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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교회 표어가 ‘우리는 교회입니다.’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교회를 찾아요. 교회 입장에서는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로 보여줬으면 좋겠고, 성도 입장에서는 좋은 교회를 만났으면 좋겠고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떻든 다 어려운데 저희 교회는 숫자적으로는 한 10% 이상이 어쨌든 부흥을 했어요. 그래서 되게 감사도 또 하고 또 이렇게 팀 사역들이 좀 활발하게 시작된 원년이 됐어요. 우리 섬선교회가 만들어지고 섬선교회를 기점으로 해서 여러분 표어를 보면 자세히 알겠지만 이제 영상을 우리 청년들이 한 거예요. 그리고 쇼츠를 제가 해서 올린 것도 우리 청년들이 한 것이고 또 재능 있는 집사님을 보내주셔서 이걸 한 팀으로 해서 앞으로는 그 팀에서 이런 교회 SNS에서 교회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여준 이 영상은 거짓이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실제 우리에게 있었던 일이니까 목사의 입장에서는 어떻든 교회가 주변의 불신자들이나 또 믿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좋은 교회로 보여지는 것이 되게 행복한 일입니다. 때로는 사실과 좀 다를지라도 좋은 교회로 소문나는 건 되게 행복하더라고요. 금이 놓여서 저를 약간 무서워해요. 그래서 왜 무서워하냐고 이렇게 봤더니 제가 장로님들을 무릎 꿇렸다고 소문이 나가지고 노회에서 저를 약간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런 적도 없는데 어떻든 소문이 이상하게 나기도 해요.
그렇지만 나쁜 소문은 어쩔 수 없죠. 좋은 소문은 좀 사실이 아니더라도 목사 입장에서 좀 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가끔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듣기는 최근 들었고 실제로 일어나기는 좀 오래된 그렇지만 이분들이 아마 추측하면 여러분이 알 수도 있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 모 교회의 역할을 감당했던 또 하고 있는 교회예요. 요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고 또 예전 이야기라서 더 감동이 돼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어떤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기준이 훨씬 더 지금보다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의 사모가 불륜을 저질렀어요. 그런데 이 교회에는 국회의원이자 의사였던 장로가 있었습니다. 이 장로님이 성도들을 설득해서 사모를 용서하고 목회자가 그 교회에서 계속 목회를 하도록 도왔어요. 심지어 그 목회자는 그 교회에 원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간치를 드렸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속으로 수십 번 ‘야 이게 교회지 이게 교회지 이게 교회지’를 제가 되내었던 것 같아요.
그 교회 출신 목사님에게 들었기 때문에 조금 가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이 아닐 수는 없어요. 실제로 그 교회 출신 목사님이시고 또 현재도 그 교회와 여전히 교류도 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구미 인근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교회도 그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셔요. 아마 그분들은 이야기 들으면 대략 어느 교회인지 알 거예요.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건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거죠. 제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짧은 시간 들었기 때문에 사실과 좀 다른 면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건 아닌 거죠.
가장 객관적인 건 사모가 불륜을 저질렀고 장로와 성도들이 용서를 했고 그 목회자는 그 교회에 을로 목사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 결정을 주도했던 분이 장로입니다. 장로님이 이 결정을 주도했어요. 장로의 결정이 듣는 이라면 누구든지 감동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예요.
이 말은 좋은 교회가 또 좋은 교회가 되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장로님이 좋았기 때문에 이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우리는 좋은 교회를 꿈꾸지만 막상 자신의 삶은 방치해요. 왜냐하면 자기가 교회라는 사실을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용어적인 약간 혼돈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러분과 제가 교회라고 말하는 이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이에요.
그럼 교회는 뭘까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인 거죠. 그 예배당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곧 교회예요.
그렇다면 교회인 여러분과 제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진짜 좋은 교회일까요? 오늘 본문 한 구절에 그런 의미들이 참 담겨 있어서 묵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성도 개개인의 믿음이 굳건해지고 믿음이 자라야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성도들의 믿음이 견고해지지 않으면 경고한 교회가 될 수 없고,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없어요. 어떤 저희가 작년에 숫자적인 성장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곳곳에 분명히 자라난 성도들이 있었을 거예요. 기도가 자란 성도가 있을 것이고, 교회를 섬기는 태도가 자란 성도가 있을 것이고,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바뀐 성도들이 있을 거예요.
개개인의 성장 없이 교회의 성장은 있을 수 없어요. 개개인의 부흥 없이 교회의 부흥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견고해져야 우리 교회도 견고해지는 것이고,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야 교회도 자라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성장을 명령해요. 자랐으면 좋겠다가 이게 아니라 자라라고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한다는 사실이에요. 교회인 우리에게 우리 보고 열매를 맺어라. 성장해라 자라라고 말씀이 우리에게 명령한다는 거예요.
성경은 우리의 성장이 세상적인 성장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성장의 목표가 다른 거죠. 에베소서 4장 15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오직 사랑 안에서 잠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의 성장의 목표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머리,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우리의 성숙과 성장의 육포인 거죠. 세상의 성숙과 성장의 목표와는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닮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아진다는 거죠. 예수님처럼 말을 하고, 예수님처럼 기도를 하고,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아지는 것이 교회의 부흥이자 교회의 성장인 거예요.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도 우리의 성장과 성숙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4장 13절도 한 번 더 읽습니다. 시작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성숙과 성장의 목표가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표준새번역에는 어떻게 번역했냐 하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라고 돼 있어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까지 우리가 이르는 것이 여러분과 저의 성장과 성숙의 목표라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성장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신앙의 목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여러분과 저 안에 충만해지는 것, 예수님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 예수님의 삶에 대한 갈망이 충만해지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목표인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성령으로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우리의 성숙과 성장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제가 갑자기 몸무게가 3kg가 빠졌어요. 잘 빠지지 않는 몸무게라서 이게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제가 약간 염려 이런 게 있어요. 염려가 근심이 좀 많은 사람이에요. 일단 병원에 갔습니다. 피를 뽑았어요. 수치를 봐야 아니까 다행히 수치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살이 빠지는 게 좀 불안했는지 밥을 다시 열심히 먹기 시작했어요. 다시 몸무게가 빠지기 이전으로 거의 돌아왔습니다. 병원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아내는 이런 제가 못마땅한지 한소리를 했습니다.
제가 말씀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과연 내 영적 성숙에 이렇게 민감한 사람인가? 내 몸의 변화는 이렇게 민감하고 내 몸에 어떤 질병이나 아픔이 있을까 봐 이렇게 민감한데, 내가 목회자로서 과연 나의 영적 성숙에 있어서 내가 이렇게 민감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거죠. 내 기도의 시간이 줄어든 거에 대해서 내가 과연 민감했을까?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고 예배하는 일을 게이 하는 거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시간과 물질을 들이는 일에 대해서 아까워하고 이렇게 내가 변해지는 거에 대해서 내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는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변화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지금 자기 영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나서 기도가 안 돼요. 교회 섬기는 게 재미가 없어요. 성도들을 만나도 즐겁지가 않아요 그러면 지금 영적으로 문제가 일어난 거잖아요.
근데 예민하지 않아요? 가정의 수입이 조금 줄어드는 것 몸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있는 것은 엄청나게 예민하지만 정작 영적인 변화들에 대해서는 예민하지 않다는 겁니다. 신앙에 문제가 발생해도 기도가 잘 되지 않아도 시험에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세상의 변화에는 육신의 변화에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좋은 가정이 되려면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가족 구성원이 좋은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처럼 좋은 교회가 되려면 성도 개개인이 좋은 성도가 돼야 돼요. 성도의 믿음이 견고해지지 않고 성도의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2025년도 여러분이 세상의 반응에도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되지만 영적인 변화에 더 민감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도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왜 기도가 줄어들까? 빨리 기도 시간을 늘리자 어느 날 예배가 즐겁지 않기 시작했어요. 내가 왜 예배가 즐겁지 않지, 왜 이러지, 내 무슨 문제가 있어 예배가 즐겁지 않지라고 심각하게 자기를 빨리 진단하고 돌이켜야 우리의 믿음이 단단해지고 믿음이 단단한 성도들로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결국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좋은 성도가 됐다는 거죠. 여러분이 행복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여러분이 행복한 성도가 되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곧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성도의 수가 늘어나는 증가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또 초대 교회가 왜 갑자기 이렇게 성도의 수가 늘어났는지 그 이유가 4절에 나와요. 4절을 표준새번역으로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서 지키게 하였다.
이게 이렇게 됐기 때문에 그래서 5절 초반절을 보면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했다는 거예요. 사절처럼 했기 때문에 5절에 교회의 부흥이 있었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4절을 잘 이해가 안 돼요. 저도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이렇게 자료들을 이렇게 뒤지다 보니까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래서 제가 큰 도전을 받았어요. 말씀 준비하다가 사도들과 장로들이 지키게 한 규정이 있었고 그 규정을 지켰더니 성도가 늘어났다는 거예요.
그럼 이 규정이 도대체 뭘까 뭐를 지키게 했길래 성도가 늘어났을까? 예루살렘 교회와 그리고 유대인 개종자들에 대해서는 할례를 비롯한 의식법과 정결법과 의식법을 다 지키게 했어요. 그리고 심지어 이방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을 강요하는 일들이 예루살렘 교회나 초대 교회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어떤 결정을 했냐 하면 더 이상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 거예요. 더 이상 이방인들이 이 규정과 유대인의 규정과 율례를 지키지도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이 결정 때문에 초대교회가 부흥했다는 거예요. 그 말이 안 되죠. 이 결정들을 사도들이 다니는 지역마다 가르쳐 지키게 했고, 그들 가르침 받은 대로 지켰더니 교회가 부흥했다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가 회의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지켰던 법들을 이방인 비유대인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했고, 이 결정을 바울과 사도들은 열심히 초대 교회들에게 가르쳤고 지키게 했고, 이들을 가르쳐 지켰더니 배운 대로 지켰더니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는 거예요.
교회가 잘못된 틀을 바꾸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말씀을 잘 들어야 돼요. 교회가 잘못된 틀을 바꾸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도를 방해하는 것, 영혼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틀이라는 거예요. 초대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공의회가 모여서 이 틀을 제거하기로 했고, 그대로 바울과 많은 사도들은 다니면서 초대 교회에 이 사실을 전달하고 가르치고 지키게 했어요. 그랬더니 교회에 큰 부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성령의 역사도 있었어요.
그런데 성령의 역사만큼 중요한 게 교회가 잘못된 것을 고쳤다는 사실이에요. 교회의 부흥은 잘못된 형식과 규정들을 다 없애자는 의미가 아니에요. 고치는 것이 교회의 부흥과 직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아닌 굳이 이것을 고집하거나 주장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매어서 살아가요. 그래서 영적인 큰 영적인 바다를 항해를 하지 못하는 거 왜 항구에 매여 있는 거예요.
항구에 배가 메여 있으면 아무리 기간을 돌려도 배는 항구를 떠날 수가 없어요. 그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는 동안 굳이 지키지 않아야 되는 것들을 지키고 그것을 우리의 의무처럼 생각하고 주변이나 교회에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예요.
근데 초대교회가 이걸 고쳤어요. 이걸 고치자마자 급속도로 성도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가 기존의 잘못된 규례들을 바꿨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인 제자들의 리더인 베드로에게 일어났고요. 예루살렘 교회와 베드로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가르쳤어요.
정확한 표현을 하면 지키겠다는 거예요. 올바른 말씀을 지키게 했더니 말씀대로 살게 했더니 교회가 부흥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 건 성도 개개인이 지금 말씀 안에 있지 않다는 의미인 거죠. 목회자도 물론 말씀 안에 있지 않지만 우리가 다 교회잖아요. 우리가 교회로서 말씀 안에 지금 익히잖아요. 뭔가 잘못된 말씀이 아닌 것들에 내가 나를 묶어놓고 이 큰 영적인 바다를 항해하지 못하고 항구에 매여 있는 거죠.
따지고 보면 이 땅의 많은 성도들은 항구에 매여 있는 배와 같아요. 바다가 얼마나 넓어요? 그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배의 본질이잖아요. 교회가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해야 될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모든 배들이 항구에 모여 있어요. 항해를 해야 되는데 이것이 잘못된 규례들이나 규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삶에 잘못된 부분을 개혁할 때 교회가 부흥한다는 의미예요.
우리는 잘못된 부분을 버려두고 잘못된 신앙을 그냥 둬도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이런 지금 부흥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어떻든 이런 개혁적인 의지를 가진 교회들이에요. 이 계획적인 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잘못된 규정들이나 잘못된 믿음의 태도들을 우리가 고치자 그래서 고쳐 나갈 때 교회가 크게 부응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잘못된 부분을 버려야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막혔던 영적인 물꼬가 트이게 됩니다. 교회의 영적인 물골을 가로막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나 가치관들이나 잘못된 사역들이 있어요. 이것을 버려야 이것을 고쳐야 교회의 영적인 물꼬가 트여요. 개인의 삶도 잘못된 걸 고쳐야 영적인 물꼬가 트이고, 교회도 잘못된 것들을 고쳐야 영적인 물꼬가 트이게 되는 거예요.
초대 교회는 잘못된 유대인의 규례들 특별히 할례를 행하는 것과 같은 선결 규정을 고쳤어요. 따지고 보면 엄청난 결정인 거예요. 이 결정을 초대교회가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했기 때문에 교회의 부흥이 왔다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가 내린 결정이 교회를 부흥하게 했던 의미인 거예요.
그러면 우리 교회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 교회를 부흥하게 한다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목장에서 모여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그 목장의 부흥을 좌우하고요. 여러분 부서가 모여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그 부서의 부흥을 좌우하고요. 여러분의 가정이 모여서 어떤 걸 결정하느냐가 여러분의 가정의 부흥을 좌우한다는 거예요.
근데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결정과 상관없이 노력만 해서 아니면 노력 없이 어떤 은혜가 자기에게 임하기를 기다려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정말 남다른 깨달음을 주는 본문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했다는 거죠. 좋은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했다는 거죠.
제가 2024년 이렇게 영상을 보면서 되게 감사했어요. 어떻든 참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었고 그런 결정적인 장면들이 많은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물론 잘 편집해 줘서 그런 효과도 있겠지만 그래서 새해에는 저희가 팀별로 좀 움직이려고 여러 조직 회의 다 못 보셨겠지만 여러 팀들이 생성이 돼 있어요. 이거 중간중간 발표해 가면서 최소한 10개에서 15개 정도 팀을 만들어서 목장의 약점을 좀 보완하려고 해요.
교회는 결정을 잘하면 부흥해요. 그러니까 인생의 개인의 삶도요. 결정을 잘해야 부흥하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런 말 기분 나쁘게 망할 결정을 하고 부흥하길 바라는 거죠. 망할 삶을 살고 부흥하길 바래요. 여러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불가능한 거죠.
예루살렘 교회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서 초대교회의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함께했기 때문에 일어난 부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결정 때문에 일어난 부흥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바뀌는 것 성도가 바뀌는 거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어려운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가 바뀌는 거죠. 그러니까 어려운 결정을 하면 할수록 교회와 성도들은 더 많이 바뀌는 거예요. 이런 변화가 복음의 큰 진보를 초대교회에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새해에 제가 과감히 여러 감히 여러분에게 좀 도전을 합니다. 도전의 말씀을 좀 던지고 싶어요. 여러분의 가정이 이전에 내리지 못했던 믿음의 결정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하기 싫은 건 아니죠 지금 은혜 받아서 막 이렇게 묵상하고 있는 거죠. 한번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부서에서 이전에 내리지 못했던 결정들을 한번 해보십시오.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우리 교회에서 우리가 이전에 하지 못했던 세상적인 결정을 의미하는 건 아니죠. 결정을 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교회의 기준은 여러 개예요. 저는 오늘 제가 두 가지로 오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소개합니다.
하나는 성도의 믿음이 자라는 성도의 믿음이 성장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 생각은 아니에요. 여러분 이야기를 잘못 듣고 이대로 하시면 절대 안 돼요.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이 우리 교회 다니면서 제 이야기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우리 교회를 떠나십시오.
저는 이런 말 못해요.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한 명도 떠나지 않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들어요. 저 마음 간절한 바람인지 할렐루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안 떠났다는 건 믿음이 자랐다는 거잖아요.
좋은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예요. 숫자적인 성장도 있지만 인격적인 신앙적인 영적인 성장이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 그리고 정말 성장하지 않으면 한 두 가지 살펴야 돼요.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 아니면 우리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살피긴 살펴야 됩니다.
두 번째로 좋은 교회는 좋은 결정을 하는 교회예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좋은 결정을 하면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작년에 보니까 우리 교회가 좋은 결정을 하려고 엄청나게 많이 노력했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감사하고 그 결정은 대부분 목회자로부터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몰라 제가 귀가 어두워서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 잘 따라주셔서 좋든 좋은 결과들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을 가르치면 교회는 성장하고 좋은 것을 먹으면 성도는 성숙해져요. 우리 교회가 성도들에게 좋은 걸 가르치는 교회가 되고 좋은 교회를 먹은 것을 먹이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여러분 잘하십시오. 그리고 저도 잘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영적인 변화들로 인해서 우리의 결정이 바뀌고 교회가 바뀐 일들이 여러분 이렇게 쇼츠에 올려놓은 영상 중에 우리 젊은 집사님들이 뒤에서 막 이렇게 1등하는 게 있어요. 보통 저희는 조회 수가 없어요. 유튜브를 운영해도 조회수 자체가 거의 미미해요. 어제 하루 동안 거의 4천여가 찍혔더라고요. 제가 너무 기뻤어요. 그냥 밤새 그거 보느라고 밤샌 건 아니지만 저녁에 보고 아침에도 보고 여기 올 때 또 보고 또 봤어요.
야 사람들이 이거 보면 진짜 감동받겠다 싶더라고요.
너무 행복하게 이렇게 율동을 하셔서 2025년 교회를 섬기는 우리의 마음에 그런 행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