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12-18 09:06:29, 조회 : 578, 추천 : 207 |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 B. Yeats)의 시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가 불타오르는 저녁놀의 꿈틀거리는 색조 가운데에서 들려온다.
Though leaves are many, the root is one ;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오직 하나 ; Through all the lying of my youth 내 젊음의 거짓 많던 그 시절 I swayed my leaves and flowers in the sun ; 그 잎사귀와 꽃들을 햇빛에 흔들어, Now I may wither into the truth. 나 이제 시들어 진리가 되리.
우리는 차이를 만들어가는 차이이다. 지금 이 순간은 조금 전의 순간과는 다르다. 이 <다름,Difference>은 불편하거나, 어색하거나,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움, 신기함, 놀라움, 신선함이 되기도 한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달라져 간다. 세상도,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젊었을 때는 이 차이를 <남과는 달라보이는 나의 뛰어남>이라 생각한다. 내 젊음의 거짓 많던 그 시절은 자아를 내세우며, 자아를 돋보일려고 차이를 일부러 만들어 가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나를 어디론가 이끌어가는 내 안의 그 충동을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한 것'이라고 해두자. 젊음은 질풍과 노도처럼 사나울 수도 있고, 거짓과 허세일 수도 있고, 기대와 조바심에 스스로 타버리는 마른 장작일 수도 있다. 어째튼 소쩍새는 밤새 울었고, 가슴속 먹구름을 가르며 천둥이 치고 번개도 번쩍였다. 매순간의 차이를 만들어 가던 차이가 결국은 우리를 늙게 만든다. 늙음은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왔던 길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내 인생의 잎사귀와 꽃들을 햇빛 속에 흔들어 본다. 텅 빈 오후의 햇빛 속에서 펼쳐진 "지금 여기"- 반짝이며 바스라질 것 같은 공간, 그 찰라의 쉴 공간을 발견한다. 문득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된다. 언제 돌아가도 나를 따뜻하게 맞이 해줄 그 어떤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 이제는 담담해진 반야모(般若母)가 되는 누나에게로 돌아온다. 누나는 나의 마음의 고향이며 공성(空性)이며 지혜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나 이제 시들어 진리가 된다. 나는 뿌리로 돌아왔다. 나는 마음의 어머니에게로 돌아왔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젊은이여,무엇을 찾아서 그리도 헤매었던가 ? 괴테(Goethe)는 일생동안 누나에게서 도망가, 저 밖에서 누나를 찾다가 누나에게로 돌아오고야만 방랑자의 삶이었다. 그리고는 편안을 찾은 노년은 고전주의에 안주하였다.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오는가, 젊은 베르테르는 시들어져서 진리가 되었는가. 시든다는 것은 진리이기도 하지만 시들어져야만 진리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국화꽃을 바라보라. 그 국화도 곧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바라보는 자를 다시 바라보라. <봄이 없이 봄>만이 찰나 찰나의 다름을 알아차리며 깨어있다. 그것은 항상 신선한 생명의 약동(elan vital)이다. 지혜는 시간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고, 항상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누나에게서 떠난 적이 없듯이. 이것이 찰나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