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일은 신비로운 일이다. 설명이 불가한. 그러나 그 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무엇보다 고상하고, 순복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실감한다.
순전한 기독교.
혼탁한 세상 속에서 나의 믿음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내가 붙드는 것 중의 하나이다.
무신론자였지만 예수에 항복하여 그를 사랑하게 된 사람. 그 사랑에 연애편지를 쓰듯, 그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판타지로 소설로 글로 토해낸 작가다.
이 책은 그가 머리말에서도 말하듯이 예수를 믿는 여러 교단이나 종교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공통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많은 분파가 주장하는 것이 아닌 공통의 믿음. 믿음의 진수. 엑기스만을 말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자가 아닌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골치아픈 일들은 신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공통의 믿음에 집중하자. 우리가 믿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 책은 그 집의 여러 방으로 통하는 문들이 있는 현관마루에 가깝다고 한다.
20 현관마루는 기다리는 장소이자 여러 문을 열어 볼 수 있는 장소일뿐, 계속 머물러 살 곳이 못 됩니다. 머물며 살려면 아무리 최악의 여건이라도ㅡ그 정도가 아무리 심하더라도ㅡ방이 현관 마루보다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방을 찾게 되었다면, 다른 방을 택한 사람들과 여전히 현관마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주십시오. ...
반복해 읽을수록 머리말에서 느껴지는 그의 마음이 감동이다. 오직 예수만을 (자신이 사랑한)알리고, 말해주고 싶어하는 마음.
" 그리스도인이 된 이래, 믿지 않는 이웃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봉사는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바를 설명하고 수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인상깊었던 부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장합시다"
286 주기도문의 첫 문장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아들 행세를 한다는 뜻입니다. 조잡하게 표현해서 그리스도로 분장했다는 뜻이지요. …여러분은 자기중심적인 두려움과 소원, 욕심, 질투, 자만 등 망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모아 놓은 꾸러미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로 분장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대단히 파렴치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288…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그는 여러분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바꾸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를테면 자신과 같은 생각과 생명, 즉 조에를 '넣어 주고' 계신 것이며, 양철 병정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바꾸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서 이 변화를 싫어하는 부분은 계속 양철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그는 온갖 방법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로 여기는 부분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의 몸을 통해서도, 책을 통해서도, 때로는 반기독교적으로 보이는(그 당시로서는) 경험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127 지금은 하나의 못된 성질과 시기심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합시다. 이것은 점차 진행되는 일이므로 70년이 지난다 한들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심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100만년 동안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지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기독교가 진짜 참이라면 '지옥'이야말로 이 상태를 정확하게 꼬집어 주는 용어라 할 것입니다.
기독교가 참이라면 영원히 살 인간에 비해 국가나 문명의 생명은 겨우 한 순간에 불과하므로, 각 개인은 국가나 문명보다 단순히 더 중요한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로 격상됩니다.
241 일반 독자들이 그렇게 우둔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탓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며,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명확하고 정확한 개념들을 얻고 싶어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신학은 지도와 같습니다
해변에서 진짜 대서양을 본 사람이 집에 돌아와 대서양 지도를 볼 때 실제세계가 덜 실제적인 세계로 바뀌듯이, 눈앞에서 넘실대던 파도가 한낱 색칠한 종이 조각으로 바뀌듯이 말이지요.
첫째는, 그 지도가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진짜 대서양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그 지도의 이면에는 해변에서 바다를 본 당신의 경험 못지않게 생생한 경험의 덩어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경험은 바다를 고작 한 번 흘낏 본 것이 전부지만, 지도는 서로 다른 경험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어딘가 가고자 할 때는 지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313 그리스도는 '지극히 혐오스러운 사람들'만 끌어모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천성적인 덕성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그 덕성에 실망하고 자기 만족이 산산이 부서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의미의 '부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저런 인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니, 기독교에 뭐 볼 게 있겠어?"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해 -그들이 받는 유혹과 기회, 고투에 대해- 여러분이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알 고 있는 영혼은 전 창조 세계에 단 하나(자신) 뿐입니다.
옆집 사람에 대한 억측이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내세워 그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 옆에 계시던 그 '존재'가 마침내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피하려야 피할 수 없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시는 날, 그런 잡담과 소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첫댓글 이 저자도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기독교 -> 무신론 -> 기독교’로 변화를 겪죠.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전공의 영향으로 중세적 느낌과 기독교적 은유가 많이 녹아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고통의 문제]와 함께 잘 읽었었죠. 현실에서는 순전함으로만 남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