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는고래골 옥녀폭포
굽어는 천심녹수(千尋綠水)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십장홍진(十丈紅塵)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無心)하예라.
――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조선 중기 문신)
▶ 산행일시 : 2022년 4월 30일(토), 흐리고 비 약간, 바람
▶ 산행인원 : 2명
▶ 산행코스 : 오색, 가는고래골, 옥녀폭포, 1,261.1m봉, 점봉산, 망대암산, 십이담계곡, 주전골, 용소폭포, 오색
▶ 산행시간 : 9시간 24분
▶ 산행거리 : 도상 14.7km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오색으로 감
▶ 올 때 : 오색에서 군내버스 타고 양양으로 와서, 고속버스 타고 강남터미널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오색 가는 시외버스 출발
08 : 59 - 오색, 산행시작
10 : 00 - 가는고래골 Y자 계곡, 왼쪽으로 감
10 : 22 - 옥녀폭포
11 : 02 - 능선
11 : 50 - 암벽 암봉, 왼쪽 협곡 트래버스
12 : 15 - 암봉, 오른쪽 사면 돔
12 : 38 - 암봉, 왼쪽 사면 돔
13 : 00 ~ 13 : 22 - 1,261.1m봉, 점심
13 : 46 - 점봉산(點鳳山, △1,426.0m)
14 : 19 - 망대암산(望對岩山, 1,246.7m)
15 : 07 - ┣자 갈림길 안부
15 : 59 ~ 16 : 48 - 휴식
17 : 06 - 주전골
17 : 35 - 용소폭포
18 ; 08 - 오색석사(성국사)
18 : 23 - 오색 버스승강장, 산행종료(19 : 06 양양 가는 군내버스 출발)
19 : 38 - 양양(19 : 50 강남터미널 가는 고속버스 출발)
22 : 08 - 강남터미널
2. 주전골
▶ 옥녀폭포
장수대가 썰렁하다. 조금 더 가니 한계령도 흘림골도 오색도 썰렁하다. 설악산 전 구간이 통제되었다. 봄철 자
연자원보호와 해빙기 낙석 위험, 산불방지를 위한 통제다. 오는 5월 15일까지다. 다만, 오색 주전골만은 용소폭
포까지이지만 오늘 03시 부로 정상 개방하였다. 한계령에서 등산객 6명이 내린다. 하늘재 님과 내 의견이 엇갈
린다. 공단에 힘 있는 사람을 알아서가 아닐까? 아니면 세상물정을 몰라서 왔던가.
오색. 우리 둘만 내린다. 마치 유령의 마을 같다. 주전골 입구에 좌판 나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두릅이 주
종이다. 1kg에 15,000원이라고 한다. 지난주 용문산 산나물축제 때의 일도 있고 해서(그때 거기는 25,000원 했
다), 산행 중의 무게를 고려하여 2kg만 샀다. 산행을 마치고 이곳을 지날 텐데 그때까지 계시면 더 사겠노라고
하고. 신행 후 그 자리를 지나갔는데 할머니는 없었다.
주전골 입구 초소에 근무하는 국공이 두 눈 번쩍 뜨고 우리를 유심히 살필 만도 했다. 이아침에 중무장한 등산
객 두 사람이 나타나다니. 그러나 우리는 혹시 모를 그의 질문에 대비하여 모범답안을 마련했다. ‘용소폭포 좀
보려고 갑니다.’ 라는. 망월사 지나 주전골 주계곡을 얼른 건너 왼쪽 지계곡으로 들어간다. 하늘재 님 말로는
11년에 우리(설앵초, 하나늘, 하늘재, 악수)가 왔었다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월에 풍우로 무너지고 파헤쳐지고 쓸리고 사태 나고 산천이 변했다. 암릉 타듯 계곡 너덜
을 오르내리다 절벽에 막히면 좌우 산자락을 번갈아 더듬는다. 자랑으로(?) 산행 표지기를 붙인 선답자들도 그
렇게 했다. 설악산은 계류의 울림도 다르다. 장중하다. 그런 와폭을 들여다보고 고개 들어 목도하는 주변의 옅
은 춘색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두고 가는 경치가 차마 아깝고, 앞의 저 모퉁이 돌면 또 어떤 경치가 펼쳐질까
조급하다.
하늘재 님은 연신 오룩스 지도(칼바위 님이 깔아주었다고 한다. 매우 정교하다)를 들여다보며 한 걸음의 헛걸음
도 허락하지 않는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쯤 지나 Y자 계곡과 만나고 왼쪽으로 간다. 계곡 너덜과 좌우의 비
탈은 더 사나워지고 달달 기어 올라가는 회수가 점점 잦아진다. 골짜기 울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옥녀폭포 앞에
다가간다. 수량이 많다. 비폭이다. 깊은 협곡 주변의 화려한 춘색과 잘 어울린 한 폭의 그림이다. 가는고래골의
하이라이트다.
이백(李白)이 ‘바라본 여산폭포(望廬山瀑布)’가 이보다 더 나을 것 같지 않다.
日照香爐生紫煙 해가 향로봉에 비치니 안개 피어나고
遙看瀑布掛長川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앞내에 걸려 있네
飛流直下三千尺 날아 흘러 곧장 밑으로 3천척이나 되니
疑是銀河落九天 아마도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네
오른쪽 옆 계곡의 시녀폭포도 한 소리한다. 한동안 망연했던 정신 수습하고 갈 길을 찾는다. 옥녀폭포 오른쪽
직벽에 세 가닥 가는 밧줄이 달려 있다. 외길이다. 어깨에 멘 배불뚝이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 우선 행동의 자유
부터 확보한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밧줄에 매달린다. 험로는 이어진다. 흙 절벽과 맞닥뜨린다. 좌우 십지가 피켈
이다. 흙을 파내 나무뿌리 찾아내고 움켜쥔다. 돌부리는 불안하다. 흙과 함께 쓸려내려 일보전진하려다 이보후
퇴한다. 하늘재 님 바로 뒤를 따른다. 낙석이 힘 받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3. 한계령 주변
4. 차창 밖으로 바라본 칠형제봉
5. 차창 밖으로 바라본 칠형제봉
6. 가는고래골 옥녀폭포
7. 칠형제봉
8. 옥녀폭포 지나서 첫 번째 만나는 암벽 암봉을 왼쪽 이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9. 주전골 만물상
10-1. 점봉산 가는 길
10-2. 중간이 망대암산, 멀리 가운데는 귀떼기청봉
11. 점봉산의 진달래, 뒤쪽 흐릿한 산은 대청봉
12. 작은 점봉산 넘어 곰배령
▶ 점봉산(點鳳山, △1,426.0m)
지능선 직전은 거의 오버행이다. 선등인 하늘재 님을 내가 밑에서 받쳐 오르게 하고, 하늘재 님이 슬링 내려 내
가 오른다. 혼자서 여기를 왔더라면 곤란할 뻔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한 차례 더 기어 지능선에 올라선다.
첫 휴식한다. 탁주 입산주 마신다. 하도 놀랐던 가슴이라 탁주 맛을 도시 모르겠다. 문득 하늘재 님은 이제야 생
각이 났는지 옥녀폭포를 동영상으로 촬영하지 않은 것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하늘재 님으로서는 오늘 가는고래골에 이은 점봉산 산행이 사실은 옥녀폭포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고자 함이었
다. 그런데 옥녀폭포에 임해서는 그 비경에 취해 모든 생각이 막혔고, 그 이후는 험로를 오르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이 길을 다시 내려가서 옥녀폭포를 볼 엄두는 나지 않고, 그저 자책할 수밖에 없
다. 지도로는 험로는 지났다. 이제는 춘유할 일만 남았다고 느긋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지금은 워밍업 수준
이었다.
날이 약간 무딘 나이프 릿지를 지난다. 수렴 걷어 칠형제봉을 보고 그 너머로 구름에 가린 귀떼기청봉을 가늠
하는 여유가 잠깐이다. 지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능선이 실제에는 매우 사납다. 암벽 암봉과 마주친다. 왼쪽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되게 가파르고 깊다. 한 발이라도 삐끗하면 곧바로 골로 갈 것 같다. 엉금엉금 앉은걸음
한다. 다 돌고 지능선 붙들어 그 마루금에 올라서기도 쉽지 않다. 아직 꽃 피지 않은 철쭉 숲이 역방향으로 누워
있으니 헤쳐 나가기가 여간 된 고역이 아니다.
두 번째 암봉은 짜릿했다.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쑤셔보다가 직등하려고 달라붙었다. 그 너머가 블라
인드 코너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태평했다. 하늘재 님이 올라가서 슬링을 내려주면 수월할 것이니
까. 슬랩은 떨어져서 보는 것과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과는 딴판으로 다르다. 하늘재 님이 도저히 더는 오르
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도를 자세히 살피더니 오른쪽 사면을 돌면 되겠다고 한다. 기껏 오른 슬랩을
내리기도, 길고 가파른 사면을 돌기도 상당히 까다롭다.
세 번째 암봉은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오른다. 역방향을 누운 철쭉 숲 헤쳐 오른다. 오늘 아침에 동서울터미널
에서 (만뢰산 등지를 가려고) 진천을 간다는 킬문 님과 은호 님을 반갑게 만났는데 거기 설악산은 눈이 많이 왔
더라고 하는 얘기를 나는 건성으로 듣고, 아마 남설악을 간다는 우리를 시샘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런데 사실이다. 눈이 왔다. 그리고 찬바람이 세게 불어댄다. 여기는 봄이 봄이 아니다.
나는 옥녀폭포가 아니라 점봉산의 야생화를 보려는 게 주목적이다. 어째 낌새가 수상하다. 맨 먼저 보이는 얼레
지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이어 홀아비바람꽃도 고개 꺾은 채 떨고 있다. 백두대간 능선 1,261.1m봉에 올라선
다. 바람 피해 사면에서 점심자리 편다. 13시니 늦은 점심이다. 나는 꾹꾹 누른 고봉밥을 담아온 도시락인데 하
늘재 님은 평소대로라며 달랑 김밥 한 줄이다. 그렇다고 탁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탁주도 오로지 내 차지다. 대
장내시경 용종절제의 금주기간인 1주일이 어제로 끝났다.
관목 숲 잘난 길 따라 점봉산을 오른다. 바람이 워낙 세서 자세 낮추고 간다. 눈길이다. 몇 번이나 미끄러져 엎
어질 뻔 한다. 오르다 뒤돌아 바라보는 가리봉과 대청봉 연릉은 안개구름에 가려 흐릿하다. 점봉산. 봄은 어디
에도 보이지 않는다. 찬바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려친다. 지난주와 같은 더운 날씨일 줄 알고 한여름 산행복
장을 하고 왔다. 그러고 보니 그간 점봉산을 여러 번 올랐으나 재미 본 기억이 없다.
13. 점봉산 정상에서, 한겨울이 무색하게 추웠다
14. 점봉산 정상에서
15. 망대암산에서 바라본 점봉산
16. 망대암산의 진달래, 뒤쪽 흐릿한 산은 대청봉
17. 왼쪽 도로가 보이는 마을이 오색이다
18. 앞 왼쪽은 대선봉
19. 얼레지, 망대암산 지나서 드물게 활짝 피었다
20. 십이담계곡
21. 십이담계곡
22. 십이담계곡의 와폭
23. 주전골
▶ 망대암산(望對岩山, 1,246.7m), 주전골
하산! 주전골 입구의 망월사 뒷산인 오봉산 쪽으로 갈까? 아니면 망대암산을 넘어 십이담계곡, 주전골로 갈까?
망대암산 쪽이 더 길고, 주전골에는 봄이 몰려 있을 것. 그리로 가기로 한다. 어서 내려가시라, 바람이 등 떠밀
어 나는 듯 내린다. 당분간은 백두대간 잘난 길이라 줄달음하기 썩 좋다. 설원의 찬바람을 벗어나니 야생화를
보려는 욕심이 생긴다. 똑같은 개별꽃이고 현호색이고 산괴불주머니일 텐데 설악에서는 더 곱게 보인다.
아까 백두대간에 진입한 1,261.m봉(봉이라고 하기에 어색하다. 그저 내림 길이다)을 지나면 오른쪽 사면은 급
경사이고 왼쪽 사면은 완만하다. 발로 수렴 걷어 급경사 너머 대청봉을 보지만 여전히 흐릿하다. 잠깐 올라 암
봉인 망대암산이다. 이름대로 전망 좋은 암산이다. 오늘은 무망이지만. 바위 섞인 가파른 능선을 한 피치 내리
면 펑퍼짐한 초원이 이어진다. 바람이 잔다. 기화이초들이 만발한 산중화원이다. 음울하던 등로가 환해진 건 홀
아비바람꽃이 일제히 하얀 화판 들고 산괭이눈이 눈 부릅떠서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 삼거리다. 오른쪽이 십이담계곡에 이어 주전골로 간다. 가파른 사면을 갈지자 어지
럽게 그리며 내린다. 십이담계곡도 너덜이다. 나는 초행길이다. 여기도 풍우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사태
나고 무너졌다. 선답의 인적은 곧잘 끊긴다. 절벽이나 급사면이 나오면 건너편의 느슨한 사면을 더듬어 내린다.
주전골이 가까워지고 뭇 침봉들이 눈길 사로잡는 기경을 연출한다.
맨입으로 볼 수 없기에 옆에 옥수 흐르게 하고 암반에 술상 편다.
멀리 혹은 가까이 여울의 계류가 금음(琴音)이다.
술은 하늘재 님이 가져온 담근 지 6년이 되었다는 돌배주다. 달작지근하다.
우리의 풍경이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그대로다.
四月十二潭 사월의 십이담에
千花晝如錦 온갖 꽃이 비단과 같네
誰能春獨愁 누가 봄에 홀로 근심하는가?
對此徑須飮 이런 풍경 대하면 곧장 술을 마시네
주) ‘四月十二潭’의 원문은 ‘三月咸陽城(삼월의 함양성)’이다.
일기예보에 오후 5시 즈음해서 비가 내린다고 했다. 부슬비가 내린다. 술상 거두고 계곡 너덜 내린다. 취한 눈
이어서 일까? 너덜이 아까보다 더 험해진 것 같다. 술이 깬다. 흘림골에서 등선대 넘어 내려오는 등로와 만난다.
데크로드다. 비로소 길이 풀린다. 이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주변경치를 즐길 일만 남았다. 전우좌우 눈 닿은 데
마다 가경이고 비경이고 기경이다. 부슬비도 한 경치 거든다. 용소폭포가 주등로 약간 벗어났기에 지나쳤다가
서운하여 뒤돌아 들른다.
앞의 경치보다 뒤에 두고 가는 경치가 더 아름답다. 열에 아홉 걸음은 뒤돌아본다.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둘이만 보기에는 차마 아까운 경치다. 주전골의 대미(大尾)는 독주암이다. 계류 다리 건너고 오색석사(성
국사) 돌아 오색이다. 버스승강장 박스 안의 벤치는 불을 넣어 뜨뜻하다. 몸이 한결 풀린다. 돌이켜보면 오전의
험로는 꿈에 볼까 걱정이었는데, 오후의 가경은 꿈에 볼까 즐겁다.
24. 주전골
25. 주전골
26. 주전골 용소폭포 입구
27. 용소폭포
28. 주전골
29. 주전골
30. 주전골
31. 주전골, 나오면서 뒤돌아본 경치다
32. 주전골, 나오면서 뒤돌아본 경치다
33. 주전골
34. 주전골 독주암(독좌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