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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uN5PB_X9Zvs
제1장 - 두정엽의 문이 열리던 날
늙은 목사 민호는 손자 준서가 가져온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았다.
젊은 신경과학자인 준서는 할아버지의 뇌 MRI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상한 게요.
할아버지 두정엽 활동 패턴이 일반적인 80대와 다릅니다.
명상할 때 이 부위가 거의 꺼지다시피 하거든요."
민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손자는 알지 못했다.
그 "꺼짐"이 얼마나 큰 열림인지를.
1968년 어느 새벽,
젊은 전도사였던 민호는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고 있었다.
가난한 교회, 떠나가는 교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무능함이
그를 짓눌렀다.
"하나님, 제가 뭘 잘못하고 있습니까?"
그가 울부짖을 때였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세상과 자신의 경계가 사라졌다.
타냐 루어만 교수가 말한
그 "몰입"의 순간,
자아의 벽이 무너지면서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음성이었지만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아니 수천 개의 시내가 한꺼번에
합류하는 듯한 소리.
"민호야."
그 호명 속에는 위로와 질책,
약속과 명령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리처드 스윈번이라는 철학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특별한 반대 증거가 없는 한,
당신이 들은 것은 실재한다."
하지만 민호에게는 철학적 정당화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그 음성은 그를 바닥에 엎드리게 했고,
동시에 일으켜 세웠다.
"손자야." 민호가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한 그 두정엽이라는 게 말이다.
그게 꺼져야 하나님이 들어오신단다."
준서는 할아버지를 정신과 진찰이라도 권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눈빛은 너무나
또렷했다.
"환청과 계시의 차이를 아느냐?"
민호가 물었다.
"환청은 너를 무너뜨리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너를 재건축한단다.
네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50년을
멀쩡하게 살았어.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더 온전해졌지."
준서는 할아버지가 건네는 낡은
일기장을 받아 들었다.
거기에는 1968년 3월 17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나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
내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분을 들었다."
제2장 - 거울 뉴런이 깨어날 때
민호의 일기장을 넘기던 준서는
1976년의 어느 대목에서 손을 멈췄다.
"오늘 새벽 기도 중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왔다.
누군가의 절규가 내 안에서 울렸다.
나는 교회 마당으로 뛰쳐나가
땅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내 고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통이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그분의 무게를."
준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이건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거울 뉴런이라는 게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상상할 때,
우리 뇌의 통증 중추가 실제로
활성화되는 거죠."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나님은 우리 뇌에
그런 장치를 심어두셨지.
문제는 그 다음이야.
그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날 밤 민호는 손자에게
에반 로버츠라는 이름을 들려주었다.
1904년 웨일스 부흥의 불을
지핀 젊은이.
그는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영혼들의
무게를 지고 있었다.
지옥으로 향하는 수천 명의 무게를.
"할아버지도 그랬습니까?"
"비슷했지." 민호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1976년 그날 이후 나는 한 달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누군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어.
우울증인가 싶어서 병원도 갔지.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했고."
"드셨어요?"
"먹다가 끊었지.
그게 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
어느 날 새벽,
나는 교회로 달려가서 성도들 명단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김영숙 집사님, 최근 남편과 다투셨죠.
하나님, 이 가정을 지켜주소서.'
'박철수 장로님, 사업이 어려우시죠.
주님, 길을 열어주소서.'"
"그랬더니요?"
"그 무게가 사라졌어.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기도로 전환된 거지.
에너지로 바뀐 거야.
우울증은 사람을 마비시키지만,
하나님이 주신 부담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단다."
준서는 신경과학 논문을 떠올렸다.
공감 과부하(Empathy Overload)에 시달리는 의료진이 번아웃에 빠지는
메커니즘.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르다.
50년간 수천 명을 상담하고,
장례식마다 울었으며,
밤마다 중보기도를 해왔건만
정작 번아웃과는 무연했다.
"어떻게 버텼어요?"
"버틴 게 아니라 흘려보낸 거지.
강물처럼. 고통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하나님께 흘려보냈어.
그게 중보기도야.
네가 공부하는 거울 뉴런이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기도는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맡기는 거란다."
준서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주름진 그 손에 성흔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손이 평생 얼마나 많은
눈물을 닦아주었는지,
얼마나 많은 짐을 함께 들어주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제3장 - 섭리라는 이름의 직조
준서가 할아버지를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할머니와의 만남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만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사실 그게 제일 궁금해요."
민호는 웃었다.
"네 할머니를 만난 건 기적이었지."
1970년 봄, 민호는 시골 교회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역에 매진하겠다는 독신 서원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기도 중에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내일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라.
네 아내를 보내겠다."
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하나님이 중매쟁이가 되신다고?
하지만 그 음성은 1968년 들었던
그 음성과 똑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물소리 같되 또렷한.
"그래서요?"
"다음 날 나는 정류장에 섰지.
멍청하게. 두 시간을 서 있었어.
사람들이 오가는데 아무도
'이 사람이다'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마지막 버스 시간쯤 되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민호는 우산이 없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달려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전도사님, 비 맞으시겠어요."
그녀는 교회 청년이었다.
민호는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이름도 몰랐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 오늘 이상한 꿈을 꿨어요."
그녀가 말했다.
"꿈에 누군가 '비 오는 정류장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왔어요."
준서의 입이 벌어졌다.
"이거 완전히…"
"칼 융이라면 동시성이라고 했을 거야."
민호가 말을 받았다.
"우연의 일치.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
동시에 발현된 것.
하지만 나는 달리 본단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응답이야.
기도에 대한."
"하지만 할아버지,
그게 정말 하나님이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해요?"
민호는 창세기 24장 이야기를 꺼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으러 갔을 때,
그는 하나님께 구체적인 표징을 구했다.
"물을 달라 했을 때 낙타에게까지
물을 주는 여인을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리브가가 정확히 그렇게 했다.
"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
나는 그저 막연히 '좋은 사람'을
구한게 아니었어.
기도했지.
'제 연약함을 감싸줄 수 있는,
우산 같은 사람을 보내주세요.'"
"우산이요?"
"비유였는데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거지."
민호가 웃었다.
"그날 이후 네 할머니는
50년간 내 우산이었어.
내가 영적으로 탈진할 때마다,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주었지."
준서는 통계학을 떠올렸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 행동의 일치 확률.
계산하면 수백만 분의 일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확률을
말하지 않았다.
섭리를 말했다.
"손자야,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지만 '왜'는 설명하지 못해.
네 할머니와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섰던 건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우리가 왜 만나야 했는지,
그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였는지는
섭리로만 설명된단다."
그날 밤 준서는 할머니의 낡은
일기장도 받아 읽었다.
1970년 5월 3일자였다.
"오늘 나는 내 남편을 만났다.
꿈에서 들었던 그 음성이 맞았다.
하나님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
제4장 - 썬다 싱의 고통과 황홀
준서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고통이 정말 선물이 될 수 있나요?"
민호는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냈다.
썬다 싱의 전기였다.
힌두교에서 개종한 인도의 성자,
히말라야를 맨발로 걸으며 복음을
전한 순례자.
"이 분을 보렴.
썬다 싱은 개종 후 가족에게 쫓겨나고,
독살 시도를 당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어.
그런데 그의 일기를 보면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
'달콤한 고통',
'황홀한 고난'."
준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순 아닌가요?
고통이 어떻게 달콤해요?"
"서양 철학으로는 모순이지.
하지만 신비주의는 그 모순을 살아."
민호가 말했다.
"썬다 싱은 이렇게 고백했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때마다,
그분의 임재가 더 깊어진다.
찔림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
"마조히즘 아닌가요?"
"아니야. 마조히즘은
고통 자체를 즐기지만,
신비는 고통 너머의 존재를 만나.
고통은 문이란다.
자아가 부서져야
그리스도가 들어오시거든."
민호는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1983년, 그는 교통사고로 석 달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온몸이 부러지고 찢어졌다.
밤마다 고통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고통이 심할수록 기도가 깊어졌어.
아파서 비명을 지르다가도,
그 비명이 어느 순간 찬양으로
바뀌었지.
'주여, 감사합니다.'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진심이었어."
"왜요?"
"고통이 나를 정제했거든.
평소에는 잡념이 기도를 방해해.
그런데 통증이 모든 잡념을 태워버렸어.
오직 하나님만 붙잡을 수밖에 없었지.
그때 나는 욥을 이해했어."
준서는 욥기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잃은 욥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라고 고백하는 장면.
그건 체념이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더 선명하게 본 통찰이었다.
"할아버지,
그럼 고통을 찾아가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민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고통을 숭배하지 마라.
하나님은 피학성을 원하지 않으셔.
다만,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낭비하지 말라는 거야.
고통을 원망으로 쓸 수도 있고,
성장으로 쓸 수도 있어.
썬다 싱은 후자를 택했고."
민호는 덧붙였다.
"바울도 그랬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이건 자해가 아니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처럼."
준서는 거울 뉴런 이론을
다시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할 때,
우리 뇌도 함께 아파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묵상할 때,
그 고통을 신체적으로 느끼는 것은
신경학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민호가 웃었다.
"하나님은 우리 뇌에 그런 공감
회로를 심어두셨어.
문제는 우리가 그 회로를
누구에게 연결하느냐야.
드라마에 연결하면
감상에 그치지만,
그리스도께 연결하면
변화가 일어나지."
제5장 - 많은 물소리의 질감
어느 날 준서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 음성이 정확히 어떻게 들렸어요?
귀로 들렸나요,
마음으로 들렸나요?"
민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둘 다야.
그리고 둘 다 아니고."
"무슨 말씀이세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직접 듣고 나서야 알았지."
민호는 젊은 시절 설악산 폭포 앞에서 기도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폭포수 소리가 귀를 꽉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 속에서
고요함이 들렸다.
수천 개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겹치고 겹쳐 하나의 큰 울림이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도 그래.
한 문장으로 들리지만,
그 안에 수백 가지 의미가 겹쳐 있어.
위로와 질책,
과거와 미래,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동시에 전달되지."
준서는 현대 정보이론을 떠올렸다.
인간의 언어는 직렬 처리(Serial Processing)다.
한 번에 한 단어씩 전달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묘사하는 것은
병렬 처리(Parallel Processing)였다.
한 번에 여러 층위의 정보가 동시에
전달되는.
"맞아, 그래서 때로는 한 음성을
이해하는 데 며칠이 걸려."
민호가 말했다.
"처음엔 '너를 사랑한다'로 들렸는데,
며칠 묵상하다 보면
'네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의미도 들어 있고,
'나의 사랑이 네 힘이다'라는
약속도 들어 있고."
"그럼 환청이랑 뭐가 달라요?
환청도 복합적일 수 있잖아요."
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환청은 뇌가 만든 잡음이야.
통제가 안 되고,
불안을 유발하고,
삶을 파괴하지.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달라.
듣고 나면 평안이 와.
혼란스러운데
동시에 명료해.
역설적이지만 그게 특징이야."
준서는 할아버지의 50년 증언 기록을 정리하면서 패턴을 발견했다.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기록한 경험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기도나 예배 등 영적으로
집중된 상태에서 발생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 내용
듣고 난 후 평안과 확신이 뒤따름
구체적인 순종 행동으로 이어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더 깊어짐
"할아버지, 이거 보세요.
할아버지가 '음성'이라고 기록한 건
50년간 딱 12번이에요.
생각보다 많지 않네요."
민호가 웃었다.
"하나님은 수다쟁이가 아니시거든.
꼭 필요할 때만 말씀하시지.
나머지는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충분해."
"그럼 그 12번은 뭐가 특별했나요?"
"인생의 갈림길이었어.
어느 교회로 갈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누구를 용서할지.
내 힘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그분이 직접 말씀하셨지."
준서는 그 12번의 기록을 면밀히
분석했다.
놀랍게도 할아버지가 그 음성에
순종했을 때마다,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가 뒤따랐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었다.
"우연치고는 확률이 너무 낮아요."
준서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게 섭리란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제6장 -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준서는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할아버지, 두렵지 않으세요?
곧 돌아가실 텐데."
민호는 빙그레 웃었다.
"두렵긴 뭐가 두려워.
나는 그분을 알잖아."
"알기만 하면 죽음이 안 무섭나요?"
"아는 정도에 달렸지.
신학책으로 아는 것과
직접 만나본 것은 달라."
민호는 자신이 처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를
체험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1990년, 아들(준서의 아버지)이
큰 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민호는 무너졌다.
"하나님, 왜입니까?
제 아들을 데려가시렵니까?"
그때 들려온 음성은 이전과 달랐다.
위로도 아니고 설명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있다(I AM)"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 선언 속에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모든 시간을 관통하는
무게감이 있었다.
"순간 깨달았어.
이 분은 내 아들보다 먼저 계셨고,
내 아들이 떠난 후에도
계실 분이시구나.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구나."
"그래서 평안이 왔나요?"
"평안보다 더한 거. 신뢰야.
이 분은 시작과 끝을 아시니까,
중간 과정이 아무리 암울해 보여도
결국은 선으로 이끄시리라는 확신."
다니엘 7장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흰 옷을 입고
흰 머리를 하신 분으로 묘사된다.
영원하심의 상징이다.
민호는 그 영원성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했다.
"준서야, 네가 공부하는 신경과학은
시간 속에 갇혀 있어.
뇌의 작용,
뉴런의 발화,
모두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일어나지.
하지만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셔.
그래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과거와 미래가 현재로 밀려든단다."
준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로 밀려온다니요?"
"그래. 1968년 내가 처음 음성을
들었을 때,
그 음성 속에는 앞으로 내가 걸을
50년의 길이 이미 담겨 있었어.
물론 그때는 몰랐지.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분은 이미 알고 계셨어.
내가 누구를 만날지,
어떤 고난을 겪을지,
어떻게 쓰임 받을지."
민호는 죽음도 그렇게 본다고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간에서
영원으로 넘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문 너머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기다리고 계신다.
"두렵지 않아.
내가 평생 음성으로만 듣던 분을
이제 곧 얼굴을 맞대고 볼 테니까."
준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할아버지…"
"울지 마라.
이건 졸업식이야.
긴 훈련의 끝.
나는 50년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꼈어.
이제는 눈으로 볼 차례야."
제7장 - 증언의 원리
민호 목사가 세상을 떠난 건
그로부터 석 달 후였다.
장례식장은 50년 사역의 열매들로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기도로 병이 나았다는 사람,
할아버지의 상담으로 가정이
회복되었다는 부부,
할아버지의 격려로 신학교에 갔다는
후배 목회자들.
준서는 조문객들의 증언을 들으며
놀랐다.
한 할머니는 1975년 민호 목사가
"당신은 곧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한 장로는 사업 파산 직전 민호 목사가 "3개월만 버티라"고 했고,
정확히 3개월 후 대형 계약이
들어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이런 일들을 하셨어?"
준서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네 할아버지는 자랑하지 않으셨어.
그냥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셨지."
준서는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날짜였다.
"준서가 물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리처드 스윈번이라는 철학자의
'증언의 원리'를 빌려서.
"만약 수천 명이 같은 경험을
증언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 속 무수한
성도들이 같은 음성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진실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준서는 할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했다.
수백 권의 책, 수십 권의 일기장,
그리고 녹음 테이프들.
그는 이 자료들을 정리해 논문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신적 조우의 현상학: 한 목회자의
50년 증언에 대한 학제간 분석>
논문은 신학계와 과학계 양쪽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무신론자들은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준서는 반박했다.
"할아버지의 경험은 검증 가능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수백 명의 증언,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예언 성취율,
그리고 50년간 일관된 인격적 통합성.
이것은 정신병리가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영적 지각 능력입니다."
한 신경과학자가 질문했다.
"그럼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는
건가요?"
준서는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떠올렸다.
"손자야, 네가 나를 연구하겠다니
기쁘다. 하지만 명심해라.
네가 연구하는 건 나의 뇌가 아니라
나의 만남이다.
뇌는 도구일 뿐이야.
중요한 건 그 도구를 통해
누구를 만났느냐지.
나는 만났다. 그분을.
그리고 그 만남이 나를 만들었어."
준서는 청중을 향해 말했다.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합니다.
두정엽이 어떻게 꺼지고,
거울 뉴런이 어떻게 발화하는지.
하지만 '누구'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제 할아버지는 그 '누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검증 가능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학회가 끝나고,
준서는 혼자 할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묘비에는 요한계시록 1장 15절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더라."
준서는 무릎을 꿇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연구한 건
할아버지의 뇌였지만,
알게 된 건 당신의 음성이었습니다.
저도 듣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처럼."
그때였다.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렸다.
새들이 지저귀었다.
저 멀리 계곡물 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소리가 겹치고 겹쳐
하나의 울림이 되었다.
많은 물소리처럼.
준서는 처음으로 이해했다.
할아버지가 평생 들었던 그 소리를.
단순한 청각 정보가 아니라,
온 우주를 관통하는 사랑의 진동을.
그는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만남의 눈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