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공격을 나치즘-홀로코스트에 빗대
가자 초토화가 '불가피한 행위임'을 암시"
"원인은 75년 추방, 56년 점령, 16년 가자 봉쇄"
"선동 그만두고 더 이상의 인명 손실 막아야"
미‧영 등 5개국 '홀로코스트 학자' 16명 서명
''다윗의 별'이 그려진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면에는 "이제 결코 다시는 안 된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2023. 11. 09 [로이터=연합뉴스]
"홀로코스트란 기억에 호소하는 것은 오늘날 유대인이 직면한 반유대주의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위험하게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폭력의 원인을 오도한다."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연구로 전 세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대학교수들은 20일 미국 <뉴욕리뷰오브북스>에 실린 '홀로코스트 기억 악용에 대한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말하고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를 나치즘이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이스라엘과 서방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공개서한에는 오메르 바르토프 브라운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명예교수, 제인 카플란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마이클 로스버그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교수, 매리안 허시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를 포함해 미국과 영국, 독일, 캐나다, 이스라엘 5개국 대학의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 연구로 유명한 교수 16명이 서명했다.
5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서 참가자가 이마에 나치 문양이 그려진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면을 쓰고 붉은 물감을 흠뻑 바른 양 손을 치켜든 채 행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먼저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3.11.6.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 대재앙, 나치즘-홀로코스트와 비교 비판
이들은 "나치의 제노사이드는 아주 적은 소수를 공격한 한 국가, 그리고 그곳의 열렬한 시민 사회가 개입돼 있다"며 "정말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를 나치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특히 정치지도자들과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겐 지성적, 도덕적 흠결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들이 격해지는 순간에 정치지도자들은 냉정하게 행동하고 고통과 분열의 불길을 부채질하는 일은 피할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대사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홀로코스트 소환'을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가자에 대한 집단적 처벌을 '야만과 문명의 전쟁'으로 묘사하고자 '홀로코스트 프레이밍'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력의 악순환이란 현 위기의 원인으로 "75년 추방, 56년 점령, 그리고 16년 가자 봉쇄"를 지목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 남부의 라파 난민 캠프에서 이스트 없는 전통 빵을 굽고 있다. 2023, 11. 21 [AFP=연합뉴스]
"원인은 75년 추방, 56년 점령, 16년 가자 봉쇄"
교수들은 군사적 해결책은 없고 정치적 해결만이 가능하다면서 "악은 무력으로 궤멸해야 한다는 홀로코스트 서사를 활용하는 것은 오로지 이미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억압적 상황을 영구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팔레스타인인에게 하마스 행위에 대한 집단 책임을 지우면서 '하마스는 신 나치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반유대주의 동기를 부여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 소환'이 이스라엘 비판과 반유대주의를 동일시하게 만들어 비판 봉쇄에 활용되는 문제도 지적했다.
끝으로 교수들은 "더 이상의 불화를 촉발할 선동적 말을 진정시키고, 그 대신에 말과 행동의 최우선을 더 이상의 인명 손실을 막는데 둬야 한다"며 세계의 주요 언론을 포함해 공인들이 현 가자 위기를 나치즘이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행태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세계어린이날을 맞아 팔레스타인 어린이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 11. 20 [EPA=연합뉴스]
다음은 번역한 공동서한 전문과 서명자 명단.
우리는 여러 다른 대학에서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를 전공한 학자들이다. 가자와 이스라엘의 현재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소환하는 정치지도자들과 유명한 공인들에 대한 경악과 실망을 표현하고자 이 글을 쓴다.
특별한 사례들은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두 번 다시는 안 된다"는 뜻의 노란 별 배지를 단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에서 하마스가 "홀로코스트만큼이나 중대한 만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걸쳐 있다. 또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하마스는 신(新) 나치스"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매스트 미 공화당 하원의원(플로리다)은 하원 의회에서 "우리가 2차 세계대전 중 '무고한 나치 민간인'이란 단어를 그렇게 쉽게 내뱉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이란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반유대주의는 이슬람 혐오나 반아랍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위기가 고조될 때 증가하곤 한다. 10‧7 공격이란 부도덕한 폭력과 진행 중인 공습과 가자 침공은 대단히 파괴적이고 전 세계 유대 및 팔레스타인 공동체들에 고통과 공포를 양산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 살든지 모든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낄 권리를 지니고, 그래서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이슬람 혐오를 극복하는 게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10‧7 대학살'을 이해하려 할 때 왜 유대 사회 내 다수가 홀로코스트를 소환하고, 그것(10‧7 대학살)으로 인한 이미지들이 유대 현대사에 뿌리 깊은 '제노사이드적 반유대주의'란 집단기억을 활용하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란 기억에 호소하는 것은 오늘날 유대인이 직면한 반유대주의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위험하게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폭력의 원인을 오도한다. 나치의 제노사이드는 아주 적은 소수를 공격한 한 국가, 그리고 그곳의 열렬한 시민 사회가 개입돼 있다. 정말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를 나치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특히 정치지도자들과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겐 지성적, 도덕적 흠결이다. 감정들이 격해지는 순간에 정치지도자들은 냉정하게 행동하고 고통과 분열의 불길을 부채질하는 일은 피할 책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교수로서 우리 직업의 지적 진실성을 지키고 이 순간의 의미를 찾는 일에서 전 세계인을 지원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자 등은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적 처벌을 야만에 직면한 문명을 위한 전쟁으로 묘사하고자 '홀로코스트 프레이밍'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인에 관한 인종주의적 서사를 퍼뜨리고 있다. 이런 말들은 지금의 위기를 그것이 발생한 맥락과 분리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75년 추방, 56년 점령, 그리고 16년 가자 봉쇄가 오직 정치적 해결로만 막을 수 있는 악화일로의 폭력의 악순환을 만들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군사적 해결책은 없으며, 그래서 "악"은 무력으로 궤멸해야 한다는 홀로코스트 서사를 활용하는 것은 오로지 이미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억압적 상황을 영구화하게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에게 하마스 행위에 대한 집단 책임을 지우면서 "하마스는 신 나치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반유대주의 동기를 부여한다. 또한 그것은 유대인 보호를 국제 인권 준수와 대립시켜 지금 자행되는 가자에 대한 폭력이 불가피한 행위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자유 팔레스타인"을 요구하는 시위자들을 묵살하고자 홀로코스트를 소환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인권 옹호를 탄압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과 반유대주의를 동일시하도록 부채질한다.
지금처럼 불안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반유대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고 그것과 싸우기 위해 반유대주의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자와 서안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해결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명료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대중 담론에 관여할 때 다시 기승을 부리는 반유대주의와, 서안에서 격화하는 축출행위는 물론 가자에서의 광범위한 살해 행위라는 동시다발적 현실들을 다루는 데 있어 진솔해야 한다.
우리는 거리낌 없이 나치 독일과 비교하는 이들이 이스라엘 정치 리더십의 말들을 경청했으면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이것은 빛의 아이들과 어둠의 아이들 간의 투쟁"(총리실이 동일한 문구를 트윗했지만 나중에 삭제)이라고 말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우리는 인간 짐승들과 싸우고 있고 그에 맞춰 행동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가자에는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은 없다는, 널리 퍼지고 자주 인용되는 주장과 함께 그런 발언들은 정말로 역사적인 집단 폭력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런 기억은 대규모 학살을 확대하라는 외침이 아니라,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교수로서 우리는 더 이상의 불화를 촉발할 선동적 말을 진정시키고, 그 대신에 말과 행동의 최우선을 더 이상의 인명 손실을 막는데 둘 수 있도록 판단력과 섬세함을 가지고 우리의 언어와 전문 지식을 사용할 책임이 있다. 과거를 소환할 때, 현재를 명확히 밝히고 왜곡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것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평화와 정의를 세우는데 필수적인 기초다. 그래서 우리는 미디어를 포함해 공인들에게 이런 종류의 비교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남부의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 직후 주민들이 한 부상자를 부축해 옮기고 있다. 2023. 11. 20 [EPA=연합뉴스]
[서명자 명단]
△ 카린 볼(Karyn Ball). 캐나다 앨버타대 영어‧영화학 교수
△ 오메르 바르토프(Omer Bartov). 미국 브라운대 홀로코스트‧제노사이드학 교수
△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Christopher R. Browning).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역사학 명예교수
△ 제인 카플란(Jane Caplan). 영국 옥스퍼드대 유럽근대사 명예교수
△ 알론 콘피노(Alon Confino). 미국 매사추세츠대 앰허스트 역사‧유대학 교수
△ 데보라 드워크(Debórah Dwork). 미국 뉴욕시립대 홀로코스트‧제노사이드‧반인류범죄 연구센터 소장
△ 데이비드 펠트먼(David Feldman). 영국 런던대 반유대주의 버벡 연구소 소장
△ 아모스 골드베르그(Amos Goldberg). 이스라엘의 예루살렘히브리대 홀로코스트 연구소 석좌
△ 애티나 그로스먼(Atina Grossmann). 뉴욕 쿠퍼유니언대 역사학 교수
△ 존-폴 힘카(John-Paul Himka). 캐나다 앨버트대 명예교수
△ 매리안 허시(Marianne Hirsch). 미국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젠더학 명예교수
△ 더크 모세스(A. Dirk Moses). 미국 뉴욕시립대 국제관계학 스피처 교수
△ 마이클 로스버그(Michael Rothberg).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영어, 비교문학, 홀로코스트학 교수
△ 라즈 시걸. 미국 스톡턴대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학 부교수
△ 슈테파니 쉴러-슈피링고룸(Stefanie Schüler-Springorum). 독일 베를린기술대 반유대주의 연구센터 소장
△ 배리 트래시튼버그(Barry Trachtenberg). 미국 웨이크포리스트대 유대사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