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노새가 가파른 그 골목을 넘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내 아버지는 노새와
함께 연탄 배달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노새는 얼마전부터
말이 잔병치레를 해 어떤 사람과 맞바꿨다. 나와 아버지는 노새를 아끼며 가족처럼 대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평소처럼 연탄 배달을 하고 있었던 어느 날, 서울의 변두리 마을에 새로운 구조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슬레브 지붕의 형형색색한 색깔과 여기저기 지나다니는 차들로 그 새로운 마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온 이후로 잡화점같은 곳에서도 파는 물건이 많아지고, 슈샤인보이(구두닦이 소년)나 신문배달부도 나타나고, 평소에는 대충 일했던 청소부들이 골목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 동네가 생기며 그들이 연탄도 많이 사갔기에 아버지도 새 동네가 생긴 것을 좋아했다.
새동네 사람들은 구동네 사람들과는 교류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새동네 아이들을 별로 안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노새를 보고 신기해하고 귀여워할때만큼은 어깨가 으쓱했다. 연탄배달을 하러 새동네에 가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노새를 신기해하며 귀여워했다. 구동네 사람들은 노새만 보면 몰래 괴롭히고 욕하고 가는데 비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따끔 혼내주시고는 한다.
원래 노새를 돌봐주었던 큰 형이 군대를 가자, 어쩔 수 없이 노새는 내가 돌봐주었다. 연탄일을 하면서 애가 거멓게 물들었는데, 내가 닦아줘도 닦아줘도 회색만 될뿐 나중에 보면 또 검은색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나는 노새를 정성껏 보살펴주었고, 노새도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나만 보면 고개를 흔들며 인사했다. 하지만 이 일도 이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사건은 얼마 전,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갈 때였다. 아버지는 노새가 그 곳에서 힘들어할걸 알았는지 벌써 대비를 하고 있었고, 노새는 힘을 들이며 그 골목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노새가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점점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평소같지 않게 당황하며 노새에게 매질을 했다. 노새도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수레가 미끄러져 박살나고, 연탄은 굴러떨어지고, 무엇보다... 노새가 탈출했다.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걸 안 노새는 재빨리 달아났고,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황급히 쫓았다. 하지만, 나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은 잃어버린 노새를 찾는 우리를 구경거리 삼아 구경했지만 결국 아무말도 안하고 도와주지도 않았다. 방금전에 수레가 무거워 미끄러지려고 했을 때도 그들은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이후로도 노새를 계속 찾았지만, 우린 노새를 찾지 못했고, 밤늦게까지 찾다가 결국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우린 밥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내일 또 노새를 찾기 위해 일찍 자야 했다.
난 꿈에서 노새를 보았다. 수레도 없다, 연탄도 없다. 아무런 짐도 없다. 앞길을 막는 사람들도 없었다. 신호등이 빨간 불이 되든 말든 노새는 계속 달리고 달렸다. 처음엔 조금 큰길에서만 달렸지만 시장, 변화가를 거쳐 대교를 지나고 톨게이트를 지나 노새는 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런 막힘 없이 달려가는 노새에게서 검은 물과 땀이 흘려내렸으며 그가 달리는 모습은 마치 우리가 원하는 모습 같았다.
꿈에서 깬 나는 조금 뒤숭숭하고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일어나 손을 잡고 같이 노새를 찾으러 나섰다. 그 동안에는 내가 아버지를 거들어주려고 해도 아버지는 내가 도와주지 않고 공부를 하게끔 시키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오늘은 아버지와 같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니! 어쨌든 난 계속 길을 나섰다. 길을 가다가 시장을 발견했을 때, 어제 있었던 꿈이 걱정이 되어 아버지를 졸라 같이 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다행히 시장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그냥 평범한 시장이었다.
이후로도 계속 길을 떠났지만, 사실 노새를 찾기는 커녕 길을 목적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동화속에서나 보던 길 잃은 나그네 같았다. 그렇게 발걸음을 딛다가 어느새 동물원에 도착했다. 옛날에 어린이 행사로 무료로 들어와본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잘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한적한 동물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걷는게 신기했다. 아버지는 온갇 신기한 동물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영혼없는 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얼룩말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말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아버지가 노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생긴것도 비슷했지만, 뭔가 여러가지로 비슷했다. 이후에 동물원을 나가서 다시 노새를 찾으려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될 즈음에, 아버지가 날 대포집으로 이끌고 와 술을 마셨다. 아버지는 '이제부터는 내가 노새다'라고 말하였는데, 조금 웃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노새면 엄마는 노새 아내고, 할머니는 노새 엄마, 나는 노새 아들이 아닌가. 우리는 어디에도 없을 노새 가족이다.
아버지와 얘기를 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경찰이 노새가 난동을 피운 것 때문에 노새 주인을 수색하다가, 얼마 전에 아버지를 잡으러 집에 왔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다가, 코를 쓱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버지를 쫓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늘, 또 한 마리의 노새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