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첫날이지만 음력 또한 10월의 첫날이 된다. 음력 시월은 바쁘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시사時祀 철이 다가옴을 느낀다. 특히 시제는 각 문중의 큰 행사이기도 하다. 묘에 가서 지내는 제사를 묘사墓祀라 하는데, 다른 말로는 묘제라고도 한다. 5대조 이상의 윗분들을 모시고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시사, 시제, 시향이라고도 한다. 묘사와 성묘는 조상의 묘를 찾아가 무덤이 허물어지거나 잡초가 무성하지는 않는가 살피고 그곳에서 간단한 제사를 지내며 조상께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문화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례였으며, 시기적으로 시월이 접어들면서 필수적인 행사가 되었다.
우리는 조상에게서 본인의 혈통을 부여받아 친족이라는 집단으로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조상 숭배, 즉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토착적인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사회 저변에 깔린 움직일 수 없는 지속적인 요소들이 내재 되어있었다. 조선의 유교 영향이었지만 제사의 중요성은 여전히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이다.
묘사는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며 대가족 중심으로 생활했기 따라서 조상을 모시는 일이 가문의 중요한 의무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현시대의 사람들은 더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에서 살지 않고, 도시 생활로 조상을 숭배하는 전통적인 의례 실천에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대부분 가정은 핵가족화되었고, 세대 간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감도 생긴 게 현실이다.
성묘省墓는 말 그대로 무덤을 살핀다는 말이다. 어느 때라도 성묘를 다닌다. 우리나라는 한식과 추석 같은 명절 때 주로 벌초와 성묘를 했다. 특히 추석에 성묘한 것은 삼국시대 가야 수로왕 때부터 시작하였다고 기록한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머슴이나 거지라도 모두 돌아가신 부모의 무덤을 돌봤다고 한다. 또 성묘를 떠나는 머슴에게 주인은 새 옷과 신발, 허리띠를 해줬다는 기록도 있다.
요즘의 묘사는 예전처럼 중요한 의례도 아니고, 상징적인 의미도 퇴색되어 가고 있다. 조상의 묘를 찾는 일이 귀찮고 부담스러워 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살만했다. 꿈이 있고 인심도 후했다. 하지만 이젠 4촌도 멀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제례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데, 이제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도시 생활하는 젊은 세대는 조상에 대한 전통적인 의례보다는 자신의 현재 생활과 미래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문중마다 시제 의례도 아주 간소화하고, 접근성이 편한 일정에 맞춰 날짜를 정하고 있다. 제사 전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정성껏 진설 음식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지만, 지금은 복잡한 제사 대신 간단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으며, 대다수의 문중은 음식도 전문 업체에 의뢰하여 준비하기도 한다.
그리고 특정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 조상의 묘를 방문하지 않고 추모의 정신을 전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며, 해외 거주자나 거리가 먼 사람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물론 시대의 변화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전통적인 묘사의 형태를 지키면서 현재의 생활 방식에 맞는 간편하게 조상을 추모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라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묘사를 지내는 게 과연 조상과의 동기감응으로 이어가는 진정한 방법인지 의문이며, 조상에 대한 공경심에 대한 제사가 그저 형식에 그치는 것도 문제라 생각한다.
아직 전통적인 제례 의식과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지만, 더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부모 세대나 나이 많은 세대는 제사를 지키기 위해 자녀들에게 제례 참석을 강조하지만, 젊은 세대는 전통을 지키기보다 자신의 생활과 현실적인 문제가 우선이라며 참례 않는 경우가 많다. 다 이해하지만, 이제 우리의 오랜 전통의 제례를 어떻게 계승하고 이어갈 점을 고려할 때다.
음력 시월 제례는 우리를 낳아주신 윗대 조상을 기억하며 단순히 전통적인 제례를 지키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가문의 뿌리를 이어가는 중요한 행위이며, 제례의 본질적 의미를 인식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점차 퇴색해 가지만, 참례 구성원들이 다시 찾게 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