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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웅장한 그림들이 멋집니다 차분하게 컴퓨터로 열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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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대한불교 낙산사를 찾아서 ~ 동해바다와 의상대를 배경으로 연속기행,
함께한사람들: 한문희, 이성만, 장병수, 최청자, 최삼례, 최동옥, 이수복, 김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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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관동팔경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 천하제일 명소 연속기행 STORY- 03, 2025년 11월 18일 대림산악회, 기록: 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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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洛山寺)는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영동 지방의 빼어난 절경을 뜻하는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671년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 복원과 화재를 반복하여 겪었다. 2005년 산불의 피해를 보아 여러 문화재가 훼손되기도 하였다. 절(寺) 내에 칠층 석탑(보물 499호), 건 칠 관음보살 좌상(보물 1362호), 해수 관음 공중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일괄(보물 1723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2005년 화재로 보물 479호였던 낙산사 동종이 융해,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화재 이후 낙산사는 몇 년에 걸쳐 복원 공사를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양양군의 대표적 관광 명소이기도 하며, 지역 사회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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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昔 義湘法師始自唐来還 聞大悲真身住此海邊崛内 故因名洛山 盖西域寳陁洛伽山 옛날에 의상법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대비(관음보살)의 진신(사리)이 이 해변의 굴 속에 있다고 들었기에 이름을 낙산이라고 지었다. 이는 서역에 보타락가산이 있기 때문이다. ” —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 낙산이 대성 관음 정취 조신, (위키백과)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이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굴 안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굴속에 들어가 예불하던 중 관음보살이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 주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낙산사’라 하였다 한다. 858년 신라 헌안왕 2년 범일 대사가 중창하였으나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1467년 조선 세조는 금강산을 둘러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낙산사가 몽골 전란으로 쇠락한 채 방치된 것을 보고 중창을 명령하였다. 중창은 학열(學悅)이 책임지었고, 칠층 석탑이 이때 지어졌다. 1469년(예종 1년) 정희왕후가 세조를 위해 발원하여 범종을 만들었다. 건칠 관음보살상도 이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이르러 학열이 노쇠하게 되자 절의 운영권을 두고 다툼이 있었다. 1477년 강릉대 도호부사는 성종의 윤허를 받고 소송에 대해 입안을 내려 수도하는 수행승이 절의 운영권을 갖도록 하였다. 1489년 3월(음) 산불로 불에 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화재를 겪었다. 다시 1624년 인조 원년, 9년(1631)과 21년(1643) 재차 중건이 있었으나 1777년 정조 원년 화재를 당하여 다음 해 다시 중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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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형화재, 6·25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3년에 다시 지었지만, 2005년 4월 5일 23시 53분경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4월 5일 아침 산림청과 대한민국 국군은 헬기 10여 대를 긴급 투입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산불은 아침 7시경 바람을 타고 낙산해수욕장까지 번졌고 오전 11시 20분경 큰불이 거의 잡힌 듯 보여 주민들은 속속 집으로 돌아와 가재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진화 작업을 위해 투입됐던 헬기는 고성 산불 진화를 위해 기수를 돌린다. 하지만 잦아지던 불길은 오후 1시경 강풍을 타고 되살아났으며 헬기도 양양으로 방향을 돌리고. 오후 2시 30분 양양군은 재난 경보를 발령했지만 15시 30분 낙산사에 산불이 확산하여 방화선이 무너졌고 산불이 일어난 지 불과 1시간 만에 낙산사 대부분의 전각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4월 7일 양양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다. 이 화재로 21채의 건물이 불타고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던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면서 보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산불 이후 동종은 복원되었지만 다시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보물 제479호는 결번으로 남아 있다. 낙산사 동종은 2006년 9월 29일 새로 주조되어 10월 13일 충북 진천에서 시험 타종을 거친 후, 10월 16일 낙산사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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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낙산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3종, 사적 1종, 명승 1종, 강원특별자치도의 유형 문화유산 3종, 강원특별자치도의 문화재자료 1종이 있다. 2005년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범종(구 보물 제479호)은 조선 예종이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조성한 동종으로 조각 수법과 전체적인 모양이 아름다워 당대 한국 종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혔지만 아쉽게도 화재로 녹아내려 옛 모습을 잃고 말았다.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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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 천하제일 명소 연속기행 STORY-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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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긍정의 하루입니다.
2025~26년 건강 무탈 긍정의 시간들 되시옵소서!..
추천과 댓글 남겨주신다면 福 받는 답니다 ^(^ ,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백두대간종주대,
명산종주와 한문희총대장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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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역사이며 역사는 기록에서 시작됩니다.
댓글 하나 기록원이 힘이 난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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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희망 넘치는 긍정의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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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제4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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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낙산사 (洛山寺)는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영동 지방의 빼어난 절경을 뜻하는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671년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 복원과 화재를 반복하여 겪었다.
2005년 대형산불의 피해를 보아 여러 문화재가 훼손되기도 하였다.
절(寺) 내에 칠층 석탑(보물 499호), 건 칠 관음보살 좌상(보물 1362호),
해수 관음 공중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일괄(보물 1723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2005년 화재로 보물 479호였던 낙산사 동종이 융해,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화재 이후 낙산사는 몇 년에 걸쳐 복원 공사를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양양군의 대표적 관광 명소이기도 하며, 지역 사회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화재를 겪었다.
다시 1624년 인조 원년, 9년(1631)과 21년(1643) 재차 중건이 있었으나
1777년 정조 원년 화재를 당하여 다음 해 다시 중건하였다.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면서 보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산불 이후 동종은 복원되었지만 다시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보물 제479호는 결번으로 남아 있다.
낙산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3종, 사적 1종, 명승 1종, 강원특별자치도의 유형 문화유산 3종, 강원특별자치도의 문화재자료 1종이 있다.
2005년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범종(구 보물 제479호)은 조선 예종이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조성한 동종으로 조각 수법과 전체적인 모양이 아름다워
당대 한국 종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혔지만 아쉽게도 화재로 녹아내려 옛 모습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