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2:11 영적 게으름
영적 게으름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세속에 깊이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고 세상에 반응함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침) 잠19:15에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하셨다. 딛1:12에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그레데는 그리스 남쪽의 섬으로 바울이 로마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려 복음 전하고 교회 세움 추후 디도를 목회자로 파송함 - 그레데인들은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 배 만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반응 함 - 탐욕스런 그레데인들을 보여 줌 - 배로 하나님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음) 영적 게으름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원죄만큼이나 무서운 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영육 간에 모든 위기는 게으름을 통해서 온다. (영육을 곤핍하게 만듬) 특히 영적 게으름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무너지게 한다. 잠6:6-11에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하셨다. 그렇다. 영적 게으름에 빠지면 사탄이 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아담과 하와처럼 - 분별력을 잃게 됨) 베드로도 영적 게으름에 빠지게 되었을 때, (예수님 십자가의 수난을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 예수님 그렇게 간곡히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는데...) 결국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게 되었다. 마26:38-41에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 이유는 베드로가 깨어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서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세 번이나 영적 게으름에 빠져 기도하지 못했고 결국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험에 들게 되었다. (사명을 잃어버렸고 사람 낚는 어부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 다시 돌아감)
요21:2-3에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되어 다시 옛사람으로 살게 됨)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부지런하여”는 ‘스푸데’ 인데 ‘열심, 진심’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근면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앙생활의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보통 성도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닐 때에는 매우 열심이다가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게 되면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고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계2:4-5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셨다. (영적 게으름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게으르지 말고” 는 '오크네로이'인데 이는 ‘근심이나 걱정 또는 부끄러움으로 속히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 한다. ‘열심을 품고’ '토프뉴마티 제온테스' 인데 ‘성령과 함께 열심을 품은 마음으로 ...’ 라는 의미로 지속적인 열심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왜?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쉽게 환경에 지배를 받고 그 환경에 빠지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열심을 품고 헌신할 수 있음) 이렇게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해 주실 때 변함없이 주를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섬기라’는 '둘류온테스'인데 '종노릇하다', '섬기며 충성하다', '종이 되다' 뜻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성도들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모든 상황 속에서 충성으로 섬겨야 한다. (이유가 없음 - 핑계할 수 없음) 우리들이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열심히 하나님을 충성으로 섬길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신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신다.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면 하나님이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복을 주실 것이다. 100배, 1.000배로 갚아 주신다. 6·25전쟁 후, 울산에서 동태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한 여집사님이 있었다. 그분은 동태 장사를 하면서도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하나님! 죽기 전에 반듯한 성전 하나 봉헌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소서.!” 그렇게 10년 가까이 기도했는데 여전히 삶에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동태를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저의 꿈을 기억해주세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꼭 보여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한 할머니 집 앞을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여집사를 불렀다. 그 할머니가 골동품 상자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풀면서 말했다. “이 보따리는 오랫동안 모은 동전 보따리인데 이 보따리랑 동태 한 상자를 바꿔 주실 수 있어요?” 그분은 평생 모은 동전 보따리라는 말에 감동이 되어서 그냥 동태 한 상자와 바꾸어 주었다. 집에 가서 그 주머니를 풀어보자. 동전도 아닌 이상한 것이 하나 들어 있었다. 너무 이상한 것이라 목사님께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목사님도 보니까 하도 이상하게 생긴 지라 서울 인사동 골동품가게에 까지 찾아가 감정을 의뢰했다. 가게 주인이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참을 뜯어 보더니 값을 많이 쳐줄 테니 팔라고 했다. “얼마 주겠소.!”하고 물으니 1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목사님은 가슴이 덜덜 떨렸다. 1960년대에 10만 원이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목사님이 대답했다. “내 물건이 아니고 감정만 하러 온 것이니까 팔 수 없습니다.” 그때 가게 주인이 다시 팔라고 조르면서 “1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그게 엄청난 골동품임을 눈치를 챘다, 그래서 목사님은 팔 수 없다면서 가게 밖으로 나오자 가게 주인이 따라 나와서 붙잡으며 이번에는 200만 원 주겠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백만 원씩 500만 원까지 올랐다. 그래도 목사님이 안 팔겠다고 하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600만 원 주겠습니다. 안되면 그냥 갖고 가세요” 그때, 목사님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느끼고 600만 원에 팔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골동품은 6.25 전쟁 때 미군 장교가 가지고 있던 것인데 그 미군 장교가 전사한 후 시체 수습이 안 되었고 그 골동품만 남은 것을 할머니가 산에 갔다가 주워왔다. 목사님은 600만 원을 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울산에 내려와 그 집사님에게 600만 원을 보여주자 집사님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셨군요.” 그 집사님은 300만 원을 목사님께 성전 건축 헌금으로 드렸다. 그리고 그 할머니께도 고맙다며 100만 원을 드렸다. 200만 원이 남았다. 집사님은 기도했다. “하나님!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요?” 며칠 동안 기도하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울산 바닷가에 있는 모래 자갈밭을 사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자갈 밭은 잡풀만 무성하고 나무라고는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 곳이었다. 거저 주어도 안 갖는 땅인데 기도만 하면 그 자갈밭이 보였다. 당시 그 땅이 모두 5천 평인데 당시 평당 300원씩 해서 150만 원을 주고 샀다. 집사님은 그 땅을 사고 난 후 몇 년 동안 계속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땅을 어떻게 사용하실 건가요.?” 어느 날, 집사님 집에 자가용 한 대가 멈추더니 두 명의 신사가 내렸다. 그들은 가방을 열더니 서류를 꺼내놓고 집사님 땅을 팔라고 했다. 얼마 주겠냐고 물으니 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집사님은 팔지 않겠다고 했다. 다시 며칠 후, 그 신사 일행이 또 와서 1억을 줄 테니까 그 땅을 팔라고 했다. 안 판다고 했다. 2억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 판다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 29억 원에 팔았다. 그곳이 울산 현대자동차 정문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집사님은 다시 교회에 2억 원을 건축헌금으로 내놓아 교회당을 크고 아름답게 지어드렸다. 나머지 27억 원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기도하다가 다시 땅을 샀는데. 몇 년 후에 그 땅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그 집사님은 수천억 원대의 거부가 되었다. 결국 죽기 전에 성전 하나 짓게 해달라는 꿈을 하나님이 멋지게 이루어 주셨고, 그 꿈을 기뻐하신 하나님이 물질의 복도 활짝 열어주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집사님에게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히 순종할 때,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마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신 대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말고 항상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인생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