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람들이 방문하니 나도 모르게 굳어진 몸이 풀어지고 입가엔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우주의 기쁜 분자나 상큼한 원자 알갱이들이 폭죽처럼 빵~ 앙 빵~ 앙 터지는 건가요?
솜털처럼 가쁜해진 몸이 공중에 두둥실 떠오르는 듯 서로 얼싸안고 빙빙돌며 기뻐 춤을 춥니다.
청소년기 시대 풋풋한 사람들의 시선은 투명하고 애잔하고 어찌 이다지도 고운지요?
내가 묻고 싶은데 먼저 말합니다.
진서: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서아: 선생님 방학 잘 지내셨어요?
이진: 선생님 저 살 뺀거 봐요, 많이많이~ 놀았어요. 봐요. 봐요, 새카맣죠? 헤헤
특히 부현이와 인서가 2학기에 수업에서 만날 수 없으니 섭섭하다고 합니다.
둘의 말이 진실인 것을 압니다.
각각 방문해서 말하는 청소년기 사람들의 속엣말은 친구를 살짝 피해 혼자 오거든요.
착한 말, 좋은 말, 기분좋은 말은 친구들 앞에선 웬지 쑥스럽게 여기는 것도 시대적 발달과업인가요?
퇴근해서 도착한 유시민 작가의 <문과남자의 과학 공부> 책을 읽다가 또 한 참 깔깔대며 남편과 더불어 웃었습니다.
청소년기 사람들의 정체성을 빚는 ' 자아' ' 자기결정권' 수업 부담으로 저 또한, 숫자와 과학세계를 넘나든 해였습니다.
유 작가와 비교불능 일천한 지식인데, 과학 입문 동기나 공부 패턴과 흐름과 과정은 똑 닮았는지 머릿속이 정돈되는 것입니다.
박스도 개봉 못한 책들은 쌓여만 가고 몰입도 어려운데, 배워본 적없는 세계를 제가 무슨수로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겠는지요?
그닌깐 저도 모르는 이야기를 주당 2시간씩 한 학기 내내 떠들어댔으니 이제 생각해보니 일자무식 식은 땀이 다 납니다.
칸트, 레비나스, 하이데거, 뇌과학, 명상, 모두 굵직굵직, 생애를 다 바쳐도 힘든 대가와 분야를 어찌어찌 펼쳐내보였습니다.
건강 개념과 정의, 응급처치, 생체리듬, 제도와 정책 등은 기계적, 인과론적으로 명료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의 성(性)은, 확률적 상태와 태고를 열어젖히듯 매번 난해하고 예측불능해서 뭐 하나 똑 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가르침 자체가 바로 나(교사) 의 성찰과 반성을 선제적으로 요구하는 듯해, 매번 엄청난 부담감이 엄습하곤합니다.
미래를 사는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자아' '정체성' 을 빚는 적정의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조바심을 내는 것이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중생아닌 부처가 되길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나와 너로 엮이는 신묘막측한 몸 세계를 생생하게 전율하며 기쁘게 맞이하길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위기와 위험로 패배와 무력감이 덮칠 때, 그때에 비로소 강한 자아로 이윽고 마침내 일어서 뚜벅뚜벅 내딛길 바라는 것입니다.
패거리, 조폭 문양, 무지의 권력을 자행하는 공기관 리더들에 대한 대안책은 '강한 자아'의 결핍이다싶어 열심을 내보는 것입니다.
근데 청소년기 사람들이, 특성화고 어린 사람들이 이를 알아듣는 것입니다.
고개를 사뭇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드는 청소년기 사람들의 모습은 차마 기대하지 않았나 봅니다.
저야말로 청소년기 사람들의 반응을 되감은 감동으로 어떨떨, 황홀해졌던 수업으로 인해 지금도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인제 고3 졸업인데, 특성화고 특성상 패러다임을 바꿔온 철학자와 인간기원, 우주입자 세계를 한 번은 귀에 들려주고 싶었을 뿐인데요. 근데 청소년기 사람들 표정이 장난이 아닌, 신중하고 헤아릴 수 없는 깊고 풍부한 표정에 제가 놀라는 것입니다. 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교사가 지시하는 못난 손가락이 아닌, 의도하고 지향하는 저 둥근 달을 우리는 분명 쳐다보는 것이지요!
아~ 어떡하지? 이 불지옥 한 학기를 또 어떻게 견디지?......
전혀 웃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검은 상복을 입고 출근해야 하나, 복잡한 머릿속을 마스크, 모자, 선글라스로 얼굴을 지운 저를 일깨우는 건 어린 사람들입니다.
학교엔 봄 꽃이 피어납니다.
처음보는 새로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향기롭게
생생하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