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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갯골축제에서 불꽃놀이를 하다 ▲ 최영숙
시흥갯골은 경기도 유일의 내만 갯골로써 옛 염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래염전으로 불리던 옛 염전지역 안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갯골을 이용하여 소래 포구에서 내륙까지 어부들의 배가 드나들기도 하고, 염전에 바닷물을 대어주기도 했던 곳이다. 소래 염전은 1934년에 조 성되어 갯골을 중심으로 약 145만평이 펼쳐져 있었다. 이후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1996년 폐염전이 되었다. 그 후145만평의 너른 구염전 지역은 시흥의 허파 역할을 하며 오늘 에 이르렀다. 구염전에는 법정보호종 모새달과 퉁퉁마디, 나 문재와 칠면초등의 각종 염생식물과 농게, 참방게, 붉은발사각게, 말뚝망둥어 등이 갯벌에서 서식하고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도 시흥갯골을 찾고 있다. 생태계의 보고인 이곳을 우리가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가을이면 방산대교에서 바라보는 시흥갯골은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황홀한 풍경을 펼 쳐 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2006년 제1회시흥갯골축제가 열렸다. 시흥갯골축제만이 가진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발전해 온 결과 1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경기도10대축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제1회시흥갯골축제는 2006년 8월 11일(금) ~ 15일(화)까지5일간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열렸다. 김병찬 아나운서 사회로 8월 11일 저녁 8시 개막행사를 했다. SG워너비의 공연으로 시흥갯골축제장은 사람들의 환호성이 하늘에 닿을 듯했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떴고, 땅에서는 우마차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개막행사 뒤에는 소금창고 뒤에서 화려한 불꽃놀이를 했다. 너른 구염전에서 펼쳐진 제1회시흥갯골축제는 소박했지만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제1회시흥갯골축제가 열리기 전까지 기대와 염려들이 많았다. 시흥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시흥갯골생태공원이 정작 시흥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곳이었다. 구염전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차를 타고 방산대교를 지나치면서도 소금창고가 있는 들판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흥갯골축제는 갯골생태공원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으며 축제 자체도 성공적이었다. 죽 늘어선 소금창고들과 갯골 위로 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 마주한 시민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6년 1회 시흥갯골축제 우마차가 방문객들을 행사장으로 실어 날랐다 ▲ 최영숙
제2회시흥갯골축제는 2007년 8월 17일(금) ~ 19일(일)까지3일 동안 열렸다. 주(성담)은 근대등록문화재로 심의받기로 한, 구염전에 있던, 소금창고를 3일 전 (2007년 6월 4일)에 파괴했다. 제2회시흥갯골축제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소금창고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한 번 파괴된 소금창고는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허허롭게 떠 있던 풍경이 기억에 남은 축제였다. 제2회축제 때는 나귀가 끄는 마차가 등장했다. 가족 중심의 시흥갯골축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이 유독 많았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 앞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비호같이 뛰었다. 그 옛날 운동회에서 뛰던 추억과 힘을 모아 달리는 부모들 못지않게 응원하는 가족들의 높은 목청이 축제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2007년 2회 시흥갯골축제 나귀가 끄는 마차가 등장했다. ▲ 최영숙
제3회시흥갯골축제는 2008년 8월 13일(수) ~ 17일(일)까지5일 동안 열렸다. 2008년 제3회시흥갯골축제에는 처음으로 전기차가 등장했다. 축제 첫날 오후 1시 심봉진(한국화가)씨와 이남근(설치미술가)씨의 행위예술 ‘삶 -갯골’이 펼쳐졌다. 이 행위예술에 대해 심봉진 작가는 “시흥시 갯골은 우리나라에서 얼마 안 남은 내만 갯골이다.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 나가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 작품은 시흥갯골을 추억하며 점점 사라져 가는 갯골과 갯골에 살고 있었던 생물체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을 표현하려고 작품을 기획하였다. 온 몸에 하얀 칠을 한 행위자와 우산 그리고 안경 등은 현실을 나타내며 갯골 한 바퀴를 돌며 하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장승과 솟대 그리고 행위를 하며 바르는 머드는 갯골에서만 나오는 원초적인 사랑을 나타냈으며, 시흥을 상징하는 연꽃과 더불어 자연으로의 회귀를 표현하였다.”고 했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행위예술 ‘삶 - 갯골’을 통하여 말하고 있었다.
2008년 3회 시흥갯골축제 시흥갯골축제에서 행위예술을 하다 ▲최영숙
밤에는 달빛 공연이 있었다. 달이 떴다. 달빛 속에 가수 백영규씨의 ‘슬픈 계절에 만나요’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달빛과 어울리는 노래였다. 자전거를 타거나 의자에 앉은 사람들 모두 달빛 속에서 무대를 지켜보았다. 달빛과 노래, 그리고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고즈넉한 공연이 갯골을 흠뻑 적셨다.
제4회시흥갯골축제는 2009년 8월 14일(금) ~ 16일(일)까지3일 동안 펼쳐졌다. 여느 해와 달리 시흥시청에서 개막식을 했다. 시흥생태공원 안에서 꼭두쇠의 공연이 있었다. 꼭두쇠의 공연을 보자 이제야 축제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어눌하면서도 일부러 아슬아슬한 동작을 펼쳐 보이는 공연은 보는 내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좋은 공연에 관중들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2009년 4회 시흥갯골축제 소금모으기를 하는 어린이들 ▲ 최영숙
제5회시흥갯골축제는 2010년 8월 13일(금) ~ 15일(일)까지 3일 동안 펼쳐졌다. 시흥시민뉴스의 최영숙의 ‘발길따라가는 풍경’에 연재했던 41번째 ‘기록’ 소금창고에서 어린이 인형극 옛날 옛적이야기가 공연되었다. 별주부전에서 금도끼와 은도끼, 선녀와 나무꾼까지의 전래동화가 얽히고설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소금창고 안은 무더웠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의 인형극이주는 재미에 푹 빠진 관객들은 잠시나마 더위를 잊었다. 의연하게 더위를 참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대견함을 느꼈다.
2010년 5회 시흥갯골축제 윤도현 밴드 공연을 보고 환호하는 참석자들 ▲ 최영숙
연극의 흡인력은 강했다. 인상에 남은 시간이었다. 2010년 제5회시흥갯골축제에서는 윤도현밴드와 도창초등학교와 소래중학교를 나온 시흥의 딸 가수 바다가 공연했다. 공연장이 마치 커다란 열기구 안인 듯 붕 떠 있었다.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 공연을 보기 위해 연인의 목말을 탄 여자, 손을 높이 흔드는 사람들 등 두 가수의 열정적인 무대에 관중들은 모두가 하나가 된 듯했다. 가수 바다는 “시흥갯벌에 서 게 잡던 기억이 납니다. 가수를 하면서 이곳의 기억이 노래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바다의 열정적인 노래 ‘마리아’를 끝으로 2010년 제5회시흥갯골축제가 모두 끝났다.
2011년 6회 시흥갯골축제 기간 중 비 내리다 ▲ 최영숙
제6회시흥갯골축제는 2011년 8월 12일(금) ~ 14일(일)까지3일 동안 이어졌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축제였다. 또한 알찬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빛을 잃었던, 안타까웠던 축제이기도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열린 축제는 다행히 개막식 때는 잠시 비가 멈췄다. 개막행사로 풍등을 날렸다. 각자의 소원을 적은 풍등이 하늘로 날았다. 제1회어쿠스틱음악제가 열린 축제였다. 심사 결과 영예의 1위에는 팀 ‘소프트’가 차지했고, 2위에는 팀 ‘이룸’이 3위에는 팀 ‘K.P.M’이 차지했다. 1위에게는 200만원의 상금과 트로피가 주어졌다.
2011년 6회 시흥갯골축제 신어를 띄우다 ▲ 최영숙
제6회시흥갯골축제는 민간이 주도한 첫 번째 축제로 전 축제와는 색다른 변화가 있었다. 비천신어제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갯골과 가장 어울리는 어쿠스틱음악제를 개최했으며,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부스들이 차려졌다. 그 좋았던 프로그램들이 비로 인해 반감되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가장 흥미진진했던 축제였다. 제6회시흥갯골축제에서 비로소 갯골축제만의 틀이 잡힌 느낌이 들었고 그 틀이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쿠스틱음악제는 이제 건실하게 자리를 잡아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7회 시흥갯골축제 열기구를 갯골에 띄우다 ▲ 최영숙
제7회시흥갯골축제는 2012년 9월 7일(금) ~ 9일(일)까지 3일 동안 있었다. 축제 첫날 오전 8시, 이번 축제에 새롭게 시도 된 배로 떠나는 신기한 갯골여행에 참가하기 위해 부흥교로 갔다. 갯골과 방산대교(왕복8km)간 뱃길을 오가는 물길 여행이었다. 첫배에 오른 정지민 어린이는 “엄마가 신청했는데 등교시간을 미루고 왔어요. 작년에도 왔었지만 올해엔 배를 타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정 군의 어머니 강현숙 씨는 “시흥에서 사는데 가까운 곳에서배를 타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라 인터넷에 사전 접수부터 했어요. 갯골축제 는 매년 오고 있는데 자연 속에서 축제를 해서 즐거워요.” 라며 아이들보다 더 들떠보였다. 물때 때문에 9월 7 ~ 8일(오전8시, 9시 승선) 20명과 9일(오전 8, 9, 10시 승선) 30명 등 축제 기간 중에 7번 밖에 배를 띄울 수 없어 아쉬웠다.
2012년 7회 시흥갯골축제에서 풍등을 날리다 ▲ 최영숙
갯골에 열기구가 떴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강해 띄울 수가 없었다. 대신행글라이더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되었다. 어린이들은 하늘을 날았다. 김혜리 어린이는 “재미있었어요,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라며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송복연 어린이는 “가슴이 짜릿하고 하늘을 난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어요. 시흥갯골축제는 너무 즐거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어린이들에게 기억에 오래 남을 축제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2013년 8회 시흥갯골축제 어형선 띄워 보내다 ▲ 최영숙
제8회시흥갯골축제가 2013년 9월 6일(금) ~ 8일(일)까지 ‘소금꽃이 피었다, 갯골에 소풍가자’라는 주제로 갯골생태공원 일원에서 3일간 열렸다. 축제는 흥겨운 풍물패 놀이와 약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퍼레이드로 시작됐다. 어형선(漁形船)은 시흥의 15개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만들었다. 선체 부분은 동별로 참여시민들과 자치위원회의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들었고 목선의 하부는 기술자문을 통해 제작되었다. 어형선(漁形船) 퍼레이드는 생명의 문을 통과하면서 시작됐다.
정석영 갯골축제위원장은 “갯골축제의 첫 단계가 어형선(漁形船)제작이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축제였다. 생각을 공유하면서 함께 만들고 함께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축제라고 생각한다. 축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알아서 즐거워지는 그것이 가장 어렵지만 축제를 통해서 익숙해질 것이고 재미도 커질 것이다.”고 했다. 2013년 제8회 시흥갯골축제 개막식에서 정화의 의미로 소금을 뿌렸다. 40번째 ‘불꽃놀이’ 소금창고에서는 갯골축제조각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시시도케이코 작가의 설치미술 ‘생명의 나무’가 전시되었다. 폐염전에흩어져 있던 타일들과 버려진 현수막으로 완성된 ‘생명의 나무’는 보는 이들에 따라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에겐 생명을, 버려지는 자원을, 버려진 것들이 또 다른 자원으로 탄생하는 순환의 의미까지 일깨웠다. 시흥갯골축제 마지막 날에는 어린이들이 ‘생명의 나무’ 작품 아래에서 타일로 각자 놀이를 겸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시시도케이코씨는 “이 작품에서 타일과 현수막을 이용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표현하고 싶었다. 어린이들이 ‘생명의 나무’ 아래에서 타일로 각자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새롭게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고 했다. 부흥교 건너 솟대가 있는 곳에서는 갈대 천연염색 퍼포먼스가 있었다. 어린이들은 색다른 경험에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2014년 9회 시흥갯골축제 삼목어를 메고 퍼레이드를 하다 ▲ 최영숙
제9회시흥갯골축제가 갯골생태공원에서 2014년 8월 29일(금) ~ 31일(일)까지 3일간 열렸다. 시흥시의 각 마을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독특한 삼목어들을 만들었다. 개막식은 취타대를 선두로 장곡동 마을이 앞장을 섰다. 각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삼목어를 메고 퍼레이드를 벌였다. 장곡동 아파트 벽면에는 인선왕후가 그려져 있다. 이는 장곡동에서 태어난 조선 제17대 효종대왕 비인 인선왕후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시흥갯골축제에도 인선왕후로 분한 학생이 페레이드에 나섰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40번째 ‘불꽃놀이’ 소금창고에서 시흥갯골축제 관련 심포지엄이 열렸다. 김윤식 시장을 비롯해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해 시흥갯골축제의 성공을 위해 심도 있는 토론이 벌어졌다. 갯골축제임에도 갯골의 특성과 소금을 소재로 하는 것들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갯벌에서 뒹굴고 놀았던 머드 놀이가 어린이 놀이터 수준을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마저 지속되지 못한 점 등의 지적이 있었다. 또한 주차장 문제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내년에는 홍보를 통해 인근 학교운동장을 개방해서 그곳에서부터 행사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자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번 시흥갯골축제에 왔던 지인 또한 주차장에서 되돌아갔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이곳익히 아는 지역민들 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다면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의 불편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시청에서 버스로 왔던 참석자들은 교통편에 대해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었다. 인근학교 운동장 개방을 통한 셔틀버스 운행과 홍보의 중요성이 필요해 보였다. 폐막행사는 삼목어를 바다로 띄워 보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마을 경연에서 우승한 신현동 삼목어가 올려졌다. 삼목어에게 먹이를 주는 시늉을 하며 주민들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등의 소원을 말했다.
2015 10회 시흥갯골축제에서 줄을 타다 ▲ 최영숙
제10회시흥갯골축제가 2015년 8월 28일(금) ~ 30일(일)까지 3일 동안 갯골생태공원에서 열렸다. ‘자연 속 31가지 생태놀이’를 콘셉트로 갯골 자연에서 배우고 쉬며 즐기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다. 시흥갯골 앞에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피아노 앞으로 모여 들어 연주를 감상했다. 피아노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가 피아노 앞을 떠나면 어린이,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면누구나 피아노 앞에 앉아 즉석 연주를 선보였다. 잔디광장 앞에도 피아노가 놓여 있어서 누구나 연주할 수 있게 해놓았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피아노 연주와 어우러진 사람들, 그리고 갯골공원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8월 28일 밤 8시부터 2015년 제10회시흥갯골축제 개막행사 ‘별밤연희’공연이 있었다. 줄타기와 라커커션의 에코 퍼머션과 한국예술종학학교 전통연희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달
빛이 교교한 하늘 아래에서의 공연은 잠시 이 세상을 떠나 먼 곳에 와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선물했다. 최윤현 2015년 제 10회시흥갯골축제 총감독은 “이 축제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시간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역점을 뒀다. 특정 프로그램보다는 마지막 순간에 힘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감정들이 고조되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차량을 통제했다. 어르신들은 행사장의공간이 너무 넓어서 멀리 가시지 않아도 잔디마당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준비 했다. 개막행사는 딱딱한 것보다는 패밀리런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어쿠스틱 음악제가 작년에는 경연에서 공연으로 바뀐 것이다. 이미 경연 프로그램이 너무 많고 생태라는 키워드는 누군가와 경쟁하는 경연보다는 공연이 맞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인상 깊게, 시흥갯골을 알린 프로그램은 갯골여행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박종남 문화해설사는 “갯골 여행 참가자가 첫날 33명, 29일 38명, 30일 그 정도 될 듯하다. 1시간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걷는다. 걷기 전에는 시간 때문에 부담을 갖는데 갔다 오면 반응들이 좋다. 시흥갯골을 걸으면서 문화관광 쪽과 생태해설을 하고 중간에 게임을 해서 즐겁게 다녀오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갯골여행에 참가했던 박은정씨는 “장곡동에 살아서 갯골이 가까이 있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아이들은 걷기를 힘들어 했다. 어른들에겐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이렇게 걸은 시간이 좋은 추억이 될듯하다. 차량운행이 불편해서 올 때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될 것 같다.”
10년을 기록했기에 나름대로 축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정기에 접어든 시흥갯골축제는, 지난10년의 세월은, 또 다른 숙제를 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인재들이 투입되어 활기 넘치는 축제를 만들려고 했던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진도가 너무 빨라 시흥갯골축제가 가진 기존 틀을 뒤엎은 느낌이 들었다. 갯골축제와 연관된 고리들이 끊긴 느낌이 자꾸 들었다. 어렵게 자리를 잡아 가던 어쿠스틱 음악제는 이번 축제에서 사라졌다. 경선을 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들었던 뮤지션들의 설 자리를 빼앗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경선 공고는 갯골축제를 알리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생각이다. 그보다 더 좋은 홍보가 또 있을까 싶었다. 또한 참가자들의 참신한 노래와연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모습은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뿌듯했었다. 경연이 아닌 어쿠스틱 공연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좀 더 세련되었지만 젊은이들의 열정의 무대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도 좋지만 연속성을 가진 프로그램의 지속성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또 하나 시흥갯골축제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은 그렇다 쳐도 축제장까지 왔어도 갯골을 볼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도보밖에 없었다. 예산이 더 적었던 역대 축제 때에도 운행되던 우마차며 전기차조차 모습을 감췄다. 경기도 10대축제로 지정되고 더 좋아지고 더 편해져야할 축제에서 노약자를 위한 배려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은 시흥갯골축제를 지켜보면서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 것을 안다’ 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싶었다.
2015년 10회 시흥갯골축제 공연하다 ▲ 최영숙
시흥갯골축제 10년을 지켜보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시흥갯골축제는 많은 부분이 변했다. 2007년 하룻밤 사이에 소금창고가 파괴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연환경도 바뀌었다. 모새달과 갈대숲이 무성했던 구염전 지역은 솔트베이 골프장이 들어섰다. 2015년 제10회시흥갯골축제 기간 중에 솔트베이 골프장 갤러리에서 FINE ART30인전 솔트베이 골프클럽 초대전을 했다. 세상은 변하고 세상인심도 변한다.
시흥갯골축제 10년의 가장 큰 성과는 갯골생태공원까지의 접근성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시흥시민들과 외부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2004년 만해도 구염전에 사진을 담으러 가면 7 ~ 8시간을 머물러도 한사람도 마주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갯골축제가 시흥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과 어우러져 산책하듯 가볍게 다녀오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힘과 노력이 있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더 풍성해지기를, 끊기는 일 없이 오래 이어지기를 꿈꾼다. 2016년 제11회시흥갯골축제는 더 자연친화적인, 더 인간적인, 더 배려하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예술시흥에 실린 글입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시흥갯골 10년의 기록 속에 최영숙 선생님이 늘 함께 계셨네요
10년의 기록,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을 한 눈에 보네요. 감사합니다.
시흥갯골축제 기간은 미리 동그라미를 그리던 시간들이 함께 있습니다. 제가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