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됨
[1-4절]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또 자기와 함께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다윗은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 것이다.
그는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였다. ‘헤브론 각 성’이라는 표현은 헤브론이 여러 마을들로 구성된 큰 도시이었음을 보인다.
헤브론은 하나님께서 주신 다윗의 안정된 거처가 되었다. 유다 사람들은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다. 그것은 선지자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던 때로부터 약 10여년 후의 일이었다고 본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7년 6개월이었다(삼하 2:11).
사무엘하 5:4-5, “다윗이 30세에 위(位)[왕위]에 나아가서 40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전체 통치연대는 주전 1010-970년경이었다.
[4-7절] . . .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케세드)[자비]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케세드)[자비]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저희의 왕을 삼았음이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사울의 추종자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지지 않았고 감정적으로 보복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본래부터 이스라엘의 합법적 왕정에 대해 반란이나 반역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사울의 추종자들을 징벌하기를 원치 않고 소위 화합정치를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하며 그들의 선하고 충성된 행위에 대해 보상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8-11절]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비로소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 40세며 두 해 동안 위(位)[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 해 여섯 달이더라.
이스라엘 전체의 화합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나이 4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2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러나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랐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다.
이스라엘 나라는 두 나라로 분리되어 있었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은 몇 년간 계속되었다.
[12-17절]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서 기브온에 이르고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서 기브온 못가에서 저희를 만나 앉으니 이는 못 이편이요 저는 못 저편이라.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시합하게] 하자. 요압이 가로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저희가 일어나 그 수효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둘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둘이라. 각기 적수의 머리를 잡고 칼로 적수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헬갓핫수림[날카로운 칼의 들판]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그 날에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이처럼 같은 민족 간에 갈등과 싸움, 죽임과 죽음이 있었다.
[18-23절]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같이 빠르더라.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아브넬이 뒤를 돌아보며 가로되 아사헬아, 너냐? 대답하되 내로라. 아브넬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쳐서 소년 하나를 잡아 그 군복을 빼앗으라 하되 아사헬이 치우치기를 원치 않고 그 뒤를 쫓으매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하되 저가 치우치기를 싫어하매 아브넬이 창 뒤끝으로 그 배를 찌르니 창이 그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 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헬의 엎드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다.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었다(대상 2:16).
그러면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은 다윗의 조카들이다. 아사헬은 비록 그의 발이 들노루같이 빨랐으나 불행하게도 그 싸움에서 아브넬의 창 뒤끝에 찔려 죽었다.
[24-29절]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편 암마 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떼를 이루고 작은 산꼭대기에 섰더라.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가로되 칼이 영영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나 무리에게 그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하겠느냐? 요압이 가로되 하나님이 사시거니와 네가 흔단[틈의 실마리]의 말을 내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아브넬과 그 종자들[부하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30-32절]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19인과 아사헬이 궐(闕)이 났으나[비었으나]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360명을 죽였더라. 무리가 아사헬을 베들레헴에 있는 그 아비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 종자들[부하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헤브론에 이를 때에 날이 밝았더라.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다윗은 헤브론으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잠언 3:6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자이며 그런 자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범사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우리는 쉬지 말고,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살전 5:17).
둘째로,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왕 사울을 위해 한 선한 일에 대해 듣고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에게 선하게 보응하기를 원하였다.
성경 교훈의 요점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의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마 5:14-16).
아모스 5:14는 너희는 살기 위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다(딛 2:14).
우리는 항상 선한 일을 도모하고 선한 일 하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로, 사울은 죽고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과 지시를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가 왕이 되었으나 고난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를 죽이려 했던 사울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나뉘어 갈등을 겪게 되었다.
사울의 군장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7년 반의 세월이 더 필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비록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딘 것 같지만 이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고난의 긴 시간을 잘 참고 견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