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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冥王星, Pluto)! 생각할수록 참 기가 막힌 이름이다. 플루토는 로마 신화의 명계(冥界, 저승)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이다. 태양계 행성 중에서 가장 작고 희미하고 먼 곳에 있는 별에 붙은 이름 명왕성! 다가올 듯 멀어지는 이미지, 인간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얼음덩어리, 그렇게 범접하기 힘든 별이 명왕성이니, 명왕성은 죽음의 세계와 너무도 상통하지 않는가?
1930년 2월 18일 로웰천문대(Lowell Observatory)의 젊은 보조연구원 클라이드 톰보는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중 한 사진을 보며 톰보는 탄성을 질렀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한 별이 눈을 깜박이며 자신에게 윙크하는 것 같았다. 톰보는 그 사진을 꼭 껴안고 싶었다. 그러나 껴안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그는 필름 원판을 검토했다. 여러 사진에서 그 별은 보일 듯 말 듯한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그 별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성 X, 인류가 찾아낸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 나중에 명왕성이라 이름 붙은 바로 그 행성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톰보는 자신이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그것은 환영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톰보는 이 사실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돌아가신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평생 동안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별이었다. 명왕성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미 19세기에 천왕성의 궤도에 나타나는 미미한 흔적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새로운 행성의 정체는 몇 십 년 동안 오리무중이었다.
궁금해하는 사람들 앞에 선 톰보는 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도대체 자네 무슨 일인가? 왜 그리 안절부절못하고 있는가? 뭐 큰 실수라도 했는가?” 선배들의 채근을 받고서야 톰보는 겨우 입을 열었다. “로웰 선생님이 그토록 고대하시던 행성 X를 찾았습니다.” “정말인가? 어디 한번 보세.” 사람들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톰보가 보여주는 사진과 자료들을 보면서 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새로운 행성은 당시 11세 소녀 베네티아 버니의 제안에 따라 플루토(Pluto)라 불리게 되었다. 정말 이 별은 접근하기 힘든 태양계의 모퉁이에 있으니, 미지의 세계인 저승과 비슷하지 않는가. 더욱이 Pluto의 첫 두 글자 P와 L은 퍼시벌 로웰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새로운 행성의 이미지에도 적합하고, 로웰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기도 한 플루토가 결국 행성 X의 이름이 되었고, 한자로 번역하니 ‘명계의 왕’(염라대왕)이라는 뜻의 명왕(冥王)이 된 것이다.
클라이드 톰보는 명왕성만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혜성 하나와 성단 6개, 초은하단 하나, 소행성750개 이상을 발견했다. 그는 또 군사용 미사일을 우주선 로켓으로 활용하는 데도 공헌했으며, 미확인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 UFO)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톰보에겐 일반인들에게 없는 특별한 눈이 있었음이라. 그는 육체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도 대단히 밝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톰보는 1906년 2월 4일 미국 일리노이 주의 스트리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별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몽상가였다. 그는 삼촌의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을 관찰하면서 꿈같은 별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캔자스의 버뎃으로 이사한 후 그는 혼자 힘으로 망원경을 만들었다. 톰보는 새 망원경으로 목성과 화성을 관찰한 후 그림으로 그려서 로웰천문대에 보냈다. 그것이 그가 본격적으로 천문학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로웰천문대의 부름을 받은 톰보는 1929년부터 1945년까지 그곳에서 근무하게 된다.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로웰천문대를 세운 전설적인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 덕분이었다. 로웰은 189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스키아파렐리가 화성 표면에서 ‘운하’의 흔적을 발견한 뒤 천문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천문대를 만들어 행성을 연구하리라 결심하고,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태프(해발 2,210m)에 로웰천문대를 설립하였다. 그는 천왕성의 불규칙한 운동은 해왕성 외의 다른 행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행성 X’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안타깝게도 로웰은 천문대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지만, 15년 후 그의 예언대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것이다. 로웰의 영혼이 명왕성에 있어서 톰보의 사진에 찍히게 된 것은 아닐까?
명왕성을 발견함에 따라 톰보는 장학금을 받고 캔자스 대학을 졸업했으며, 1939년 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명왕성을 발견한 이듬해 영국 왕립천문학회는 톰보에게 잭슨-귈트 메달을 수여하여 그 공로를 치하했다. 1950년대 초에는 화이트샌드 미사일 시험발사장(White Sands Missile Range)에서 탄도 미사일을 추적하는 광학 추적 시스템을 구축했고, 1955년부터 1973년 퇴임할 때까지 뉴멕시코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97년 뉴멕시코의 라스크루서스에서 평생을 꿈꾸었던 새로운 우주로 갔다.
1992년 미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Space Administration, NASA)은 톰보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2003년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명왕성 탐사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톰보가 발견한 그 먼 곳의 명왕성을 직접 찾아가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톰보는 뛸 듯이 기뻤지만, 이미 연로한 몸이어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차피 명왕성 탐사선은 사람이 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명왕성은 지구보다 태양에서 39배나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거리가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현재 인간의 능력으로는 우주선의 속력으로도 10년을 날아야 한다.
톰보의 살아 있는 육신 대신 그를 화장한 재의 일부만이 우주를 날아서 명왕성을 향해 가고 있다. 톰보의 유골은 2006년 1월 19일 발사된 무인우주선 뉴 허라이즌스(New Horizons)에 실려서, 2015년 7월경 명왕성에 도착하게 된다. 그의 재를 담은 상자에는 그의 비문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글귀가 함께했다. “미국인 클라이드 톰보 여기에 눕다. 그는 명왕성과 태양계의 세 번째 영역을 발견했다. 아델과 무론의 자식이었으며, 패트리샤의 남편이었고, 안네트와 앨든의 아버지였다. 천문학자이자 선생이자 익살꾼이자 우리의 친구, 클라이드 W. 톰보(1906~1997).”
그 후에도 오랫동안 명왕성은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으로 굳건히 자리매김되었다. 그러나 냉혹한 운명이 결국 명왕성을 찾아갔다.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은 명왕성을 태양계의 행성 가족에서 제외하여 ‘소행성’ 등급으로 강등시키고 이름을 ‘소행성134340’으로 바꾸었다. 명왕성의 지위 강등은 해왕성의 궤도 바깥쪽에서 다수의 소천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또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는 소행성대가 있어, 많은 소행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명왕성 같은 소행성이 앞으로도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자 외에는 명왕성을 ‘소행성134340’이라는 어려운 이름으로 부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명왕성은, 그 독특한 이름으로 인하여 더 더욱이 영원한 명왕성인 것이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의 평균 거리는 약 40AU(1AU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이다. 그러나 명왕성의 공전 궤도가 찌그러져 있어, 가장 가까울 때는 약 30AU, 가장 멀 때는 약 50AU가 된다. 달리 표현하면 명왕성은 최고 74억 킬로미터의 거리에서 248년이 걸려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가까워질 때는 해왕성보다 안쪽의 궤도로 들어올 때도 있지만, 두 행성의 궤도는 서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충돌하는 일은 없다. 명왕성에는 위성 카론과 히드라와 닉스가 있다. 카론은 신화 속 스틱스 강에서 저승으로 가는 배를 운행하는 뱃사공이다. 히드라는 그리스 신화의 티폰과 에키드나에게서 태어난 괴물이며, 닉스는 태초의 밤의 여신이다. 천체에 이렇게 신의 이름이 부여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것이다. 신들이 인간의 세계를 떠났다면 저 광대한 우주에 자리를 잡지 않았겠는가?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었지만(별에도 계급이 있다는 게 참 재미있지 않은가), 명왕성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작은 별이긴 하지만 명왕성 또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태양계의 가족임에 틀림없다. 키가 작다고, 먼 곳에서 산다고, 가족의 지위를 박탈할 수는 없다. 톰보에게 윙크했듯이 명왕성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윙크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윙크를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톰보의 재를 싣고 뉴 허라이즌스는 우주를 날아가고 있다.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우주선은 날아간다. 톰보의 재를 싣고, 꿈을 싣고, 달리고 달린다. 2015년 7월, 드디어 뉴 허라이즌스가 명왕성에 도착하면, 우리는 명왕성의 얼음장 같은 피부를 훨씬 가까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한시도 쉬지 않는 우주선, 그 지치지 않는 꿈,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1930년 2월 18일, 그 이전에도 명왕성은 거기 있었다. 거기 멀리서 태양을 돌고 있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그 별을 우리 인간의 눈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그 별을 최초로 발견한 톰보의 안경 낀 눈을 생각한다. 그 두꺼운 안경 속에 얼마나 밝은 눈이 있었던가, 얼마나 밝은 마음의 눈이 있었던가. 그의 마음은 지금 그의 재와 함께 신나게 명왕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거기 우주를 향한 우리의 꿈도 실려 있으니,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오늘 밤만이라도 명왕성을 꿈꾸어 봄직하다. “우주선에 계시는 톰보 아저씨, 질문 있어요. 혹시UFO의 정체는 확인하셨나요?”
우주에 관한 책은 아무래도 신간이어야 하리라. 우주에 관한 지식은 새로운 탐사가 성사됨에 따라 업그레이드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충섭의 <동영상으로 보는 우주의 발견>은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기 이전에 나온 책이니 신간이라 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우주에 관한 지식을 매우 친절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신화 시대부터 고전 시대를 지나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있으며, 현대의 우주에 관한 여러 이론, 그리고 우주 탐사에 의해 밝혀진 다양한 정보를 거의 망라했다.
미즈타니 히토시가 감수한 <탐사선이 밝혀낸 태양계의 모든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태양계의 다양한 얼굴을 선보인다. 이 책의 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보면 수성과 금성과 지구와 화성을 꿈꾸게 된다. 거대한 목성과 토성의 위엄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까지 태양계의 행성들을 가장 가까이서 찍은 사진들이 내게는 우주를 명료하게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나를 더욱 신비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듯하다. 이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에로틱하여 책을 보는 마음 마냥 황홀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진에 비해 내용은 좀 빈약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