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루트를 찾아서(정운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포르투대성당 전경. 정운필 신부 제공
둘째 날 순례를 시작할 때 마을 입구에 있는 500년 넘은 중세 다리 'Ponte Dom Zameiro'. 정운필 신부 제공
누가 내게 하필 왜 산티아고인가 묻는다면 ‘멜러리’라는 산악인이 한 말을 그대로 하고 싶다. “Because it is there.” 왜냐하면 산티아고가 거기 있으니까!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진짜로 그저 단순히 거기에 산티아고가 있으니 가는 거다.
그렇다면 이미 몇 번이나 갔는데 또 왜 가느냐 묻는다면, 아직도 산티아고를 몰라서라고 둘러대고 싶다. 솔직히 본인도 모르겠다. 횟수로 여섯 번째, 코스로 프랑스길(840㎞), 대양길(477㎞), 원시길(320㎞)에 이어 네 번째 포르투갈길 248㎞. 평소 순례자가 다른 코스에 비해서 훨씬 적은, 해안길(costal)과 내륙길(central)이 있는 이 코스에서도 순례객이 더 없고, 더 힘든 내륙(산악코스는 없음!) 코스. 나는 지금 왜 여기를 가고 있는가? 그저 거기 산티아고가 있으니까! 걸으면서 내가 지금 무엇하고 있나, 왜 왔는가, 편히 쉴 수 있는데 사서 고생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다.
실은 2008년 중반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것이 여행이다!’라는 부제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것이 방영되었다. 거기에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다큐같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중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걸 보면서 이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나름 기회는 많았지만, 우여곡절 7년 뒤에 연피정 겸 휴가를 합쳐서 2주 동안 프랑스길 레온(Len)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310㎞를 걸었는데, 그 체험이 너무 강렬하고 진한 감동이 있어 기회가 될 때마다 찾은 것이 여섯 번째다. 그래서 이렇게 포르투갈길을 걷고 있다. 스페인, 아니 유럽 전체가 산티아고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수히 많은 길이 산티아고로 향한다. 꿈이라면 꾸르실료 발상지(Mallorca)부터 산티아고까지 1200㎞가 넘는 길을 걷고 싶다. 꿈은 꿈일 때 아름답다!
카페 콘레체와 여행자 여권.
산티아고길에서 만나 체험하는 것은 모두 자기 생각에 따라 다르다. 말하자면 일종의 해몽인데,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묵상이 되고 기도가 되며, 혹은 유혹 또는 시련이 된다. 예를 들면 이 코스의 시작인 포르투갈 포르투(Porto)에 올 때, 국적 비행기가 연착되어 네덜란드에서 유럽 항공으로 갈아타는 시간이 촉박해졌다. 안내자가 갈아타는 곳으로 인도하면서 재촉하는 터에 본의 아니게 내리뛰었다. 맨발에 샌들, 배낭, 입국심사대, 출국검사대를 거쳐 갈아타는 과정, 땀나게 뛰었다.
이걸 어떻게 볼까. 산티아고 걸음 연습시키기? 아니면 시작하기도 전에 진 빼기? 선택은 본인의 몫,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두 가지를 모두 생각했지만, 오른 새끼발가락이 까져 피멍이 들었다! 이게 열흘 남짓 걷는 데 많은 불편함을 주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십자가가 주어진 것이다. 그 상처만 아니었다면 좋은 연습이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 포르투 대성당(S Catedral do Porto)에서 순례자 여권(credencial)을 받고 출발했을 때 성당을 나와 화살표를 잘못 봐서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어느 한 다리 위에서 위치를 확인해 보니 그곳이 안내 지도에서 출발하는 지점이었다. 헛수고했다는 실망보다 진짜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이 걸음은 힘들어도 의미 있게 해줄 것이다.
산티아고 도보는 편안한 것이 좋다. 편리하게 대충하라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무탈하게 최대한 효과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 단계부터 전투를 벌이듯 철저해야 한다. 모든 준비물은 자신에게 편한 것을, 고급 브랜드나 이것저것 장비가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라.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조금 원시적으로 살 각오로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작하기 전 또는 걸으면서 나름 이 순례의 진짜 목적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올레길과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영적인 목적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들판의 별 성 야고보)에 순례하는 이유가 개인적 이유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서든 확실한 목적은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다. 또 하루하루 루틴을 만들어라. 나의 루틴은 동트기 전에 출발, 숙소 셀카, 시작과 동시에 묵주 기도, 첫 만난 카페에서 아침 또는 Caf con leche(그냥 라테 커피임), 도중에 경당 들르기, 오후 2시나 3시 이전에 도보 끝내기였다. 이 작은 루틴이 하루하루 목표가 되어 게을러지려는 유혹을 뿌리치게 할 것이다.
정운필 신부 /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