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물가를 따라 걷다
210914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청계천 토박이 땅이름(광화문 네거리~종로5가. 옛 마을 이름들)
-모전교 근처 / 팥죽골(무교동) 주석전골(세종로) 조개전골(종로1가) 솔고개(수송동) 갓전골(관철동)
-광교 근처 / 구리개(을지로2가) 곤담골(을지로1가) 소금전골(종로2가) 사기전골(서린동) 장자우물골(남대문로1가)
-장통교 근처 / 대추나뭇골(을지로2가) 먹우물골(수표동) 시궁골(수표동)
-삼일교 근처 / 모시전골(저동1가) 실우물골(저동2가) 찬우물골(저동2가) 궁텃골(초동) 혜민섯골(을지로2가)
-수표교 근처 / 대전골*을지로2가-장교동) 먹우물골(묵정동) 벙거짓골(종로3가)
-관수교 근처 / 도깨빗골(관수동) 갓전골(관수동) 비팟골(관수동) 웃너더리(관수동)
-오간수교 근처 / 두다릿골(종로5가) 한우물골(종로5가) 당고개(창신동) 붕어우물골(창신동)
-마전교 근처 / 배오개(종로4가-인의동) 배다리(주교동) 옥방골(예지동) 새경다리(예지동) 석수방골(예지동)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배다리와 모전다리
서울 청계천
“오늘 이 팥죽골 마을이 떠들썩하곘어. 김진사 댁 환갑 잔치야.”
“탑골 사는 김진사 딸도 아침 일찍 모전다리를 건너오더구만.”
“며칠새 비가 많이 와서 개천에 물이 엄청 불었어. 갓무물골 옆동네에 또 배다리가 놓였다는데..”
서울에서 '개천'이라고 하면 청계천을 일컬었다. 즉, 청계천의 옛 이름이 개천(開川)이다. 서울의 북악과 인왕산 남쪽 골짜기의 물, 남산 북쪽 자락의 물까지 몽땅 받아 물줄기를 이룬 청계천은 비가 많이 오면 크게 물이 불어 한양의 북촌과 남촌 사람들의 왕래에 불편을 주곤 했다.
청계천은 청계 이름 그대로 맑은 내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전후해 물이 심하게 오염되었다. 이렇던 청계천은 1958년 복개공사로 냇줄기가 묻혀 버렸다. 복개 당시 청계천변과 다리 밑에는 바라크 병영이라고 불리는 판잣집, 토막집 등 무허가 불량 주택이 1천여 가구 이상 들어서 있었고, 그들이 버린 갖가지 오물로 악취가 코를 찌를 정도로 오염이 극에 달해 있었다.
'청계천'이란 이름은 그 상류의 '청풍계천(淸風溪川)'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 청풍계는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일대, 즉 지금의 청와대 서북쪽 북악산 바로 남쪽 기슭 일대의 골짜기이다. 이 내는 남쪽으로 흐르다가 광화문 앞 황토마루 앞에서 동쪽으로 꺾여 흘러가다가 왕십리 밖 전곶교(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 남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들어간다.
청계천에는 다리가 많았고, 그 냇가로는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의 무교동의 한 마을 팥죽골 동쪽으로는 과일 파는 모전(毛廛)이 있었던 모전마을과 모전다리가 있었다.
광통교와 광교에서 더 가면 장통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장찻골다리라고 불러 왔다. 삼일교에서 조금 더 가면 수표교가 되는데, 이 다리는 청계천의 물높이를 측정하기 위해서 옆에 물재기기둥(수표.水標)을 세워 놓아 붙은 이름이다. 다리 남쪽으로는 우물물이 먹처럼 검게 보여 ‘먹우물’이라 부르던 마을이 있었는데, 이 이름이 바탕이 되어 묵정동(墨井洞)이 되었다.
청계천의 흐름은 그 유역 사람들이 늘 신경을 쓰고 살펴야 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넘치지나 않을까, 물흐름이 바뀌어 마을을 덮치지나 않을까? 그렇게 해서 물을 살핀다고 나온 이름이 지금의 종로구 관수동(觀水洞)이다. 근처로는 벙거짓골(모곡동.帽谷洞), 비팟골, 웃너더리(상판교.上板橋) 등의 마을이 있었다.
청계천에는 '배다리'가 여러 곳 있었다. 배를 길게 다리처럼 이어 내를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가 배다리인데, 이런 다리는 물이 불어날 때만 일시적으로 놓는 수가 많았다. 중구의 주교동(舟橋洞)은 배다리 이름의 한자 표기이다.///
광화문 황토마루 ▼
세종로 네거리 남동쪽에서 바라본 북악산 ▼
청계천 인공 물줄기 분출 지점(세종로 네거리 남동쪽) ▼
모전다리(모전교). 모전(毛廛)은 과일가. 전에 이 근처에 과일가게 동네가 있었다. ▼
너븐다리(광교) ▼
광교 근처 ▼
서린동(공원-사기전골이 있었던 곳) ▼
장통교 ▼
장통교 부근 ▼
배오개다리. 배오개는 지금의 종로 4가에 있었던 마을 이름 ▼
배오개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