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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담주潭州 운암雲巖 담성曇晟 선사의 법손
균주筠州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
그는 회계會稽 사람으로서 성은 유兪씨이다. 어릴 적에 스승을 따라
절에 가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근根과 진塵이 없는
이치를 물으니, 그 스승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
그리하여 바로 오설산五洩山에 가서 묵黙 선사에게 귀의하고 머리를 깎았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사방을 유행하면서 먼저 남전南泉을 뵈었는데,
때마침 마조馬祖의 제삿날이어서 재를 마련하다가 남전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馬 대사의 제사를 지내는데, 마 대사가 오시겠는가?”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대사가 나서서 말했다.
“도반이 있기를 기다렸다가 오십니다.”
남전이 이 말을 듣고 칭찬하였다.
“이 사람이 후생後生이기는 하지만 꽤 다듬을[雕琢] 만하구나.”
대사가 말했다.
“화상은 양민良民을 억압하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에는 위산潙山에게 가서 물었다.
“전에 충忠 국사國師께서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 미묘한 이치를 아직 궁구하지 못했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나에게도 있지만, 다만 그런 사람을 얻기 어려울 뿐이었다.”
“스님께서 저에게 일러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준 입으로는 끝내 말할 수 없다.”
“스님과 함께 동시에 도를 사모한 분이 계십니까?”
“여기서 석실石室 쪽으로 가면 운암雲巖 도인이 있다.
만약 풀을 헤치고 바람을 거스르면서 찾아가면,
반드시 그대가 존중할 만한 사람일 것이다.”
운암에게 이르러 물었다.
“무정설법은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운암이 대답했다.
“무정설법은 정이 없는 사람이라야 듣는다.”
“화상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내가 들었다면,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양개良价는 화상의 설법을 듣지 못하겠습니다.”
“그대는 나의 설법도 듣지 못하거늘 하물며 무정설법이겠는가?”
대사가 게송을 지어 운암에게 바쳤다.
신기하고도 신기하여라.
무정설법의 부사의不思議함이여,
만약 귀로써 들으려면 끝내 알기 어려우니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바야흐로 알게 된다네.
也大奇 也大奇 無情解說不思議
若將耳聽聲不現 眼處聞聲方可知
마침내 운암을 하직하니, 운암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화상의 곁을 떠나기는 하나 있을 곳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호남湖南으로 가지 말라.”
“안 갑니다.”
“고향으로 가지 말라.”
“안 갑니다.”
“조만간 돌아오라.”
“화상께서 머무시는 곳이 생기면 곧 오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 떠나면 다시 보기가 어렵겠군.”
“다시 보지 않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도리어 운암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별세[百年]하신 뒤에 어떤 사람이 스승의
참된 모습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그저 그에게 ‘다만 그러하다’고 말하라.”
대사가 잠자코 한참 있자, 운암이 말했다.
“이 일을 수긍하려면 크게 세밀해야 한다.”
대사는 그래도 엷은 의심이 풀리지 않다가 나중에 물을 건너다가
물속의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 게송을 읊었다.
절대로 남에게 구하지 말아야 하나니
아득하고 아득하게 나와는 성글어진다.
내 이제 홀로 스스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나는구나.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그가 바로 지금의 나이지만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만
바야흐로 여여如如함에 계합하리라.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麽會 方得契如如
훗날 운암의 영정[眞影]에 공양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그러하다’고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어떠합니까?”
“그 당시에 자칫했으면 선사의 말씀을 잘못 이해할 뻔하였다.”
“선사께서도 알고 있으셨습니까?”
“만일 알고 있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말을 이해하겠는가?
만일 알고 있다면 어찌 이런 말을 긍정했으리오?”
[장경長慶 능陵이 말하기를 “있음을 알았다면 왜 그렇게 말했으리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자식을 길러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고 하였다.]
대사가 늑담泐潭에 있을 때에 초初 상좌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신기하구나, 매우 신기하구나.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는 부사의하구나.”
대사가 말했다.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는 묻지 않겠지만,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를 말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마디만 말씀해 주시오.”
초 상좌가 잠자코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시오?”
초 상좌가 말했다.
“다투면 안 됩니다.”
“말해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다투면 안 된다고 하시오?”
초 상좌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부처와 도는 단지 이름일 뿐인데,
어째서 교리의 말씀도 인용하지 못하는가?”
“교리에서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뜻을 얻었거든 말은 잊어라.”
“그렇지만 교리의 뜻으로 마음 머리에 병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라는 병이 얼마나 큰지 말하시오.”
초 상좌는 이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대사는 당나라 대중大中 말년이 되자
신풍산新豊山에서 학도學徒들을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예장豫章의 고안高安에 있는
동산洞山[지금의 균주筠州를 말한다.]에서 교화를 크게 드날렸다.
어느 날 운암의 제삿날에 재를 차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선사의 처소에서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으나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제사는 차려서 무엇 합니까?”
“아무리 그렇지만 어찌 감히 그를 거스르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처음에 남전을 뵙고 발심을 하셨는데,
왜 운암의 제사를 지내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선사의 도와 덕을 중시하지도 않고,
불법을 위하지도 않는다.
오직 나에게 설파說破 알기 전에 말하는 것이다.
하지 않은 것을 중시할 뿐이다.”
또 기재일忌齋日에 제사를 차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선사를 위해 제사를 지내시는데,
선사를 긍정하시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습니까?”
“만일 완전히 긍정하면 선사를 저버리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어찌하여야 뵙겠습니까?”
“나이가 비슷하니 막힐 것이 없다.”
스님이 의심되는 바를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앞사람의 발꿈치만을 따르지 말고, 다시 한 가지 질문을 청하라.”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이에 운거雲居가 대신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화상의 본래 스승을 뵙지 못하겠습니다.”
[나중에 교皎 상좌上坐가 이 일을 들어 장경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인가?”라고 하니,
장경이 대답하기를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을 교 상좌는 다시 거기서 무엇을 찾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또 말했다.
“4은恩과 3유(有:三界의 業種)를 갚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만일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하면 어찌 처음부터 끝까지 근심을
초탈하리오? 다만 마음과 마음이 사물에 저촉하지 않고, 걸음걸음이
처소가 없어야만 항상 간단間斷이 없어서 점점 상응하게 되리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산을 유람하고 옵니다.”
“정상까지 갔던가?”
“갔습니다.”
“정상에도 사람이 있던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네.”
“정상까지 가지 않았다면 어찌 사람 없는 줄을 알았겠습니까?”
“왜 그대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는가?”
“제가 머무는 것을 사양하지는 않으나,
서천西天의 어느 사람도 긍정하지 않습니다.”
대사가 태太 장로에게 물었다.
“어떤 물건 하나가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텼는데,
항상 움직이는 작용 속에 있으면서 검기가 옻칠과 같다.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태 장로가 대답했다.
“움직여 쓰는 데 허물이 있습니다.”
[동안同安 현顯이 따로 말하기를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꾸짖으면서 “나가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치 해계서(駭雞犀:물소 뿔)와 같다.”
대사가 설봉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 대사를 보았는가?”
“제가 무쇠 방망이를 맞을 일이 생겼군요.”
어떤 스님이 물었다.
“뱀이 두꺼비를 삼키는데 구해야 합니까, 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구하면 두 눈으로 보지 못하고, 구하지 않으면 형체와 그림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대사가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어 말했다.
그가 물러간 뒤에 대사가 시자를 시켜서 등불을 켜게 하고
아까 와서 질문한 스님을 나오라고 불렀다.
그 스님이 앞으로 다가서니,
대사가 말했다.
“밀가루 세 냥을 가져다가 이 상좌에게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흔들면서 물러갔다.
그는 이로부터 현묘한 지취旨趣를 깨닫고,
마침내 옷과 도구를 팔아서 공양하다가 3년 후에 대사를 떠났다.
대사는 그에게
“잘 가라”고 전송을 했다.
설봉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저 스님이 떠났다가 언제 다시 돌아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는 오직 한 길로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올 줄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으로 가서 의발衣鉢 밑에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
설봉이 올라와서 대사에게 보고하니,
대사가 말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그래도 나의 3생生과는 비교된다.”
설봉이 올라와서 문안을 드리니, 대사가 말했다.
“문에 들어와서 말해야 하며,
벌써 들어왔다는 따위의 말은 말라.”
설봉이 대답했다.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이 없는 것은 그만두고, 내 눈이나 돌려다오.”
설봉은 말이 없었다.
[운거雲居 응膺이 따로 말하기를 “제가 입이 생기거든 말하지요”라고 하였다
장경長慶 능稜이 따로 말하기를 “그렇다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3조祖의 탑 앞에서 옵니다.”
“조사 계신 곳에서 왔다면 다시 나를 만나 무엇 하리오?”
“조사는 구별되지만, 학인과 화상은 구별되지 않습니다.”
“내가 그대의 본래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되겠는가?”
“역시 화상 스스로가 나서기를 기다려야만 비로소 가능하겠습니다.”
“내가 아까는 잠시 여기에 있지 않았다[不在].”
운거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闍梨]가 앞으로 주인노릇[把茅蓋頭]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물으면 그대는 그에게 무엇이라 하겠는가?”
어떤 관원[官人]이 물었다.
“수행修行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공公이 남자가 되거든 수행하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만나서 드러내 보인 일이 없는데도
뜻하는 바를 선뜻 안다고 하는데, 이런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합장정대合掌頂戴를 하였다.
대사가 덕산德山의 시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덕산에서 왔습니다.”
“왜 왔는가?”
“화상께 공경을 다하러 왔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경스러운가?”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
언젠가 대사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의 향상사向上事를 체득해야 비로소
그나마 이야기를 나눌 자격[分]이 있다.”
어떤 스님이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어떤 것이 이야기입니까?”
“이야기할 때 그대는 듣지 못했구나.”
“화상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내가 이야기하지 않을 때에는 듣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입으로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스님께서 대답하시겠습니까?”
“아직도 묻지 못하는구나.”
“어떤 것이 문門으로 들어온 것은 보배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대사가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지혜로써 알 수 없고 의식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니,
무엇을 뜻한 말인가?”
“법신法身을 찬탄한 말입니다.”
“법신이란 말이 이미 찬탄인데, 어찌하여 다시 찬탄하는가?”
어느 때 대사가 이렇게 설했다.
“곧은 도는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발우 주머니 하나도 수용하지 못한다.”
이에 어떤 스님이 선뜻 물었다.
“어떤 사람이 이에 계합할 수 있습니까?”
“문에 들지 않은 이라야 한다.”
“오직 문에 들지 않은 이라면 계합할 수 있습니까?”
“비록 그렇다 해도 그에게 주지 않을 수 없다.”
대사가 또 말했다.
“곧은 도는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다른 의발도 수용하지 못하지만,
그 속에서 합치하는 한 마디[一轉語]를 얻어야 한다.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떤 상좌가 96회나 말을 했으나 모두가
대사의 뜻에 맞지 않다가 마지막 한마디가 대사의 뜻에 맞았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어떤 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이야기해 달라고 청하면서
수건과 물병의 시봉을 3년 동안 했으나,
끝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상좌가 병이 났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제가 이렇게 3년 동안 시봉을 하면서
앞의 말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는데,
아직껏 화상의 자비를 입지 못했습니다.
선의로 얻으려다 안 되니 악으로라도 얻어야겠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들고 마주 서서 말했다.
“만일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면 즉시 상좌를 죽이겠소.”
상좌가 겁이 나서 말했다.
“스님,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이야기하겠소.”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설사 가지고 왔다 하여도 둘 곳이 없소.”
그 스님은 절을 하고 사죄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평상시에 학인들에게
새의 길[鳥道]을 행하라고 가르치는데, 새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한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어떻게 행합니까?”
“발바닥에 실오라기도 없이 가야 한다.”
“오직 새의 길을 행하기만 하면 그것이 본래면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뒤바뀐 소리를 하는가?”
“어느 곳에서 학인이 뒤바뀌었습니까?”
“뒤바뀌지 않았다면 어째서 종을 상전으로 여기는가?”
“어떤 것이 본래의 면목입니까?”
“새의 길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날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사람[佛向上人]이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사람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非常].”
[보복保福이 따로 말하기를“부처는 아니다”라고 하였고,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임시방편으로 부처라 한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신을 삼다가 왔습니다.”
“스스로 이해했는가, 남에게 의지했는가?”
“남에게 의지했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던가?”
“진실하면 어김이 없습니다.”
어떤 스님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수유茱萸에게 묻되 ‘어떤 것이 사문의 행[沙門行]입니까?’라고
하니, 수유가 대답하되 ‘행이라면 없지 않지만 사람이 깨달았다면
곧 어긋난다’고 하였습니다.”
대사가 이 말을 듣자 다시 그 스님을 수유에게 보내
이렇게 물으라고 하였다.
“무슨 행行입니까?”
수유가 대답했다.
“부처의 행이다, 부처의 행이야.”
그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말했다.
“유주幽州는 그래도 비슷하다고 할 만한데,
가장 괴로운 것은 신라新羅다.”
[동선東禪 제齊가 이 말을 들어 말하기를 “이 말에 의혹이 있는가? 있으면 어디가 틀렸는가? 없다면 그가 말하기를
‘가장 괴로운 것은 신라다’라고 했으니, 어찌할까 잘 살펴보라. 그가 말하기를 ‘행은 없지 않으나 사람이 깨닫는다면 어긋난다’고 하니, 대사가 다시 가서 ‘이것은 무슨 행인가?’라고 하게 하였을 때에는 부처의 행이라 했는데, 그 스님은 알면서 물었는가,
모르면서 물었는가 잘 판단해 보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도리어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행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머리의 길이는 세 척이요, 목의 길이는 두 치니라.”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귀종歸宗 권權 화상에게 묻기를 “동산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하니,
권權이 대답하되 “겉껍질의 두께가 두 치니라”라고 하였다.]
대사는 유幽 상좌가 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서
선상禪床 뒤에 숨었다. 이에 유 상좌가 와서 말했다.
“화상은 어찌하여 학인을 회피하십니까?”
“나는 그대가 나를 찾는 줄 알았다.”
“어떤 것이 현묘함 속의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과 같다.”
대사가 발우를 씻다가 새 두 마리가 개구리 하나를 두고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어떤 스님이 문득 물었다.
“저것이 어찌하여 저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오직 그대 때문이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이며, 법신의 주인입니까?”
“벼 줄기와 조 이삭이니라.”
“3신身 가운데에서 어느 몸이 대중의 수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항상 그에 대하여 간절했다.”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묻기를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항상 그에 대하여 간절했다’고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니, 조산이 대답하기를 “내 머리가 필요하거든 베어 가라”라고 하였다. 또 설봉雪峰에게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를
그에 비기면서 말하기를 “나도 일찍이 동산洞山에게 갔다 왔노라”고 하였다.]
대사가 볏논[稻田]을 지키는데 낭朗 상좌上坐가 소를 끌고 왔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 소를 잘 지키시오. 벼를 먹을까 걱정이오.”
낭 상좌가 대꾸했다.
“좋은 소라면 마땅히 벼를 먹지 않습니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간에서 어떤 것이 가장 괴로운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이 법의法衣 아래서 큰 일
[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우니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어느 것이 그대[闍梨]의 주인공인가?”
그 스님이 ‘보는 것’이라고 대답하려는데, 대사가 탄식하였다.
“괴롭다, 괴로워. 요새 사람은 거의가 이와 같구나.
당나귀 앞이나 말 뒤에서 종노릇이나 하는 놈[驢前馬後]을 잘못 알아
자기라고 여기니, 불법이 쇠퇴한다는 것이 이를 가리킨 말이구나.
손님 가운데서 주인을 가리기도 아직 분명하지 않은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의 주인을 가려내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대답해 보라.”
“제가 말하면 그것은 이미 손님 가운데의 주인이니,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상속相續하기는 매우 어려우니라.
[운거雲居가 따로 말하기를 “저는 말할 수 있되,
나그네 가운데의 주인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병이 나자 사미를 운거雲居에게 보내서 소식을 전하게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가 갑자기 그대에게 ‘화상께서 무슨 말씀이 있던가?’라고 묻거든,
그저 ‘운암雲巖의 길이 끊어지려고 합니다’라고 하라. 그대는
이 말만을 하고 멀리 서 있어라. 그가 그대를 때릴까 걱정해서다.”
사미가 분부를 받고 가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운거에게
한 방망이를 맞았다. 이에 사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동안同安 현顯이 대신 말하기를 “그렇다면 운암의 한 가지가 떨어지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상좌여, 말해 보라. 운암의 길이 끊겼는가, 끊이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
숭수崇壽 조稠가 말하기를 “옛사람이 이 한 방망이를 때린 뜻이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입적할 무렵에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부질없는 이름을 세상에 남겼다. 누가 나를 위해 없애 주겠는가?”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이때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화상의 법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나의 이름이 이미 없어졌구나.”
[석상石霜이 말하기를 “아무도 그를 긍정할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가 말하기를 “부질없는 이름이 있으면
나의 선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조산曹山이 말하기를 “예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그를 설명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소산疎山이 말하기를 “용이 물에서 뛰어오를 근기가 있건만 아무도 짐작하는 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병이 드셨다는데 병들지 않는 자도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있다.”
“병들지 않는 자가 화상을 간호해 줍니까?”
“내가 그를 간호할 분수는 있다.”
“화상께서 어떻게 그를 간호하시겠습니까?”
“내가 간호할 때는 병이 보이지 않는다.”
대사가 또 말했다.
“이 껍데기를 여의고는 어디서 나와 서로 만날꼬?”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당나라 함통咸通 10년 3월에 문인들을 시켜서 머리를 깎고, 옷을 갈아입고, 종을 치게 한 뒤에 엄숙히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대중이 슬피 울다가 해가 기울었는데, 대사가 홀연히 눈을 뜨고 일어나서 말했다.
“출가한 사람의 참된 수행이란, 마음이 사물에 붙지 않아야 하니, 살면 수고롭고 죽으면 쉬는데 어찌 슬픔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일을 담당하는 스님을 불러서 우치재愚癡齋 원문에는 “우치제愚癡齊”로 되어 있다.
우치재愚癡齋는 반야般若를 얻지 못하고 세정世情에 끌려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기 위하여
베푸는 재齋를 말한다.
를 한바탕 지내게 하니, 대체로 그 연연하는 정을 꾸짖는 것이었다.
대중이 여전히 연모하기를 그치지 않자, 7일을 더 지내다가 공양 때가 되자
대사도 대중을 따라 재齋를 마치고 말했다.
“스님의 집에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대체로 떠날 때가 되면
이처럼 수선을 떤다.”
그리고는 8일째 되는 날 목욕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니,
수명은 63세이고 법랍은 42세이다. 시호는 오본悟本 대사요, 탑호는
혜각慧覺이었다.
[대사가 예전에 늑담泐潭에 있을 때에 대장경을 번역해 내고,
대승경요大乘經要 1권을 편찬하니
대체로 승속을 격려하는 게송과 훈계로서, 세상에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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