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이라도 이뤄져야
남북 이산가족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한(恨)만 깊게 하는 아픔의 시간이다. 남북 간에 현안이 겹겹이 쌓여 있지만 이산가족 문제 해결만큼 절박한 것이 없다. 이산가족 10명 중 8명이 고령화상태이기에 그렇다. 혈육과의 재회를 가슴속에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 이산가족 상봉신청자가 12만 9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46.5%인 6만여 명이 이미 숨졌다. 얼마 전에 난 아흔에 가까운 이산가족을 만났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북에 두고 온 고향 산천을 또렷이 기억하며 가족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쏟아냈다. 직접 만날 수 없으면 “화상상봉이라도 해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특히 명절이면 특유의 씁쓸한 맛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한다. 이산가족의 가슴 속에 남긴 트라우마(trauma)다.
눈발이 흩날리던 지난 2월 상봉 행사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멈췄다.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가하고 있지만, 이산가족들의 타들어가는 마음에 단비를 내려줄 희망적인 소식은 없다. 오히려 각종 미사일 도발을 강행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긴장수위만 드높이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고통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 더 이상 정치적 문제와 연계하지 말고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가야 한다. 북한이 남북 간 경제적 격차로 부담이 되면 비공개 상봉이나 화상상봉 등 실질적인 방법으로라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이산가족들이 대부분 고령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만날 날을 기다리는 신청자 가운데 90세 이상이 10.4%, 80대가 41.3%, 70대가 29.1%로 70세 이상이 80%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부터 14년간 모두 열아홉 차례의 상봉행사를 했지만 남북을 합쳐 3천94가족만이 재회하는데 그쳤다. 하루 빨리 상봉을 재개하고 상봉규모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직접상봉이 어려우면 기 설치된 화상시스템을 활용하여 화상상봉이라도 이뤄져야 한다.
화상상봉 시설은 9년 전에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남북 간 협의에 의해 설치되어 있다. 남측에는 서울 5곳을 비롯해 수원, 인천, 춘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에 열세 곳 상봉장이 적십자사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북측은 평양에 10개의 화상상봉장이 설치되어 있다. 그간 경기도 적십자 상봉장에서 48가족이 화상을 통해 만났다. 하지만 1차에 이어 7차 상봉까지였고 그 후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전용 광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이산가족이 영상과 음성으로 상봉하는 화상회의 시스템이다. 비록 혈육이 얼싸 안고 볼을 비비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더라도 고령자들이 먼 거리를 오가지 않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어 효과적인 시설이 아닌가. 그간 사용하지 않아 영상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시설을 보완하면 될 듯싶다.
적십자사는 남북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이산가족 중 수요조사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여 유전자검사를 실시하여 유전자 정보를 보관 관리하는 사업을 올 연말까지 진행한다. 이는 이산가족 고령화와 사망률 증가에 따라 사후(死後)교류나 남북관계 상황 진전에 따른 가족관계 확인, 재산권, 상속 문제 등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물론 유전자검사 동의를 받은 후에 대상물을 채취하고 검사하여 DNA는 초저온 냉동설비에 보관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제작 관리하여 이산 1세대 기록을 보존하고 사후에라도 북한 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영상편지 제작을 희망하는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10분 분량의 USB로 제작하여 보관하여 당국 간 영상편지를 교환한다. 이미 6년 전에 남북합의에 따라 남북 각기 기 상봉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20편의 영상편지를 제작하여 시범적으로 교환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사업도 필요하고 좋다. 더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들의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시라도 빨리 상봉을 재개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쌓이고 쌓인 그리움을 풀어내는 이산가족, 연내에 화상상봉이라도 이뤄지길 기대한다./김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