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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따라갑시다.(막 9:2~8)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 9장 2절에서 8절 말씀으로“부활의 주님을 따라갑시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사역 현장에 동행하시므로 이들을 훈련하셨습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신 자리에서 홀연히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는데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광채가 나고 매우 희어졌습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인적이 드문 높은 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이런 놀라운 장면을 왜 보여주셨을까요?
전장인 8장 27절~31절을 보면, 예수님은 우상 신전이 유난히 많은 가이사랴 빌립보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고 이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알려주신 대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한 후 처음으로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엿새 후 세제자 들 앞에서 변형되신 모습을 보이신 것을 볼 때 주님께서는 죽음 이후에는 부활이 있을 것인데, 부활이 무엇인지, 사람이 부활 되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가르치시고 제자들에게 각인시키려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이 부활의 주님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첫째 나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제자 들과 동행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일으키러 가실 때,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 이 세제자 들을 장차 지도자로 쓰시려고 따로 훈련을 시키신 것 같습니다.
본문은 AD29년경 일이며 AD30년경 봄에 예수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때입니다.
(눅 9:31)절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시고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32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능력을 대표하며 산채로 승천했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엘리야와 율법을 대표하며 모압 땅에서 죽은 모세가 살아서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고난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역사적이고 가슴 뛰는 영광스러운 현장에서 제자들은 깊이 졸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이후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주님께서 고통과 괴로우심으로 세 제자와 함께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셨을 때도 피곤 했으며 그들이 잠들었고 눈이 심히 피곤하였더니 라고 막14:40절에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가까이 동행 하면서, 초자연적인 기적도 많이 봤고, 하나님의 길을 제시 받으며, 이 땅에 없는 것을 알게 됐고. 곁에서 수종 들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산에 오기 직전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가르침을 귀담아 듣지 않고 건성으로 들었으며 이해하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했습니다.
사역하다 보니 육이 피곤하여 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보면 마음의 중심에 주님 것이 아닌 세상 것이 가득 들어와 있어 죄에 잡혀 영적 깊은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아 육에 속한 혼미한 상태임을 봅니다. 내 생각, 내 방법, 내 중심에 붙들려서 뚜렷하고 선명하게 주님 것을 못 잡아 놓치고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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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절에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절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베드로가 깊이 졸다가 깨어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는 예수님의 영광과 부활하여 나타난 엘리야와 모세를 보고 이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겠는데 당황스럽고, 믿음이 없어 몹시 무섭고 떨리므로 순간 자기도 모르는 엉뚱한 말이 툭 나와버렸습니다.
본문 직전에 성령을 받아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지만, 아직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하여 성령이 떠나시니 예수님을 랍비, 선생님이라고 바리새인들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며 엘리야와 모세는 이미 이 땅을 떠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분별하지 못해 초막 셋을 지어서 세분과 함께 여기 이 높은 산에서 살고 싶습니다. ~라고 입을 모아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봅니다. 평소에 베드로는 이곳저곳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다 보니 한곳에 정착하여 안주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을 통하여 비춰볼 때 3년, 5년, 10년, 20년 넘게 교회에 나와 훈련받고 있지만 주님이 풍성히 주셔도 주님 따른다면서 욕심으로 세상에 연연해하며, 영적으로 잠들어 혼미하므로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믿음이 없는 상황 가운데서 무서워 떨며, 자신이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르며, 보이는 세상에 파묻혀서 질서를 잡지 못하고 이 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메시지를 놓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제 모습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했다면,
둘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므로 밤이나, 낮이나 기회를 타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고(막1:35), 육체로 계실 때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5:7)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힘쓰고 애쓰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22:44)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이 죽어 이 땅에 왔으며,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에 욕심 때문에 손을 대므로 육이 죽었고 욕심, 교만, 거짓말, 불순종, 원망, 살인의 죄들이 우리 마음으로 들어와서 영, 혼, 육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죄는 내가 좋아하기에 나에게 들어와서 죄의 댓가인 가난과 질병, 고통과 환란 역경을 주어 시달리게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영원한 형벌에 빠지도록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죄는 사단이 쥐고 흔들며 잔인하게 나와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무조건 버려야 합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 죄는 살아 있어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끊어진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죄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죄를 죽이고 마귀를 멸하시므로 우리가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죄 지고 있으면 나처럼 고난받으니 네 죄를 십자가 앞에 다 버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4:17).
그렇습니다.
죄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가던 길을 180도 돌이켜서 주님을 향해 직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회개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회개의 영을 보내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 년 동안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셨다고 벧후3:8절에 말씀하십니다.
회개 기도는 말씀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버리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눅 18:9~14)절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세리가 성전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눈을 들지도 못하고 엎드려 ”제 동족들에게 사기 치고 도둑질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슴을 치면서 애통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고 내려갈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 하십니다.
회개하기 시작할 때 의로움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육신을 드려 기도합니다.
교회에 나와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성경을 읽을 때, 기도문을 읽어 나가다가 어느 한 대목에서 뭉클하게 죄 된 마음을 건드려 주시면 “네~ 맞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무지하고 어리석고 미련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나님보다 자아를, 세상을, 돈을 더 사랑하는 무서운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 이 미친 마음을 용서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라고 계속 토설하고 마음을 찢으면, 때가 되면 기복신앙에 빠져서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서럽고 힘들어서 흘렸던 눈물이 아니라, 주님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이 죄송해서, 그동안 죄의 종 되어 먼저 믿은 자로서 본이 못되고 죄의 댓가로 가족들 고생시키고 비루한 인생을 살아온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죄가 싫어서 애통하게 됩니다.
우리가 머리와 입이 아닌 심령으로 눈물로 육과 마음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실 때 죄 사함을 받고 죄가 잘려 나간 빈자리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으로 들어오셔서 말씀을 넣어주시고 가르치시고 마음 구석구석에 들러붙어 있는 죄를 조명하여 생각나게 하셔서 우리 자신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시키어 정결케 하신다고 요:14장 26절에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아직은 온전치 않으나 회개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생활과 환경을 조금씩 풀어주시어 힘내라고, 이 길이 맞으니 계속 전진하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나 회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 세월 쌓아놓은 우리의 죄가 너무 많기에 말씀이, 환경이 “지금 바로 회개하고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고 경고음을 계속 울려도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좀 더 쉬운 길이 있지 않을까”라고 합리화하며, 거역과 불순종이, 아집과 고집이 속에서 꾸역꾸역 올라와 거세게 저항합니다.
죄가 누르고 있어 회개하기를 그렇게 싫어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눅13: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할 때 내 죄가 드러나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고 세상 사랑하며 이기적이고 악한지 조금씩 나를 깨닫고 알아 가며, 오랜 세월 이렇게 기막힌 자를 내치지 않고 참아주신 하나님을 알아 가므로, 진정성 있는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예수께서도 기도하실 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살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마음을 틀고, 몸을 꺾으며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말고 그 두꺼운 마음속 철의 장벽을 뚫고 계속 회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를 그치면 유혹을 받아 세상으로 바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상대의 죄 된 모습을 볼 때 모든 사람의 죄는 같으므로 내 모습으로 가져와 먼저 내 죄로 회개하여 죄를 깨고 상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여 죄를 뜯어내 주는 중보자의 자리로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자녀는 나의 열매이므로 내가 내려준 죄를 중심으로 회개하여 거둬줘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반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며 회개한 후에는,
셋째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7절에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아시고 ”예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너희의 구원자이니 예수의 말씀을 듣고 나의 뜻대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는 신18:15절에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에게 영으로 와서 회개를 선포했으며, 세례요한은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고 마3:2,11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라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은 후에 말씀이 육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말씀은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말씀을 따르는 것이며 말씀을 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따라가면 망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말씀만 따라가야 삽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시며 길, 진리 생명이 되십니다. 십자가의 도, 회개와 말씀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제자들 앞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변형된 모습을 보이셨을까요?
예수님의 변화, 변형됨은 단순한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질적인 내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장차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과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이란 무엇일까요?
부활은 기절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들었다가 치료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은 거듭남입니다.
부활은 악하고 독하고 마음에 온통 죄로 가득해서 죄를 뿌리고 다니며 죄의 노예로 살았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쳐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요 11:2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죄도 없으시고 죽지도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영으로 거듭나서 주님을 믿고 따르면 죽음이 해하지 못하며 부활과 생명 즉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영, 혼, 육을 찔러 쪼개고 가르시어 수술하신다고 히4:12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고치시고 다듬어 중심을 잡게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가까이하고 말씀 가지고 회개하여 죄를 버리고, 거듭나서 성령께서 넣어주신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이 내 안에 새겨져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변화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미움, 시기, 분노, 욕심, 혈기가 죽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 닮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부활 신앙을 소유한 사람, 성전 된 자로 준비됩니다.
말씀만이 빛, 구원, 생명이며 열매 이십니다.
언어와 행동이 달라진 그의 가정은 평안하고 웃음이 있으며, 주님 닮은 마음과 행실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고 기도하는 것마다 주님께서 응답하시며 이 땅에 사는 동안 다가올 온갖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끝까지 받는다고 말씀 곳곳에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복을 주십니다. 말씀 있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결론입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에 옵니다. 나를 부인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우리가 따라가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선은 없고 온통 죄와 허물뿐임을 알고 푯대를 주께 맞추고 주님의 십자가로 나아가 심령을 다하여 눈물로 회개하며 죄를 버리는 죽음을 기쁨으로 통과 해야 합니다.
이제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말씀을 부지런히 먹고 입으므로 거듭나서,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를 받고 말씀과 한 몸 되어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선한 열매를 마음으로부터 많이 맺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사람, 성전으로 준비 되므로 이 땅이 멸망 받는 그날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복 있는 저와 사랑하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문정* 강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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