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교각
최근 ‘클럽하우스’라는 소셜미디어에 가입해서 가족에 얽힌 사연을 주고받았는데 한 참여자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을 나누고 싶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혹시 네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 단어, 무슨 뜻이야?’하고 물으면 부모는 그 단어를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수도 없이 고민하지, 아이의 세계를 넓혀주고 싶으니까. 그런데 그런 부모가 백발의 노인이 돼서 자식 앞에서 어쩌다 질문을 하면 자식들은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 귀찮다는 듯이….”
대부분 사람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 고래 심줄처럼 질겨서 서로 무심하게 대하더라도 평생 끊어지지 않고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부모와 자식 사이만큼 예민하면서도 복잡한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지만 그런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오해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기 마련이고, 오랫동안 마음에 누적된 감정의 앙금이 잦은 다툼으로 이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게다가 세월의 강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폭이 넓어지고 유속도 빨라져 부모와 자식 사이를 점점 더 갈라놓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일상에서 사소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이야말로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자식들은 부모의 품에서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벗어나 부모가 겪은 세계보다 훨씬 넓은 세계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부모의 질문을 귀찮게 여기고 질문에 숨어 있는 부모의 감정과 의도를 헤아리지 않는다. 부모의 질문이 세월에 떠내려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그렇게 문답問答이라는 보이지 않는 교각을 해체하고 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 무수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은 채 말이다.
―이기주, 『마음의 주인』, 말글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