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을 보고/천주교 마산교구보
강희근(요셉,시인)
며칠 전 필자는 친구와 같이 영화관을 찾았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종 법정 공방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였다. 한 마디로 재미 있었다. 영화가 흥행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재미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합격점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영화를 작품이라 한 것은 영화가 현실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T.V 드라마와 역사,현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고 또 소설이나 희곡을 현실 그대로로 이해한 사례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문학, 예술 이론의 ABC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때때로 허구(픽션)인 소설 작품을 두고 실제 상황으로 파악하고는 필화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비석의 소설 <혁명전야>라든가 남정현의 소설 <糞地>, 오영수의 소설 <特質考> 등이 그런 필화사건에 휘말렸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썰물처럼 밀려나간 뒤를 점검해 보면 거의가 다 작품 속의 허구를 현실인 양 받아들여 되지도 않는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판정이 났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혹시나 <부러진 화살>을 놓고 현실 속에 그대로 드러난 사건으로 해석하거나 이해하여 필요 이상의 역풍을 만들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유의하자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소설이나 드라마나 씨나리오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창작적 복선이나 기법을 쓰기 때문에 현실이 그대로 녹여지기가 힘들고, 작품은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이 영화는 대학 입학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의 잘못을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K교수가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한다는 이야기다. 사법부는 K교수의 행위를 법치주의에의 도전으로 규정했고 K교수는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는데 이후 K교수와의 법정 공방은 숨가쁘게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박준 변호사가 제대로 재판이 공의롭게 결말이 나지 않을 것임을 예단하고 창원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필자는 작품 전체에서 변호사가 아내에게 비장하게 말하는 그 주고 받음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여보, 나 감방에 좀 갔다가 와야겠어!”“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그래 안되겠어.” “그럼 잘 다녀와요. 애들은 제가 잘 기르고 있을게요.” 이 대화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눈물 어린 신뢰라 하겠다.(변호사는 결심공판에서 무슨 일을 하려 했을까? 상상하시길)
필자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친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수용할 수가 없었다.“이런 재판이라니, 이런 구조라니...” 필자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에게 반성할 과제를 주고 있어! 우리가 운영주체가 되는 제도나 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무관심은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신앙도 형식에 묻혀버리는 기도나 사랑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그때 택시가 ‘빈차’를 표시하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