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얘기 / 우리들의 노송대 등하교 시절 추억
낭만의 실개천 제방길
현재 동부시장과 기린로가 마주치는 전주시청 진입로 전북은행노송지점까지는 실개천
이었다. 이 실개천 제방은 주로 북중학교와 전고에 다닌 학생들의 지름길 통학로였다.
당시에는 제법 물도 흘렀고 전주시청 진입로 5거리엔 당시의 전주역의 철로가 있어 일단
철길을 넘어야 학교 정문과 마주쳤다.
아울러 전고 북중의 서편 울타리를 낀 물왕물 고갯길은 상당히 붐빈 길이었다. 현재
오목대 밑의 당시 전여고와 전주여중의 울타리를 끼고 뻗어 흐르는 실개천은 철로 밑이
라서 사람 통행이 안되었기 때문에 전여중 앞에서 시작한 전주역까지의 실개천은 청순
한 낭만이 깃든 통학로 였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실개천 제방은 남쪽만이 통행로 구실을 했고 북쪽의 제방은 통행이 전혀
불가능했다.
전주역을 향하는 학생은 전고와 북중 학생들이었고 전여중을 향하는 학생들은 멀리
전주사범학교나 전여고와 전여중생들이었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꽉 들어차 어깨를
비벼대어야만 했다. 두 명이 나란히 서면 넉넉했고 세 명이 서기애는 좁은 제방길을
놓고 남녀 학생들간에 짖궂은 장난도 심심찮게 일어났으며 때로는 전고생과 사범학교
학생들간의 시비도 간간이 일어났다.
전여중 앞에는 지금도 남아있는 느룹나무 한 그루 옆으로 시멘트 다리가 가설되었으나
전주역을 50여m 남겨 놓은 지점에 굵은전신주 2개를 묶어 걸친 건널목이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패싸움이 벌어져도 도망갈 길이 없어 자연히 제방 밑 인가의 대문을 열고 무단 가택 침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어느 집으로 들어가건 사나운 개가 달려들어 등교길에 벌어진 싸움이라면 실개천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어 교복은 엉망이 되어 버리기 일수였다. 싸움질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좁은길을 비끼지 않는다고해서 입씨름을 벌이다가
제방 밑으로 떨어져 교복이 흙탕칠 된다거나 여학생 가방에 소위 사랑을 고백하는 연애
편지를 집어넣다가 밀려나는 에피소드며 뒤돌아서서 만년필 잉크를 옷에 뿌리는 등등
장난에서 비롯된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날에는 널찍하게 트이고 복개가 되어 옛날의 낭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제복 또한 자율화되어 옛날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농담으로 들린다
첫댓글 전고 교문 좀 미쳐 남원 가는 철길에 후미끼리(건널목)가 있었고
그 옆에 정완술이네 집이 있었는데 밭이 꽤 넓었지
그 밭에 배추를 심어 똥지게로 똥을 퍼다 배추 거름으로 써서
똥냄새가 어떻게 독한지 코 설주 부러지는줄
그 위쪽으로 조금 가면 인주선이네 미영 씨 기름 공장이 있었지
그 후미끼리에서 웅변 잘했던 남원사는 이성규가 자전거 타고 가다 차에 치어 죽었지
참 아까운 친구였었는데 아주 웅변을 잘했지 살았으면 국회의원은 했을껄
내 책장에도 '전주사랑 송영상의 전라도 풍물기' 책이 꽂혀있네
근데 모르는 이야기가 넘 많아 하여튼 그 책을 보면 옛 전주는 다 알 수 있지
심심하던 차에 옛 이야기 재미있네. 감사혀
해꽃성님!
이제 입을 열때가 되지 않았나요?
전주 원주민에다 토밖이로
전주 문화원장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그시절 옛 이야기 좀 들려 주세요 !
그려 이선규 얘기하니 옛날 생각이 더 나네 그런데 이선규가 아니라 이성규로 기억됭는데... 그때 도립병원에서 영결식이랑 했었잖여..키가 작고 야무진 모습의 성규와는 좀 친하게 지내서 기억이 나요 그때 누군가가 조사를 읽었는데 아마 내가 써주었을거야...종락이성 풍물기 그냥 가끔 써도 괜찮을까 몰라...
맞아 이성규 내가 늙어서 그랴ㅎㅎㅎㅎ
아주 재미있어 옛날 생각도 솔솔 나고 계속 연재하면 좋겠네
조 사는 임병찬이가 읽었지 도립병원 영결식장에 간 기억이나
진짜 옛날 얘기 꺼내들었군. 이성규! 아까운 친구! 그 아버지가 통곡하던 생각이 자꾸 떠오르네.
해꽃의 전라도 풍물기 내 책꽂이에도 있지. 오늘 공군사관학교에서 평생 교관이었던 사촌 매제를
청주에서 만나, 기무사얘기가 나와서, 해꽃 이야기를 했는데, 우연의 일치, 해꽃의 글을 보네.
북중학교 동쪽 편에 개구멍이 있었는데
이곳을 나오면 바로 최규장이 집이었지...
원래 최규장이는 얌전한 모습이었지만
규장이 형님은 정말 점잖으셨어...
규장이가 미국에 가고 없을 때
형님을 자주 만났는데 나의 직무상 일로...
지금 기억으로는 김광수 대한교과서
사장이 운영하던 전주가스공장(?)
사장실에서였어,
잘 못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그 형님이
병원에 계실 때 문병을 갔었고
아마 그 뒤로 작고하신 것으로 기억되는데...
규장이가 같은 웅변부에 있어서 개구멍 출입이
잦았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네...
해꽃이 전주 이야기 연재했으면 좋겠네.
그 옆으로 빵집이 많았었지
개구멍 뚫고 나가서 빵 사먹다
진종현 선생님께 들켜 귀때기 잡혀 교무실로ㅎㅎㅎㅎ
진종현 선생,
진도견 선생이었지 아마(선생님을 차마 진돗개로
표현할 수 없지?),
그 개구멍으로 등하교하는 친구가
참 많았섰지...
아마 최규장 친구 집도 상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
규장이네 집은 길갓의 상점이 아니라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낮으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일본식 고급 주택으로
기억되는데^^^^^정원이 있고 멋들어진 집이라서 벤또 까먹고 맘씨 좋은 규장이를 살살 꼬드켜 규장이네 집 다다미
방에서 한소금 낮잠 자고 늦게 와 두 손들고 복도에 무릅 꿀고 앉았던 아! 그 옛날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