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불교가 노동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관련하여, 경전이나 스님들의 어록 또는 관련 자료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여쭙습니다. ( 불교의 노동관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경영학 교수가 저한테 물어와서 이렇게 여쭙게 되었습니다.)
답변입니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학술적인 글을 쓰려면 '선행 연구'를 많이 참조해야 합니다. 불교의 노동관 관련하여 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논문들이 있더군요.
1. 불교의 노동관 - ‘호미 든 관음상’에 담긴 사회적 의미
2. 印度佛敎戒律에_있어서의_노동
3. 근대 인도의 노동의 철학(karma-yoga)과 근대 한국불교의 선농일치(禪農一致) 사상 비교
4. 불교의 노동관 (勞動觀) 소고 (小考)
5. 선종(禪宗) 선원과 기독교 수도원의 노동 비교 - 선문청규(禪門淸規)와 수도규칙 중심으로 -
6. 근대 한국의 선농불교(禪農佛敎)에 대한 재조명
이들 논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들 논문을 하나의 폴더에 담았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대학 교수나 대학원생, 학생의 경우 자신이 소속한 대학의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로그인 한 후 Riss 검색을 통해 원하는 논문을 다운로드 할 수 있을 겁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도서관에서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일반인의 경우 국회도서관 등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 논문을 보시면, 각주나 참고문헌에 노동 관련한 경문의 출처 또는 불교의 노동관 관련한 여러 가지 서적이나 논문이 적혀 있을 겁니다. 계속 새끼를 치듯이 그런 식으로 찾아가면 많은 자료를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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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노동관을 연구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선원 청규를 제정한 백장 스님의 "일일부작일일불식[ 一日不作一日不食 ](일을 하지 않는 날은 밥을 먹지 않겠다.)"의 가르침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유교에서는 육체 노동을 천시했지만, 불교는 이와 달리 노동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찰은 '미투리'나 '종이(한지)'를 제작하는 수공업의 공방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동 관련하여 초기불전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교 수행에서 성불을 향한 보살도는 '복덕의 길'과 '지혜의 길'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노동'의 경우 '복덕'을 쌓는 행위입니다. 과도한 수행으로 시력을 상실한 아나율 존자의 바느질을 도우신 부처님의 일화에 그런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해당 경문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 때에 아니룻다는 보통 눈으로 옷을 기우려 하였으나 실은 바늘 구멍에 꿸수가 없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이 세상에서 도를 얻은 아라한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어다오'. 세존께서는 깨끗한 하늘귀로 그 '이 세상에서 도를 얻은 아라한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어다오'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세존께서는 아니룻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 바늘을 가져 오라, 내가 꿰어 주리라."
아니룻다는 사뢰었다.
"아까 제가 말하기는, '세상에서 복을 구하려는 사람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라'고 하였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복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른다. 여섯이란, 첫째는 보시요, 둘째는 교훈이며, 셋째는 참기요, 넷째는 법 뜻의 설명이며, 다섯째는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위없는 바른 도를 구하는 것이다. 아니룻다야, 이것이 이른바 '나는 이 여섯 가지 법에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이니라."
아니룻다는 사뢰었다.
"여래님의 몸은 진실한 법의 몸이신데 다시 무슨 법을 구하려 하시나이까. 여래님은 이미 생·사의 바다를 건너시고 또 애착을 벗어나셨사온데 지금 또 복의 으뜸 되기를 구하시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니룻다야. 네 말과 같다. 나도 이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줄을 안다. 만일 중생으로서 죄악의 근본인 몸·입·뜻의 행을 참으로 안다면 마침내 세 갈래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죄악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 갈래 나쁜 곳에 떨어 지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힘으로
천상·인간에 두루
놀 때에 복의 힘이 가장 훌륭하나니
그 복으로 불도를 성취하네.
"그러므로 아니룻다야, 방편을 구해 이 여섯 가지 법을 얻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 전자아함경의 번역문
是時,阿那律以凡常之法而縫衣裳,不能得使縷通針孔中。是時,阿那律便作是念:「諸世間得道羅漢,當與我貫針。」
是時,世尊以天耳清淨,聞此音聲:「諸世間得道阿羅漢者,當與我貫針。」爾時,世尊至阿那律所而告之曰:「汝持針來,吾與貫之。」
阿那律白佛言:「向所稱說者,謂諸世間欲求其福者,與我貫針。」
世尊告曰:「世間求福之人無復過我,如來於六法無有厭足。云何為六?一者施;二者教誡;三者忍,四者法說、義說;五者將護眾生,六者求無上正真之道。是謂,阿那律!如來於此六法無有厭足。」
阿那律曰:「如來身者真法之身,復欲更求何法?如來已度生死之海,又脫愛著。然今日故求為福之首。」
世尊告曰:「如是,阿那律!如汝所說,如來亦知此六法為無厭足。若當眾生知罪惡之原身、口、意所行者,終不墮三惡趣;以其眾生不知罪惡之原,故墜墮三惡趣中。」
爾時,世尊便說此偈:
「世間所有力, 遊在天人中,
福力最為勝, 由福成佛道。
「是故,阿那律!當求方便,得此六法。如是,諸比丘!當作是學。」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증일아함경, 대정신수대장경2, p.719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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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불교의 노동관 관련하여 논문이나 책을 쓰신다면, 내 주장의 근거로 삼은 원전을 직접 찾아서 읽어본 후 주석에 그 출처를 달아야 하는데, 불교 원전이나 번역문을 직접 찾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위에 인용한 <증일아함경>의 우리말 번역문은 전자아함경에서 채취한 것인데, 아래에 전자아함경 프로그램 파일을 올립니다. 다운로드 한 후, 설치 없이, 경판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한 후, 좌측의 예시와 같이 내가 찾고자 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우측 창에 경문의 한글 번역이나 한문이 뜹니다.
2. 동국대불교학술원에서 제작, 운영하는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가 있는데, 이곳에 많은 불전의 우리말 번역과 원문이 실려 있고 검색 기능을 통해 내가 원하는 내용이 실린 경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kabc.dongguk.edu/
3. 불교 한문 독해가 가능한 분들은 대만의 중화전자불전협회에서 제작,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CBETA 대장경 검색을 통해 원하는 경문을 볼 수 있습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cbeta.org/home
CBETA 대장경을 내 컴퓨터에 설치하여 검색하고자 할 경우 아래에 링크한 본 카페의 게시판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buddhology/UXBC/7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교수님, 많이 바쁘실텐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