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주일예배 설교문 / 눅 10:25-37 /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예수님
할렐루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병이어, 거친 풍랑 위를 걸으시고, 38년 된 병자를 살리시고, 나사로와 같이 죽은 자를 살리심... 등등 세어보니 총 37가지.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것이 있으니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총 53가지.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사실 구약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말씀하신 가상칠언 모두가 구약성경을 따라서 말씀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전혀 새로운 말씀이 있으니 ‘비유’입니다. 다시 말해 직접적인 말씀은 성경으로, 간접적인 말씀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누가복음 8: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①은폐적 효과
예수님에게는 종교적, 정치적 대적자들이 도처에 있었습니다. 저들은 말에 올가미를 씌워서 죄인으로 만드는 것에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악한 의도를 가진 자들에게서 모함을 받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은폐하기 위해서 비유를 쓰신 것입니다.
②계시적 효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더욱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유한한 정신에 하나님 나라의 장엄한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에게 친근한 것들로 낮아져서 전했을 때 더욱 이해하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를 밝히 알려고 한다면 첫째, 은폐된 대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이에 대입하여 그 뜻을 구한다면 정확한 계시적 효과를 얻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이 비유를 겉으로 볼 때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잘 도와주면 착한 사람이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읽혀 질 것입니다. 그러나 은폐된 대상을 제대로 대입하다보면 아주 깊은 생명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내려가다’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30절).
성경에서 내려가다란 뜻은 말씀에서 세상으로, 은혜에서 멸망으로, 영의 생명에서 혼의 생명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룻기 1장에 보면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었던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이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에 내려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는 멸망의 가정이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사랑을 입은 자, 기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내려가니까 나오미가 아니라 ‘마라’가 되었습니다. 마라는 ‘괴롭다’. 괴로운 인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룻기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나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글로바입니다. 글로바는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형제입니다. 즉 예수님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작은 아버지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의 소식을 접하면서 도저히 인간적으로 감당이 안 되어 엠마오로 도망간 것입니다.
누가복음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본문의 율법교사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그리고 여리고는 여호수아 이후 저주받은 도시입니다. 평화에서 저주로. 이렇게 내려간 것도 슬픈데 강도까지 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둘째, 강도들은 누구인가?
강도하면 일반적으로 남의 재물이나 재산을 빼앗는 도둑이라 생각이 들겠죠. 그러나 우리는 이미 9장, 10장을 통해서 종교의 해악성을 본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즉 여기서 강도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드는 종교인을 말하는 것을 우리는 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팔아먹어서 종교사업을 하는 자들로, 자기들이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며, 불타 없어질 초막집이나 짓다가, 극단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에 나오는 강도는 “내 아버지 하나님을 뺏는 자” 즉 종교를 말하는 것이라 이런 말씀입니다. 종교는 하나님만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종교로 데려다가 발가벗겨 홀딱 빨아 먹고 거반 죽도록 만듭니다.
31-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사장, 레위인.
저들은 종교지도자들이지요. 저들은 자기 종교에 이용 가치만 따질 뿐 생명에는 어떠한 관심조차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자! 봅시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자는 영에서 혼으로, 생명에서 종교로 ‘내려가는’ 종교인입니다. 강도는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종교 전도자이고요, 제사장·레위인은 종교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종교 피해자, 종교 강도, 종교 지도자. 즉 세 구성원 모두 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33-35절)?
본문의 종교 피해자는 모든 것을 다 뺏겨 거반 죽게 되었는데 너무나 다행히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기름과 포도주로 치료해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까지 데리고 가 쉴 곳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용이 더 들면 대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름, 포도주, 탈 것, 안식처, 비용 이걸 다 주실 분이 누구지요? 사람이라면 누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4장 18-19절의 희년을 선포하신 희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 생명되게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회개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며, 귀신을 떠나가게 하시고,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며, 치료해 주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메시아, 구원자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붉은 피 즉 보혈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씻겨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름은 성령의 기름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말이암아 우리 속사람은 예수 생명으로, 우리의 겉은 예수님의 권능을 가져 건강하고 능력 있으며 축복된 생명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탈 것은 옮김을 말합니다. 종교인은 내려가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날개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영에 속한 생명이 됨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막은 안식을 주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세상에서 피곤하고 지칠 때에 기도하십시오. 교회는 예수님이 핏값으로 세우신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비용이 더 들면... 생명을 유지하려면 항상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필요한 것 모두를 공급해 주시는 희년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35절 마지막 부분이 중요합니다.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우리가 주막과 같은 교회 생활을 할 때에 예수님 대신에 많은 것들을 내어주는 천사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말세에 주님은 면류관의 상급으로 갚아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본문의 비유는 ‘이웃’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9절.
율법교사는 자기가 이웃을 구제하는 좋은 이웃이라는 측면에서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리고로 내려가는 강도 만난 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사, 당신은 성경을 그만큼 잘 안다고 하면서도 25절, 예수님을 시험하고, 29절, 예수님 앞에서 자기가 옳다고 보이려고 하느냐? 당신은 이미 종교라는 강도를 만난 영혼의 피해자여서 홀딱 벗겨버리고 거반 죽게 되는 인생 밖에 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어떻게 압니까? 나를 보아야 합니다. 따라 합시다. “나 자신을 보아라.”
저는 본문의 비유에서 율법사가 자신을 보는 것이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율법사는 종교 피해자요, 종교 강도요, 종교 지도자였을 뿐인 것입니다. 이제 내 모든 죄를 회개하고 생명되시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주님은 생명의 팔을 벌려 우리를 반겨 안아주실 것이요, 생명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며, 영생 천국의 축복으로 인도하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