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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교수가 쓴 무쇠의 역사] (28) 수로부인 (상) |
미모 빼어나 납치사건 휘말려 |
신라에는 미인이 많았다. 특히 수로부인은 빼어난 미모로 여러 차례 유괴사건에 휘말림으로써 삼국유사에까지 오른 유명한 미인이다.
남편은 순정공으로 신라 제33대 성덕왕(702~737 재위) 때 강릉태수였다. 당시 ‘하슬라’라고 불린 강릉과 명주군 일대는 신라의 북녘 변방으로 장정 2000명을 동원해 국경에 긴 성을 쌓았다고 하니(721년), 순정공은 산성 축조 공사의 총지휘관을 겸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지역은 본래 예국 땅이었으며, 철국이라고도 불렸다’라는 기술이 있다. 이 고장에서 무쇠가 많이 산출됐던 것이다. 또 이 책에는 인근의 삼척과 양양에서도 철광석이 나온다고 쓰여 있다.
강릉태수 순정공은 이 무쇠터에서 제철을 감독· 독려한 책임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지닌 지방 장관이었지만 아내에겐 약했던 것 같다. 남편과 함께 임지로 가는 길에 이 미모의 아내는 외간 남자들에게 여러 차례 납치됐다가 되돌아오곤 했지만 오히려 당당한 그녀에게 순정공은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하루는 바닷가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데 용이 들이닥쳐 아내를 훔쳐 가 버렸다. 순정공이 허둥대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 했습니다. 마을 백성들을 모아 물가 언덕을 치며 노래를 부르도록 하시오. 용도 부인을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용은 바다 속에서 부인을 받들고 나왔다. 이때 부른 노래를 ‘해가’(海歌)라 한다. “거북아 거북아, 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리. 만약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
자, 이때 언덕을 지팡이로 치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언덕 또는 둑의 신라말이 ‘도게’, ‘도가’이다. 이는 ‘다오’라는 뜻의 신라말 ‘도게’, ‘도가’와 소리가 같다. 요즘의 경상도 사투리 ‘밥 도가’도 ‘밥 다오’의 뜻이다.
마을 사람들은 언덕, 즉 도게, 도가를 지팡이로 치면서 수로부인을 ‘도게!’, ‘도가!’, 즉 ‘다오!’라고 외쳤던 것이다.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의 옛말 이름이 ‘예도게’였다는 사실을 여기서 떠올려 주기 바란다.(포스코신문 2003년 10월 23일자 ‘무쇠의 역사’ 참조)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의 임지 강릉은 원래 예국의 영토였고, 석탈해, 즉 예도게는 이 예국 출신자였다. 당시 예국은 신라에 평정되어 나라를 잃은 지 오래된 상태였으나, 수준 높은 제철기술을 지닌 ‘철국’의 백성이었다는 자존심은 잃지 않고 있어서 그들은 순정공의 부임에 저항, 동해 앞바다에 배를 띄우고 부인 납치극을 벌인 것이다. 신라인들은 항해술에 강했던 예 사람을 흔히 ‘용’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강 언덕, 즉 도게를 지팡이로 친 것은 신라왕까지 지낸 그들의 조상 예도게를 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수로부인을 내놓지 않는 한 너희 조상 예도게도 계속 내리침을 받을 것이라는 엄포다. 그런데 이 미인을 왜 ‘수로’라 불렀을까.
강릉태수였던 남편을 따라나선 부임길이 동해 바닷가의 ‘물길’이었으므로 물길이라는 뜻의 한자 ‘수로’(水路)로 이름 지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이름에는 좀 더 깊은 사연이 있다. 이야기는 1세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일행이 처음 김해를 차지하려 했을 때, 그 곳 사람들로 하여금 구지봉이라는 언덕에 올라가 부르게 한 노래가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라. 만약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대왕’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에 시킨 대로 했더니 하늘에서 자줏빛 줄이 드리워졌고, 그 줄에 매달린 금합을 열어 보니 황금 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황금 알은 열두 시간 후에 각기 잘생긴 어린이가 됐고, 열흘 후엔 9척의 장사가 됐다. 그 중의 한 명이 가락국, 즉 금관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요, 나머지 다섯 장사도 각각 다섯 가야국의 왕이 됐다….
이것이 바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려 있는 개국신화다.묘하게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일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김수로왕과 수로부인의 이름 ‘수로’가 같다는 점. 둘째, 김수로왕이 나타나기 전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부르게 한 노래와, 수로부인이 납치됐을 때 부르게 한 노래가 똑같이 거북을 부르는 노래라는 점이다. ‘수로’는 가장 높은 사람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한자 ‘수로’(首露)를 이두로 풀면 ‘말로’(‘몰로’음에 가까웠다)라 읽힌다. ‘말로’란 ‘우두머리’, ‘으뜸인 사람’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한편 물은 신라말로 ‘몰’이었다. 따라서 한자 ‘수로’도 이두로 ‘몰로’라 읽힌다. 수로부인은 아름답기로 으뜸가는 여인이라는 뜻으로 ‘말로’라 불렸을 것인데, 남편을 따라 동해안 ‘물길’을 가다가 유괴되는 등 사건이 많았던 탓으로 ‘말로’와 흡사한 소리인 ‘몰로’, 즉 ‘물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닐까.
수로왕과 관련이 있는 거북 노래의 가사를 약간 바꾸어 부인을 구출하는 ‘해가’를 지어 부르게 한 것도 수로왕과 수로부인의 이름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로부인은 김수로왕의 후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지체 높은 신라 미인을 다음 호에서 좀 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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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래저래 잘나면 탈 난다고요^^
아아! 노래를 부를 때 지팡이를 치는 이유가 있었군요! 너무 신기하네요 ㅎㅎ
쇠와 수로부인이 교모하게 연결된다는 것도 재밌어요 ㅎㅎ
그런데 김종호님, 이영희 교수의 이 글, [중] [하] 도 좀 부탁합니다^^
부인이 저리 미인이니 남편 순정공도 참 힘들었겠어요~
"신라에는 미인이 많았다. 특히 수로부인은 빼어난 미모로 여러 차례 유괴사건에 휘말림으로써 삼국유사에까지 오른 유명한 미인이다." 아~~지금의 경상도 지역의 대구에 역사적으로도 미인이 많은 이유가 있었네요. 재미있는 자료 감사합니다.
수로왕과 관련이 있는 거북 노래의 가사를 약간 바꾸어 부인을 구출하는 ‘해가’를 지어 부르게 한 것도 수로왕과 수로부인의 이름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로부인은 김수로왕의 후손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수로라는 이름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같아요ㅎㅎ
'수로부인은 김수로왕의 후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까 읽었던 자료에서도 수로부인은 가야의 후손일 것이다라고 보더라고요^^ 이름도 그렇고 구지가 = 해가 가 비슷 한것도 그렇고 연관성이 큰 것 같습니다.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과연 잘난 사람은 세상이 가만 놔두지 않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