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보다 훨씬 넘치는 이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우리의 역사는 발전과 퇴보, 자유와 속박의 반복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진보하려면 수반되기 마련인 퇴보나 부작용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제정러시아 말기니까 오래된 시절에 브나로드 운동은 숭고하고도 지식인들의 적극적 사회적 계몽운동으로 유명한 용어인데요, 그 내용을 백과서전에서 캡처해 왔습니다. 브나로드 운동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어서 일제시대 지식청년들의 농촌계몽운동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브나로드는 성공과 부작용을 동시에 갖게 되었으니 러시아 왕정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러시아의 사회주의 체제 확립을 위한 혁명의 기본을 마련했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브나로드 대상이었던 민중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도 모순적 사실입니다.
서구 민주주의 발달의 오랜 역사도 결국 민중들과 왕족, 귀족간의 오랜 대립과 투쟁 속에서 결국 민중들의 승리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 사회사상가였던 홍사중 원로의 유명 저서 '근대시민사회사상사'를 보면 극도의 악랄 왕정들이 존재했기에 오히려 민중의 분노가 혁명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술해 놓고는 합니다.
악랄 왕정이 종식되면 그 사죄로 민중들을 위한 예전과 다른 우호정책들이 나오게 되어있고, 이렇게 확보된 자유를 토대로 더 높은 소리를 내게 되어있고, 그러면 지배집단에서 다시 꼬투리 억압 정책을 내세우게 되고... 이런 식으로 지배와 피지배 집단 간의 충돌과 화해, 억합과 해방 등등의 과정들은 사회발달상 불가피하게 됩니다.
이 아침부터 거창한 역사사회학의 일면을 거론하면서 서두가 길었는데요,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바로 뇌의 발달, 특히 자폐아이들의 뇌의 발달의 정면과 이면입니다. 발달이라는 것은 결코 늘 순조롭지만은 않으며 발달은 있으면 그에 따른 댓가성 부작용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도 영어와 같은 제2외국어를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머리지끈지끈한 스트레스와 골치덩이 과제들과 씨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대량으로 뇌에 보내고 뇌가 새로운 뉴런시냅스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통작업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정보가 너무 충격적일 때, 수 년의 반복자극을 통해서 굵어지는 정도의 뇌시냅스망이 일시에 생기는 것이 '트라우마'입니다. '중독성'이란 것도 한 두번의 즐거운 경험으로 언제든 회귀할 수 있는 굵기의 뇌신경망이 생겨버린 것이라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경기 발작 간질' 등의 증세가 자폐증에 흔한 것은 뇌신경망 자체 생성이 잘 되지않는 유전변이 혹은 유전적 자폐증의 원인인 만큼 자폐증은 확실히 연결망은 약하고 숫자도 현저히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반성장하는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뇌신경망 연결상태입니다.
위의 그림설명에서 보듯이 자폐증의 뇌신경 연결망은 대체적으로 많이 약하고 특정감각 신경망은 지나치게 트라우마 수준으로 발달해 있다보니 이를 자극해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정면과 이면 속에 발달과 부작용이 함께 존재하듯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자폐아이들의 뇌는 나름의 발달이 경기발작 간질 등의 형태를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뉴런 자체가 약하고 자그마한 자극에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기를 예방하려면 결론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발달하려면 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합니다.
요즘 완이가 너무 빠르게 발달하게 되면서 부작용들이 큼직막한 수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호기심이 커지면서 바깥세상을 향한 탈출을 자꾸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슈퍼마켓 등도 열심히 데리고 가는데 에스컬레이터를 거의 타본 적이 없으니 겁도 내고 그 자세가 생전 처음 문명시대로 들어온 모습같은 수준입니다.
어제는 2층 테라스 풀장에 풀어놓고 신나게 놀게 했더니 자기방으로 들어와서 생전 열 줄 모르던 잠긴 문을 열고는 나체상태로 뛰쳐나가버렸습니다. 뒤늦게 없어진 것을 알고나서 추적하려니 경찰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소근육 조작에 자신감이 생기니 세상을 향한 문열기를 과감하게합니다.
자신이 나체라던지 어디로 가야할 지 등에 대한 상황인지는 있을 턱이 없는데 일단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그대로 돌발이 되어버립니다. 목격자의 말을 들으니 장경리해수욕장으로 갔다하니 혹시라도 바닷물에 들어갔을새라 심장이 미칠듯이 출렁댑니다.
다행히 집 아래쪽 넓은 부지 펜션으로 뛰쳐들어가 거기 주인이 옷걸쳐주고 보호해주고 있어서 잘 인계해왔지만 어제의 충격이 오래갑니다. 어제의 사건으로 완이에 대한 대처를 다시 단단히 해야 하지만 뇌가 발달해 가는 것을 무작정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아주 어릴 때 바깥세상 경험이 적은 경우, 바깥세상에의 호기심은 불가피한 것이라 덩치가 커지면 통제불능 수준을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완이처럼 3D시각이 잘 가동되는 아이일수록 더욱 불가피한 상황이 됩니다.
가두어놓고 살기, 어찌보면 부모님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가 돌봐야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가두어놓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요즘 완이와 리틀준이를 보며 역사라는 것에 숨겨진 정면과 이면, 발달과 발달부작용의 극단측면은 뇌와 똑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완이처럼 선천적인 독립성을 지향하는 성향의 아이들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10년이나 잠재우고 있는 성향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은 대환영, 그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처리해가야 할지 머리를 써야만 합니다.
다시 완이가족들에게 돌아가면 은둔생활이 불가피하기에 바깥세상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빨리 습득해야만 하는데... 아직 그 단계는 못되고... 이런 모순된 모습 속에서 발달이란 과정은 놓치고 부작용 방지차원의 갇힘만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3-4살 때 풀어주었어야 할 숙제들을 10살을 넘겨버린 이 싯점까지 그대로 안고 있었으니 문명과 야생 사이에게 완이의 행보가 어찌될 지... 진보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열 발자욱의 진보와 한 발자욱의 퇴보, 그렇게 반복되기를 바래봅니다.
첫댓글 아, 그림이도 밖을 좋아해서 집 안으로 안 들어올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