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장수지역이다. 오키나와 중심 도시인 나하시(市) 종합운동공원에는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세계 최고 장수지역 중 하나로 검증받은 뒤 세운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전문가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 비결이 이들의 식탁, 즉 음식에 있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음식을 먹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오키나와에서 맛본 음식들은 건강에 유익할뿐 아니라 맛도 있었다. 일본과 중국, 미국의 영향이 뒤섞인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 식도락 여행지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다.
오키나와 나하시(市) 종합운동공원에는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세계 최고 장수지역 중 하나로 검증받은 뒤 세운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씁쓸한 고야로 만든 찬푸르
오키나와 식재료를 보러 ‘마키시 공설시장’에 갔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암시장으로 출발한 마키시는 오키나와 중심 도시 나하에서 제일 큰 시장이다. 1층에서는 바다부터 육지를 아우르는 각종 식재료를 팔고, 2층에서는 이 식재료를 사들고 올라가면 요리해주는 식당이 모여있다.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고야’이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식재료인 고야는 홍두깨 크기에 도깨비 방망이처럼 울퉁불퉁한 돌기로 덮여있다. 한국말로는 ‘여주’라고 하는 오이의 일종이다. ‘쓴맛 나는 오이’라고 보면 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야의 쓴맛은 먹을수록 당기는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다.
(왼쪽부터) 오이의 일종인 고야 / 마키시 식료품점에서 파는 고야 쌀겨 절임
입에는 쓰지만 건강에는 아주 좋다. 비타민C 함량이 레몬의 5배인데다 가열해도 손상이 거의 없다고 한다. 혈당과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가 있고, 지방연소를 촉진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채소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야를 다양하게 즐긴다. 시장 식료품점에서는 쌀겨와 소금에 절인 ‘고야절임’, 고춧가루로 버무린 ‘고야기무치(김치)’를 팔고 있었다.
가정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고야 찬푸르’이다. 찬푸르는 오키나와말로 ‘여러 재료를 섞어 함께 볶는다’는 뜻으로, 주재료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삼겹살 얹은 오키나와 소바
돼지삼겹살을 얹은 오키나와 소바
오키나와에선 ‘돼지가 없으면 음식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고기 섭취량이 상당한데도 건강할 수 있는 건 요리법 덕분이다. 전통적인 돼지고기 요리법은 물에 오래 삶아서 지방을 제거한 다음 조리거나 볶아 먹는 것이다. ‘라후테’가 대표적이다. 간장과 흑설탕, 전통 소주 ‘아와모리(泡盛)’에 조린 돼지삼겹살이다.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럽고 고소하게 녹는다. ‘소우키’는 돼지갈비로, 조리법은 같다.
‘오키나와 소바’는 이 라후테를 꾸미로 얹은 국수이다. 돼지뼈와 가쓰오부시(가다랑어)로 뽑은 국물에 국수를 말고 두툼하게 저민 라후테 두세 점을 올린다. 맑은 국물이 깊고도 텁텁함 없이 시원한 맛을 낸다. 제주도 돼지국수와 비슷하다. 소바라지만 면은 메밀이 아닌 밀가루로 뽑는다.
과거 일본에선 소바가 국수 전반을 뜻했다. ‘소우키 소바’는 돼지갈비를, ‘데비치 소바’ 돼지족발을 얹는다. 오키나와 전역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한 그릇 500~700엔 정도로 저렴하면서도 푸짐하다.
‘바다의 포도’ 우미부도 덮밥
우미부도를 곁들인 참치 덮밥
우미부도는 ‘바다 포도’라는 오키나와말. 딱 청포도를 축소시킨 모양이다. 과거 왕과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해초였다. 양식에 성공하면서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싸지는 않다.
씹으면 알맹이가 톡톡 터지면서 찝찔하고 끈적한 진액이 흘러나온다. 비리지 않고 산뜻하다. 싱그러운 바다의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 칼슘, 철분이 풍부하면서도 칼로리는 낮다. ‘녹색 캐비아’라는 별명이 썩 잘 어울린다.
초간장을 뿌려 반찬처럼 먹거나, 밥에 얹어 덮밥으로 먹는다.
흑설탕으로 만든 과자 ‘사타안다기’
흑설탕으로 맛을 낸 사타안다기
오키나와 주민 장수 비결로 흰설탕 대신 흑설탕을 주로 섭취한다는 점을 꼽는 분석도 있다. 오키나와는 사탕수수가 많이 나는데, 이 사탕수수 즙을 짜내 끓여 졸이면 흑설탕이 된다. 흰설탕은 흑설탕을 정제해 만든다. 흑설탕은 흰설탕보다 영양성분은 많고 열량은 적다.
나하 시내 쇼핑가를 걷다보면 크고 작은 덩어리 흑설탕을 파는 가게가 많다. 오키나와에서는 흑설탕을 그냥 먹기도 하는데, 그냥 단 것이 아니라 구수한 맛 등 여러 맛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흑설탕으로 만든 과자로는 ‘사타안다기’가 대표적이다. ‘사타’는 설탕, ‘안다’는 기름, ‘아기’는 튀김이란 뜻이다. 밀가루에 달걀과 흑설탕, 라드(돼지기름)를 섞어 동그랗게 빚어 튀긴다. 튀길 때 가운데가 십자 모양으로 갈라지면서 꽃이 핀 모양이 된다. 갓 튀겨낸 사타안다기를 맛보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1개 50~100엔 정도.
아와모리 소주와 천일염에 삭힌 두부
도후요우는 고르곤졸라 치즈를 연상케하는 강한 숙성향을 느낄 수 있는데
먹다보면 중독성이 있다.
‘시마도후’는 섬 두부, 즉 오키나와 토속 두부를 말한다. 콩(대두)에서 비지를 짜내지 않고 만들어 일반 두부보다 단단하고 영양이 풍부하다. 단 비단처럼 매끄럽고 보들보들한 식감은 덜하다. 도후찬푸르 등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된다.
‘아와모리’는 오키나와 전통 소주. 태국에서 제조법이 전래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계열의 쌀이 아닌, 길고 가는 인디카 계열의 태국쌀로 전통적으로 만들었다. 도수가 20~60도로 매우 높은데다 특유의 향이 있어서 익숙하지 않다면 꺼릴 수 있다.
‘도후요우’는 시마도후를 아와모리와 천일염에 3개월 이상 발효시킨 진미다. 중국 취두부와 비슷하지만 그만큼 냄새가 강렬하지 않아 먹기가 한결 편하다.
고르곤졸라 치즈를 연상케하는 강한 숙성향은 먹다보면 중독성이 있다. 이쑤시개처럼 작은 나무꼬치로 긁어내듯 조금씩 떠서 먹는다. 아와모리 술안주로 아주 좋다.
장수음식은 아니지만 맛있다-타코 라이스 & 스테이크
오키나와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한 뒤 1975년까지 미군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식문화에도 미국의 영향이 크다.
타코 속재료를 밥에 얹은 퓨전음식 타코 라이스 / 스테이크
대표적인 것이 미군에 의해 전파된 ‘타코 라이스(taco rice)’다. 멕시코 음식으로 미국에서도 즐겨 먹는 타코에 들어가는 칠리·양배추·토마토·살사소스를 옥수수가루로 만든 바삭한 타코 셸(shell) 대신 밥에 얹은 퓨전음식이다. 매콤하고 개운해 한국인 입에 매우 잘 맞는다.
스테이크도 일본에서 가장 처음 대중화된 곳이 오키나와이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값싼 스테이크에 입맛을 들인 오키나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 섬 전역에 있다.
여행 수첩
렌터카 : 오키나와는 렌터카로 여행하기 좋다. 미국식으로 넓고 반듯한 고속도로는 이용료가 일본 최저 수준. 가솔린·전기엔진 병용 하이브리드 렌터카 차량이 많아 주유비도 얼마 나오지 않는다. 느긋한 오키나와 운전자들은 외국 관광객의 실수나 조급증을 너그럽게 배려해준다. 운전대가 오른쪽이라 어색하지만 반나절 정도면 익숙해진다.
드라이브 명소 : 바다 위로 난 길이 2㎞의 코우리대교를 건너면 닿는 코우리섬, 58번 국도를 타고 섬 최북단 해도곶까지 가는 드라이브 코스는 풍광도 아름답고 운전하는 맛도 있다. 모토부 반도 해안 끝 ‘비세마을 후쿠기(늘푸른작은키나무) 가로수길’은 데이트 코스로도 그만이다.
여기는 꼭 : 단연 ‘추라우미수족관’이다. 이곳 하나만 보러 오키나와에 오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다. 폭 35?·높이 27?·깊이 10?인 세계 최대 규모의 수족관 내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가 유영하는 광경은 장엄하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