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링크
https://youtu.be/iCPqq-Sq8XQ
강석진은 풍경을 그린다. 대범하게 펼쳐지는 풍광을 고집 한다. 확실한 방향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라는 말은 이럴 때 적절한 뉘앙스를 가진다. 그러나 민족정기를 그린다. 민족의 원형을 담고 있는 기록이다.
강석진은 발로 풍경을 그린다. 화구 배낭을 메고 현장을 누빈다. 때로 유럽이나 제 3국일 수도 있지만 그의 발길은 한국이거나 한국과 관계가 있는 지역으로 먼저 향한다. 한국에서 그는 우리의 풍토를 그린다.
구불구불한 논과 산간 지방의 계단식 논에 매료된다. 모심기 전과 심고 난 풍경에서 한국의 얼을 찾는다. 정선아리랑 같은 구성진 가락 속에 숨은 한민족의 한을 읽는다. 굽이굽이 서린 논과 밭에는 보릿고개의 애환이 담겨 있다. 쌀 몇 가마에 딸을 파는 비정한 아버지의 한이 숨어 있다.
그것이 풍경이기에 그는 한국적인 풍경들, 다시 찾아 보기 힘들 것으로 생각되는 풍경을 그린다. 한국 화가들의 사명을 그는 대변한다. 내 눈앞에서 우리의 풍경이 사라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는 충실한 기록자의 시각이다. 그러기에 그 기록은 분명한 방향을 가진다.
세계에 나가서도 그는 한국의 얼굴을 본다. 만주 내몽고의 천산-실크로드-연변-백두산 등이 그러하다. 모두 민족의 정신과 연관이 있는 곳이다. 천산은 칸텡그리라 부른다. 단군왕검과 뜻이 같다. 실크로드는 우리의 원형 문화가 숨쉬는 통과 지대이다.
연변은 한국에서 이미 사라진 민족문화의 원형이 살아 있으리라 기대되는 곳이다. 백두산은 한국인의 고향이다. 이 모든 곳이 그의 화폭으로 옮겨진다. 그 역정은 때로 무모하기도 한 고행의 순례이다. 목숨을 건 저돌적인 용맹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몰아세우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고행과 모험은 끈질기다.
처음 백두산을 찾았을 때는 눈 덮인 늦가을이었다. 교통이 두절된 백두산 행은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비장한 산행이었다. 천산으로 가는 중국의 쌍발비행기는 산 중턱에서 엔진이 하나 껴졌다. 천산을 넘지 못하고 회항하는 비행기에서 그는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천행으로 되돌아 안착한 후에 그는 그 냄새를 잊어버린다. 아마도 다음 비행기가 있다면 그는 다시 그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 백두산을 피하여 그는 절벽을 타고 오른다. 송화강의 원류로서의 천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했다. 묵직한 화구 배낭을 멘, 아마도 화가로서는 최초의 등반이리라. 누가 그 고행의 이유를 알까. 강석진 역시 그러한 고행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왜 자신이 그토록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단지 몸을 낮추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을 갈구하는가. 그것은 이동주가 사모곡에서 읊었던 한국인의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종교는 신령이었다. 추운 날 얼음을 깨고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는 엎드려 손만 부볐다” 했다. 몸을 낮추고 손을 부비면서, 즉 비손을 하면서 우리네 어머니는 천지신명이시어 일월성신이시어를 되뇌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있는 인간의 고향을 의미한다. 천지신명은 크게 보아 우주의 신이다. 신명이 태양이라 했으니 태양신이기도 하다. 일월성신은 해달별의 신이다. 그것이 이동주의 사모곡에서 읊은 한국인의 고향이었다.
그래서 강석진은 산에 오른다. 산은 천지신명이 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산에는 민족의 원형과 정기가 어려 있다. 천산은 원형 중의 원형이고 백두산은 한민족의 원형이다.
강석진은 산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즐긴다. 하늘이 백두산과 천산을 내려보았듯이 환웅이 자신의 뜻을 펼 삼위 태백을 굽어보았듯 그는 부감 시각을 택한다. 비껴 아래로 보는 시각이다. 따는 계단식 논이나 물논의 곡선이 더욱 정겹기도 하다. 그의 그림이 그토록 부드러운 톤과 모나지 않은 선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그 정겨움의 표상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창조의 시각이기도 하다.
그가 사진으로 접했던 물에 잠긴 어느 유럽 도시의 풍경은 기하적이고 유기적인 것의 절묘한 조화였다. 창조주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장면의 연출이었다. 나아가 비극을 통해 정신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부감 시각의 의미이다. 공중에서 영혼이 내려다보는 시각도 부감 시각일 것이다. 그렇게 내려다보는 발판을 하늘사다리라 한다.
사진을 통해서 소재를 구하는 일은 강석진에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면서 그의 작업량은 엄청나다. 현장 작업이기에 더욱 엄청나다. 왜 그 현장일까. 그 단서는 작업 사랑이다. 자신의 소재가 한국의 얼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는 그 얼이 서린 곳을 찾는 것이다. 현장 작업이라는 일견 무모해 보이는 패턴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염원을 실현하는 방편이 된다.
구상 회화는 자연과의 행복한 친화 관계에서 그려진다고 이른바 감정이입설은 가르친다. 강석진에게는 자신의 손으로 그려지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을 그린다는 차원이 하나 더 따라붙는다.
자신을 그림에 담는 것, 즉 자연과 친화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이 아닌 자연의 일부분이 되는 시간이 좋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 자연은 자신이 언젠가 돌아갈 자연이기 때문에 그를 편하게 한다. 분명히 그 자연의 시간은 현장의 시간일 것이다.
많은 작가들은 녹색의 자연을 기피한다. 그림이 휘주근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강석진은 녹색의 풍경을 즐겨 그린다. 그 중에서도 신록이 편하다. 농촌에서의 어린 시절은 바로 자연 속의 삶이었다. 그 자연 속에서 모를 심었고 추수도 했다.
그래서 꾸며지지 않은 풍광에 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편하게 그려지기에 때로 시각적이나 회화적인 시각이 아니라 심정적인 정서적인 화면이 더욱 보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구상 그림의 중요한 포인트를 성취하는 큰 걸음이기도 하다. 바로 공기를 담는 것이다. 분위기라는 말과 공기라는 말을 좀더 밀착적인 개념으로 그림에 적용하면 생기라는 말이 된다. 강석진이 현장을 고집함은 바로 이 생기를 생기 있게 화면에 옮기고자 하는 자발적인 충동의 결과이다. 또한 사진이나 스케치를 바탕으로 하는 그림을 한사코 마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상을 옮겨 그리는 구상 회화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현장에서 바로 그리고 완성하는 것이다. 가급적 짧은 시간일 필요가 있는 것은 시간에 따라서 빛의 방향과 처음 받은 인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인상파 적인 그림이 구상 화가들에 많이 쓰이는 것은 순간적인 인상을 생생하게 화면에 고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검정색을 잘 쓰지 않는 인상파의 화법은 화면을 보다 밝게 만들어 주는 좋은 기법이 된다.
그 다음이라면 현장에서 7할 정도를 완성하고 나머지 3할은 스튜디오에서 완성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현장의 강렬한 인상을 중화하여 보다 차분하고 구축적인 화면을 만들기 위한 좋은 방편이다. 유화는 건조가 늦은 물감이다.
현장에서 승부 하려 드는 것은 때로 무모하다. 그 분위기와 공기만을 담은 후 어느 정도 건조된 바탕 위에 완성하는 것은 유화의 속성 때문이다. 강석진 같은 현장파에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인 푸근한 정감을 담은 풍광을 풍요한 색감의 증충구조위에 자기화할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다.
현장 정신은 하르빈의 731 부대 그림에서 잘 보인다. 그 그림은 당연히 현장에서 그려져야 했다. 그래서 악명 높은 세균 부대의 마루타 대신 살아 있는 중국인 빈민들을 그린다. 세균 부대의 주변 천막촌의 현장을 담아야 했다.
캔디드Candid 촬영으로 사진을 찍어 그들이 의식하지 않는 피상적인 외면을 그림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견되는 그들의 반응까지 그림에 담고 싶었다. 당연히 빈민들의 항의를 받는다. 해명하고서 오히려 환대를 받았던 기록이 바로 세균 부대의 그림이다.
강석진 그림의 주역은 현장이다. 그 현장은 장소성으로서 환경과 분위기가 아니다. 환경 속에서 숨쉬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배경이 아니다. 또는 피사체로 그려지지 않는다. 당당한 그림의 주역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것이 강석진 그림의 기질이다. 풍경 화가들이 기피하는 비닐하우스의 물결이 그림에 당당하게 자리잡는 것은 이러한 현장 정신의 발로이다. 우리의 풍경의 한 부분일 때 거부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는 생각한다.
나아가 그는 마치 눈 경치를 그린 것처럼, 또는 안개가 낀 듯한 풍경을 비닐하우스에서 발견한다. 규칙적인 구조로 만들어지는데도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루어지는 물논이나 계단식 논, 나아가서는 한국의 선을 닮았다고 느낀다.
사진을 찍을 바에야 비닐 하우스가 없는 산간 오지로 들어가면 된다. 그림에서는 물처럼 밭처럼 그리면 된다. 그러나 강석진이 비닐하우스를 그토록 정다운 시선으로 그려내는 것은 그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를 걷어 낸 우리의 농촌을 다시 찾자는 것이 아니라 비닐 하우스가 있는 한국이 풍경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민족의 저력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국민의 재건 Nation‘s Rebuilding'을 꾀하자는 사고와 동등한 궤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리라.
21세기를 지배할 민족으로 그는 한민족을 꼽는다. 동양인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정신적이면서 도발적일 수 있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직선적이고 감정적인 그리고 다이내믹한 원형을 그는 신뢰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삶은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유목민족으로서의 원형, 불교와 유교를 거치면서 변질되었던 것이 한민족의 원형이었다. 그러나 한국 동란에서 다시 반전되어 그 상고 시대의 원형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한민족의 시련과 수난이었다.
그것은 다시 21세기에 활짝 꽃 필 수 있는 저력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나라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된다. 그것이 강석진 그림의 원형이다. 현장의 생기일 것이다.
-2022