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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장인 이드로의 상봉(1-5)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가정의 회복, 그리고 그분의 계획을 따르는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루신 일들을 믿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가득 차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 2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3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함이요 4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5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더불어 광야에 들어와 모세에게 이르니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1-5)
이드로가 모세의 장인이지만 그의 장인이 르우엘과 호밥이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나는 이유로 혼란을 일으키는데, 이 문제는 3:1에서 충분히 논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르우엘이란 인물은 장인이 아니라 이드로(호밥)의 아버지이며 이드로 집안의 가장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드로와 호밥은 동일 인물로서 모세의 장인으로 받아들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고대에는 국가의 최고신이 존재하면서도 여러 신들이 숭배되고 타국의 신들도 유입되던 시대였기에 이스라엘의 여호와의 명성이 여러 국가에 알려진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심지어 발람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여호와가 어떤 이방인 사제들에게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숭배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 또한 여호와를 알았으며 신들의 하나로는 인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세의 간증에 대한 이드로의 반응과 고백, 그리고 그의 태도는 평소에도 그가 히브리인의 신 여호와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다신론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이상할 것 없습니다. 특히 양쪽이 우호적 관계일 때는 상대의 신에 대해서도 매우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방인 신분이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복을 비는 사례가 여러 차례 발견됩니다(창 14:18-20; 왕상 10:6-10; 대하 2:11-12).
여기서 모세가 십보라와 두 아들을 전에 장인 이드로에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2). 앞서 이러한 사실이 보고되지 않기에 독자들이 다소 혼란을 느끼지만, 모세에게 초점을 맞춘 출애굽기 저자에게는 중대한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앞선 피 남편 사건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생명이 위협받은 긴박했던 그 사건은 장남 게르솜으로 추정되는 아들에 대한 십보라의 긴급한 할례와 더불어 수습되었습니다(4:24-26). 이 사건 직후에 모세와 아론이 함께 애굽으로 떠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이때 모세의 가족, 아내 십보라와 그의 아들들은 거기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십보라는 두 아들과 함께 아버지 이드로에게 돌아갔습니다.
모세가 언약 백성을 구하는 대업을 위해 애굽 땅으로 가기 전에 그의 가족이 먼저 온전한 언약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그의 두 아들, 특히 장남 게르솜의 할례가 실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긴박한 상황을 연출하시면서 게르솜의 할례를 압박하셨으며 결국 십보라의 신속한 할례 집행과 더불어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나님에 의한 이 긴급한 조치의 목적은 모세의 가족이 온전한 언약 백성의 자격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아 모세는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가는 중에 피 남편 사건을 겪었지만, 이제 굳이 가족이 함께 애굽으로 동행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바로와 애굽 백성과의 대결은 그의 가족을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어차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드로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호렙산, 즉 하나님의 산으로 그분께 예배드리기 위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참조. 5).
따라서 십보라와 모세의 두 아들은 거기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2-3절은 히브리어 원문을 따라 재번역될 필요가 있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는 단순히 이드로가 십보라와 함께 돌려보낸 두 아들을 모세로부터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드로는 자신의 딸 십보라와 그녀의 두 아들을 ‘데리고’ 마중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받아들였습니다.
이어지는 5절에서 비로소 이드로와 모세의 가족이 함께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나간다는 진술이 나옵니다. 한편, 모세가 ‘그녀를 돌려보냈다’는 표현에 대해(2) 흥미로운 해석이 제안됩니다. 히브리어 ‘쉴루헤하’가 신부 값을 가리킨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가족을 장인에게 돌려보낸 모세의 의도나 이후 이드로와 모세 가족의 합류를 고려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석입니다. 모세는 결코 십보라와 이혼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잠시 장인의 집에 맡겼을 뿐입니다.
또한 아마 ‘쉴루헤하’의 기본 의미는 ‘보냄’, ‘보내는 것’으로, 이 단어를 여기서 문맥과 정황에도 들어맞지 않게 ‘신부 값’으로 번역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드로는 십보라와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고 있는 광야로 길을 떠났습니다(3).
첫째 아들 게르솜의 출생과 그의 작명 이유는 2:22에서 진술되지만, 둘째 아들 엘리에셀의 출생 사실과 그의 작명 이유는 여기서 처음으로 진술됩니다(4). ‘하나님은 도움이시다’라는 엘리에셀의 이름 뜻에는 바로에게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모세의 간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드로는 광야의 ‘하나님의 산’에 도착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산은 조만간 19:1에서 도착할 시내산이 아닙니다. 이 산은 앞서 3:1에서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 불린 산, 또한 17:6에서 반석에서 물이 난 호렙산이 분명합니다. 해밀턴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대로 하나님의 산 호렙은 시내산을 포함하는 넓은 산악 지역일 것입니다. 아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르비딤 근처의 하나님의 산 호렙 일대에 진을 치고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5).
모세의 간증과 이드로의 신앙고백(6-1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 인식은 단순히 지식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형식적인 의식을 넘어서, 하나님이 주신 구원과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6그가 모세에게 말을 전하되 네 장인 나 이드로가 네 아내와 그와 함께 한 그의 두 아들과 더불어 네게 왔노라 7모세가 나가서 그의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 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8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말하매 9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10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11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12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6-12)
본문에서는 이드로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광야로 찾아옵니다. 이드로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을 찬양하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드로는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신 것을 기뻐하며, 모세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축하합니다.
(1) 모세의 가족 상봉과 간증(6-8)
이드로는 모세와 상봉한 뒤 인사를 나누고 그의 가족들을 그에게 인계했습니다. 모세는 예를 갖춰 장인에게 절을 하고 입을 맞춰 문안하면서 상봉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막사로 이드로를 모신 뒤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에게 상세하게 간증했습니다(8). 모세의 놀랍고 감격적인 간증은 이미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들었던 이드로를 더욱 놀라게 했을 것입니다.
(2) 이드로의 신앙고백과 기쁨의 제사(9-12)
이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신보다 크신 여호와의 구원과 승리를 찬양했습니다. 그는 ‘이제 알았도다’라고 고백하면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히브리인 모세를 사위로 받아들였던 그는 이미 모세의 민족 신인 여호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고백인 ‘이제 알았도다’는 그의 여호와 신앙이 개종 수준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즉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칩니다(12). 어떤 랍비 전승과 해석에서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를 불편해하면서 이 제사를 모세가 주도했을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문맥을 보면 제사장 이드로가 제사를 주도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다’는 표현은 거기에 임시 제단이 설치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이 바친 제물은 번제물과 희생제물인데, 희생제물을 가리키는 ‘제바흐’는 화목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것은 화목제의 목적에도 잘 부합하는 번역입니다.
원래 화목제는 모든 제사들을 다 마친 후 마지막에 마무리와 잔치의 제사로 바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전부를 바치는 전적 헌신의 의미가 있는 반면(레 1,3,9장), 화목제는 주요 기름 부위들과 두 콩팥, 간엽을 떼어낸 뒤(레 3:3-4), 남은 고기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나누는 잔치의 제사였습니다(레 7:11-21). 따라서 모든 예식과 행사를 마친 후 마치 뒤풀이나 피로연처럼 화목제 고기와 여러 음식을 먹는 것이 전통적인 제사법에 따른 규칙이자 관례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드로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깊은 감사와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온전한 인식을 가지고, 우리의 예배가 단순한 형식을 넘어서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는 자리이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결단을 통해 그분의 뜻에 맞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매일 경험하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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