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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역대하-09 불가역적인 운명(역대하 33장 1-9절)
성경말씀은 역대하서 33장 1절에서 9절까지 봉독합니다.
[역대하 33장]
1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 년을 치리하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3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6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한 일 곧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9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오늘 낮시간에 조금 진도가 미치지 못했죠.
그래서 소급해서 31장부터 보겠습니다.
31장에 보면, 히스기야왕의 종교개혁 중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역대하 31장]
1 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주상’ 하는 것은 기둥같은 것을 세워 둔거예요.
오벨리스크라고도 하는데, 사각 돌기둥을 올라가면서 조금씩 가늘어져서 끝에 모아지게 했는데 그런 것이 오벨리스크인데, 그런 기둥을 세웠다 해서 주상하는데,
이런 것들이 다 좋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위를 가르친다 그런 말도 있고,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은 남자의 남근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도 악평을 해요.
어떻든 그런 것을 괜히 상징물을 세우는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야.
..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그래서 다시 말하면 그 유월절이라는 명절을 1주일간 지키고, 지켜보니까 오랫만에 했는데 너무 은혜가 넘치고 해서 한 주간 더 지켰다니까..
한 주간 더 지키고 돌아가기 전에 유다 일경 전체를 순회하면서 너절한 우상숭배했던 흔적을 완전히 다 숙청하고 그리고 각기 본성으로 돌아갔다. 그런 얘기예요.
그리고 31장 2절 이하에는,
2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우리도 여기 보면 청소하는 데 반차가 있고, 주방에도 반차가 있고, 안내하는 것도 반차가 있고..
반열에 차서를 부여해가지고 순서대로 자기가 맡은 기간에 성실하게 다 하게..
이런 것도 우리가 관리부가 정하는 어떤 반차라든지 있으면 성도들이 거기에 자기 반차가 언제인가 살펴서 성실하게 해야 됩니다.
조그만한 일부터..
그런데 여기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다윗 시대에로의 회귀, 다윗 시대에로의 복원,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나라가 가장 융성하고 번창했는데, 그 융성하고 번창했던 때의 그 융성과 번창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했을 때 이렇게 번창했던 것이 아니냐?
이런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역대기라는 성경을 쓰는 분은 그 시대로 회복 내지 복원을 한다는 그런 자세예요.
그래서 ‘봐라. 하나님께서 다윗처럼 하면 칭찬하셨고, 다윗시대처럼 안 하면 늘 책망 받았고, 다윗의 길로 갔을 때는 바른 길로 갔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항상 잘못되었다.’
이런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 역대기 기자가..
그래서 범사에 다윗시대로의 회복과 회귀와 어떤 복원 회복..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31장 3절에,
3 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4 또 예루살렘에 거한 백성을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응식을 주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자기의 생업이나 산업을 위한 활동이 없기 때문에 일정한 음식이 결정되어 있는데, 이것을 다시 회복합니다.
.. 응식을 주어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한지라
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 왔으며
이런 것을 지금도 우리가 그 정신을 본받자해서 여러분 세례받을 때 우리 장로교회의 헌금의 표준을 자원해서 드리는 것 말고, 자원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드리는 의무헌금이 십일조와 헌물이예요.
‘십일조와 헌물’ 할 때, 그 헌물이 뭐냐 하면 첫열매입니다. 첫열매..
모든 것의 첫열매를 헌물이라고 했어요.
십일조와 헌물..
감사헌금은 자원헌금이예요. 선교헌금도 자원헌금입니다.
십일조와 첫열매 외에 우리가 또 하나의 의무헌금을 교회가 정한게 있어요.
의무헌금 중에 교회가 정한 것은 우리 보통 주일헌금이라 하는 건데, 이것은 구약시대로 하면 성전세처럼 한번 1년에 연 3차 세번 명절 지킬 때, 그러니까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그 세 절기에 올 때마다 반세겔을 내는 거예요. 반세겔..
반세겔 하면 두 데나리온인데, 1년에 내는게 세번 내면 6데나리온이 되겠죠.
장정의 6일 품삯쯤 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주일 헌금을 우리가 어떤 데에는 주정헌금이다 이렇게도 하는데, 똑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우리가 건물을 사용하다보면 전기세라든지 유류세, 유지 관리 영선 보수 이런 것..
하여튼 건물과 시설에 속한 것을, 또 노후되면 사실 조금씩 적치를 해야 돼요.
적치를 해서 이 주일헌금 하던 이것은 사실상 관리부에 주어져서 관리부가 사실 그 한도내에서 하고 남아가지고 건물이나 시설의 감가삼각비를 매년 저축해가지고 또 예를 들어 피아노가 낡았으면 감가삼각비 된것으로 다시 구입할 수 있어요.
어떻든 모든 시설 설비 이런 것을 관리하는데, 필요하도록 그렇게 쓰는 거죠. 사실은..
그런데 우리는 들어오는 계정은 여러개인데, 전부 한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쓸 때는 제멋대로 쓰니까..
지켜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십일조 하는 것은 원래는 생업을 따로 갖지 않는 사역자들..
예를 들면 목사 전도사 선교사 혹은 교회 관리하시는 분, 그 다음에 차량운전하시는 분..
하여튼 하나님의 교회의 일 이외에 다른 어떤 직업을 갖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인건비가 우선적으로 되고,
그리고 만약에 남으면 그 남는 것을 가지고, 제가 볼 때는 십일조 계정 중에서 많이 남으면 이것은 반드시 가난한 교회에 돌려야 돼요. 작은 교회에..
교역자 생활비 주지 못하는 교회..
사실은 십일조 들어온 것을 가지고 우리가 시설이나 넓히고 땅이나 사고 할게 아니라고..
잘 안 되고 있지만 언젠가부터는 제가 볼 때 그렇게 해야 복을 받지 않겠나..
우리 교회가 십일조로 들어오는 것은 본교역자들 생활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다 어려운 교회 교역자들에게 돌아가도록..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 한분은 이런 얘기를 해요.
어느 한 교회에 가서 선 보러 갔는데, 참 웃기는 거예요.
그런게 지금 있거든요.
목회자가 선 보여주러 갔는지 보러 갔는지 가요. 하여튼..
가서 설교를 하면서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당회가 그냥 결정하시고 가라 하더랍니다.
붙들려서 ‘결정하는 것은 좋은데, 조건이 하나 있다.’ 그랬대요.
그 조건이 뭐냐하면 우리 성도들을 보고는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고 맨날 큰소리 쳐놓고, 우리 교회는 왜 십일조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 교회가 십일조를 따로 떼겠다..
그렇게 약속을 하면 내가 이 교회에 부임 하겠다. 그랬대요.
그래서 장로님 한분이 제일 연장자 장로님이 묻더래요.
십일조 떼어서 뭘 하게요? 그렇게 묻더래요.
무엇을 하든지 알 것 없고 떼어서 따로 좋은 일에 쓸려고 하니까 할 수 있겠나? 하니까 할 수는 있겠는데, 뭔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요.
다른 데에 목적이 있지 않고, 작은 교회 우리 교회보다 어려워서 교역자가 생활비를 받지 못하는 그런 교회을 도와주는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장로님이 들어보니까 좋은 일인데 얼마든지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했는데, 그 목사님이 그 교회를 사임하고 나온지 오래되었고 교역자가 몇번 바꼈는데도 지켜지고 있다는 거야.
지켜지고 있으면서 그 지역에서 다른 모든 교회가 안 되는데, 자꾸 외축되고 쭈그러지는데, 그 교회가 십일조를 떼어가지고 어려운 교회 교역자, 생활비도 주지 못하는 작은 교회를 돕는 그 일을 계속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지금도 다른 교회보다도 복을 받게 되고, 교회가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교회가..
그래서 우리 교회도 요즈음 빚 갚는데 무슨 말 하기 어렵지만, 빨리 갚고 딴데 아껴쓰고, 우리 편의에는 아껴서 쓰고, 빨리 빨리 그 빚을 다 갚으면 우리 재정 정책을 멋지게 소문나게 아름답게 했으면 좋겠다...
여러분 지금 전주에 가면 안디옥 교회라고 깡통교회라는 교회가 있어요.
왜 깡통 교회냐? 사실은 깡통이 아니고, 옛날에 군부대 콘센트 함석을 가지고 지붕 덮은 것 있잖아요.
예배당이 그런 거야.
교육관은 대형 빌딩으로 지어놓고 예배당은 그렇게 초라하게 했는데, 그게 참 선전 효과가 대단했던 가봐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교회는 교회 총 예산의 60% 이상을 선교비로 쓰는 거야.
그래서 소문이 나니까 하여튼 그 교회 재정이 가장 바람직하게 아름답게 정말 하나님 기뻐하실만한 뜻에 우리가 헌금한게 제대로 쓰여지는 교회다. 하고 소문이 나니까 그 교회가 지금 급속히 부흥되어가지고 지금 4-5천명 모이는 것 같아요.
전주에 유명한 안디옥 교회라는 교회인데, 죄송합니다만 은퇴하신 목사님이라서 흠이 아닐 거라 싶어서 내가 말씀드리는데, 그 전주 안디옥 교회 이동휘 목사님은 설교를 되게 못하거든요.
설교 그렇게 못하는 것도 기적일거야. 진짜입니다.
말도 버벅대고 내용도 별로 없고 진짜 설교 잘 하시는 분이 아닌데, 그 교회가 장로님과 함께 재정정책을 멋지게 세운 거야.
그리고 그 교회는 교회 예산에서 아이들 과자부스러기 사주는 것은 일절 영원히 안 됩니다.
교회 재정을 가지고 애들 과자는 사주는 것은 일절 하지 않고, 정말 아름답게 쓴다는 소문이 나니까 사람들마다 정말 똑바른 신앙생활하고 똑바른 재정이 집행되는 그런 곳에 가서 신앙생활 하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거예요.
여러분 이동휘 목사님 인터넷으로 설교 한번 들어보세요.
진짜 내용도 없고 말솜씨도 없고, 우리 창원극동방송에서 초청했거든요. 하도 유명하니까..
그럼에도 그 교회가 그렇게 성장하는 거예요.
그렇게 볼 때 목회자가 설교를 잘 하면 참 좋겠습니다만 제가 한국에 설교 잘 해서 부흥된 그런 교회 몇교회 압니다.
설교를 내가 들어봐도 참 저런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 하고 싶다할 정도로 잘 하는 분이 몇분 있습니다.
그래서 부흥된 교회가 있습니다.
반면에 설교 되게 못하지만 일반 성도가 너무 멋진 거예요.
성도가 너무 너무 멋진 성도가 많아.
그래서 부흥되는 교회도 있고, 어떤 교회는 장로님들이 아까 얘기하던 재정 정책에 대해서 멋진 계획을 세워서 소문이 나는 거야.
그래서 부흥 되는 거죠.
여러분 지금 현역 목회자인데, 흉을 봐도 그 사람은 흉이 안 돼.
여러분 인천에 주안교회 제가 두번씩이나 집회를 갔다 왔는데, 주안교회 나겸일 목사 누가 설교 잘 한다고 하겠어요?
아무도 나겸일 목사 설교 잘 한다는 말 안합니다.
본교회 교인도 안 하고 밖에서도 안해..
그렇지만 그 교회가 성장을 하는데, 성도들 중에 전도를 한 권사님이 1만명을 한 분이 있는 거야.
그런 분이 한두분이 아니고 몇명 돼요.
그분들 중에 전도하는 것 들어보니까 보통 사람 전도하는 것 보다 한두가지를 더 해요.
예를 들면 병원전도를 많이 가는데, 병원전도가 제일 쉽다는 거야.
병원전도 가면 아프고 귀찮게 하고 짜증나지 않겠나 싶어도, 짜증나지 않게 하는 것을 연구한다는 거야.
그래서 찾아갈 때 어디가 안 좋은지 다 알아본 다음에 환자를 찾아갈 때 속이 시원하게 배를 사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어요. 배를 사가는 것은..
이 권사님은 배를 살뿐 아니라 강판을 가지고 가는 거야.
그래서 배에 마음이 녹은 것이 아니라 강판에 마음이 녹아 버렸어.
그래서 그런 남이 하는 것 보다 꼭 한두가지를 더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그런 멋쟁이들이 있다는 거야.
우리 교회도 제가 빚갚을 동안에는 제가 딴 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 않는데 빚을 다 갚고 나면 우리도 재정 문제를 대한민국에서 교회 재정을 제일 아름답게 쓰는 교회다. 그런 소문이 나야 돼요.
그러면 자기 교회의 재정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상처 받은 사람도 올 수도 있고..
그래서 특별히 사회부 찬양 예배인데, 사회부가 우리 교회의 꽃이라는 거야.
사회부가 잘 안 하면 전도가 잘 안 됩니다.
사회부가 미담의 꽃을 제일 많이 피우는, 사회부가 좋은 향기로운 일을 해야 밖에 소문이 나는 거야. 좋은 소문이..
그래서 장학사업도 하고 중매사업도 하고 독거청년도 돌아보고 독거노인만 아니라..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사회부가 우리 예배당 근방이라도 잘 살펴 가지고, 세밀히 살필 수 있는 사람 동원해가지고 이 석전동 내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면 가만히 있지마.
케이크를 사가지고 샤론교회에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정말 멋진 일을 사회부가 해야 돼요.
우리 교회만 돌아보는게 아니라 물론 교회도 돌아봐야 되는데, 교회 밖에도 멀리는 못해도 예배당 근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먼저 알아야 돼요.
우리 사회부가 그런 일을 잘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고, 또 여기 초대교회가 바로 그런 것을 잘해가지고 교회가 성장한 거죠.
여러분 그 유명한 감자탕 교회가 사회부 일을 잘해가지고 교회가 성장한 거예요.
그 하도 건물도 눈에 번쩍 뜨이게 한 것도 아니고, 오죽하면 감자탕 집을 통과해서 들어가는 예배당이겠어요?
그러니까 교회 이름이 감자탕 교회야.
사회 봉사를 잘해가지고..
그 분도 전혀 설교 잘하는 분이 아녜요.
그래서 설교를 잘하면 좋지만 별로 잘 안해도..
여러분 설교 잘 못하는 사람은 말재주로 남을 속이지는 않잖아요.
설교가 하도 버벅대니까..
나는 말 잘 하면 겁나요. 별로 신빙성이 없어져 버려.
말을 잘 못해도 성장했다면 말 그 이상의 뭔가 있다는 거죠.
우리 교회에서도 설교 말고, 다른 것으로 다른 좋은 일들로 소문의 꽃을 피워서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기 히스기야 때에 사람들이 뭘 하느냐 하면,
31장 3절에,
3 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4 또 예루살렘에 거한 백성을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응식을 주어 응식을 주어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한지라
그래서 이것을 쭉 모았는데, 얼마나 모았느냐 하면, 6절에 봐요.
6 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7 삼 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칠 월에 마친지라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뭘 바르게 한다하니까 이렇게 국민들의 성원이 그냥 다 쌓아놓을 곳이 없도록 그렇게 풍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정말 재정을 멋드러지게 쓰는 교회다. 이렇게 소문이 나야 돼요.
그래야 우리 성도들도 헌금할 마음이 나고..
내가 내 먹고 마시는 것 보다도 하나님께 헌금된 것이 제일 가치있게 쓰여지는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들도록 재정 정책을 이기적으로 하지 말고 손을 펴는 정책을 해야 돼요.
8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더미를 보고,
왕이 보고 얼마나 감동 받았겠어요?
..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이렇게 좋은 일 해야 축복을 받는 거죠.
9 히스기야가 그 더미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대답하여 가로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하고 3월달부터 쌓기 시작해서 7월달에 가서 그 곡식더미를 보여준 거죠.
1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을 예비하라 한 고로 드디어 예비하고
12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13 여히엘과 아사시야와 나핫과 아사헬과 여리못과 요사밧과 엘리엘과 이스마갸와 마핫과 브나야는 고나냐와 그 아우 시므이의 수하에서 보살피는 자가 되니 이는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아사랴의 명한 바며
아무리 해봐야 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은 이름을 쓰는 것은 이게 얼마나 사실을 기초하고 쓰고 있느냐? 그런 신뢰가 가요.
후세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지만 이름을 꼼꼼하게 챙기는데, 또 여기 이름 빠지면 되게 섭섭해 한다고..
이게 무슨 얘기냐?
많이 쌓아놓은 것 중에서 얼마를 구별해서 하나님의 성전에 한 방을 예비하고 거기에 쌓았는데,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면,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문지기가 있어요. 4대 성문을 여닫는 자라든지 하면서 문을 지키는 사람과 노래하는 자, 성가대가 노래 몇번 연습하면 배가 고파요.
우리도 앞으로 방을 하나 준비해가지고 성가대원이 배 안 고프게, 노래가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게..
그런 것을 다 배려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성경에 좋은 것 있으면 배워서 그것을 그대로 회복해야 돼요. 복원하고..
그래서 꼭 주방에서도 성가대원들이 먹을 수 있는 것 따로..
성가대가 노래하고 내려와서 보면 맛있는 것 아무것도 없다. 해봐. 누가 성가대원 하겠어요?
성가대원을 위해서 뭔가 특별한 것 준비해두었다가 조금 늦게 오면 이것 성가대원을 위해서 일부러 준비한 것이다. 이런 센스가 있어야 돼요.
여기 성가대원 아멘 하네. 보니까.. 사회부가 아멘 해야지..
그래서 사회부에서는 이 사회 그늘진 곳 가려진 곳 어두운 곳 소외된 곳에 손을 펴는..
가장 멋있는 부서가 사회부서이니까..
아직까지도 어느 부서로 갈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하는 분들 사회부에 많이 지원하도록..
제가 오늘 아침에 사회부장 장로님께 혼이 났어요.
사람들이 노목사님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사회부에는 아무도 안 온다고..
저 혼좀 덜나게 사회부에 많이 지원해가지고 사회부 활동이 잘 되면 그 뒤따라서 전도부가 가서 전도하는 것이고, 전도하면 교육부가 교육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든 교회 밖으로 손을 펴는데 사회부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건데, 앞으로 보나마나 우리 교회가 제대로 되면 빨리 빚 갚고 나면 사회부 예산을 크게 늘려야 돼요.
적어도 우리 석전동 내에서는 결식아동이 없어야 되고, 밥을 굶는 독거노인 없어야 되고, 시집못간 처녀가 있으면 안 되고..
그래서 사회부로 말미암아서 일이 잘 되었으면 참 좋겠어요.
이런 것도 다 제대로 하니까 결국은 히스기야 때에 복을 받게 되었다. 그런 얘기죠.
20절입니다.
20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1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그러니까 모든 일들을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일들, 정상적으로 회복하고 복원할려면 옛모습을 본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저는 모든 성경 연구하는 목적이 교회의 본래 모습, 성경이 기록된 본래 목적, 성경이 기록된 원 목적, 원형이 오리지날 형태가 어떤 것이냐?
정말 처음에 이게 어떻게 어떤 모습이었느냐? 이것을 찾는 거예요.
찾아서 그 속에 가장 가치있는 원리, 포기할 수 없는 가치, 가장 중요한 원리를 찾아서 회복하자. 그런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32장에,
[역대하 32장]
1 이 모든 충성된 일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취하고자 한지라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3 그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에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저희가 돕더라
그러니까 그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여서 실로암 못으로 나오게 만들어요.
기혼샘이라는 곳이 있는데, 기혼샘에서 물이 나던 것을 성 밖에서는 그 물을 찾지 못하게 언덕을 만들어서 덮어버리고 그 물길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는데, 그게 한 1300m쯤 돼요.
사람이 둘도 못 피합니다.
하나 겨우 빠져나갈 돌 틈새를 파가지고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데, 우리는 계속 머리를 숙여서 목이 비틀어질만큼 빠져나가는 수로를 통해서 그 물이 어디로 나오느냐하면 실로암 못으로 나오는 거예요.
히스기야 때에 만들었어요.
여러분 예루살렘에 가면 코스를 잘 짜는 사람과 의논하면 그 코스로 가는데, 제법 힘이 듭니다.
전기불도 아무 불도 없는데, 근 2km쯤 되는 길을 좁은 통로를 수로를 따라서 가요.
결국은 실로암 못으로 빠져나오는 거야.
그렇게 해서 그 물이 바깥에 있는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은 물이 없어서 목이 마르게 하고 안에 있는 사람은 물을 마실 수 있게 그렇게 히스기야가 했는데,
4절에,
4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로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그런데 그 물이 엄청난 물이야.
물이 우리 종아리 중간까지 올 만큼 물이 흐르거든요.
그런 물이 기혼샘에서 나와서 실로암 못으로 나오게 그렇게 만들었어요.
가서 보면 지금 우리가 공법으로 한다할지라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좁고 그 먼길을 파냈는지.. 그 많은 돌조각을 어떻게 파서 어떻게 운반했는지 이해가 안 될만큼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꼭 한번 가봐야 돼요.
5 히스기야가 세력을 내어 퇴락한 성을 중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케 하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6 군대 장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 자기에게로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가로되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저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
9 그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 온 군대를 거느리고 라기스를 치며 그 신복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무리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10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11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로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단들을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단 앞에서 경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3 나와 내 열조가 이방 모든 백성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열방의 신들이 능히 그 땅을 나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었느냐
14 나의 열조가 진멸한 열국의 그 모든 신 중에 누가 능히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 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15 그런즉 이와 같이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저를 믿지도 말라 아무 백성이나 아무 나라의 신도 능히 그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열조의 손에서 건져 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내겠느냐 하였더라
하면서 이 산헤립이 망발을 하죠.
16 산헤립의 신복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17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서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열방의 신들이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18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취하려 하였는데
19 저희가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훼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백성의 신들을 훼방하듯 하였더라
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여기 보면 놀랍게도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성전의 문짝의 금을 갖다 바친것은 빼버렸죠.
히스기야가 잘못한 것은 빼놨어요.
왜 그랬느냐?
지금 잘해보자는 마당에 잘못한 얘기는 하지 말자.
이 역사가의 그런 의도가 보이죠?
아마 에스라가 그럴거야.
저 눈치빠른 노목사 또 눈치 챘구나..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쓴 사람의 의도가 보일 때까지 읽어야 돼요.
그러면 설교할 수 있는 거죠.
이 책을 왜 이렇게 썼을까..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이 때 조심해야 돼요.
히스기야가 이렇게 잘 된게 자기 공로가 아니죠.
자기가 좀 잘 했다손쳐도 그것은 잘한 것도 아니고, 그것은 바로 한 거야. 바르게..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한 것 뿐이죠.
히스기야가 잘한 것 있나요? 해야 할 것을 한 것 뿐이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기가 열국의 왕들의 눈에 존대하게 보였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인데,
어떻든,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이것 보세요.
여기에 히스기야를 그 잘못한 것을 낱낱이 말하지는 않지만 한번 언급하고 지나가죠?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해졌다는 거야.
사실은 하나님의 성전에 문짝의 금을 갖다 바쳐놓고 그리고 열국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앗수르 왕의 군대를 하루밤에 18만 5천명을 괴멸시켰다고 하니까, 밖에 먼데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이 한 것도 모르고 히스기야 왕이 센줄 알고 히스기야 왕에게 조공을 갖다 바치고, 금 갖다 바쳤는데 상당히 부유하게 되었다니까..
그리고 바벨론 왕도 ‘야 히스기야가 세구나. 히스기야와 손 잡으면 앗수르를 이차판에 아주 끝장 낼 수 있겠다.’ 하고 찾아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병 나은 것을 축하한다 하면서 폼을 바꾸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사실 이야기 할려면 할 말이 많습니다만, 지난번에 열왕기 공부할 때 다 말씀 드렸고, 이사야 공부할 때도 말씀을 드렸죠.
어떻든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것을 두고 역사가는 그것을 교만이라고 해요.
다시 봐요. 25절,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은혜를 은혜로 안 보고 자기가 잘 한 것으로 그렇게 보는 거죠. 그게 바로 교만이라는 거죠.
우리가 혹 잘 된게 있으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 은혜이고 잘못된 것은 순 내 탓이죠.
그래야 정상인데, 잘못한게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해서 성을 보존해 줬으면 자기는 정말 죽을 짓을 했지만 회개도 하지 하고, 그리고 그 명성이 바깥으로 잘못 흘러가서 유명해져서 각국에서 예물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쌓아놓고는 감사도 하지 않고 은혜에 보답도 하지 않는 이렇게 하니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거죠.
..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죽을 뻔 하고나서 죽여버린다고 하니까 그 때 뉘우치고,
..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결국은 여기에서 히스기야 때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갑니다.
여러분 조금 그냥 놔두면 제멋대로 하고, 조금 도와줘서 잘 되면 자기가 잘 나서 잘 된줄 알고 말이야..
이렇게 되는 이 히스기야 때가 사실은 이게 돌이킬 수 없는 대로 가요.
그 때, 히스기야가 두가지 실수를 한 건데, 자기는 실제로 그 앗수르 왕을 배반한 것도 사실은 잘못된 거예요.
배반하는데, 주변 나라가 다 배반할 때 덩달아서 배반했다가 다른 나라도 망하고 히스기야도 망했거든요.
그러면 정말 앗수르 왕을 배반하되 내가 하나님을 섬기지 앗수르는 섬길 수 없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는 못한다.
그렇게 했으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능히, 18만 5천명 얼마든지 죽일 수 있잖아요. 아무 때든지..
그렇게 믿음으로 싸웠으면 될텐데, 금은 금대로 벗겨서 갖다 바치고 그렇게 하고 18만 5천명이 죽고 자기 능력이 아닌데, 바깥 사람들 예물이 들어오니까 떡 재놓고는 보충은 했겠죠. 그것 받아가지고..
앗수르왕에게 갖다 바친 것에 보충 했을지 몰라도, 그렇게 어물쩡 넘어갈려고 한다니까 이 사람이..
그래서 혼이 난 것이고..
또 한가지 잘못된 것은, 그 때 죽을 뻔 했는데, 수명이 15년 연장된 기간에 결혼해가지고 소시부터 버린바 되어서 근심중에 있던 헵시바라는 여자를 뭐할려고 받아들였어. 그것을..
물론 조금 감정을 가지고 다투어서 그랬다가 받아들이는게 잘 하는 것이지만, 뭔가 이 여자가 석연치 않아서 소시부터 꺼린 바 되었다. 꺼린 바 되었다는 것은 부정한 거야. 하여튼..
그래서 버렸으면 깨끗이 버려야지..
그것을 받아들여가지고 이런 것도 역시 분별력이 없어서 그래요.
누가 그런 말을 하죠.
결혼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느냐? 분별이 없어서 이루어진다는 거야.
이혼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느냐? 인내심이 없어서 이혼한다.
재혼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느냐? 기억력이 없어서 재혼한다..
어떻든 그 히스기야가 기억력이 없었던지 그것을 또 가서 받아들여가지고 낳은게 므낫세거든.
이게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 운명을 맞이하는데, 히스기야가 내어버렸던 헵시바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것이 불가역적으로 잘못된 거야.
성경에 보면 받아들이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한번 버린 여자를 딴 남자와 살다가 있던 것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하면 그 나라가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그런 교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가 나가서 그 동안에 좀 개과천선 한 모습을 보였는지 어떻든 아무 설명 없이 그 헵시바를 받아들여서, 그 받아들인 그 기간에 15년 그 기간에 므낫세라는 아들이 태어났거든요.
왜냐하면 므낫세가 위에 나갈 때 나이 12세라고 되어 있어요.
27절입니다.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 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우리가 히스기야는 연구 대상입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 좀 잘해가지고 번성했잖아요?
번성했는데 번성하고 힘이 조금 있다고 해가지고 앗수르 왕과 맺은 언약을 깨뜨린 거야. 반역을 한 거죠. 앗수르 왕에게..
그러니까 앗수르 왕이 ‘뭬야?’ 하면서 팔레스타인으로 와서 하나 하나 자기 반역한 민족 다 족치고 마지막으로 남은게 유다 나라예요.
유다 나라 성을 굵은 성부터 하나 둘 잡아삼키는데 42성을 잡아 삼켰다고 해요.
다 삼키고 예루살렘 하나만 달랑 남긴 거죠.
여러분 이사야서 첫머리에 보면 ‘딸 시온만 원두밭의 상징막 같이 에워쌓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그런 말 있죠?
예루살렘만 달랑 남았다니까..
그러한 때에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잘 된다고 해서 언약을 깨뜨린 거야.
하나님은 언약을 깨뜨린 것에 대해서 그렇게 진노하시는 거예요. 항상..
너희가 사람과 맺은 언약을 깨뜨려도 온전치 못하겠거든, 하물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그런 심정으로 언약 깨뜨린 것에 대해서 징벌한다는 거야. 반드시..
그래서 여러분 언약을 평소에 경솔히 하지 말고 언약을 했으면 손해가 될지라도 지켜야 돼요.
그래서 결국은 이 때도 딱 죽어야 되는데 한번 살려놨더니, 바벨론 방백들이 와서 히스기야에게 보내어서 그 땅에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버렸다.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께서 왜 떠났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바벨론 사자가 발라단의 므로닥 발라단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 신하들이 보낸 사람들이 왔을 때 히스기야가 각국으로부터 받은 은금들 이런 것을 다 쌓아둔 창고를 보여주고 이짓을 하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이겼느냐?’
그렇게 하면 ‘다 길이 있느니라.’ 하고 말 안해야 돼요. 그런 것은..
그런 것을 입이 가볍게 이야기 해버릴 때 하나님이 탈로나버렸잖아.
하나님 하시는 일이 그런 식으로 탄로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조그만한 이적이나 기사 났다고 해서 너무 나팔불고 다니는 것 아닙니다.
지금까지 간증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치고 별로 순수한 사람 못봤어요.
보면 간증이 자꾸 불어납니다. 그렇죠? 처음에는 조그만 했는데, 10년 간증하면 많이 부풀려진 것을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간증이 자기 자랑이 됩니다. 자칫하면 자기 자랑이 됩니다.
자기 허물 자기가 이런 실수했다는 것은 괜찮은데, 자꾸 자기 자랑으로 갈 때 위험해요.
그 다음에 간증이 뭐가 위험하냐 하면, 간증한 사람은 실제로 그런 체험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혼자 체험이지, 들은 사람들이 까딱하면 실수하기를 ‘왜 내게는 저런 체험을 주지 않는가..’ 하면서 시험드는 거예요.
그래서,
..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여러분 항상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무슨 일을 할 때, 우리가 누구 앞에 있는가 생각을 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돼요.
아무 앞에서나 함부로 말하지 말고 조심해야 돼요.
32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 모든 선한 일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이사야서 말고 ‘이사야의 묵시책’이 따로 있는가 봐요.
33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시간이 가서 오늘 더 이상한 못할 것 같은데,
어떻든 이 때 하나님께서 떠나셨습니다.
히스기야를 떠날 때 그 때야말로 불가역적 운명, 이스라엘 역사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거야.
그래서 한 개인이나 가문이나 기업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종교나 다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돌이키지 못해요.
회복이 안 되는 수가 많아요.
그래서 한 개인의 마음도 어느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돼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어느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적당한 때까지 가고 말아야지..
제가 전에 있던 교회 어느 권사님이 그래요.
그 권사님은 남편 되는 분이 성격이 거의 속된 말로 개떡같은 그런 사람인데, 그래도 참 부인이 센스있고 잘 하는 거예요.
말로 하면 아내가 그 예수도 안 믿는 믿음도 없는 남편 10번 100번 이길 수 있죠.
그런데 말로 이기고 주먹이 날아오게 하면 미련한 사람이야.
말을 해가지고 예수쟁이가 얼마나, 예수쟁이에 여자이면 얼마나 말을 잘 하겠어요?
예수쟁이면 말을 잘 하는데, 여자인데 얼마나 말 잘 하겠어요 ?
그러니까 결국은 말로 하면 안 되면 남자가 잘 하는 것은 주먹밖에 없으니까 날아오는 거죠.
그래서 그 권사님 얘기가 나이가 지긋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데, 아무리 말로 싸워도 남편이 주먹이 날아올 때까지 그렇게 입을 놀리는 것은 미련한 여자라는 거야.
그분은 그렇게 참 개떡같은 사람과 살아도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거야.
절제가 있는 거죠. 절제..
끝까지 가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말이든 행동이든 무슨 어떤 일을 추진하는 고집이든 간에, 어떤 선을 넘지 않도록..
개인도 그렇고 가문도 그렇고 기업도 민족도 국가도 교회도 어느 한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갈 수 있다는 거죠.
지금 남쪽 유다의 운명이 므낫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한 고개를 넘어섭니다.
그 기점이 어디냐 하면 바벨론 방백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그 땅에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셨다.
이 때부터 회복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항상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기업이나 사회나 국가나 민족이나 어디든지 간에 어느 한계쯤 되었으면 조용히 조심을 하고, 범사에 조심을 하고 입을 닫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을 준비를 해야 돼요.
자꾸 우리가 나서서 설쳐된다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입만 닫아도..
제가 아는 대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입만 닫아도 문제의 절반은 해결됩니다. 극히 삼가야 돼요.
히스기야가 너무 입이 가벼워요. 함부로 말을 자꾸 해버려요.
이래가지고 결국은 하나님이 떠나버려요.
시험 해봤는데 안 돼..
젊을 때는 잘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추태를 부리는 거야.
사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젊을 때 잘 했는데, 끝이 안 좋은 사람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젊을 때 잘 하다가 끝에 나이 많아서 잘못되는 수가 많아요.
지금 남쪽 유다 왕실에 많죠.
요아스도 그렇고 아마샤도 그렇고 웃시야도 그렇고 히스기야도 그렇고 대부분이 다 젊어서 잘 했어요.
다윗도 솔로몬도 그렇죠?
대개 젊어서는 잘 했는데, 끝에 가서 때가 묻고 사람이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해가지고 잘못돼요.
그 중에 히스기야는 한 국가의 한 민족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고개를 넘어서게 하는 그런 식으로 사람이 가벼워졌다는 거야.
지도자들은 진중하게 행동하고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그리고도 말을 조심해야 돼요.
이제 완전히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이야기는 다음주일에 다시 말씀드릴텐데,
므낫세, 그리고 므낫세의 아들 아몬, 아몬의 아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얘기는 다음 시간에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 민족이나 또 개인 가정이나 가문이나 기업이나 국가의 운명이라 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것처럼, 오늘 저희들이 히스기야가 참 잘 해왔지만 끝이 아름답지 못한 그런 모습을 보았고,
또 꺼린 바 되어서 멀리 했던 헵시바를 받아들여서 므낫세를 낳은 것이 화근이 되어서 역사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운명을 맞이하는 유대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서 옛 사람들이 어떤 원인과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남긴 교훈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배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