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1
건방지다. 무례하기가 짝이 없다. 아들 같은 녀석이 언사에서부터 행동거지가 막돼먹었다. 아무리 눈꺼풀이 무거워도 그렇지 어디 얼굴이나 쳐다보고 얘기하면 주둥아리가 덧나나. 눈을 내리깔고 툭 던진다. “껌 씹지 마시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깐 놈이 뭔데 갑질이야. 그러나 참았다. 아픔을 치유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인데 감정을 삭이며 껌을 씹지 않고 입안으로 깊숙이 숨겼다. 이제 처방전만 받으면 그 녀석과의 대면은 끝이다. 그런데 아이가 또 염장을 지른다. 이번에는 노골적이다. “껌 뱉어요.”
껌을 씹지도 않고 입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 그리도 진료에 방해가 된단 말인가. 혈압이 올라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진료차트를 내동댕이치며 “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한테는 진료받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얼마 후에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널목 모퉁이에 0 0 0 내과 의원이 들어선다. “껌 뱉어요.” 하던 그 녀석이다. 그에게 다시는 진료받을 일이 없겠지만 출퇴근길에 마주칠까 봐 신경이 쓰인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내가 후회스럽다. 마음의 짐이다.
의사-2
새벽잠을 설쳤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비명을 지른다. 어제 저녁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던 발가락이 밤사이에 벌겋게 부어오른다. 절룩거리며 택시를 타고 정형외과로 갔다. 년만하신 의사 선생님이 발가락 뼛속으로 주사기 바늘을 찔러 넣고 좌우로 휘젓는다. 죽을 것만 같아 “아야! 아야!”하고 비명을 지른다. 바람이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痛風). 관절 부위에 요산이 쌓여 염증을 일으키는 몹쓸 병이다. 뼈 주사는 정말, 죽음보다 싫다.
진구에서 남구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 턱밑에 정형외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고통스러웠던 뼈 주사의 트리우마가 오버랩 되어 마음속으로 제발 좀 뼈 주사만은 아니길 기도한다. 얼마 후에 친구들과의 과음으로 그놈의 통풍이 도진다. 처음으로 집 앞 정형외과를 찾았다. 사십 대 후반쯤의 의사 선생님이다. 첫마디에 뼈 주사를 놓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엉덩이 주사 두 대와 약으로 단번에 통풍을 잠재워 준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똑같은 질병인데도 의사에 따라 처방이 이렇게 다르다니, 쾌재를 부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부조화인가. 담당 의사의 의술은 대만족인데 환자를 대하는 예절이 가당찮다. 어투가 퉁명스럽다. 무릎이 시큰거려 “만 보를 걸으면 안 될까요?”라고 물으면 “알아서 걸으세요. 아프면 말고.” 이런 식이다. 보다, 세심한 의학적인 용어로 환자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퉁명스런 응답이 맘에 거슬려 다른 병원으로 옮겨볼까 해도 뼈 주사의 트라우마가 옷깃을 잡는다. 꼼짝없이 십 년이 넘도록 그에게 나의 통풍을 맡기고 있디. 그와 나의 의료 관계는 필연인가 보다.
의사-3
어느 날 갑자기 왼쪽 귀에서 주야장천 매미가 울어댄다. 새끼를 쳤는지 2년 후에 오른쪽 귀에서도 매미 소리가 들린다. 왱 하는 매미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TV의 음량을 올려야 알아듣는다. 수강을 할 때도 마이크 소리보다 육성이 듣기에 편하다. 어느 날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큰 사위가 정밀검사를 하자며 나 대신 진료 예약을 했다. 예약된 시간 2시 정각에 접수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호명을 하지 않는다. 2시에 예약한 진료가 5시를 훌쩍 넘어서 끝이 났으니 가슴이 부어올라 의사 선생님께 한마디 한다. “진료한 시간은 불과 5분인데 기다린 시간은 3시간이 넘었으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소. 진료 예약 시스템을 고치시오.“라고 갑작스런 질타에 정색을, 하며“ 예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한다. 의료서비스의 개선이 꼭 필요한 사안임을 깨우치고 싶어 한 말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시건방진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날 저녁 사위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오는 병원에서 “진료 예약 시스템을 고치시오”라고 하셨다면서요. 조금만 참을걸, 사위 체면을 봐서라도.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때로는 필연일 수도 있다. 우연에서 필연으로 가려면 상호 간에 신뢰와 의술이 융합되어야 한다. 고압 자세나 무성의한 답변은 환자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렇다고 나처럼 일시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진료 차트를 내동댕이치는 개망나니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참지 못한 후회가 내내 마음에 켕긴다. 사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다.
의사를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환자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죽는 날까지 삶의 끈을 잡아주고 천사 같은 의술을 베풀라는 뜻이 아닐까. 출생에서 죽음까지 의사와 환자의 사이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의사의 갑질은 환자를 더욱 아프게 하고 환자의 과잉 반응은 의사를 힘들게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 서로가 존경받고 위안을 받는 좋은 관계였으면 좋겠다. 억하심정을 지혜롭게 다스리지 못한 바보가 황혼 길을 헤매 돌고 있구나.
첫댓글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의사에게서 부당한 처치를 받고 아파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의사에게 선생님 이란 호칭이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의사에게 머리를 꾸벅거리는 짓은 다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존칭을 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