럽게 러닝샤쓰 위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아내가 왔다는데 여째서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일까. 도시의 밤엔 하늘이 없듯이 나의 집엔 언제나 내가 부재중이었다. 분명히 내 집인데도 그 안에 나는 있지 않았다. 있는 시간이란 늘 서성거리는 시간뿐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아리아〉의 한재화를 생각했다. 그녀가 나에게 던진 몇마디들이 나로 하여금 갑자기 갈 곳을 잃게 하였다. 그녀로부터 받아든 낭패감이 가슴을 박박 할퀴기 시작하였다.
“들어오지 않고 뭘 하세요?”
갑자기 창문이 열리면서 어쩐지 귀설고 짜증스러운 아내의 목소리가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더위 좀 식히고 있소.”
나는 아내에게 눈길조차 보내지 않고 건조하계 말만 띄웠다.
“또 술 드셨군요?”
“조금 마셨소.”
“당신은 마치 타락의 늪에 폭 빠진 사람 같애요.”
“그런지도 모르지.”
아내의 말대로 폭 빠지진 못했지만, 분명 다리 하나를 넣고 있는 기분만은 사실이었다. 아내가 말하는 〈타락〉이란 작품에 대한 녹슨 열정과 근간에 와서 하루도 빠짐이 없는 음주를 뭉뚱그려 하는 말일 것이다.
“내가 왔는데도 반갑지 않으세요?”
아내는 갑자기 여자티를 내려고 하였다. 순간, 내 볼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올 때가 안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고 있는 중이오.”
“몸이 아파서 올라왔어요.”
아내는 자작 슬픔을 짜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안 이상, 나는 그녀에게 가담할 수는 없었다. 나는 반응을 보이는 대신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자 “어쩌면 저리도 인정머리가 없을까. 사람이 아프다는데…….” 하며 그녀는 창문을 소리내어 닫았다. 정적을 깬 그 소리가 다시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실바람 한줄기가 또 한차례 목 언저리를 핥고 흩어졌다.
밤이 깊어갈수록 별빛이 더욱 영롱하게 빛났다. 곧 잠이 올 것 같은 나른한 기분이 눈꺼풀을 쓸어내렸다.
아무 참견 없이 그대로 잠들고 싶은 욕망이 나를 평상에 서서히 묶기 시작하였다.
나는 박만금이 요구한 〈항일운동을 한 용모답게〉 그럴 듯한 흉상을 제작하기 위하여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였다. 소조(塑造)를 위해 점성이 좋은 점토(粘土)를 구해놓고 제작대를 만들어, 각목·철사·노끈 등을 엮어 골격을 세웠다. 그것은 꼭 옷이 모두 찢 겨나간 허수아비 모양을 해가지고 어서 살이 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격의 요구대로 이제 반죽한 점토를 부착하면서 곧 성형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이미 모델이 결정됐어야 했을 것을 나는 아직도 막연한 이미지 속에서 허위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이미지란 것이 고작 아동들의 찰흙공작과 같은 구상이어서 실제로는 모델이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독립운동을 한 용모다운 성형의 시작부터가 막연한 구상이 되는 것이지만, 나는 독립운동을 한 그럴듯한 용모를 주문한, 박 만금의 머릿속에 며 있는 그 모델을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만금은 시종 〈독립운동을 한 그럴 듯한 풍모.〉일 뿐이었지, 그 이상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헤아려내기 또한 막연한 일이었다. 박만금은 〈그럴 듯한 풍모〉를 주문하면서, 어쩌면 학생시절에 역사책에서 본 33인중 몇몇의 사진을 막연하게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염치라는 것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감히 들먹거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놓아두고 창틀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뜨거운 도시를 식히다 지친 바람의 한자락이 분풀이하듯 얼굴에 열기를 날리고 사라졌다. 나는 한참동안 숨을 가두었다가 길게 내뿜었다.
석양을 비스듬히 받고 있는 건물마다 벽에 생긴 명암들은 마치 낮 동안 홀러내리던 물엿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것 같았고, 내내 빼물었던 혀를 비로소 거둬들인 자동차들이 목쉰 소리를 내며 건물의 숲속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박만금의 어머니가 마을사람들에게 욕설과 함께 삿대질을 당했다는 얘기와 아버지처럼 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아들에게 당부했다던 얘기를 나는 자주 종합을 해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마을사람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욕설과 삿대질을 했을까. 남편에게서 얼마나 많은 기대감을 잃었으면 어린 아들에게 그 같은 당부를 했을까. 어쨌든 마을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했거나, 누군가에게 원한 살 만한 짓을 했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어머니가 그 같은 수모를 당했을 리가 없다. 그것이 해방이 되자마자 벌어진 일이라고 했으니, 혹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조선사람들을 괴롭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좁혀졌다. 박만금도 이 같은 정도의 추리쯤이야 이미 했겠지만 그는 한번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아마, 아버지의 그러했을 행적을 스스로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흉가에 살면서 아버지의 망나니짓 때문에 우리 식구가 낮 동안 거의 출입을 못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편으론 박만금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혹시 아버지의 그 일그러진 영혼이 박만금의 아버지와 이미 닿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에 이르기도 하였다.
나는 6·25사변을 흉가에서 만났다. 전쟁이 터지고 거의 달포가 지나서야 내무서원들이 마을에 나타났다.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그들은 눈을 까고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면서, 15 세 이상 50줄까지의 남자들을 모조리 공터에 끌어냈다. 말할 것도 없이 젊은이들은 인민군으로 징용되었고 나머지는 부역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유독 아버지만이 그들로부터 제외된 점이었다. 다른 집 남자들은 방 천정이나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었지만, 아버지는 태연하게 툇마루 기둥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입을 씰룩거리며 콧속의 털이나 뽑고 있었다. 그저 어머니만이 애가 타서 아버지를 마루 밑에 밀어넣으려고 발을 동동거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무슨 뱃심이었는지 연신 코만 후벼대면서 기둥에 대고 발싸심만 하고 있었다.
“당신도 싸게 몸을 숨기라니께 그러는구먼?”
“난 숨을 필요가 없게 되얏다.”
“건 또 뭔 소리다요?”
어머니는 울상이 되어 마구 가슴만 두드려댔다.
“이제야말로 이 조기팔의 시상이 왔다 이거여.”
아버지는 계속 누구도 이해 못할 소리로 식구만 궁금하게 만들었다.
“시방, 당신 시상이 왔다고 혔소?”
“아암. "
“으째 그렇소?”
“두고 보면 알팅께, 입 봉혀.”
내무서원들이 마을을 다 뒤지고 얼마 후, 그중 하나가 흑표지의 장부를 겨드랑에 끼고 우리 집에 들어서더니 이내 아버지 옆에 붙어앉는 것이었다. 그리곤
이미 통성명한 사이였던 것처럼 둘이서 못 알아들을 소리를 주고받았다. 주로 아버지가 설명하는 쪽이었고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혹은 끄덕이기도 하면서 눈알을 바쁘게 굴렸다.
내무서원이 돌아간 뒤에는 겁에 질린 어머니는 부엌에 숨겼던 몸을 한동안 내지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태연하게 담배를 말아 종이에 침을 바르며 입가에 야릇한 웃음만 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아버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보다도 구박덩이 어머니가 아버지를 숨겨주기 위해 애를 태우던 행동을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마음 저구석에서 어머니에 대한 울분과 배신감을 끄집어냈었다. 적어도 어머니만은 나와 한편이 되어, 내내 아버지를 증오하거나 죽기를 바랐던 나처럼 불쌍한 처지로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라는 실체가 갑자기 내 앞에서 무너지는 느낌에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떨었다. 누가 나에게 몇번을 감해서 대답해달라고 해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지독스럽게 비참한 구박덩어리였다고 이를 악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에 대한 실망과 아버지에 대한 누적된 증오심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곤 마치 병정처럼 아버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부지는 왜 안 잡아가요?”
나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애비는 여느 사람과는 다릉께 그렇지야.”
아버지는 처음 보는 어깻짓을 보이며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확실히 내가 묻는 의중을 오해한 표정이었다. 마치 나도 어머니처럼 당신을 걱정해서 묻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아부지가 뭔디 안 잡아가요? 동니서 못된 짓거리만 해쌓는디.”
나는 내 솔직한 의중을 근접해서 표현한다면서 〈못된 짓거리〉에 힘을 넣었다.
“뭣이여? 못된 짓거리이? 이자석 아. 너는 아비가 인민군헌티 끌려갔으면 싶냐아? 이 싸갈머리없는 새끼, 말 뱉는 것 좀 보소.”
아버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어 내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폭력에 수없이 시달려온 나는 잽싸게 몸을 비껴 문 밖으로 달아났다. 그리곤 흙담 모퉁이에 숨어서 다음 어머니에게 날아갈 아버지의 행패를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야아, 이년아, 으째 조런 못된 자석은 나아갖꼬 이 조기팔의 복쟁이를 긁게
허냐? 조런 싸갈머리없는 새낀 줄도 모르고 난 니헌티 애썼다고 멱을 사다주지 안혔냐. 이년, 당장 나가서 잡어와라. 그라 안허면 니 주리를 틀띵께.”
나는 아버지가 입에 거품을 품고 있는 모습을 그리며 언덕 아래로 내달렸다.
상황을 봐서 일단 내빼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어머니의 머리채가 아버지의 그 우악스런 손아귀에 쥐어질 것이 뻔하였지만, 불쌍한 어머니를 생각하기엔 내 볼따귀에 올려질 아버지의 주먹은 너무 아팠다.
결국, 아버지는 내무서원의 앞잡이가 되어 누구 집에는 어떤 남자가 있고, 누구 집에는 둘째아들이 경찰이고, 이장집 아들은 국방군이고 등등을 일일이 일러바친 또 한번의 정말 〈못된 짓거리〉를 하였다.
아버지의 그러한 행적을 알고 난 후에 어머니는 〈남세스러워 더는 낯 들고 못 살것다.〉 하면서 〈내 한 몸 죽어불면 그만인디.〉 소리를 되씹으며 울기만 했다.
“엄니가 왜 죽소? 정작 죽을 사람은 아부진디.”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니 아부진 즘생보다 못헌 인간여. 증말 사람도 아녀. 허기사, 자기 아부질 나장(裸葬)시킨 위인잉께 더 말해 뭣 허겠냐. 더구나 외아들이…….”
어머니는 내 얼굴을 가슴에 안고 소리내어 울었다.
“나장이 뭔디? ”
“니 조부를 관두 안 맹글고 육신만 묻었단 말여. 천벌을 받을껴.”
“엄니! 우리, 아부지 몰래 도망가요.”
나는 어머니의 품에서 얼굴을 빼들고 눈을 꼿꼿이 세워 말했다.
“아부지 몰래 도망가야?”
“싫으요?”
“그랴도 그렇지, 도망이야 가겄냐아?”
“엄니는 참말 멍텅구리요. 아부지헌티 그렇게 구박받고도 무섭지 않다요?”
“나도 느이 아부지가 몸서리치도록 지겹다.”
“근디?”
“그랴도, 아부진 디…….”
“참말, 우리 엄닌 딱하요.”
나는 하늘에 시선을 올리고 크게 한숨을 내뿜는 어머니를 떼밀 듯 품을 빠져나와 〈엄닌, 참말 딱하요.〉 소리를 수없이 뱉으며 언덕을 내달렸다.
우리는 그렇게 한 달 며칠을 아버지의 그 〈못된 짓거리〉를 구경하며 살아야 했다. 그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내가 너무 어렸는지, 아니면 영특한 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모험심 같은 것이 없어서 그랬는지, 지금도 판단할 수가 없다.
개똥모자를 눌러쓴 아버지는 어디서 얻었는지, 낡은 가죽장화를 신고는 고리
눈을 씰룩대며 온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단단히 미친짓을 하고
다녔음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동네 아이들은 전처럼 나를 둔갑귀신이니, 새끼백정이니 하고 놀려대진 못했
다. 아버지를 피하듯, 나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몸을 숨기곤 하였다. 나는 그들로부터 받은 모멸에 너무 분하고 속상한 나머지, 그중에 한 녀석이라도 잡히기만 하면 개 패듯 때려줄 결심까지 하였다. 아마 아버지의 흉포한 성질의 끝자락이 내 몸속 어디엔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군의 반격으로 내무서원들이 퇴각하기 전날 밤, 아버지가 숨을 헐떡이며 장화를 신은 채 들어와, 자는 어머니를 깨웠다. 그때 나는 소피를 보고 요강 뚜껑을 막 닫은 직후여서 어둠속에서도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잠이 든 척하면서 귀를 열어놓고 있었다.
“이봐, 나 한동안 못 들어올팅께, 그리 알어.”
“워딜 가는디요?”
“그런 건 알 필요 없어. 다시 해방시키러 바루 올팅께, 그렇게 알구 기대려.”
“쪼깬 자세허게 말해보쇼. 한동안은 뭣이고, 해방은 뭔 말이다요?”
“무식한 것헌티 말해봤자 못 알아들을팅께, 그렇게만 알구 있어.”
그리곤 황망히 나가버렸다. 그것이 나와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그 이튿날부터 우리는 마을사람들한테 시달림을 받기 시작하였고, 어머니는 치안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아버지가 있는 곳을 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증오는 화석처럼 굳어졌다. 그 〈못된 짓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나를 못 견디게 하였다. 나에 대해서 신원조회를 할 떼마다 연좌제가 붙어다니며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처럼 월급장이 노릇을 한번도 해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내에게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내가 직장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위인인 것처럼 인식시키려고 짐짓 허세를 부리곤 했었다.
나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혹시, 어딘가에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서가 아니라, 지금껏 식지 않은 아버지의 못된 망령을 쫓아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생존해 계실지 누가 아느냐는 식으로 위장한 채로 얼버무리며 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묻어두고 있는 중이었다. 식구들이 알고 있는 나의 아버지는 어디까지나 납북인사였기 때문에, 어쨌든 그들은 나의 위장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난번, 방송국에서 펼친 〈이산가족 찾기〉 때,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혹시, 아버지가 광고를 가슴에 대고 망가진 얼굴로 화면에 나타날까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한 나에 게 아이들은 “혹시 탈출했을지도 모르잖아요?” 하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조시현을 찾음〉에 잔뜩 기대를 하였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임마, 납북된 분이 어떻게 남한에 계시겠니?” 하면서 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화를 내곤 하였다.
박만금이와 나의 처지에는 〈항일투사〉와 〈납북인사〉라는 위장의 공통점과, 아버지의 〈못된 짓〉을 그는 체험하지 못했고 나는 지겹도록 체험한 그런 차이가 있다. 그가 〈항일운동을 하신 분의 풍모답게〉를 주문해오기까지, 우리는 사실 한 하늘 밑에서 공통점을 가친 채 서로 다른 숨을 쉬면서 살아온 셈이다. 그 다른 숨이란, 엄연한 사실에 대한 그의 영특한 각색과 나의 숙명적인 수용의 삶일 것이다. 그는 세월의 약점과 망각에 현명하게 편승해왔고, 나는 망각의 버스에 오르지 못한 채, 늘 자폐속에서 증오와 원망만을 되씹고 있었을 뿐이었다.
저녁 9시 반이 되면 나는 화실의 학생들을 내보냈다. 좀더 남아 있고 싶어하는 학생이 더러 있기는 해도 한두 학생을 위해서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애초에 다짐을 박아두었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버티는 학생은 없었다. 하루종일 선풍기 앞에 서서 남방샤쓰에 바람 넣기도 지칠 시간이라 으례 파김치가 되곤 하였다. 게다가 토요일엔 조수마저 나오질 않아 더 힘든 하루였다.
열쇠를 집어들고 막 소등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소리조차 짜증스러웠다. 받을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마치 내 의중을 알기나 한 것처럼 전화기는 계속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빈 작업실을 흔들어놓았다.
“네에, 누구십니까?”
나는 수화기를 들고 아주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보냈다.
“아직 있었군그래.”
송남혁의 목소리였다.
“어쩐 일야?”
“끝났지?”
“문 잠그려던 참야. ”
“〈아리아〉에 와 있어. 잠깐 들르게.”
“〈아리아〉에?”
나는 〈아리아〉라는 말에, 한 재화의 얼굴과 함께 지난 일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선뜻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빨리 오게, 기다릴 테니.”
“혼자야?"
"오지애씨도 있고, 또 한 마담도 오매불망이라네.”
한재화를 내세우는 그의 농에 나는 더욱 마음이 켕겼다. 마치 지난 일이 공개돼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만나세. 오늘은 좀…….”
꼭 그렇게 할 결심은 아니었으나 반반으로 피하고 싶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마음속에선 ‘집에 일찍 들어갈 일이 있어서’였으나 뱉은 말은 그렇질 못했다.
나의 약한 심지 탓이었다.
“잔말 말고 나와.”
그는 내 말을 더 들어볼 생각도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한재화 앞에서 서먹서먹해 할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참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도 송남혁과 오지애는 무슨 내용인지 양주병을 사이에 두고 얘기에 열중하느라고; 나한테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한재화만이 “어서오세요.” 하고 지난 일을 까맣게 잊은 낯으로 맞이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러한 얼굴이 서운하고 야속했지만, 그저 눈길만 한번 주고는 그들이 있는 자리로 성큼 다가갔다. 그제서야 그들이 비로소 아는 체를 하였다.
“시작한 지 오래된 모양이군.”
나는 술병을 들어 등불에 비추면서 마신 양을 재보았다. 이미 반병이나 비우
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
“오랜만예요.”
오지애가 비켜 앉으며 자리를 내주었다.
“유부남 유부녀가 이런 시간까지 함께 있어도 되는 건가?”
나는 송남혁의 술을 받으며 오지애한테 얼굴을 밀었다. 그것은 애써 한재화
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자네의 그 질투하는 모습 좀 보려고 불렀네.”
“질투는 무슨……·연애를 하려면 남의 눈에 안 띄게 해야지, 이렇게 공개하면 무슨 재민가?”
말을 던져놓고 생각하니 마치 한 재화가 듣도록 일부러 한 소리처럼 생각되어 스스로 놀랄 만큼 후회가 되었다.
“그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송남혁이 화제를 바꿨기 때문에 나도 한재화에 대한 감정을 얼른 발밑으로
내려버렸다.
“무슨 작업?”
“박만금이 것 말야.”
“아직…….”
“요즘 만났어?”
“아니.”
“우연한 자리에서 산업 관계 홍보잡지를 보게 됐는데, 그 친구에 대한 소개가 나왔더군.”
“어떻게?”
“무슨 산업훈장을 받았더군. 그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인터뷰 기사도 실었는데, 사기 아버지가 만주벌판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했더군.”
“그래?”
순간, 나는 방금 목에 넘긴 술이 되넘어올 것 같은 기분에 숨을 잠시 멈추었다.
“사실이 그러니까 강조했겠지.”
나는 그에 대한 화제를 얼른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곧 나의 〈납북인사〉에 대한 화제로 둔감할 것 같아,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박만금 그는 뻔뻔스러운 사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마음에나 품고 있을 일을 그런 식으로 공표를 하고 다니다니…… 그의 말대로,
각본이 정말 실상화 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 과연, 자기 아버지의 행적을 끝까지 위장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찜찜한 세월을 다스릴 수 있을까? 하기는 내가 끝까지 〈납북인사〉를 까놓지 않는 한, 그도 그럴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술이나 들지 않구서.”
그들 앞에서 내 표정이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으응, 박만금 그 사람을 잠시 생각했네.”
“뭔데?”
“항일투사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러나 내 말, 〈항일투사〉는 끝까지 나의 〈납북인사〉를 동승시켜 데리고 다녔다. 물귀신같이 .
“자아, 독립투사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여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자리야. 술이나 들어. 그렇게 부러워할 것 없어. 조 선생도 납북인사의 자제분이 아닌가.”
“뭐라구? 나를 놀리자구 하는 소린가?”
나는 송남혁의 말이 어쩐지 내용을 알고 비양대는 소리로 들려, 너무 놀란 나'머지 화를 내는 목소리를 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나? 납북인사라면, 춘원을 비롯해서 정인보 선생 등이 있지 않은가. 그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훌륭한 사람들이 납북됐을 거야.”
송남혁이 당황한 낯빛으로 아버지를 훌륭한 인사로 서둘러 승격시켰다.
“그만두게, 그 얘긴.”
나는 그에게 술잔을 넘겨 얼른 말문을 막았다.
"술이나 마셔.”
귿대, 한재화가 야채가 담긴 접시를 들고 다가와 내 앞 의자에 앉았다.
“저도 반잔 주세요."
그리곤 나에게 홀깃 눈길을 보냈다. 송남혁이 “그래, 술이나 마시자구.” 하
며 술잔을 급히 비우곤 잔을 한재화에게 넘겼다.
“조 선생님, 요즘 바쁘셨나봐요? 다녀가신 지 한참 됐어요.”
한재화가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담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네, 좀…….”
나는 어떻게 대꾸할지를 몰라 몹시 당황한 마음으로 담배를 꺼내물었다. 나는 서둘러 볼을 붙이면서, 그녀가 참으로 낯 두꺼운 여자라고 생각하였다. 남자인 내가 쑥스러운 상태에서 쩔쩔매고 있는데, 하물며 여자가……· 역시, 술장사를 하다보면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마련한 가면이 따로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미소나 자태 모두가 갑자기 천하게 생 각되는 것이었다. 더는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곤 다시는 〈아리아〉에 오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서둘러 해버렸다.
“그만 가지. 나는 더 못 마시겠어. 실은 하루종일 속이 좋지 않았어.”
“조금만 더 앉아 있어.”
송남혁이 다시 술잔을 보냈다.
“아냐, 정말 못 마시겠어. 나 먼저 실례할 테니까, 천천히들 마시라구.”
“꼭 일어나야 하겠어?”
“미안해.”
“할수없군. 내일은 집에 있겠나?”
“작업실에 나와 볼 생각인데, 잘 모르겠어.”
“스케치하러 갈 생각인데……·? ”
“난 안되겠어.”
나는 그들의 만류가 반복되기 전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여사, 미안합니다.”
나는 벌써 문을 반쯤 밀고 몸을 빼었다. 그러나 한재화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나에게 아무런 인사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도망치듯 그
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곤 되도록 빨리 〈아리아〉를 빠져나왔다.
하긴, 깊이 생각해보면 한재화에게 보인 내 감정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아까운 세월을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 장사에만 마음을 ˙매고 있는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 소년같이 투정을 부리다니. 지난번에 지껄였던 대로, 그녀의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인가. 나는 그녀를 진실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지 않은가. 내가 언제 한번 그녀와 진실한 사랑의 환상에라도 젖어본 적이 있는가. 그녀를 보는 내 마음속은 늘 육욕·정복·유희 등이 뒤섞인 상상만으로 질퍽해 있었다. 그저 눈 가까운 곳에 있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정복하고 싶은 외설스러운 속성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사모님께서 또 이천에 가 계시군요.’ 하는 그녀 말처럼, 아내에 대한 불만의 보상작용이 배면에 깔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그녀의 눈에는 던적스러운 치희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내 꼴을 수습하지 못한 낭패감에 젖어 있음이 분명한 것을…….
패잔병들이 꽂아놓은 십자가 같은 흉상의 골격을 마주하고 앉아서 하루종일 망연해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그것이 박만금으로부터 오는 전화가 아니길 바랐다. 요즘엔 전화벨만 울려도 수화기를 든 박만금의 얼굴이 떠오르곤 하였다. 주문한 것에 대한 진척상황을 물을 것만 같아서 벌써 여러 날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작대를 만들어놓고 벌써 3 주나 흘려보냈다. 그런데도 아직 그럴 듯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벌써 골격에 점토를 붙여 형상을 만들고도 남았을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망령 때문이었다. 한동안 소리없이 묻혀 있던 어두운 편린들이 마치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듯이 일제히 소란을 피운 탓에, 그 망령들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괜한 주문을 받았다 싶어 뒤늦게 후회가 가슴을 후볐다. 돈이 좀 아쉬워서 받아들인 얕은 생각에 결국 올가미를 스스로 뒤집어쓴 셈이었다. 그래서 흉상을 서둘러 제작해야겠다는 조바심 보다는 내 마음을 들쑤셔놓고 있는 아버지의 망령을 쉬 쫓아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울증이 더 못 견디게 하였다.
뜻밖에도 전화는 한재화로부터 온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내가 〈아리
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한번도 그녀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전화를 걸어 농이나 지껄이논 실없는 사이도 아니었고 혹은 외상값이 밀려 독촉을 받을 꼬리를 만들어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더구나 일요일에.
“어쩐 일이십니까?”
나는 감정을 숨기고, 마치 덤덤한 마음인 것처럼 건조하게 물었다.
“나와 계셨군요.”
그녀는 매우 긴장한 듯, 조금은 서두르는 목소리였다.
“일요일인데, 제가 여기 나와 있는 줄을 어떻게 아셨읍니까?”
“어제, 송 선생님이랑 하시는 말씀을 들었지요. 역시 전화를 안했어야 했는가봐요>”
나는 그녀가 무안해 하고 있는 얼굴을 떠올렸다.
"아닙 니다, 그저 뜻밖이라서…….”
"지금 가게에 나와서 전화 드리는 건데요, 제가 화실로 가뵈어도 괜찮을는지요?“
“저야 상관없읍니다만·…·?”
“그럼, 곧 그리로 가겠어요.”
그녀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로 나를 보겠다는 것일까. 일요일엔 장사를 하지 않았는데……·나를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나온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집에 있기가 무료해서는 아닐 테고……·혹, 지난번에 있었던 일과 어제 서운한 낯빛을 던져놓고 중도에 나와버린 일들이 마음에 걸린 탓일까?
택시를 타고 왔는지, 수화기를 놓고 10분쯤 지나자 그녀가 나타났다. 타이트한 흰색 스커트에 검정색 실크 블라우스를 임고 있었다. 블라우스 위에서 진주
일 것 같은 목걸이가 그녀의 품위를 보태주고 있었다.
“일하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나 모르겠어요?”
그녀는 마치 교사 앞에 선 자모처럼 단정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해도 기울고 해서, 나갈까 망설이던 참이었읍니다.”
“그럼 제가 덜 미안하군요.”
그리곤 얼굴을 돌려 조각 자료랑 도구들로 어수선한 작업실을 신기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그 표정은 마치 자기가 평소 상상했던 조각가의 작업실에 대한 기대감 이상과 이하가 교차하는 순간 같았다.
“좀 앉으십시오.”
눈이 부시도록 횐 그녀의 스커트에 시선이 머물면서, 나는 얼른 벽에 걸린 타월을 메어 그녀가 앉을 의자를 닦았다.
“오늘은 제가 술 좀 사드리고 싶은데요?”
그녀는 그냥 선 채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순간, 애련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눈빛에 나는 그만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군요.”
“그저……지금 나가셔도 괜찮아요?”
“네에.”
저녁시간이긴 하지만 아직도 거리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였기 때문에 멀리
갈 필요 없다 하여,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조 선생님, 지난번 일을 너무 오래 품고 계신 것 같아요.”
그녀는 메추리알 껍질을 까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일 때문이었구
나. 그러나 그 일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 그일 때문에……·?”
그녀는 메추리알을 놓고 손을 탁자 아래로 내렸다. 그리곤 잠시 고개를 숙
였다.
“서로 쑥스러운 노릇이니, 그쯤 해둡시다.”
나도 무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시선을 바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곤 겨우 생각해낸 것이 그녀의 컵에 맥주를 첨배하는 일이었다.
“저는 〈아리아〉에 오시는 분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어렵게 생각해왔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가늘어, 끊어질 듯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어렵다니요?”
“저를 늘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고맙기도 했거니와, 선생님의 부친이 납북 당
하신 분이라는 얘기를 듣고 더욱 조심스러웠어요.”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읍니까?”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방송이 한참 나올 때, 송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으니, 다신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읍니다.”
이젠, 한재화까지 아버지의 망령을 끌고 다니다니……·나는 꼭 구석에 몰린 쥐가 되어 그녀로부터 얼른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끈해진 얼굴을 그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하였다. 너무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가 실은,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 나를 우롱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제가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나보군요. 괜한 얘기를 꺼내가지고…….”
틀림없이 창백 해졌을 내 얼굴을 보디니 그녀가 몹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고…… 어쨌든 그 얘기는…….”
“언젠가, 제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을 거예요.”
"들은 기억이 있읍니다.”
이 여자가 왜 감자기 죽은 남편의 얘기를 꺼내는 것일까. 또 혼자 사는 서러움을 말하면서 보호를 호소하려고?
“실은 그게 아니었구요·…….”
그녀는 말을 중단하고, 컵을 들어 입술을 축이듯 술을 한 모금 넣었다.
“자살을 했어요.”
그리곤 한동안 침묵을 깔았다.
“자살을요?”
“남편은 이름을 떨치진 못했지만 시인이었어요. 저는 보석처럼 빛나는 그의 시혼을 사랑했지요. 자신은 시에 재능이 없다고 자주 자탄했지만, 그것은 그의 연륜 때문이었지 결코 재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이는 모 고등학교에 재직해 있으면서 창작에는 항상 정열적이었어요. 그 열정에, 꼭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킬 거라는 예감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자살을?”
“그의 죽음이 겉으로 자살이었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타살이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말을 끊고 있는 그녀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가늘게 물결치는 경련을 보았고, 그녀의 눈길에서 칼빛 같은 섬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이를 죽인 것은 늘 불확실하고 애매하고 모호한 이 시대의 관념, 바로 그것이 죽인 거예요. 시어머니 말씀으로, 시아버님은 6·25 때 틀림없이 납북당했어요. 당시, 그분이 구국 뭐라든가, 여하튼 무슨 청년대 지도자였던 까닭에 매질을 당하면서 분명히 놈들에게 끌려갔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아버님이 북한의 당 간부로 있더라는 소문과 함께, 그때부터 우린 공산주의자의 가족으로 곤두박질했지요. 칠십 몇년도인가, 납북 대표들이 서울과 평양을 상호방문하면서 법석을 부린 때가 있었어요. 그 당시, 이산가족들은 혹시 북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나 싶어서, 한때 가슴을 졸이고 있었지요. 특히 시어머님이 그러셨어요. 그런데 어면 경로를 거쳐 밝혀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시아버님이 틀림없이 모 당 간부로 있더라는 거예요. 확인할 길도 없는데 말예요. 그 후, 남편이 어디엔가 몇 차례 불려다니더니 직장에선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고, 우리 가족은 늘 보이지 않는 감시속에서 불안하게 살아야 했어요. 실지로, 누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우리로서는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미행당하거나 출입을 체크당하는 것 같은 불안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어요. 그것은 반공해야 하는 우리의 시대 상황에 젖어 이미 체질화 돼버린 잠재의식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부터 남편의 의식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늘 불안에 쫏기는 표정이었고, 대문의 초인종이 울려도 얼굴빛이 사색이 되고, 잠자리에서는 악몽에 시달리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측은해서 차마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죽기 전에, 그는 일기장에다 이런 싯귀를 납겼더군요.
포성이 소피를 보며
기인 하늘에 꽃을 심는데
까치는 까마귀 되어
내 머리를 쪼았네.
남편은 결국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목을 매었어요. 선생님, 지금이 어떤 시대예요? 삼족을 멸하던 이조시대가 아니잖아요. 지금은 그 연좌제라는 것이 폐지되었지만, 왜 그가 아버지 때문에 죽어야 해요? 그는 그저 아들이었을 뿐이지, 아버지 인생이나 사상과는 관계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애매모호한 이 시대는 그를 죽게 했어요.”
그녀의 눈에 물기가 배었다 싶더니, 기어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체읍하기 시작하였다. 실은 통곡하고 싶은 쪽은 난데, 그녀가 나를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남편의 성격에도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너무 억울해요.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애매한 시대가 끝이 날까요?”
“글쎄요……·우리 다음 세대까지나 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런 얘기를 저에게 들려주시는 이유가 뭔지……?”
나는 그녀가 나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어서, 동병상련으로 공감을 갖자고 그
러는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그간 재혼의 기회를 외면했던 것은 자식이나, 의지할 곳 없는 노령의 시어머님이 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렇게 한을 남기고 죽은 남편의 영혼을 달래줄 사람은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아내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만일, 제가 재혼을 해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면, 그 순간부터 죽은 남편과는 무관해야 되잖겠어요? 그렇게 되면, 누가 그이의 영혼을 달래줍니까? 조 선생님, 제가 장사 때문에 할 수없이 여러 사람에게 웃음을 뿌리고 있지만, 저의 뒤꼍에는 항상 그러한 우울함이 있어요. 그의 영혼은 아직도 안식을 구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을 거예요. 혹시 지난번 제 언사가 선생님을 노엽게 만들었다 해도, 선생님은 〈아리아〉를 멀리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부친의 생사를 모르는 아픔이 있으시겠지만, 〈아리아〉에는 그렇게 죽은 아내도 있음을 지켜주세요. 선생님만이 그렇게 해주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로 하여금, 남편의 영혼을 저버리지 않도록 격려해주시고 지켜주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요즘 저는 몹시 흔들리고 있어요. 교회에 나가는데도 그래요. 간사스럽게도, 선셍님이 저에겐 늘 푸근한 분이었어요. 지난번 선생님이 그렇게 가신 후, 어제까지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어요. 마치 제가 기대고 있던 기둥 같은 것이 뿌리째 빠져버린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손수건을 내어 콧등에 맺힌 땀을 찍어내더니 술잔을 들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누구한테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오늘 선생님께 몽땅 쏟아놓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진 것 같아요.”
“제가 부끄럽군요, 한 여사가 그러한 분인 줄도 모르고 그만…… 사과드리겠
유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씻을 길이 없어 그저 사과한다눈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토록 사려깊고 정숙한 여인을, 한때나마 치희섞인 사랑을 입 끝에 올리며 탐했던 자신이 너무 속되고 한심스러웠다.
" 그래도, 그분은 살아계셨어야 했읍니다. 비록 그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살아남았어야 했읍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했어야 했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대의 애매함과 불확실함이 우리 세대에서 끝나도록 해야 했읍니다. 뿐만아니라, 그래야만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작은 역사의 교훈을 지킬 수 있을 거구요.”
실은, 그녀 앞에서 나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얘기가 내 비밀의 실마리가 될까 싶어 그만 막음해야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러나 끝까지 살아남아야겠다는 내
결심은 누가 뭐래도 나에겐 정당한 것이었다.
“제 생각도 선생님과 같아요. 활자화된 역사보다는 저마다 가슴에 묻어둔 개
인의 역사 가운데, 보석보다 빛나는 교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그녀가 택시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내 작업실로 돌아왔다.
하찮은 일로, 지금껏 끙끙대구 있는 나를 오늘 그녀가 구제해준 셈이었다. 이제, 박만금의 주문 따위에 구속되여 고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있지도 않은 〈독립투사〉의 허상 따위에 고심하다니. 내가 진실로 제작해야할 실상을 비로소 찾은 것이다. 까마귀, 아니 까치 부리에 머리를 쪼여 죽은 시인의 얼굴을 남겨야 한다. 시인의 형상이 설사 내 얼굴을 닮게 된다고 해도, 증언대에 서서 아버지의 애매한 유산을 받아들고 통곡하는 자의 얼굴을 제작해야 한다.
=끝-
2016년 3월 27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