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히브리서 8장 6-8절『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7장은 멜기세덱을 설명하는 것인데, 8장 1-5절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 하늘에 앉히셨는 것과 성소와 참 장막, 하늘의 모형, 중보자라는 말을 했다. 8장 6절에서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었다고 한다. 주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누구나 그 사실을 믿게 하셨다. 그러나 부활과 승천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시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 자에게만 주님의 증인으로서 함께 했다. 또한 그들에게 성령을 부으셨다. 부활은 성소에 들어간 삶과 같지만 승천은 지성소에 들어간 삶이 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이 보좌 우편에 서 있다고 말한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어린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 가면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주 예수님은 죽으러 온 제물이라는 것이다.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심일 후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셨다. 오순절 날 성령이 오셨으며, 이제 주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그대로 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잡혀간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육신의 조카이지만 영적으로는 형제라고 했다.
창세기 14장 14절에서『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kjv)』niv는 relative(친족)로 번역했다.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한 것이다. 이 전쟁은 정말 육신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전쟁이다.
집에서 기리고 훈련받은 삼백십팔 명이『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그런데 창세기 14장에서『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이 네왕들이 엘람왕 등 다섯왕들에게 싸움에서 패하고, 롯이 붙잡혀 간 것이다.
그런데 겨우 318명이 전쟁에서 이기고 롯을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성의 왕인 시작도 끝도 없는 멜기세덱을 만난 것이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아브람에게 주었다. 오늘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 전에 제사장으로 모습을 보이셨다.『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서에서만 기록되어 있는 새언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라는 것이다.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서 더 좋은 언약을 주시는 것이다. 모세를 통해서 세운 언약은 옛언약이 되었다. 히브리서 7장 28절에서『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신명기에서 말하는 맹세의 말씀이 새언약과 연결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8장 8절에서 인용한 예레미야 31장의 언약도 바로 새언약이다.『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새언약은 영어성경에는 new covernant로 번역되었다.
신약성경에서 covernant로 번역된 것이 20회 정도 등장하는데, testament로 번역된 곳이 13군데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같은 언약이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old testament, new testament로 읽는다. covernant이던 testament이던 중요한 것은 언약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히브리서 9장 18절에서 상속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유언장을 미리 써놓아도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 효력을 발생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다음에 새언약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kjv)』 (히브리서 9장 15절)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kjv)』(9장 16절) 유언이 testament다. 히브리서 9장 4절에서는『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kjv)』여기서는 언약이 covernant로 되어 있다. 주 예수님이 죽기 전에는 언약이 covernant로 되어 있다가 죽으신 후에 testament가 된 것이다. 영어(kjv)의 covernant나 testament는 헬라어로는 같은 단어다.
히브리서 8장 9절에서『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이 언약은 오순절 시내산에서 세운 언약이 아니라 애굽 땅에서 한 언약이라는 것이다. 애굽 땅에서 한 언약은 어린양의 언약이다.
『피를 칠하라 그러면 넘어가리라』는 것이다.『넘어가리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페사흐(פסח), 뒤의『흐』라는 말이 묵음으로 되어 페사가 파사(pasa)가 되고 영어로 pass가 되었다. 영어의 pass가 히브리어에서 온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칠한다는 것은 죄를 넘어가 준다는 것이다. 오늘로 말하자면, 교회로 인도되었는데, 광야에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에 인도되었지만, 자신이 죄악으로부터 묶여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출애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몸은 출애굽했지만 마음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광야에서는 회개하야만 한다. 회개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택하심을 입은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간과한다. 이 삶은 자기부인의 회개하는 삶이다. 자기부인의 삶이 죄로부터 놓임받는 삶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새언약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언약은 옛언약과는 다르다. 예레미야가『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리라』라고 하고, 다시『베벨론으로 부터 돌아오리라』라고 말했다. 이게 새언약이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