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앞에서 가르친 연기법과 4성제를 공부하는 연각승과 성문승 그리고 그 법을 소승이라 비판하는 대승불자[보살승]들을 모두 비판하며
진정한 대승인 일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법화경> 안에서 과거나 현재, 미래 부처님들은.. 먼저 불제자들을 연기법과 4성제법으로 이끌고 그 후에 다시 일승으로 화합하는 순서로 가르친다.
만일 삼승이 잘못이고, 일승이 당연한 것이라면.. 현재와 미래에는 일승만 가르치면 좋을 것 같은데.. 먼저 소 삼승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의 기반은 연기법과 4성제 그리고 6바라밀이기 때문이다.
그 셋을 충분히 알고 이해해야만 일승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승불교 권인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연기법과 4성제는 소홀히 하고, 대승경전인 <법화경>이나 반야경, 화엄경 등을 지중해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는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외부에서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흔들리는 모습이 되었다.
해서 이곳에서는 12처설을 포함한 4성제와 12연기법을 주로 공부했다.
일승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들보를 쌓듯이..
사람은 5온존재로 설명하는데 한편에서는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3행 존재로 설명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은 볼 수 있지만 생각은 본인 스스로 알 뿐, 상대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생각하고 있음은 언행을 통해 안다.
아무튼 그런 3행을 하므로 인간이라 한다.
행동은 생명체 특히 동물의 특징이라 하듯.. 모든 동물이 다 하는 것으로 인간만이 하는 고유적인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동이야말로 실천이라 하여 인간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는 게 된다.
당연히 행동은 말과 생각이 표현되는 것으로 바라보면서..
특히 타인과 접촉하는 행동을 아주 중요하게 취급한다.
소승과 대승을 구분하는 첫 번째가..
소승은 자기를 우선하는 자기의 행동인 반면에
대승은 타인을 자기처럼 여기는 자기의 행동이 된다.
사람이 타인보다 자기를 우선하는 것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본능적이다.
그런데 사회가 생겨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유지되려면 남을 자기처럼 대하는 윤리와 도덕이 절실했기에 인간 역사 속에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자기처럼 여기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타인을 우선해야만 최고의 보살이 되고 궁극적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 대승불교를 보며 서양인들은 대승불교야 말로 최고의 윤리라고 극찬한다.
그런데 대승불교국인 우리 불교는 어떠한가..
타인을 우선하는 대승불교라고 할 수 없다.
주위에 있는 불자 대부분이 자기를 우선하는 불교를 믿거나 의지하고 있지 아니 한가..
현재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조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승불자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북조선은 형제이니 한시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길을 모색하리라.
그런데 과연 불자인 우리는 진심으로 통일을 바라며 그리 되도록 실천하고 있는가?.
대승불자인 우리는 친일을 우선하며 반통일을 부추기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처럼 말과 실천이 다른 게 한민족의 특성인가..
소승불교라면 나라가 어떻게 흘러가든.. 우선 나를 챙기는 게 우선이 될 수 있지만..대승불교라면 나도 중요하지만 나라가 나만큼 소중하지 아니하느냐 말이다.
아니면 대한민국 불교는 대승경을 전하고 가르치지만.. 나를 우선하는 소승불교에 머물고 있다고 솔직히 인정하자.
불자 5계 안에는 실천과는 다른 말, 아첨,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불망어(不妄語)가 있듯이.. 최소한 말과 실천이 다른 불교를 전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