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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7494]蘇軾(子瞻)-後石鼓歌(후석고가)
後石鼓歌 (후석고가) or 鳳翔八觀 -蘇軾
이 시는 《東坡全集》에 실려 있다. 소동파는 仁宗 嘉祐 6년(1061)에 制科에 3등으로 합격하여 大理評事簽書라는 벼슬을 받고, 鳳翔縣에 부임하였다.
이 해에 鳳翔縣의 이름난 8景을 노래하는 〈鳳翔八觀〉시를 지었다. 그 첫 번째 시가 <석고> 시이며 이 시에 序를 썼다. <고문진보>에는 병서없이 <후석고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 鳳翔八觀 并叙 鳳翔八觀詩,記可觀者八也 : 鳳翔八觀이란, 볼 만한 곳 여덟 곳을 기록한 것이다. 昔司馬子長登會稽,探禹穴,不遠千里 : 옛날 司馬子長은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會稽에 올라가 禹穴을 찾았고 而李太白亦以七澤之觀至荊州 : 李太白은 七澤의 볼 만한 곳을 찾아 荊州에 이르렀다. 二子蓋悲世悼俗,自傷不見古人,而欲一觀其遺迹,故其勤如此 : 두 사람 모두 세속을 서글퍼 하고 자신이 古人을 만나지 못함을 슬퍼한 나머지 그 유적이나마 보기 위해 이처럼 수고하였던 것이다. 鳳翔當秦、蜀之交,士大夫之所朝夕往來此八觀者 : 봉상은 秦과 蜀의 경계로 사대부들이 아침 저녁으로 왕래하는 곳이고, 又皆跬步可至,而好事者有不能遍觀焉 : 또 이 八觀은 모두 잠깐이면 갈 수 있는 곳이므로 好事者들이 두루 보지 않을 수 없다. 故作詩以告欲觀而不知者 : 그러므로 이 시를 지어, 가서 보고 싶거나 몰랐던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자 한다. |
冬十二月歲辛丑 : 신축년 겨울 십 이 년에
我初從政見魯叟 : 나는 정치에 종사하여 노나라 공자의 사당을 참배했다
舊聞石鼓今見之 : 예부터 석고문에 대해 들어오다 이제야 이것을 보니
文字鬱律蛟蛇走 : 문자는 구불구불하여 교룡과 뱀이 달리는 듯하다.
細觀初以指畫肚 : 자세히 보고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배 위에 써보며 * 그릴획, 배두
欲讀嗟如箝在口 : 읽어보려 했으나 한스럽게 입에 재갈을 물린 듯 하였다. * 재갈먹일겸
韓公好古生已遲 : 한공은 옛 것을 좋아하여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했지만
我今況又百年後 : 나는 이제 그보다 백 년이나 늦게 태어났음에랴!
强尋偏旁推點畫 : 억지로 편방을 찾고 점획을 추정해보았으나
時得一二遺八九 : 때로는 열 글자 중에 한 두 글자는 알아도 여덟 아홉 글자는 모르겠다
我車旣攻馬亦同 : “나의 수레 튼튼하고 말도 또한 그러하였다”와 * 견고할공
其魚維鱮貫之柳 : “잡는 물고기는 연어이며 버들가지로 꿴다”는 말이었네 * 연어서
古器縱橫猶識鼎 : 옛 기물 여러 가지 그려져 있어도 오직 솥만 알아보니
衆星錯落僅名斗 : 많은 별들 어지러이 많으나 겨우 북두칠성 이름만 아는 것과 같네
* 섞일착, 흩어질락
模糊半已隱瘢胝 : 석고의 글씨 절반이 이미 흉터나 굳은 살 같이 모호해졌고
* 모호할모, 흐릿할호, 흉터반, 굳은살지
詰曲猶能辯跟肘 : 꾸불꾸불해서 마치 사람의 발꿈치와 팔꿈치만 겨우 구분하는 것 같다.
* 굽을힐, 발꿈치근, 팔꿈치주
娟娟缺月隱雲霧 : 아름다운 조각달이 구름과 안개 속에 숨은 듯하고
* 예쁠연
濯濯嘉禾秀稂莠 : 크고 좋은 곡식이 강아지 풀속에서 빼어난 듯하다.
* 크고밝을탁, 강아지풀낭, 강아지풀유
漂流百戰偶然存 : 수 백 년 전쟁 속에 떠돌다가 우연히 살아남았으니
獨立千載誰與友 : 천년을 홀로 우뚝 서서 누구와 벗하였던가?
上追軒頡相唯諾 : 위로 올라 헌원씨와 창힐의 글자와 견주면 맞먹을 정도이고
* 인명헌, 인명힐
下挹冰斯同鷇㝅 : 밑에 당겨 이양빙이나 이사의 小篆과 비기면 새 새끼나 젖먹이 같게만 보인다
* 당길읍, 새새끼구, 젖먹이누
憶昔周宣歌鴻雁 : 옛날 주나라 선왕의 공덕을 노래한 “홍안”편이 생각나니,
當時籒史變蝌蚪 : 당시에 주사가 과두문자를 大篆으로 바꾸었었지.
* 주글자주, 올챙이과, 올챙이두
厭亂人方思聖賢 : 혼란을 싫어하여 사람들이 성현을 생각하니
中興天爲生耆耈 : 하늘이 중흥하도록 노회한 신하를 내셨도다.
* 늙을기, 늙을구
東征徐虜鬫虓虎 : 동쪽으로 서나라 반란자들을 칠 때는 호랑이 포효하듯 으르렁거렸고
* 범우는소리함, 범울부짖을효(: 猇)
北伐犬戎隨指嗾 : 북쪽으로 견융을 정벌할 땐 손가락으로 개 부리듯 따르게하였다.
* 개부를주
象胥雜遝貢狼鹿 : 오랑캐 통역관들 몰려들어 여우와 사슴을 공납하였고
* 象胥 : 譯官, 뒤섞일답
方召聯翩賜圭卣 : 날렵한 새처럼 남만을 정복한 方叔과 召虎에게 천자께서 옥술잔과 기장술을 내리셨다.
* 聯翩 : 새가 연이어 나는 모양, 술통유
遂因鼓鼙思將帥 : 마침내 고비북을 두드려 만들어 훌륭한 장수를 생각케 것이지
* 작은북(비고)비
豈爲考擊煩矇瞍 : 어찌 맹인들을 번거롭게 치고 두드리고자 했겠는가?
* 두드릴고, 맹인몽, 맹인수
何人作頌比嵩高 : 어떤 사람이 친송 시를 지어 시경의 “숭고”편과 겨루게 했을까?
萬古斯文齊岣嶁 : 만고에 영원한 이 글은 岣嶁山의 禹王碑와 같게 되었다.
勳勞至大不矜伐 : 선왕의 공적과 수고는 지극히 위대했지만 자랑하지 않았으니
* 자랑할벌
文武未遠猶忠厚 : 문왕 무왕대와 멀지 않아 아직도 충후하였구나.
欲尋年歲無甲乙 : 연대를 알아보려 해도 갑을과 간지가 전혀 없으니
豈有名字記誰某 : 어찌 이름자가 있어 누구 누구라고 기록했겠는가?
自從周衰更七國 : 주나라가 쇠잔한 뒤로 다시 일곱 나라가 일어났으나
竟使秦人有九有 : 마침내 진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차지하게 하였다
掃除詩書誦法律 : 진시황은 시경과 서경을 없애며 법률만 외우게 하고
投棄俎豆陳鞭杻 : 제사를 버리고 채찍과 형틀만 늘어놓았다.
* 수갑추
當年何人佐祖龍 : 당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황제를 보좌하였는가?
上蔡公子牽黃狗 : 상채 땅의 공자인 이사였지만, 결국 누런 개를 끌고 싶다며 죽었네.
登山刻石頌功烈 : 시황제 산에 올라가 돌에 새겨 자기 공로를 칭송하며
後者無繼前無偶 : 뒤로도 시황제 이을 자 없고 전에도 견줄 자 없다 했다.
皆云皇帝巡四國 : 다 함께 말하기를, “황제는 사방을 순수하여
烹滅强暴救黔首 : 강포한 자를 삶아 죽이고 백성을 구하였다” 했다
六經旣已委灰塵 : 육경은 이미 재와 먼지로 되어버렸으니
* 버릴위
此鼓亦當遭擊掊 : 이 석고비도 마땅히 부딪치고 넘어졌어야 했으리.
* 넘어질부
傳聞九鼎淪泗上 : 진시황제는 하우시대의 구정이 사수에 빠져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欲使萬夫沈水取 : 일만 장정들에게 빠진 물 속에서 건지게 하였다.
暴君縱欲窮人力 : 폭군이 비록 사람들의 힘을 다해보았으나
神物義不汙秦垢 : 신성스런 물건인 솥은 의리 지키며 진나라 때 묻히며 더럽혀지지 않았네.
是時石鼓何處避 : 이러한 시대에 석고비는 어디에 피해 있었던가?
無乃天工令鬼守 : 이 어찌 하늘의 공력으로 귀신이 지키게 한 것이 아니겠나?
興亡百變物自閒 : 인간의 흥망은 백 번이나 변해도 사물은 스스로 한가하니
富貴一朝名不朽 : 부귀는 하루 아침이나 이름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
細思物理坐嘆息 : 만물의 이치 자세히 생각하며 앉아서 탄식하노니
人生安得如汝壽 : 인생도 어찌하면 그대처럼 영원히 살 수 있겠는가?
○ 見魯叟 : 魯나라 長老인 孔子를 뵙다. 鳳翔縣의 공자묘를 참배함을 말하며, 이 때 石鼓는 공자묘에 있었다.
○ 鬱律 : 험하고 구불구불한 모양, 깊고 아득한 모양, 郁律과 같은 의미
○ 指畫肚 : 손가락으로 배에 글씨를 쓰다. 唐初의 草書와 行書의 명인인 虞世南이
글씨를 배울 적에 이불 밑에서도 손가락으로 배 위에 글씨를 쓰고는 하였다 한다.
○ 韓公好古生已遲 : 韓公은 앞 편의 〈石鼓歌〉를 지은 韓愈를 가리키는데,
거기에 ‘嗟余好古生苦晩’이란 句가 있다.
○ 强尋偏旁推點畫 : 偏旁은 漢字의 왼쪽인 ‘偏’과 오른쪽인 ‘旁’을 아울러 일컬은것이고,
點畵는 글자의 點과 劃을 말한다.
○ 我車旣攻馬亦同 其魚維鱮貫之柳 : 我車旣攻은 ‘내 수레는 튼튼하다’. 공은 견고한 것을 말한다.
蘇軾이 스스로 註에서 “〈石鼓文〉의 글에 ‘내 수레 튼튼하고 내 말도 또한 그러하다
(我車旣攻 我馬亦同)’와 ‘그 물고기는 무엇인가? 서어와 잉어로다. 무엇으로 꿰는가?
버드나무와 수양버들이다(其魚維何 維鱮維鯉 何以貫之 維楊與柳)’
오직 이 여섯 구만 읽을 수 있고 그 나머지는 통할 수가 없었다.” 하였다.
○ 詰曲猶能辨跟肘 : 李德弘은 《艮齋集》 續集 4권에서 “跟은 발꿈치이고 肘는 팔꿈치이니,
글자의 體를 사람 모습에 견주어서 발꿈치와 팔꿈치를 분별한다고 이른 것이다.” 하였다.
○ 上追軒頡相唯諾 : 위로는 軒轅皇帝와 漢字를 창제한 蒼頡과 서로 “예”, “그렇소”하는 사이가 된다.
고대의 글자와 서로 대등하다고 할 만큼 그 글자의 난해함이 비슷하다.
○ 下挹冰斯同鷇㝅 : ‘氷斯’는 唐나라때 小篆의 명가인 李陽冰과 小篆을 창제한 秦나라 李斯이다.
挹은 ‘주워들다, 취하다’의 뜻이고,
鷇는 어린 새새끼이고 㝅는 젖먹이이니,
석고의 글이 위로 黃帝 軒轅氏에게 짝할 만하고,
아래로 이양빙과 이사의 小篆과는 어린 새 새끼와 견주는 것처럼 비교가 되지 않음을 말한다.
○ 鴻雁 : 《詩經》 〈小雅〉의 篇名으로 백성들이 周 宣王의 공덕을 칭송한 것이다.
○ 當時籒史變蝌蚪 : 周 宣王때에 太史 籒가 大篆(籒書)이란 서체를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王國維는 籒는 讀의 뜻이니 ‘글을 읽는다’는 뜻이지 사관의 이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蝌蚪는 올챙이인데, 올챙이 모양의 과두문자라는 서체를 말한다.
○ 耆耈 : 늙은 長老. 여기에서는 천자를 보좌할 경험 많고 충직한 신하를 이른다.
○ 象胥雜遝貢狼鹿 : 象胥는 바로 후세의 譯史이니, 사방 오랑캐의 말에 통한 자이다.
○ 方召聯翩賜圭卣 : 方召는 方叔과 召虎로 周 宣王 때에 南蠻을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圭는 서옥으로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져서 공.후.백.자.남의 관작을 봉할 때에 사용하였으니,
각각 형상과 재질이 다르다. 卣는 중간 크기의 술잔이다.
詩 大雅 江漢편의 “釐爾圭瓚 秬鬯一卣(그대에게 옥 술잔과 검은 기장술 한 그릇을 하사하노라)”를 따 온 말이다..
○ 遂因鼓鼙思將帥 : 《禮記》 〈樂記〉에 “북소리를 들으면 군사를 거느리는 신하를 생각한다.” 하였다.
○ 鼙鼓 : 기병이 말을 탄 채 치는 북. 石鼓는 鼙鼓의 모양과 비슷하다.
○ 矇瞍 : 장님. 矇은 판수(점쟁이 소경)이며, 예전에는 음악을 장님들이 관장하였기에 악관을 지칭하는 말이 됨.
○ 齊岣嶁 : 岣嶁는 衡山縣 북쪽 산의 이름인데, 여기에서는 그 산에 있는 岣嶁碑를 가리킨다.
이 碑는 禹임금이 治水를 하면서 새겨 놓은 비석이라 하여 神禹碑라고 하며, 碧碑라고도 불린다.
○ 七國 : 戰國時代의 七雄인 秦ㆍ楚ㆍ燕ㆍ齊ㆍ韓ㆍ魏ㆍ趙의 일곱 나라를 이른다.
○ 九有 : 九州와 같은 말로 중국의 冀州ㆍ兗州ㆍ靑州ㆍ徐州ㆍ揚州ㆍ荊州ㆍ豫州ㆍ梁州ㆍ雍州를 이르는데,
왕조에 따라 명칭의 변화가 있었으나 모두 중국 또는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 祖龍 : 祖는 始, 龍은 人君인 바, 곧 秦始皇을 가리킨 것이다.
○ 上蔡公子牽黃狗 : 上蔡公子는 秦의 李斯를 가리킨다.
李斯가 斬刑을 받아 죽을 때에 둘째아들의 손을 잡고 “이제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렁이를 끌고
上蔡의 東門밖으로 나가 날랜 토끼를 쫓으려 해도 되겠는가.”하고 父子가 붙잡고 통곡하였다 한다.
《史記 李斯傳》
○ 登山刻石頌功烈 : 진시황이 鄒嶧山에 올라가 돌에 새겨 秦나라를 칭송하였다.
○ 烹滅强暴救黔首 : 검수는 그 머리가 검음을 말한 것이니,
‘黎民’이란 말과 같이일반 백성을 가리킨다. 强暴는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름이다.
○ 九鼎 : 夏나라 禹王이 九州의 쇠를 모아 주조하였다는 솥으로, 夏ㆍ殷ㆍ周 三代를 통하여
국가의 王統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가 周 顯王 때 德이 쇠퇴하자
이 솥이 泗水의 彭城 아래로 빠져 버렸다. 그후 秦始皇 초년에 팽성에 다시 나타났으므로
26년에 시황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史記 封禪書》
○ 無乃 : 어찌 ~이 아니겠는가?, 어찌 ~하지 않은가?
[자료출처] 金學主의 古文眞寶(明文堂), 百度百科(https://baike.baidu.com/),
전통문화연구회((http://db.juntong.or.kr), 네이버 지식백과(중국역대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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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6. 後石鼓歌 (후석고가) or 鳳翔八觀 -蘇軾|작성자 맑은마음
石鼓歌 (석고가)- -東坡 蘇軾 作-
冬十二月歲辛丑
겨울철 섣달 해는 신축년일새
我初從政見魯叟
내 처음 관직에 나가 노나라 노인 보았네
舊聞石鼓今見之
옛날 석고 애기 들었는데 오늘에야 보았지
文字鬱律蛟蛇走
문자가 구불구불 뱀과 교룡같이 기어가네
細觀初以指畵肚
자세히 보면 초학자가 손가락으로 배에 그
린듯
欲獨嗟如箝在口
아아 읽으려 해도 입에 재갈 물린 것 같네
韓公好子生已遲
한유도 옛것 좋아하면서 너무 늦게 났다
햇거늘
我今況又百年後
하물며 나는 지금 또 백 년이 더 지났다네
强尋偏旁推點畵
억지로 편방을 찾고 점획을 짐작하여
時得一二遺八九
어쩌다 한,두자 알고 여덟,아홉자 놓치네
我車旣攻馬亦同
내 수레는 탄탄하고 말도 갔춰졌도다 했고
其魚維鱮貫之柳
고기는 연어인데 버들가지에 꿰었다 했네
古器縱橫猶識鼎
옛날 기물이 늘려 있어도 솥이나 알아보고
衆星錯落僅名斗
뭇 별이 뒤섞여 북두성이나 겨우 알겠네
模糊半已隱瘢胝
알쏠달쏭 반은 이미 흉터에 가렸지만
詰曲猶能辨跟肘
구불구불 그래도 발꿈치 팔꿈치는 분간을
하겠네
娟娟缺月隱雲霧
그윽한 반 달이 운무에 가란 격일세
濯濯嘉禾秀稂莠
빛나는 벼이삭이 강아지풀 틈에 솟은 격
漂流百戰偶然存
전쟁통에 떠돌다가 우연히 살아 남았으니
獨立千載誰與友
홀로 서서 천 년 동안 누구와 벗 하였나요
上追軒頡相唯諾
위로는 헌원과 창힐을 따라 순종을 하고
下挹冰斯同鷇毂
아래로 이양빙과
이사를 불러 애 취급하네
憶昔周宣歌鴻雁
옛날 일 생각나니 홍안을 노래하던 주 선
왕 시절에
當時籀史變蝌蚪
당시에 태사 주가 과두문자를 고쳤다네
厭亂人方思聖賢
혼란을 싫어해 사람들이 성현을 생각할 때
中興天爲生耆耉
중흥을 위하여하늘이 원로를 낳았도다
東征徐虜闞虓虎
동쪽 서나라를 정벌함에 범처럼 포효했고
北伏犬戎隨指嗾
북쪽 견융을 굴복시키자 지시데로 따랐네
象胥雜沓貢狼鹿
오랑캐는 통역관에게 이리와 사슴을 분잡
하게 바쳤고
方召聯翩賜圭卣
선왕은 방숙과소호에게 술잔을 잇달아 하
사했네
遂因鼓鼙思將帥
마침내 북소리듣고 장수를 생각하려 한 것
豈爲考擊煩矇瞍
어찌 북치는 일로 눈먼 악사를 귀찮게 하
려 했으랴?
何人作頌比嵩高
그 누가 숭고에 비길 찬송가를 지었는가?
萬古斯文齊岣嶁
만고토록 이 글을 구루봉과 어깨 겨루네
勳勞至大不矜伐
선왕은 공로가 지대해도 자랑 하지 않았고
文武未遠猶忠厚
문왕 무왕에서 멀지 않아 아직 충후했다네
欲尋年歲無甲乙
석고의 나이 더듬어해도 간지조차 없도다
豈有名字記誰某
누가 썼다고 기록한 이름인들 어디 있겠나
自從周衰更七國
주나라가 쇠퇴한 뒤 칠국을 거쳐서
竟使秦人有九有
끝내 진나라 사람에게 구주를 차지케 했네
埽除詩書誦法律
시경 서경 쓸어버리고 법률만 송독하며
投棄爼豆陳鞭杻
예기는 치워버리고 형구만 늘어놨네
當年何人佐祖龍
당시에 그 누가 진시황을 보좌했나요?
上蔡公子牽黃狗
누런 개를 끌고 다니던 상채공자 이사였네
登山刻石頌功烈
산에 올라 돌에 새겨 공덕을 찬송하기로는
後者無繼前無偶
뒷사람 중에 따를 자 없고 앞 사람 중에 짝
이 없네
皆云皇帝巡四國
비석마다 모두 말했네 황제가 사방을 순
시 했다고
烹滅强暴救黔首
강포한자를 쳐부수고 어린 백성을 구제했
다고
六經旣已委灰盡
육경이 이미 잿더미 속에 버려졌으니
此鼓亦當遭擊剖
이 북 역시 얻어맞아 깨졌어야 하리라
傳聞九鼎崙泗上
듣자하니 구정이 사수에 빠져버리매
欲使萬夫沉水取
만사람에게 물로 들어가 건져내게 했다네
暴君縱欲窮人力
폭군이 욕심을 부려 인력을 다했건만
神物義不汚秦垢
신령스런 물건은 정의로워 진나라 때를
안 묻혔네
是時石鼓何處避
이때에 석고는 어디로 피했을까요?
無乃天工令鬼守
조화옹이 귀신더러 지치게 한게 아닐까?
興亡百變物自閑
흥망은 백 번 변해도 자연물은 홀로 느긋
하고
富貴一朝名不朽
부귀는 한때지만 이름은 영원하다네
細思物理坐歎息
사물의 이치를 곰곰이 생각하며 앉아서
탄식하나니
人生安得如汝壽
인생이야 어찌 너처럼 장수할 수 있으랴?
이하=동양고전DB자료
後石鼓歌
蘇軾(子瞻)
東坡年二十六에 初入仕하여
作鳳翔八觀하니 此其一也라
冬十二月歲辛丑에
我初從政見魯叟라注+
舊聞石鼓今見之하니
文字鬱律蛟蛇走라
細觀初以指畫肚요注+
欲讀嗟如箝在口라
韓公好古生已遲하니
我今況又百年後아
强尋偏旁推點畫하니
時得一二遺八九라
我車旣攻馬亦同과
其魚維鱮貫之柳라注+
古器縱橫猶識鼎이요
衆星錯落僅名斗라
糢糊半已似瘢胝하나
詰曲猶能辨跟肘라
娟娟缺月隱雲霧요
濯濯嘉禾秀稂莠라
漂流百戰偶然存하니
獨立千載誰與友오
上追軒頡相唯諾이요
下挹冰斯同鷇㝅라
憶昔周宣歌鴻雁하니
當時籒史變蝌蚪라
厭亂人方思聖賢하니
中興天爲生耆耈라
東征徐虜鬫虓虎요
北伐犬戎隨指嗾라
象胥雜遝貢狼鹿이요
方召聯翩賜圭卣라
遂因鼙鼓思將帥하니
豈爲考擊煩矇瞍아
何人作頌比崧高오
萬古斯文齊岣嶁라
勳勞至大不矜伐하니
文武未遠猶忠厚라
欲尋年代無甲乙하니
豈有文字記誰某오
自從周衰更七國하여
竟使秦人有九有라
掃除詩書誦法律하고
投棄俎豆陳鞭杻라
當年何人佐祖龍고
上蔡公子牽黃狗라
登山刻石頌功烈하니
後者無繼前無偶라
皆云皇帝巡四國하여
烹滅彊暴救黔首라
六經旣已委灰塵하니
此鼓亦當隨擊掊라
傳聞九鼎淪泗上하고
欲使萬夫沈水取라
暴君縱欲窮人力이나
神物義不汙秦垢라
是時石鼓何處避오
無乃天工令鬼守아
興亡百變物自閑하니
富貴一朝名不朽라
細思物理坐歎息하니
人生安得如汝壽오
후석고가
소식(자첨)
東坡가 26세에 처음으로 들어가 벼슬하면서
〈鳳翔八觀〉시를 지었는데 이것이 첫 번째이다.
겨울 십이월 신축년에
나는 처음 정사에 종사하여 孔子를 뵈었네.
옛부터 石鼓가 있단 말 들었는데 이제 보게 되니
文字가 구불구불하여 교룡과 뱀이 달리는 듯하여라.
자세히 보며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배 위에 썼고注+
읽자니 한스럽게도 입에 재갈이 물린 듯하였다오.
韓公은 옛것을 좋아하였는데도 늦게 태어남 한하였는데
나는 지금 하물며 또 백 년이 지난 뒤에 있어서랴.
偏旁을 억지로 찾아보고 點劃을 추측해 보니
때로 한두 가지는 알고 여덟아홉 가지는 모르겠네.
내 수레 이미 수리하고 말도 갖추어졌다는 것과
물고기는 연어인데 이것을 버들 가지에 꿴다는 말뿐이네.
옛날 器物들 종횡으로 놓여 있는데 겨우 솥만 알고
별들 어지러운데 겨우 北斗星만 아는 것과 같구나.
모호하여 절반은 이미 흉터와 딱정이 같은데
구불구불한데 사람의 발꿈치와 팔꿈치 분별하는 듯하네.
곱고 고운 조각달 雲霧에 숨어 있는 듯하고
깨끗한 아름다운 벼 잡초 중에 빼어난 듯하여라.
수백 번의 전쟁에 표류하면서도 우연히 남았으니
천년에 홀로 서 누구와 벗하였나.
위로 軒轅氏와 蒼頡 좇아 서로 응답하고
아래로 李陽冰과 李斯 굽어보니 새새끼같네.
저 옛날 周 宣王이 鴻雁을 노래하였으니
당시에 史官인 籒(주)가 과두문자를 변형하였다오.
혼란 싫어하여 사람들 聖賢을 생각하니
中興 위해 하늘이 元老들을 탄생하였네.
동쪽으로 徐虜 정벌하여 포효하는 범이 싸우는 듯하였고
북쪽으로 犬戎 정벌하여 지시에 따르게 했네.
象胥들 어지러이 모여 이리와 사슴 바치고
方叔과 召虎는 나란히 笏과 검은 기장술
하사받았다오.
마침내 鼙鼓 소리에 장수들의 功德 생각하니
어찌 악기를 두드려 樂工들 번거롭게 할 것이 있겠는가.
어느 사람이 頌 지어 詩經의 崧高에 견주었나
萬古의 이 碑文 岣嶁山의 神禹碑와 똑같구나.
공로가 지극히 크지만 자랑하지 않으니
文王 武王의 세대와 멀지 아니하여 아직도 忠厚하다오.
年代를 찾고자 하나 甲乙의 干支 없으니
어찌 누가 지었다고 기록한 文字 있겠는가.
周나라가 쇠한 뒤로 七國을 지나
끝내 秦나라 사람들이 九有를 소유하였네.
詩書를 쓸어버리고 법률만 외우며
俎豆를 던져버리고 채찍과 형틀만 늘어놓았다오.
당년에 어떤 사람이 祖龍 도왔던가
上蔡의 公子로 黃狗 끌고 다녔다네.
泰山에 올라 비석에 새겨 功烈 칭송하니
뒤에도 이을 이 없고 앞에도 짝할 이 없다 하였다오.
비석마다 모두 말하기를 皇帝가 사방 나라 순행하여
강포한 자들 삶아 없애고 백성
을 구제했다 하였네.
六經이 이미 재와 먼지 되어 버렸으니
이 石鼓도 마땅히 쳐서 버려졌으리라.
九鼎이 泗水 가에 빠졌다는 말 전해 듣고는
만 명을 동원하여 물에 들어가 취하려 하였다오.
폭군이 욕심 부려 人力을 다하였으나
신묘한 물건 의롭게도 秦나라 때에 더럽혀지지 않았네.
이때에 石鼓文 어느 곳에서 피난하였던가
天工이 귀신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지 않았을까.
흥망이 백 번 변하였으나 이 물건 스스로 한가로웠으니
부귀는 하루 아침이나 이름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누나.
자세히 사물의 이치 생각하며 앉아서 탄식하니
인생이 어이하면 이 石鼓처럼 영원히 남을 수 있을까.
賞析
이 시는《蘇東坡集》2책 2권에 실려 있다.
소동파는 仁宗 嘉祐 6년(1061)에 制科에 응시하여 鳳翔縣에 부임하였다.
이해에〈鳳翔八觀〉시를 지었는데, 이 시의 序에 “鳳翔八觀이란 볼 만한 곳
여덟 곳을 기록한 것이다. 옛날 司馬子長은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會稽에 올라가 禹穴을 찾았고 李太白은 七澤의 볼 만한 곳을 찾아 荊州에 이르렀으니,
두 사람 모두 세속을 서글퍼하고 자신이 古人을 만나지 못함을 슬퍼한 나머지
그 유적이나마 보기 위해 이처럼 수고하였던 것이다.
鳳翔은 秦과 蜀의 경계로 사대부들이 아침 저녁으로 왕래하는 곳이고,
또 이 八觀은 모두 잠깐이면 갈 수 있는 곳이므로 好事者들이 두루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를 지어 가서 보고 싶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말해 주고자 한다.” 하였다.
역주역주1 韓公好古生已遲 : 韓公은〈石鼓歌〉를 지은 韓愈를 가리키는데,
거기에 ‘嗟余好古生苦晩’이란 句가 있다.
역주2 曲猶能辨跟肘 : 李德弘의《艮齋集》續集 4권에
“跟은 발꿈치이고 肘는 팔꿈치이니,
글자의 體를 사람 모습에 견주어서 발꿈치와 팔꿈치를 분별한다고 이른 것이다.” 하였다.
金隆의《勿巖集》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역주3 漂流百戰偶然存 : 臺本에 ‘溧’자로 되어 있는 것을 ‘漂’자로 바로잡았다.
역주4 鴻雁 : 《詩經》〈小雅〉의 篇名으로 백성들이 周 宣王의 공덕을 칭송한 것이다.
역주5 當時籒史變蝌蚪 : 李德弘은 “蝌蚪體를 변하여 大篆으로 썼음을 말한 것이다.
韓公의 시에 ‘石鼓文이 隸書와 과두체와 비슷하지 않다.’고 말하였으니,
이미 그 字體를 변화시켰다면 과두체와 같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하였고,
金隆의《勿巖集》에는 “太史의 이름이 籒(주)인데 籒史라고 말한 것은 또한
史籒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역주6 方召 : 方叔과 召虎로 周 宣王 때에 南蠻을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역주7 七國 : 戰國時代의 七雄인 秦ㆍ楚ㆍ燕ㆍ齊ㆍ韓ㆍ魏ㆍ趙의 일곱 나라를 이른다.
역주8 九有 : 九州와 같은 말로 중국의
冀州ㆍ兗州ㆍ靑州ㆍ徐州ㆍ揚州ㆍ荊州ㆍ豫州ㆍ梁州ㆍ雍州를 이르는데,
왕조에 따라 연혁이 있었으나 모두 중국 또는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역주9 祖龍 : 祖는 始, 龍은 人君인 바, 곧 秦始皇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10 上蔡公子牽黃狗 : 上蔡公子는 秦나라의 李斯를 가리킨다.
李斯가 斬刑을 받아 죽을 때에 둘째아들의 손을 잡고
“이제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렁이를 끌고 上蔡의 東門밖으로 나가
날랜 토끼를 쫓으려 해도 되겠는가.”하고 父子가 붙잡고 통곡하였다 한다.《史記 李斯傳》
역주11 九鼎 : 夏나라 禹王이 九州의 쇠를 모아 주조하였다는 솥으로,
夏ㆍ殷ㆍ周 三代를 통하여 국가의 王統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가 周나라 顯王 때 德이 쇠퇴하자 이 솥이 泗水의 彭城 아래로 빠져 버렸다.
그후 秦始皇 초년에 팽성에 다시 나타났으므로 26년에 시황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史記 封禪書》
역주12 興亡百變物自閑 富貴一朝名不朽 :
李德弘은 “物과 名은 모두 石鼓를 가리킨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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