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구석구석에 솟아난 여우구슬 풀을
약재로 말려보았답니다.
그 바닥에 모래알처럼 남은 앙금들, 바로 잎사귀 아래
줄줄이 앙증스럽던 그 좁쌀만한 씨앗입니다.
풀 한 떨기의 우주,
그 세포에 만 가지 유전자를 다 품은 절대 고요의 생명.
하늘머리 땅머리, 낮 밤이 하나인 태초,
하나,
님.
밤중새별, 은하수, 어스럼별, 북두칠성,
동산새별, 견우성 직녀성, 사백성, 타광성
이십팔수 그 천공의 별님들, 그 신화...
찌르레기의 군무, 사나이와 계집,
인연, 관계, 생명의 장, 대지, 생태 그리고 인류...
이합과 집산, 개미탑, 모래시계, 모래성, 샌드 아트
그 생래적 인간의 고독과 운명,
그 매임과 신음과 허구렁...
새끼, 알, 요람, 유랑, 족보, 혼례, 바람, 존재, 숙명,
번민, 모색, 열망, 경계, 이기, 말없음부호...
기도, 꿈, 사랑, 노래, 함성, 대오, 촛불, 평등, 자유...
이, 밥, 밤, 배, 샘, 산, 시, 비, 불, 신...
집, 정, 빛, 원, 구, 심, 숨, 꽃...
그리하여 우리, 사랑, 하나, 통일, 천하
여우구슬에 반짝이는 깨알 글씨들입니다.
그리고 또 삽화...
이윤숙 작 <어머니의 방>
이윤숙의 채색그림
“달에 피다”
- Bloom in the Moonlight -
달은 꽃부리입니다.
어둠이 천천히 밤의 가장자리를 파고들면
천공의 중심을 밝히는 그 원만구족한 미소의
소소리와 다움과 사위와 무리의 어우름으로 만개한
지상의 자자하고 다사로운 빛부리입니다.
달은 내면의 태좌입니다.
기욺과 참의 영속으로
지구 생명 순환의 근원을 낳습니다.
이내가 낀 달덩이 속으로 배아의 눈이 싹트고
어디선가 여우의 울음소리 눈부시게
달은 문득 깨달음입니다.
오묘한 하나에서 나와 번연히 하나로 드는
눈썹 아래 오롯한 화두삼매처럼
입술에 아로새긴 오래된 시처럼
터진 듯 아물고 이운 듯 타오르는 묵언,
달은 그리하여 꿈길입니다.
욕망 분노 어리석음의 뒤안을 참회하며
밤새 잠 못 이룬 존재 위의 계수나무입니다.
사무쳐 밤마다 달에 피운 꽃,
들꽃화가 모정의 화실로 드는 또 다른 이정표가
여기에서 두방망이질입니다.
마주치는 인연의 숨 가쁜 붓동가리들이여,
끝끝내 다 못 피울 이생의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