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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주를 만날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암4:12마26:64롬3:23
지난달 말 KBS 보도에 따르면 북한 자강도에서는 압록강 홍수로 인해 사망자가 총 100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위성사진으로보면 자강도 내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희천시와 강계시를 잇는 도로는 이달 초 토사에 파묻혔고 교량은 무너져 있는 상태다. 무더위 속에 곳곳에서 수습되지 못한 시신이 부패하면서 전염병이 창궐하여 피해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피해를 보도하는 우리 언론에 대해 김정은은 “한국 쓰레기 언론들은 날조 자료를 계속 조작해내면서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남측 언론들을 맹비난했다. 그는 “피해 지역 실종자가 천 명이 넘는다느니, 구조 헬기가 여러 대가 추락했다는 허위 보도를 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수해 인명 피해는 한 명도 없다”고 항변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월스트리트저널는 최근 전 세계적 폭우로 인해 아프리카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를아에서는 7m파도가 몰아친 대홍수는 너무나 끔직한 홍수였다고 보도하였다. 워싱턴포스트(WP) 취재팀은 데르나 일대는 며칠 만에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며 이번 재난을 "신화에나 나올 법한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압둘메남 알가이티 데르나 시장은 아랍권 매체인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인구12만5,000명 중에서 희생자가 최대 2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앙은 홍수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지구촌 곳곳이 기록적인 더위로 신음하는 가운데 살인적인 여름 더위는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의 '최장 연속 열대야' 기록이 여전히 멈춰지지 않으며 무더위는 9월초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처서가 지났있으나 여전히 전국적인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 델리에서는 무려 37일 연속으로 40도-50도가 넘는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수백명을 넘어섰다.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성지순례(하지) 기간에 덮친 폭염으로 1000여 명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구가 더워질수록 습도도 높아지면서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양도 많아지기 때문에 홍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의 죽음도 리비아 홍수에서처럼 갑자기 찾아오므로 인간은 늘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중에서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오직 영혼이 있는 인간만이 갖는다. 다른 동물들은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할 수 없는데 우리 인간만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라면 누구든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그래도 나는 선하게 살고자 남을 위해 선한일도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확실히 말하는데 인류역사상 죽음이라는 사망권세를 이겼던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는 없다. 그는 인류의 죄를 사하고자 십자가위에서 죽으셨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인류역사는 그분 탄생한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죽음 후에는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생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으로 인하여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과 내세관을 갖고자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상고해 본다.
1.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표본을 보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다고 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부름받은 이후 그의 삶을 통해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가를 보면서 우리들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면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하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그 이삭이 15살 정도 되었을 때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렸다. 그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것은 하나님의 어떤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에 이삭을 바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아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씀이다.
(롬5:18) 그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면서 믿었으니, 이것은 네 씨가 이와같으리라.
아브라함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는 언약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려함에는 창15장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의 씨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다.
(창15:5-6) 5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린 후 다시한번 재확인을 하셨는데
(창22:17)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 천사를 통해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는 약속 곧,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반복하였다. 보이는 것 저편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하람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네 씨가 바다의 모래알같이 하늘의 별들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어떠한 시련도 이기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아브라함은 아직 자식을 낳기도 전에 네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도 들려주셨으니 반드시 자기 몸에서 자식이 나와 번성할 것을 믿었다.
(창15:13-14)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년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14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지금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도 하나님의 언약,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를 온전히 믿었으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수세기를 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살면서도 그들은 선택된 자로서 이미 구원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이를 모른 채 아무런 꿈도 없이 애굽에서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중 때가 되니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하여 약속된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홍해바다를 건넜고 광야를 지나는 하늘에서 주는 만나를 사십년동안 먹으면서 살았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만 당하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했던 것은 그들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눈앞에 닥친 어려움만을 불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신 백성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엡1:4).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불안과 염려로 낙심과 절망의 삶을 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의 땅을 직접 보여주시고자 12지파의 대표들에게 가나안 정탐보고를 하였는데 그들이 바란광야의 가데스에 이르러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 땅의 열매를 보여 주며 모세에게 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우리가 간즉 참으로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열매이니이다(민13:26-27). 그들의 증언함과 그들이 가져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겉으로 들어난 견고한 성과 장대같이 큰 아낙자손들의 이야기만 듣고서 다시 그들은 부정적 자아의 늪에 빠져서 그들은 눈앞에 있는 가나안을 안가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의 어려운 상황과 우리들의 부족함만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 천국에서 영생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의심하다보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속에서 축복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2. 사도바울의 신앙
신약 성경27권중 13권을 기록한 바울의 신앙은 무엇이었을까.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일생의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사울은 자신이 정말 모범적인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나니아로부터 들은 소식은 너는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앞에 예수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하나님의 그릇이라는 말씀이었다(행9:15).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을 잠시 본다면
(고후11:23-27) 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당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강도들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교도들의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굶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울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처럼 고난 핍박중에서도 복음전도자가 되었는가 하면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택해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쓰시겠다는 말씀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바울의 신앙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는 죄중에서 잉태되었고 죄악중에서 태어났으니 죄인 아닌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자신을
(딤전1:15) 죄인들 중의 우두머리라.
(2)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은 육체뿐 아나라 정욕, 탐심같은 인간적 세속적인 것들 모두가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말이다. 이래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연합된 삶이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도 있다. 부활을 위한 삶이라면 십자가에서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3)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고전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고난중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방문한 교회들에게 서신도 연락하면서 항상 승리하라고 권고하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신앙이 올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나의 신앙이 정말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신앙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 나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상태인지 깨닫지 못하고 신앙하지는 않는가(계 3:17) ?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신앙인으로서 가장 큰 위기는 자신이 예수님 밖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 위기이다. 지금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시는가?
바울의 위대한 신앙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여 이방인의 사역자로 사명을 받았다는 믿음이 그를 고난에서 복음전도자의 승리자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말씀에 붙잡혀 있어야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만나볼 수 있을까?
지금은 예수님을 믿던 안믿던 종말이라고 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재림에는 관심이 없으며 단지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정말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행복하다고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불행해 빠지기도 하는데 행복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 때 시작됩니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분이라는 십자가의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불행과 실패의 늪에 빠져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들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로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자는 바로 예수님을 믿는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행복을 원한다면 지금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했듯이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기후재앙으로 인하여 지진 가뭄 폭염 홍수 혹한 전염병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말의 징조가 지구 재앙이라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자기 병을 공중에 쏟아 부으매 큰 음성이 하늘의 성전에서 왕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다 이루어졌도다, 하더라. 일곱째 천사가 재앙의 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천둥들과 번개들과 또 큰 지진이 있었는데 그 지진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은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16:17-18). 예수님이 오시기전 이 세상에는 지구역사상 엄청난 큰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면 섬이 없어지고 산들도 보이지 않고 또 일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내리니 사람들에게 그 재앙이 심히 큼이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밀리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산들이 가라앉고 섬들이 물에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어버릴 정도의 지구역사상 최대의 지진이 발생하고 바다에서는 쓰나미가 밀려오게 되면서 땅은 위 아래로 요동칠 것이고 집들은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런 상황속에서 누가 살아남을까요? 하나님의 편에 서서 미혹당하지 않은 자들이 살아남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재앙이 임할 때 하늘을 보면서 감격의 장면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이건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가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지막 환란을 말할 때 짐승의 표 환란이 시작된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이 100% 확실해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께서 정말 오실까? 의아해 하지만 짐승표 환란이 시작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눈앞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환호하여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자 마지막 환란이 시작되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알고 있는 성도들은 두가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주께서 재림하신다는 환호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짐승의 표 환란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이적들이 생기고 온 세상이 하나로 연합될 때 그러나 한 소수의 무리가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보면서 예수께서 오실 때가 이제 다 되었구나 이렇게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사탄의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으로 들어가는 엄숙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전쟁하면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데 때로는 러시아가 밀리면서 푸틴은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경고를 하는데 정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지구멸망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불로 멸망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정말 핵무기를 사용하면 지구는 불에 녹아버린다는 말씀이 성경에 이처럼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핵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은 2차 세계 대전때 미국이 일본에 핵무기를 투하하면서 핵무기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당시보다 핵위력이 몇백배나 더 강해졌으며 전세계적으로 핵탄두가 1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핵무기 사용은 정말 지구종말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45년 핵폭탄을 만든 아인슈타인 등이 창설한 미국 핵과학자회는 지구멸망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핵위협등을 종합 고려하여 1947년부터 해마다 종말시각을 발표해 왔는데 처음에는 7분전으로 시작한 시계는 미.소 냉전이 최고조였던 1953년 2분전까지 갔다가 미.소간 전략무기 감축협상이 체결된1991년에는 17분전으로 늦추어 졌습니다. 그 후 기후변화로 지구온도가 상승하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산불발생, 전염병발생, 지진이나 화산폭발로 지구종말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지구종말 시간은 2020년 이후 100초전으로 유지되어왔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에는 미국 핵 과학자가 지구 종말까진 남은 시간은 90초 남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렇게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사람들은 세상 잠에 빠져 있기 때문에 죽을 때 죽더라도 전혀 신경안쓴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 지구종말의 징조가 과학자들에 의해 경고되고 있는데 불과4년전 2019년 12월 16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폐렴이 우한에 등장하면서 2019.12.31부터 이런 우한폐렴을 처음으로 sns를 통해 알렸던 사람은 의사 리원양이었는데 그는 동창 의사들 SNS 대화방을 통해 폐렴 증세를 최초 경고했던 정보가 인터넷에 급속히 전파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인구 1100만이 사는 거대한 도시전체가 봉쇄되면서 우한은 텅빈 도시로 전락되면서 우한에 있는 화장터 49개가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다는 것이 당시의 상황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세계보건기구 WHO에 압력을 가하면서 코로나 발생이 우한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우한 폐렴을 코로나19라고 명명하면서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했다. 3년 동안 확산되었던 코로나로 인하여 확진자 7억여명, 사망자 700만여명을 할퀸 코로나는 인류 역사에 깊고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람들이 왜 코로나를 무서워하는가는 바로 죽음 때문이다.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내가 죽는다면 세상을 다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이처럼 두려워하는 죽음은 인간의 죄악으로 부터 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비법은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면 속죄일에 양이나 염소의 피를 통해 죄 용서받는 법을 배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2000여년 전에 속죄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우리들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던 것을 아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수많은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고 마귀들을 추방시키시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셨습니다. 질병과 사고로 죽음이 갑자기 오는 이 땅에서 인간이 참된 안식을 얻는 곳은 예수님을 믿는 것 이외는 아무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인간 누구도 죄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와야만 죄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말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이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 이외는 죄문제를 해결할 길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죄로부터 오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만약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소망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죽은 자들을 세 명이나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데가볼리에서 배를 타시고 가버나움으로 가시니 회당장인 야이로라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의 어린 딸이 지금 죽어 가고 있으니 오셔서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막5:35-36) 35 그분께서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어떤 이가 와서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시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이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셋명이 회당장의 집에 가사 소란한 것과 슬피 울며 크게 통곡하는 자들을 보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떠들며 슬피 우느냐 이 소녀는 죽지 않고 잔다 하시니 저희가 그분을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그것을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하시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막5:37-42).
두 번째는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나인성으로 가시는 중에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관을 메고 나오는 것을 보시고 그 아들을 살려냅니다.
(눅7:13-15) 13 주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14 거기서 관에 손을 대시니 그를 나르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그가 앉아서 말하기 시작하거늘 그분께서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넘겨주시니.
마지막은 죽은 지 4일이 지나서 무덤에 묻혔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요11:41-44) 41 그때에 그들이 죽은 자를 둔 곳에서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3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큰 소리로 외쳐,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44 죽은 자가 수의로 손발이 묶인 채 나오는데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묶였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풀어 주어 그가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번에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앞서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처음으로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에서 알렸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을 한 장소입니다.
(마16: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그리고 두 번째로 갈릴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7:22-23) 22 그들이 갈릴리에 거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23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지리라. 하시니 그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세 번째로 예루살렘 가까이 가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마20:18-19)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정죄하여 죽게 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 셋째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셨다가 제 삼일에 살아나신다는 주님의 비장한 말씀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신 것을 시작으로 제자들을 교육시키면서 최후의 만찬후에는 올리브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주 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하시면서도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하신 후에는 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보낸 군병들에 의해 체포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기 전에 이미 사형에 처한다는 그들의 회의가 있었으므로(마26:4) 체포된 후에는 무슨 죄로 사형에 처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거짓증인들이 예수님의 죄를 고소하였지만 예수님은 저들의 말에 답변도 하지 않았으나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인지 직접 물었을 때는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마26:6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이후에 너희가 보리라, 하시더라.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한 신성모독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었을 때 오직 대제사장이 네가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는 그말에 대해 내가 마지막 날에는 구름들 가운데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정말 믿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제사장의 물음에 대답하신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신후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마지막 날에는 구름을 타고 다시 오면 너희들이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늘로 구름타고 올라가신 예수님의 승천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눅24:51)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예수님은 승천을 목격한 성도들은 너무 기뻐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증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15:4-6) 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5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6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 중에 대다수는 지금 이때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리라.
주님의 승천을 목격한 증인이 50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였는데 바울당시에도 그들 중 대다수는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복음서 마지막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과연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마25:1-2. 10-13) 1 그 때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아간 열 처녀와 같으리라. 2 그들 중의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더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된 자들은 그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니라. 11 그 뒤에 다른 처녀들도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하나 12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열처녀 비유는 앞서 재림의 징조를 설명한 말씀인데 당시 유대의 결혼식은 해가진 후에 시작되었는데 이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집 문밖에 나가서 등 들고 기다리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에 오면 영접하게 되는데 신랑이 신부집에 오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부 들러리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하여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부분을 비유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신부는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인데 주님이 오셨을 때는 오직 지혜로운 자들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성경 마지막은 마라나타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님 어서 오십시오 라는 말인데 세상 잠을 자다가 주님 만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주님 오시는 것은 종말에 일어날 큰 사건인데 우리는 그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지구재앙의 징조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계16:15)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나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여 그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신부가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듯이 신부는 깨어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고 다니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준비하여야 된다는 말씀이다.
(갈3:26-27) 26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었나니 27 너희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는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침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위에서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정말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한 모습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다. 또 주님을 만나는 신부가 되려면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세마포는 무엇일까?
(계19:7-8) 7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 8 또 그녀가 깨끗하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라.
성도들의 옳은 행실 즉 의로운 행위가 바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세마포 옷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의로운 행동에 대해서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만일 우리들이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인데 의의 옷을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마22:11-12) 11 왕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때에 거기서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그에게 이르되, 친구여 어찌 네가 거기서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이에 왕이 그 종들에게 이르되 그의 손발을 묶고 그를 데려다가 바깥 어둠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예수님이 오실 때 그분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세상잠에서 깨어 있으면 만나게 되는줄 믿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오셨을 때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본 사람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안나와 시몬처럼 깨어 있는 자는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24:44-45) 44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45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줄 진실하고 지혜로운 종이 누구냐?
제 때에 양식을 나누어 줄 지혜로운 종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므로 재림소식을 전하는 양식을 주는 종들을 향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전하신 마지막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마25:32-46) 32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33 양들은 자기 오른 편에 두되 염소들을 왼편에 두니라. 34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세상의 창건이후로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내가 헐벗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하리니 37 그때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 하리라. 40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노라, 하고 41 그때에 왼편에 있는 자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45 그때에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게 하지 아니였느니라, 하리라. 46 그리하여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라, 하시니라.
4. 마지막 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정말 중요한 말씀은?
아브라함이 언제나 가슴속에 두었던 말씀은 내 씨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번성하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가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 후손이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이후로는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특별히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전도자라는 사명과 함께 유대민족을 위해 저주를 받더라도 내 민족은 구원해 달라는 그의 믿음 때문에 그는 복음전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성경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한 그릇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말씀을 붙잡고 있어야 할까? 마지막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인데 우리들의 소망은 그날 예수님을 뵐 수 있느냐인 것이다. 누가 만날 수 있을까?
당연히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성경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여러군데 있는데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만 들림받을 수 있다.
(살전4:16-17) 16 이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러오시리니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예수님의 재림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천사들과 나팔 소리가 동반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장면은 예수님의 재림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인 규모의 중요한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재림의 극적인 표현은 신랑을 맞이하는 혼인잔치라고 하였습니다. 신랑 예수님과 신부 교회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아내가 신부 단장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내입니까?주님 오시기만을 사모하며 기다린 성도들이며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한 성도들입니다.마지막때 성도들이 성령으로 기름등불 준비하면 신랑 맞을 준비가 끝나면 그때에 예수님께서 신부를 영접하러 구름타고 오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 그 때는 정확히 몰라도 징조는 알려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1절 말세에는 처처에 기근 지진 역병이 있다고 하였는데 한마디로 주님오실 때에는 이런 전염병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최근에 있었던 코로나를 생각하면서 주님 오실 때에는 이 모든 것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주님오시기전 지진이나 기근이나 전염병같은 이런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로 일어나는 것이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마침 이런 자연재해에 대해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칼럼이 나왔던 것을 소개합니다.
(1)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진노인가?
크리스챤투데이 나온 칼럼을 소개하는데 이글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갈라놓는 시금석이라고 볼 수 있다. 연일 자연재앙에 대한 뉴스가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산불이 잡혔지만 호주는 2020년 1월말 기준 6개월 넘도록 거대한 불길은 수많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류, 그리고 그 외 다른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실제로 Australia 호주는 무려 6달 이상 지속되는 산불로 호주 산불 피해는 우리 남한의 면적과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호주의 재앙은 산불만이 아니다. 산불이 꺼진 후에는 골프공 크기의 우박과 홍수로 사람들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며칠 전까지도 대규모 산불과 건조한 날씨로 고통받던 호주 동남부 지역이 이번엔 자동차를 파손시킬 만큼 큰 우박덩어리들과 많은 비를 쏟아 부은 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호주 언론들이 전했다. 이런 재앙은 호주만이 아니다. 이번 중국발 우한폐렴도 만만치 않다고 전제를 하고는 칼럼은 그런데 왜 호주에 산불이 일어났고 중국에서 우한폐렴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이런 재앙에 대해 해석이 다르다. 이런 재앙문제는 과연 어떻게 진단하는 것이 정당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연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라고 하면서 인간이 조금만 조심했으면 일어나지 않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견해이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주장한다.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이다. 어떻게 창조주의 법칙을 인간이 뜯어 고칠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해석하려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는데 유물론자들은 물질적인 것에서 원인을 찾고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원인을 찾는 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다른말로 설명한다면 신학은 우리에게 왜를 가르쳐주지만 과학은 우리에게 어떻게를 가르쳐준다. 지금 예수믿는 사람들조차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재앙을 어떻게로만 해석하려고 한다.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어떻게 피하여야 되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왜가 아니고 어떻게든지 손 잘 씻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면 유물론자가 되고 만다. 자 기독교와 유물론자의 차이는 과학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과학을 제일 원인으로 보느냐 아니냐가 신학과의 차이다. 그리스도인은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믿지도 않지만 과학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왜에 더 관심을 갖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가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눅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가 부족한 것을 알고 더 확장할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가 자기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인색한자.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들이 정말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이시다. 오늘날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지혜로운 자들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인데 지금은 은혜받을 때이므로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암4:12)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아모스는 유다왕 웃시야의 통치기간에 무화과를 가꾸는 일을 하면서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이며 농부였다. 아모스는 북왕국의 작은 도성들이 번영하게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 숭배의 풍기 문란한 영향을 받아 전례가 없는 퇴폐풍조로 사회 전반이 부패와 타락된 모습을 보고 아모스는 크게 충격을 받게 되면서 그의 예언이 발생하게 된 동기였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되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심판하실런지 알 수 없으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말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갑작스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회개하여 임박한 심판을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로 깨어 근신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의 심판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라는 사실(살전5:2)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들 또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 하라는 말씀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징계를 전제하는 말이기 때문에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경고이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구원의 조건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바빠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일에 빠진다면 이런 낚시광처럼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낚시광이 자기의 어린 딸을 데리고 바위섬으로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 바위섬은 물이 나가면 섬이 들어나지만 물이 차면 잠기는 섬이었습니다. 그는 딸 아이를 바위섬에 두고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노를 저어 깊은데로 갔습니다. 물고기 잡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덧 석양이 저물어 갈 무렵 그는 딸아이를 생각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노를 저어 딸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딸아이는 보이지 않고 물에 잠긴 섬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의 황당함이 오죽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일에 몰두한 나머지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십니다. 지금이 주를 만날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 인생의 끝 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한 청년이 사무실에서 어느 방문한 기독교인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보험증서를 받는 날 그 직원은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죽은 이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하셨지만 영원히 당신을 보호할 영생보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가 만약 이 마지막의 기회를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잠27:1) 하셨습니다. 여러분! 영원한 죽음과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날이 매우 임박해졌습니다. 지금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 주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